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全문보기/삼국유사 3

양지스님의 기묘한 행적과 영묘사 장육삼존 주조

양지(良志)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재위 632∼647) 때의 승려, 서예가, 조각가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전설적 인물이다. 그는 기적을 많이 행하였는데 석장(錫杖) 끝에 포대 하나를 걸어두기만 하면 그 지팡이가 저절로 날아서 시주(施主)할 집에 찾아가 흔들면서 소리를 내었고, 그 집에서는 이를 알고 재(齋)에 쓸 비용을 여기에 넣었으며, 포대가 차면 날아서 돌아왔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또 “온갖 기예에 통달하여 그 신묘함이 비길 데가 없었다. 전탑(塼塔)과 기와를 만들고, 벽돌에 3천불을 새겨 절 안에 봉안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조소(彫塑)였다”고 쓰고 있다. 그의 작품은 흥륭사(興隆寺)⋅법림사(法林寺)의 사액(寺額)과 사천왕사(四天王寺)의 신장상(神將像)이 전해지고 있는데도 ..

처용이 역신을 물리친 그 시작은

《처용설화》와 향가인 《처용가》는 일연이 쓴 『삼국유사』 권2, 기이 제2에 있는 「처용랑과 망해사(處容郎 望海寺)」조에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신라 제 49대 헌강왕(897년)이 울산의 개운포(開雲浦, 지금의 황성동 세죽마을 일대)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잠시 바닷가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검은 구름과 안개가 앞을 막아 왕이 이상하게 여겨서 좌우 신하들에게 연유를 물었다. 일관이 “이는 동해용이 한 변괴이니, 마땅히 좋은 일을 하여 풀어야 합니다.”고 아뢴다. 이에 이 근처에 절을 짓도록 명하니, 동해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왕의 덕을 찬양하는 뜻으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었다. 동해용의 아들 중 하나가 왕을 따라 서라벌로 갔는데, 그 이름이 처용이었다. 처용은 미녀와 ..

자용절대의 미인, 수로부인을 위해서라면

《해가》와 《헌화가》는 일연이 쓴 『삼국유사』 권2, 기이 제2에 있는 「수로부인(水路夫人)」조에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배경설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바위 절벽이 아스라이 솟구쳐 있고, 푸른 동해가 펼쳐져 있는 사이로 모래 해안을 따라 길이 놓여 있다. 화랑과 승려들이 주로 지나다니는 경주에서 강릉까지 이어져 있는 해안길이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신라 33대 성덕왕 시절, 이 길을 순정공 일행이 걷고 있다. 절벽에 핀 꽃이 아름답다며 따 달라는 여인. 위험하니 따 드릴 수 없다며 거부하는 주변사람들. 여인을 호위하는 힘 있는 이들조차 어쩔 수 없는 높이 천 길의 위험한 절벽. 마침 한 노인이 암소를 몰고 근처를 지나간다. 아무도 수로 부인에게 꽃을 따 주지 않자 노인은 망설이며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