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한국사노트 8

한국사 역대왕 연표(삼국시대~조선)

한 BC 202 - AD 8 1C 신 8 - 23 후한 25 - 220 2C 3C (위⋅촉⋅오) 삼국시대 220 - 280 서진 263 - 316 4C 5호 16국 시대 316 - 439 5C 위진남북조 시대 439 - 589 6C 수 589 - 618 7C 당 618 - 906 8C * 당, 안사의 난 755 - 763 9C * 당, 황소의 난 875 - 884 10C 5대10국 혼란기 907 - 960 * 거란통일 916 (야율아보기) 거란, 요 946 - 1125 송 960 -1127 * 송, 중국통일 979 11C 12C 여진, 금 1115 - 1234 요 멸망 1125 북송 멸망 1127 남송 1127 - 1279 13C * 칭기스칸 몽골통일 1206 원 1260 - 1368 남송멸망 1279 ..

[사회사_조선] 6-3. 천주교의 전파와 박해

17C 베이징왕래사신 → 학문의 대상 → 서학 18C 종교적 대상 → 천주교 1. 천주교의 수용 천주교의 전래, 서학 사회가 혼란해지고 민생이 어려움을 겪는 불안 속에서 서학, 즉 천주교가 전해졌다. 서학은 17C에 베이징을 왕래하던 사신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는데, 처음에는 종교로 인식되기보다는 새로운 학문으로 인식되어 서학이라 불리었다. 천주교는 북인 계열이 처음 전래하였으나, 실학자 이익을 중심으로 한 남인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하여 학문적 이해를 넓혔다. * 이수광은 광해군 초에 베이징에 사신으로 갔다 와서 저술한 「지봉유설」에서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를 요약⋅소개하면서 불교와의 차이점을 언급하였다. 조선 후기에 가장 많이 읽힌 천주 교리서는 이탈리아의 마테오리치가 지은 「천주실의」였..

[사상사_유학] 3-3. 자연과학자 홍대용, 과학을 통해 세상을 보다

홍대용(洪大容, 1731~1783) 호는 담헌(湛軒). 노론 가정에서 태어나, 청을 왕래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임하경륜」, 「의산문답」, 「주해수용」 및 기행문인 「연기」 등을 저술하였는데, 그의 대표적인 저서 『담헌서(湛軒書)』에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 홍대용은 「임하경륜(林下經綸)」을 통해서 (완전)균전제를 주장하며 토지 개혁에도 관심을 보였다. 놀고먹는 선비들이 생산 활동에 종사할 것을 역설하고, 성인 남자들에게 2결의 토지를 나누어 줄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병농일치의 군대조직을 제안했다. 「의산문답(醫山問答)」은 홍대용이 1766년(영조42) 초 베이징[北京]에서 중국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새롭게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쓴 ‘과학 논문’이다. 실옹(實翁)과 정통 성리학자인 허자(虛子) ..

[정치사_중세] 5-2. 고려후기 정치의 변동

원 간섭기 고려의 왕권은 이전 시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안정되었고 중앙지배층도 개편되었다. 이전 시기부터 존속했던 문벌귀족 가문, 무신정권기에 새로 등장한 가문, 원과의 관계를 통해 성장한 가문 등이 이른바 권문세족을 형성하며 왕의 측근 세력과 함께 권력을 누렸다. 이들은 농장을 확대하고 양민을 억압하여 노비로 삼는 등 사회 모순을 격화시켰다. 이에 대하여 신진 관리들을 중심으로 개혁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관료의 인사, 농장 문제와 같은 여러 가지 폐단을 시정하기 위한 개혁의 노력은 충선왕과 충목왕들의 시기에 시도되었으나, 원의 간섭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충렬왕(忠烈王, 1274 - 1298, 1298 - 1308) 원 세조의 부마가 된 충렬왕이 즉위하면서 고려는 철저한 친원정책을 표방..

홍경래 난이 일어난 배경_서북인 차별에 관하여

Q. 서북인 차별때문에 홍경래가 난을 일으키는데 왜 서북지역을 차별했을까요? 그리고 서북지역은 어디인가요? 함경도와 평안도인가요? A. 먼저... 서북지역은 서도(황해도, 평안도), 북관(함경도) 를 말하며... 더 세분하면 서북면 - 평안도, 황해도, 동북면-함경도가 되겠죠. 이성계와 대부분 그의 휘하세력은 동북면(함경도) 출신이었고, 개국 당시에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왕자의 난 등의 흐름 속에서 태조 이성계를 지지하던 세력들은 제거되어 갔어요. 세조가 권력을 잡으면서 이징옥의 난, 이시애의 난 등이 일어났고, 함경도는 반란의 땅이 되어 함경도에 대한 통제가 심해져 갔습니다. 함경도는 물론 평안도, 황해도까지 서북부지방의 출신은 관리가 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차단되는 등 차별을 받게됩니다. ※..

조선시대 도성 간략 구조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간략도. 한국사 정리노트에 그려져 있던 그림이다. ‘인의예지신’을 도성 사대문과 보신각에 넣었고, 궁궐문에는 ‘화(化)’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었다. ‘좌묘우사’에 따라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 ‘전관후시’ 앞에는 육조거리, 뒤에는 시전… 도성을 짓는 것에도 뜻을 두었던 우리 선조의 마음이 담긴 구조라는 것이 간략도를 그리면서 알 수 있었는데… 노트를 정리했던 날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강화도조약과 속약 흐름도

* 아래글은 인터넷 카페에서 '방곡령과 강화도조약 속약'에 관해 질문한 것에 제가 답변한 내용입니다. 위 노트의 내용과 관련있어 옮겨둡니다. 1876년 통상장정은 '3무장정'이라고도 하죠. 무항세, 무관세, 양곡의 무제한 유출을 규정해 놓은 것이 76년의 통상장정이에요. 이 규정 중 "양곡의 무제한 유출" 허용에 대항해 조선 지방관들이 취한 행동이 자국민 보호를 위해 '방곡령'을 내린 거죠. '양곡무제한 유출' 허용 이후 83년까지 120여차례나 방곡령이 내려졌어요. 하지만 이 방곡령은 지방관들의 시세차익 착복의 의도가 많았어요. 양곡이 무제한 유출되면 곡가는 상승하고, 방곡령이 내리면 곡가는 하락하니... 방곡령을 내려 곡식을 많이 사두고, 방곡령이 풀리면 파는 등 그 차익을 얻기 위해 내려진 방곡령이..

한국사상사 계보_일치,조화,통합,융화(불교)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든 ‘한국 불교의 흐름’ 정도일까. 학창시절의 한국사 정리 노트에 있는 것인데, 지금 봐도 꽤 괜찮게 정리해 놓은 것 같다. 중심에 불교융합운동을 두고, 위에서 아래로는 시대, 좌우로는 같은 시대의 인물을 배치. 선으로 이어놓은 것은 공통점이 있으되 차이점이 있는 인물들을 연결시켜 놓은 것. 간략하게 메모해 둔 것이지만 이 간략함이 꽤 큰 도움이 된다. 한국사 정리노트는 가끔씩 한국사가 막힐 때 펴보는데 나만의 한국사 책이라 좀 더 빨리 머리에 들어온다. 학창시절 시험에만 도움이 될 줄 알았더니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것도 자산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