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全문보기 43

[기타_잡록] 『염요(艶謠)』 수록 시조 원문 텍스트

『염요(艶謠)』(표제 : 艶謠一)에는 시조 5수가 실려 있다. 『염요(艶謠)』(표제 : 艶謠一)는 필사본(筆寫本) 1책으로,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앞부분은 충청도 공주의 아전들이 벌인 기생 놀음에서 지은 가사와 시조들이고, 뒷부분은 효종, 정조, 효명세자의 시책, 애책, 지문 등이 실려 있다. 전혀 다름 두 내용이 합철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기생놀음에도 관여했고 역대 왕들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았던 공주지방 관아 주변 인물에 의해 이와 같이 편집되었을 가능성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금강석별낙양낭군곡(錦江惜別洛陽郞君曲) 가사 : 공주 기생 형산옥(荊山玉). 금강석별낙양낭군곡(錦江惜別洛陽郞君曲) 단가(短歌) : 공주 기생 인애(仁愛). 화산교가(花山橋歌) : 미상. 추..

[기타_문중문집] 『양산세고(楊山世稿)』 「용호고(龍湖稿)」 수록 시조 원문 텍스트

『양산세고(楊山世稿)』 용호고(龍湖稿) 호아곡사조(呼兒曲四調)에 조존성(趙存性)의 시조 4수가 실려 있다. 양산 조씨 가문의 인물 19명의 시문을 모아 놓은 『양산세고(楊山世稿)』에 조존성(趙存性)이 지은 「호아곡(呼兒曲)」 4수가 들어 있다. 『양산세고』는 내지에 ‘양산조씨세고(楊山趙氏世稿)’라고 표기 되어 있으며, 2권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용호고(龍湖稿)」에 조존성의 행장과 한시9수, 시조와 한역시가 병기된 가 수록되어 있다. 「호아곡」은 , , , 4수로 이루어진 연시조이다. 조존성이 계축옥사 직후 은둔할 때 지은 것으로, 정치적 상황 때문에 전원에서 밭을 갈거나 낚시질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과 심경을 백이숙제, 강태공, 장저⋅걸익, 도연명 등에 투영하여 노래하였다. 呼兒曲四調 呼兒先問有..

[기타_서원지] 주세붕 『죽계지』 수록 시조 원문 텍스트

주세붕(周世鵬)_『죽계지(竹溪誌)』 죽계지(竹溪誌) 권지일(卷之一) 『죽계지(竹溪誌)』는 주세붕(周世鵬)이 풍기군수로 있을 때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하면서 그 취지를 알리기 위해 관련 기록을 모아놓은 책이다. 여러 차례 간행되면서 6권 3책본, 3권 1책본, 5권 1책본이 있는데, 국문시가는 6권 3책본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안축의 과 경기체가인 주세붕 자신이 쓴 9장, , 7장, 5장과 함께 시조 9수가 실려 있다. , , , , , , , , 등 시조 9수는 대부분 유교이념을 노래한 것으로 교화를 목적으로 창작된 것이다. 형태적인 측면에서 안정된 평시조의 정형을 갖추고 있지 않는 등 문학적 성취는 높지 않으나 16세기 전반 국문시가의 존재와 기능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학사..

『가곡(歌曲)』(단대본)[시조. 筆寫本] 원문 텍스트

장진주(將進酒)_이백(李白) 행행차유렵편(行行且遊獵篇)_이백(李白) [*시조 작품] 195수 將進酒 *이백(李白) 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還 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 朝如青絲暮成雪 人生得意須盡歡 莫使金樽空對月 天生我材必有用 千金散盡還復來 烹羊宰牛且爲樂 會須一飲三百杯 岑夫子丹丘生 進酒君莫停 與君歌一曲 請君爲我側耳聽 鐘鼓玉帛不足貴 但願長醉不復醒 古來聖賢皆寂寞 惟有飲者留其名 陳王昔時宴平樂 斗酒十千恣讙謔 主人何為言少錢 徑須沽取對君酌 五花馬千金裘 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銷萬古愁 行行且遊獵篇 *이백(李白) 邊城兒生年不讀一字書 但將遊獵誇輕趫 胡馬秋肥宜白草 騎來躡影何矜驕 金鞭拂雪揮鳴鞘 半酣呼鷹出遠郊 彎弓滿月不虛發 雙鶬迸落連飛髇 海邊觀者皆辟易 猛氣英風振沙磧 儒生不及游俠人 白首下帷復何益 飛龍引 二首 *제목만 있음. 001 ..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원문 텍스트

초중대엽(初中大葉) 이중대엽(二中大葉) 삼중대엽(三中大葉) 북전(北殿) 이북전(二北殿) 초삭대엽(初數大葉) 이삭대엽(二數大葉) [*유명씨(有名氏)] 연대성명흠상(年代姓名欠詳) 삼삭대엽(三數大葉) 삭대엽(數大葉) 소용(騷聳) 만횡(蔓橫) 낙희조(樂戱調) 편삭대엽(編數大葉) 7수(4명의 작품 5수 포함) 5수 5수(2명의 작품 2수 포함) 4수 1수 11수(3명의 작품 4수 포함) 《전763수》 529수 234수(3명의 작품 3수 포함) 32수(3명의 작품 포함) 18수(2명의 작품 포함) 5수 114수(4명의 작품 포함) 104수(6명의 작품 포함) 40수(3명의 작품 포함) 1-7 8-12 13-17 18-21 22 23-33 34-562 563-796 797-828 829-846 847-851 852-..

[청구영언] 김천택 『청구영언(靑丘永言)』(진본)(1948, 조선진서간행회) 원문 텍스트

청구영언서(靑丘永言序) 초중대엽(初中大葉) 이중대엽(二中大葉) 삼중대엽(三中大葉) 북전(北殿) 이북전(二北殿) 초삭대엽(初數大葉) 이삭대엽(二數大葉) 여말(麗末) 본조(本朝) 열성어제(列聖御製) 여항육인(閭巷六人) 규수삼인(閨秀三人) 연대결고(年代缺考) [*유명씨발문(有名氏跋文)] 무씨명(無氏名) 삼삭대엽(三數大葉) [*무명씨발문(無名氏跋文)] 낙시조(樂時調) 장진주사(將進酒辭) 맹상군가(孟嘗君歌) [*만횡청류서문(蔓橫淸類序文)] 만횡청류(蔓橫淸類) [*남파노포지(南坡老圃識)] 청구영언후발(靑丘永言後跋) 정래교(鄭來僑) 1수 1수 1수 1수 1수 1수 《전391수》 고려말 3명이 쓴 작품 6수 조선조 41명이 쓴 작품 203수 세 왕의 작품 5수 여항인 6명의 작품 65수 규수 3명의 작품 5수 연대를 ..

[청구영언] 김천택 『청구영언(靑丘永言)』(진본)(1728) 원문 텍스트

靑丘永言序 古之歌者必用詩 歌而文之者爲詩 詩而被之管絃者爲歌 歌與詩固一道也 自三百篇而爲古詩 古詩變而爲近體 歌與詩分爲二 漢魏以下 詩之中律者 號爲樂府 然未必用之於鄕人邦國 陳隨以後 又有歌詞別體而其傳於世 不若詩歌之盛 盖歌詞之作 非有文章而精聲律則不能故 能詩者 未必有歌 爲歌者 未必有詩 至若 國朝 代不乏人而歌詞之作 絶無而僅有 有亦不能久傳 豈以國家 專尙文學而簡於音樂故然耶 南坡金君伯涵以善歌鳴一國 精於聲律而兼攻文藝 旣自製新翻 畀里巷人習之 因又蒐取我東方名公碩士之所作 及閭井歌謠之自中音律者數百餘闋 正其訛謬 裒成一卷 求余文爲序 思有以廣其傳 其志勤矣 余取以覽焉 其詞固皆艶麗可玩而其旨有和平惟愉者 有哀怨悽苦者 微婉則含警 激昻則動人 有足以懲一代之衰盛 驗風俗之美惡 可與詩家表裏 並行而不相無矣 嗚呼 凡爲是詞者 非惟述其思宣其鬱而止爾 所以使人觀感而興..

[전우치전] 유쾌한 도술에 가려진 비애 …『전운치전』(경판37장본 전문)

현대어역(경판 37장본, 전운치전) 화설(話說). 고려(高麗) 말(末) 남서부(南西部) 땅에 일위(一位) 명사(名士)이름난 인사(사람)가 있으니, 성(性)은 전(田)이오 명(名)은 숙이오 별호(別號)는 운화선생이라. 대대(代代) 공후(公侯) 자손(子孫)으로 숙에게 이르러서는 청운(靑雲)푸른 뜻, 즉 높은 지위나 벼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 뜻이 없어 몸을 산림(山林)에 숨기고 글을 숭상(崇尙)하며 혹(或) 벗을 모아 산천(山川)과 풍월(風月)을 문답(問答)하여 세월(歲月)을 허비(虛費)하니, 시인(市人)그 당시의 사람들이 이르기를 산중(山中) 처사(處士)라 하더라. 부인(夫人) 최씨(崔氏)는 잠영거족(簪纓巨族)잠영(簪纓)은 관원이 쓰던 비녀와 갓끈을, 거족(巨族)은 대대로 번창하고 문벌이 좋은 집안을 ..

[금오신화] 용궁 잔치에 초대받다 … 김시습「용궁부연록」(전문)

현대어역 개성에 천마산이 있는데, 그 산이 공중에 높이 솟아 가파르므로 ‘천마산(天磨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산 가운데 용추(龍湫)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밑에 생긴 웅덩이가 있으니 그 이름을 표연(瓢淵)박연(朴淵)이라 하였다. 그 못은 좁으면서도 깊어서 몇 길이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이 넘쳐서 폭포가 되었는데, 그 높이가 백여 길은 되어 보였다. 경치가 맑고도 아름다워서 놀러 다니는 스님이나 나그네들이 반드시 이곳을 구경하였다. 옛날부터 이곳에 신령한 이물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전기에 실려 있어서, 나라에서 세시(歲時)1년 중(中)의 때때. 1년 동안의 제철가 되면 커다란 소를 잡아 제사지내게 하였다. 고려 때에 한생(韓生)이 살고 있었는데, 젊어서부터 글을 잘 지어 조정에까지 알려지고 문사(..

[금오신화] 남쪽에 있는 지옥에 가다 … 김시습「남염부주지」(전문)

현대어역 성화(成化)명나라 현종의 연호. 1465∼1487년 초년조선 세조 11년에 경주에 박생(朴生)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유학에 뜻을 두고 언제나 자신을 격려하였다. 일찍부터 태학관(太學館)성균관에서 공부하였지만, 한 번도 시험에 합격하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언제나 불쾌한 감정을 품고 지냈다. 그는 뜻과 기상이 고매하여 세력을 보고도 굽히지 않았으므로, 남들은 그를 거만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남들과 만나거나 이야기할 때에는 온순하고 순박하였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찬하였다. 박생은 일찍부터 부도(浮圖)불교, 무격, 귀신 등의 이야기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었지만, 어떠한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중용』과『주역』을 읽은 뒤부터는 자기의 생각에 대하여 자신을 가지고 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