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全문보기/고전소설 원문|전문 6

[전우치전] 유쾌한 도술에 가려진 비애 …『전운치전』(경판37장본 전문)

현대어역(경판 37장본, 전운치전) 화설(話說). 고려(高麗) 말(末) 남서부(南西部) 땅에 일위(一位) 명사(名士)이름난 인사(사람)가 있으니, 성(性)은 전(田)이오 명(名)은 숙이오 별호(別號)는 운화선생이라. 대대(代代) 공후(公侯) 자손(子孫)으로 숙에게 이르러서는 청운(靑雲)푸른 뜻, 즉 높은 지위나 벼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 뜻이 없어 몸을 산림(山林)에 숨기고 글을 숭상(崇尙)하며 혹(或) 벗을 모아 산천(山川)과 풍월(風月)을 문답(問答)하여 세월(歲月)을 허비(虛費)하니, 시인(市人)그 당시의 사람들이 이르기를 산중(山中) 처사(處士)라 하더라. 부인(夫人) 최씨(崔氏)는 잠영거족(簪纓巨族)잠영(簪纓)은 관원이 쓰던 비녀와 갓끈을, 거족(巨族)은 대대로 번창하고 문벌이 좋은 집안을 ..

[금오신화] 용궁 잔치에 초대받다 … 김시습「용궁부연록」(전문)

현대어역 개성에 천마산이 있는데, 그 산이 공중에 높이 솟아 가파르므로 ‘천마산(天磨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산 가운데 용추(龍湫)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밑에 생긴 웅덩이가 있으니 그 이름을 표연(瓢淵)박연(朴淵)이라 하였다. 그 못은 좁으면서도 깊어서 몇 길이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이 넘쳐서 폭포가 되었는데, 그 높이가 백여 길은 되어 보였다. 경치가 맑고도 아름다워서 놀러 다니는 스님이나 나그네들이 반드시 이곳을 구경하였다. 옛날부터 이곳에 신령한 이물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전기에 실려 있어서, 나라에서 세시(歲時)1년 중(中)의 때때. 1년 동안의 제철가 되면 커다란 소를 잡아 제사지내게 하였다. 고려 때에 한생(韓生)이 살고 있었는데, 젊어서부터 글을 잘 지어 조정에까지 알려지고 문사(..

[금오신화] 남쪽에 있는 지옥에 가다 … 김시습「남염부주지」(전문)

현대어역 성화(成化)명나라 현종의 연호. 1465∼1487년 초년조선 세조 11년에 경주에 박생(朴生)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유학에 뜻을 두고 언제나 자신을 격려하였다. 일찍부터 태학관(太學館)성균관에서 공부하였지만, 한 번도 시험에 합격하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언제나 불쾌한 감정을 품고 지냈다. 그는 뜻과 기상이 고매하여 세력을 보고도 굽히지 않았으므로, 남들은 그를 거만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남들과 만나거나 이야기할 때에는 온순하고 순박하였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찬하였다. 박생은 일찍부터 부도(浮圖)불교, 무격, 귀신 등의 이야기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었지만, 어떠한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중용』과『주역』을 읽은 뒤부터는 자기의 생각에 대하여 자신을 가지고 더 ..

[금오신화] 부벽정에서 취하여 놀다 … 김시습「취유부벽정기」(전문)

현대어역 평양은 옛 조선의 서울이었다.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이기고 기자(箕子)를 방문하자, 기자가「홍범(洪範)」구주(九疇)의 법을 일러주었다.기자는 중국 은나라의 현인으로 이름은 서여(胥餘)이다. 주나라 무왕이 그에게 세상 다스리는 법을 물었는데, 기자가 홍범구주의 법을 가르쳤다. 홍범구주란 『서경』 주서 홍범 편에 기록되어 있는 정치 도덕의 아홉 가지 원칙이다 무왕이 기자를 이 땅에 봉하였지만 신하로 삼지는 않았다. 이곳의 명승지로는 금수산, 봉황대, 능라도, 기린굴, 조천석, 추남허 등이 있는데, 모두 고적(古跡)옛 유적지이다. 영명사(永明寺)의 부벽정(浮碧亭)부벽루라고도 불림. 평양에 있는 정자의 이름으로 ‘푸른 대동강 위에 떠 있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정자이기에 부벽(浮碧: 뜰 ..

[금오신화] 이생이 담 너머로 아가씨를 엿보다 … 김시습「이생규장전」(전문)

현대어역 송도(松都)개성 낙타교(駱駝橋)개성 보정문 안에 있던 탁타교의 또 다른 이름. 고려 태조 때 거란이 낙타 쉰 마리를 바쳤는데, 태조가 받지 않고 이 다리 밑에 매어 두었더니 모두 굶어 죽었다고 함 옆에 이생(李生)이 살고 있었는데, 나이는 열여덟이었다. 풍모가 맑고 재주가 뛰어나 일찍부터 국학(國學)성균관에 다녔는데, 길을 가면서도 시를 읽었다. 선죽리(善竹里)개성 선죽교 부근에 있던 마을 귀족 집에는 최씨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나이는 열대여섯쯤 되었다. 태도가 아리땁고 수도 잘 놓았으며, 시와 문장도 잘 지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이렇게 칭찬하였다. 풍류로워라 이 총각 아리따워라 최 처녀. 그 재주와 그 얼굴 듣기만 해도 주린 창자가 배불러지네. 이생은 일찍부터 책을 옆에 끼고 학교에 다..

[금오신화] 만복사에서 저포놀이를 하다 … 김시습「만복사저포기」(전문)

현대어역 (전라도) 남원에 양생(梁生)이 살고 있었는데, 일찍이 어버이를 잃은 데다 아직 장가도 들지 못했으므로 만복사(萬福寺)전라도 남원 기린산에 있던 절로, 고려 문종 때 창건했다. 1957년 정유재란 때 왜적의 침입으로 불타 버렸으나, 남원 왕정동에서 절터가 발굴되어 현재는 오층석탑, 불상 석좌, 당간지주, 석불 입상 등의 석조물이 남아 있다의 동쪽에서 혼자 살았다. 방 밖에는 배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마침 봄이 되어 꽃이 활짝 피었다. 마치 옥으로 만든 나무 같기도 하고, 은 조각이 쌓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양생은 달이 뜬 밤마다 나무 아래를 거닐며 낭랑하게 시를 읊었는데, 그 시는 이렇다. 한 그루 배꽃나무 쓸쓸함을 벗 삼으니, 휘영청 달 밝은 밤 홀로 보내기 괴로워라. 젊은 이 몸 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