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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백편의자현/독서_톡톡Talk

선과 악이 공존하는 아프락사스의 세계 … 헤르만 헤세『데미안』

첫 번째 『데미안』을 읽었던 것이 중학교 때였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읽은 책이었지만 단지 글자만 읽었다는 생각만 남았었다. 두 번째 『데미안』을 다시 읽은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나만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책을 잡았었는데 그 때조차 『데미안』의 줄거리조차 남지 않았다. 유명한 구절 몇 개와 사람 이름만 외우고 친구들에게 아는 체를 했던 것 같다. 세 번째로 다시 『데미안』을 읽은 것은 대학2학년 때였다. 어떻게든 내용을 알아보겠다고 작심을 하고 며칠을 걸쳐 읽었는데 왜 이 작품을 명작이라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내 이해력의 정도가 이렇게까지 엉망인가하는 생각으로 나를 괴롭히며 나와는 맞지 않는 책이라 단정해 버렸다. 그리고 대학 4학년 때 다시 『데미안』을 잡았다. 미련이 남아 책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리고 난 처음으로 싱클레어라는 성장과정 속 심리상태를 잡아내고, 내 성장과정 속에서 느꼈던 생각들과 닮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책의 내용에 공감했다는 것이 나를 흥분케 했고, 그 흥분은 이 날의 독서노트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데미안』을 잡았다. 대학 4학년 때 썼던 독서노트를 읽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공감하도록 했는지 느껴보고 싶어 다시 읽게 된 것이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느낌으로 『데미안』은 다가왔다.

 

 

 

 

 

 

 

데미안

원제 : Demian
헤르만 헤세 | 전영애 역 | 민음사 | 2000

 

너무나 유명한 성장소설의 대표작. 에밀 싱클레어의 성장 스토리를 담고 있다.

 

『데미안』은 어른이 된 싱클레어가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자신의 세계관의 변화를 가져온 여러 가지 사건들을 이야기한 것이다.

 

첫 번째 일화는 싱클레어의 열 살 때의 기록이다. 싱클레어는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온화하고 다정함이 가득한 가정에서 단정하게 자라난다. 하지만 나쁜 짓을 하고, 그것을 자랑삼던 친구 프란츠 크로머에게 과수원에서 커다란 자루에 하나 가득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을 하면서부터 싱클레어의 평화롭던 세계는 요동치기 시작한다. 크로머의 휘파람 소리가 들리면 모아둔 돈을 가져오고, 줄 돈이 없을 때는 도둑질도 하며, 심지어 누나를 데리고 나오기까지 하는 등 크로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된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선의 세계’에 속한 가족에게 자신의 두려움을 고백하지 못한다. ‘악한’ 자신이 있는 세계는 ‘선한’ 가족의 세계와 선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이다. 이때 나타난 것이 싱클레어의 학교로 전학 온 막스 데미안이다. 어느 날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다가오고 카인과 아벨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이야기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죽인 거야. 그들이 정말 형제였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결국 사람들은 모두가 형제이니까. 따라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죽은 것에 불과한 거야. 그것은 무척 영웅적인 행동이었을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어. 여하튼 약한 자들은 두려움을 느꼈던 거야. 그들은 공포에 휩싸여 한탄했겠지. 그렇지만 누군가가 그들에게 ‘왜 그들을 해치우지 못하지?’하고 물으면, ‘우리가 겁쟁이이기 때문에’라고 말하지는 않을 거야. ‘그럴 수는 없다. 그 자들은 표적을 달고 있어. 신이 그들에게 표적을 주셨거든’하고 말한 거야.”

이것은 선생님, 부모님에게서 배워온 이야기와는 다른 것이었다. 모든 것을 알고, 독특한 그의 사상은 싱클레어를 매료시킨다. 그리고 데미안은 크로머란 고통을 없애주기도 한다. 고통의 근원에서 해방된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멀리하며 평범하고 ‘밝은 세계’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몇 년 후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견진례 수업에서 재회한다. 카인과 아벨에 관한 수업을 들은 후, 둘의 관계는 가까워진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옆자리로 옮겨서 ‘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싱클레어는 점점 기존의 규범과 다른 생각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던 도둑들에 대한 이야기 등을 접하며 싱클레어의 종교적인 믿음에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데미안은 그에게 성경 안의 신에 대한 숭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여호와를 숭배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전부를 인정하고 신성시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구분한 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절반만이 아니라 온전한 전체를 말이야. 우리는 신께 예배드리는 동시에 악마에게도 예배를 드려야만 해. 그래야만 정당하다고 할 수 있어.”

싱클레어는 이런 데미안의 주장이 자신의 전에 겪었던 자신의 문제가 모든 생명의 근본적인 문제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싱클레어가 기숙학교에 들어가면서 데미안과 헤어진다. 묘한 공허와 고립감을 느끼며 시간은 흘러가고 자신의 불완전한 신념에 혼란스러워 한다. 음주와 같은 금지된 규칙을 어기고, 뜨거운 희열을 맛보며 최악의 낙제생으로 지내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다소 남성적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매혹적인 한 소녀를 보게 된다. 비록 그녀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싱클레어는 그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하나의 상징으로 삼는다. 친구들과 함께 한 방탕한 생활을 접고,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를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림을 완성됐을 때 그 그림 속 모습은 신기하게도 데미안의 얼굴이었다.

 

어느 날 수업 중 쉬는 시간에 책갈피 사이에서 종이쪽지 하나를 발견한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한다. 그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싱클레어는 이것이 데미안이 보낸 쪽지임을 확신한다. 데미안의 쪽지에 담긴 ‘아프락사스’. 는 고대 신의 이름으로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상징적인 의미의 신’이다. 이것은 절대 선과 절대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 하나의 세계에 속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헤세의 생각을 담고 있다. 이 시기 싱클레어는 반복되는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이 무렵 작은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끌려 간 곳에서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난다. ‘아프락사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의 스승이 된다.

 

어느 날 싱클레어의 학교 친구 크나우어가 그에게 다가와 가르침을 청한다. 싱클레어는 크나우어에게 내적 영혼이 원하는 바에 순응해야 함을 말해 준다. 후에 싱클레어는 밤거리를 거닐 때 크나우어가 자살하려는 것을 보게 되고 그를 구한다.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가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 낼 정도로 창조적이지 않으며 옛날의 신과 과거의 이론만을 가르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싱클레어가 예비학교를 마치면서 두 사람의 만남도 결별의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옛날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데미안의 어머니 사진을 보게 된다. 그녀의 모습은 싱클레어가 그렸던 초상화와 똑같이 닮은 것을 알게 되고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어느 날 저녁, 대학이 있는 도시를 거닐 던 중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재회한다. 데미안의 어머니를 만날 것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싱클레어는 마침내 데미안의 집에 방문하게 된다. 싱클레어와 에바는 한순간에 이어지게 되고,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긴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집에 자주 방문하여 에바 부인과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러나 이 무렵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싱클레어는 그 해 여름을 데미안 가족과 함께 보내며, 그들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 어느 날 싱클레어는 텔레파시로 에바 부인을 불렀고, 에바 부인은 그 소리에 데미안을 보낸다. 전쟁이 시작되고 데미안은 중위로 소집 명령을 받는다. 싱클레어가 전쟁에 나가기 전 에바부인은 도움이 필요로 할 때 자신을 어떻게 부를 수 있는지 등을 알려준다.

 

싱클레어는 전투에서 부상을 입게 되고, 에바 부인이 알려준 방법으로 데미안을 곁으로 부른다. 데미안은 도움이 필요하다 느끼며 더 이상 자신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저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데미안이 그 안에 있을 것이라 말해 준다. 동시에 데미안은 그의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남기고, 그 키스를 통해 에바 부인과 만난다. 그리고 데미안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싱클레어는 ‘자신 속에 있는 뛰어난 존재’와 하나가 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프락사스의 세계

 

과거 『데미안』을 읽으며 싱클레어의 심리변화에 공감을 했다면 이번에는 선과 악이 결합된 신 ‘아프락사스’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한다. 그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절대 악과 절대 선이라는 경계를 그어놓고 판단하는 세계는 다분히 폭력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옳고, 너희는 그르다라는 사고는 『데미안』의 마지막 장면처럼 전쟁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역사의 어느 순간을 보아도 이는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독재자가 나타나 자신이 보는 세계가 절대적인 선이라 여기며 했던 수많은 비극을 생각해보라. 나의 종교만이 옳고, 나의 세계관만이 정당하다는 논리가 부른 비극적인 사태들을 생각해 보라. 제국주의, 인종주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들. 나는 선이요, 너희들은 악이다라는 논리는 선으로 악을 깨부수어야한다는 논리로 이어져 수많은 유혈 사태를 만들어내었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서 『장자』에서 다루고 있는 노나라 임금이 새를 대접하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 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했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잠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 버리고 말았다.

 

노나라 임금은 자신의 방식을 새에게 강요하며, 바닷새가 가진 삶의 규칙을 배척했다. 임금 자신은 극진한 대접이었지만, 새에게는 하늘을 날며 벌레를 잡아먹으며 사는 것이 자유를 박탈한 폭력에 불과하다.

 

새가 알을 빠져나와 향하는 곳은 ‘아프락사스’라는 신의 곁이다. 헤르만 헤세는 ‘아프락사스’를 통해 특정한 편견에 갇혀 타자를 배척하는 삶을 지양하며, 타자와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하려는 자세를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싱클레어가 자신의 내면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세상과 다른 특별한 해석을 했던 데미안을 인정하고 그가 제시한 방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이라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한 인간 속에 내재한 ‘의지’가 자유로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프락사스’를 향한 삶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