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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Girl/감성ART여라

덩실덩실 소매를 펄럭이며 … 김홍도 《무동》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 솔 | 2005

 

오주석은 그림을 감상할 때 단순히 ‘보기’보다 그림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는 선인들의 가르침을 깔끔한 어조로 전달한다. 우리 옛 그림을 잘 완상하려면 옛 사람의 눈으로,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는 자세를 갖는 것이 기본이라고 일러주며, 그림의 문외한조차 즐겁고도 쉽게 읽어낼 수 있게 해 준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에 수록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9명의 명화 12점에 관한 해설에서 내면의 삼엄함, 도가풍의 은일, 풍아(風雅)의 유유자적 같은 분위기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무동》의 원형 구도는 화가가 운영한 뛰어난 화면 구성이 아닐 수 없다. 방사선 구도의 원심적인 요소가 신명 넘치는 우리 옛 가락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조성했다면, 원형 구도 자체로는 둥글게 둥글게 넘어가며, 듣는 이를 하나로 묶어내는 우리 옛 장단의 멋을 참으로 잘도 재현했다.

 

지금 저 사람들이 한창 질펀하게 놀고 있는 가락은 어떤 소리, 무슨 장단일까? 삼현육각三絃六角, 즉 북, 장구에 피리 둘, 대금, 해금까지 여섯 악기가 한데 어울려 한바탕 흥겨운 가락을 몰고 가니, 잘생긴 무동 아이는 덩실덩실 소매를 펄럭이며 걸지게도 춤을 춘다. …(중략)… 화가는 아무도 보고 듣는 이 없이 악공과 무동만을 동그랗게 그렸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화가는 저들이 누구를 위해 연주하는가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악기를 잡은 여섯 사람과 춤추는 아이, 바로 그들의 음악과 춤만이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인 것이다.

 

김홍도 / 무동 / 종이에 수묵 담채 / 27.0x22.7cm / 보물 527호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좌고를 치는 사람부터 보자. 왼다리는 접고 오른다리만 세워 상체를 곧추세우고서 양손에 궁글체를 잡아 큰 장단을 맞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줄곧 대금과 해금 연주자에게 못 박혔다. 채 끄뜨머리에 달린 술이 꽃잎처럼 펼쳐진 것은 “덩 덕 쿵덕쿵”하고 울리는 북소리를 눈으로 보게 해주는 것 같다.

 

장구 치는 아이는 어떠한가. 흥이 달아올랐는지 무릎 위로 장구를 바짝 끌어안고서 오른손에는 열체를 쥐고 왼편은 맨손으로 북편을 치는데, 유연한 손목 놀림으로 북편을 울린 저 “구궁”하는 낮은 소리가 마음 바닥에까지 와 닿았나 보다. 윗몸을 앞으로 슬쩍 수그리고 어깨는 장단을 따라 들썩거린다. 코 위가 넓은 갓양태에 가려 보이지가 앉아 그렇지 두 눈도 지그시 감았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북편 쪽의 쇠가죽 측면이 지나치게 넓어 보이는 것이 조금 눈에 걸린다. 하지만 당시의 장구 모양이 본래 그랬는지도 알 수가 없다.

 

피리 부는 사람을 보자. 우선 오른쪽에 벙거지를 쓴 사람은 들숨이 입안에 가득 차서 두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감발한 왼발을 위로 둔 양반다리를 하고 윗몸을 똑바르게 세우고 있는 까닭은 피리라는 악기를 연주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선 입술로 서를 무는 것부터가 까다롭다. 겉보기엔 입술 모양이 익살맞은 듯해도 본인은 무는 힘의 세기와 입김 조절이 어려워서 온 정신을 한 곳에 모으고 있다. 그 왼편의 갓 쓴 이는 벌써부터 입술이 아팠던 모양이다. 옆 사람과는 달리 삐딱하게 입가에도 고쳐 물고 능청스럽게 가락을 불어낸다. 그 표정을 보니 저들이 벌써 한참을 놀았다는 정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음은 대금 부는 사람이다. 키가 훌쩍 크고 마른 인상의 이 인물은 손가락이 길어야 불기 좋은 대금 연주자로 아주 제격인 듯싶다. 대금은 젓대라고도 하는 순수한 우리 고유 악기로 넓은 취공에 댄 입술을 조절하면 음 높이가 달라진다. 저 연주자의 입과 볼에 깃든 섬세한 표정을 보면 입김 따라 하늘거리는 곱고 맑은 가락이 들릴 듯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왼쪽으로 젓대를 잡았으니 오늘날 오른쪽으로 잡는 것과는 반대이다. 그러나 이것은 화가의 실수가 아니다. 관악기는 사람마다 부는 자세가 달라 좌우가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피리 부는 두 사람의 손 모양이 서로 다른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이제 해금을 켜는 사람 차례다. 속된 말로 깽깽이라고도 하는 해금은 활로 줄을 마찰시켜 지속음을 내기 때문에 우리 음악이 갖는 농현의 멋을 극한까지 보여준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 풍부한 가락의 굴절은 생각만 해도 신명이 넘치는데 아쉽게도 연주가가 뒷모습만 보여서 표정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사람의 모습에는 한 가지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바로 음 높이를 고르는 왼손이다. 해금을 연주할 때는 왼손으로 줄을 감싸 안아야 하는데 거꾸로 손등이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실수를 알아볼 사람 역시 많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춤추는 아이를 살펴보자. 몇 살이나 되었을까? …(중략)… 수염이 없고 얼굴 생김이 동그란 점으로 보아 열셋이나 열넷쯤 된 소년이라고 생각된다. 왼쪽 발로 힘차게 땅을 구르자 그 김에 절로 오른쪽 다리가 둥실 들렸는데, 덩달아 휘젓는 팔의 매무새가 소매 끝까지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소년의 모든 체중은 맵시 있게 들어 올린 발끝의 한 점으로 지탱되고 잇다. 지금 이렇게 펄쩍 뛰어오른 자세를 보면 당초엔 느렸던 가락이 한참을 이어지는 동안에 꽤나 빨라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소년의 출렁이는 옷자락에는 그야말로 우리 옛 그림에서만 볼 수 있는 멋드러진 묵선이 펼쳐져 있어서 눈이 번쩍 뜨인다. …(중략)… 첫째는 붓이 종이에 닿는 순간에 묵직하게 힘이 들어갔고, 둘째로 팔꿈치나 손목과 같이 선이 꺾어나가는 부분에서 묵선이 우뚝우뚝 서면서 기운이 뭉쳤으며, 셋째로 윗몸에 두른 끈이 바람에 날리는 부분이나 빨간 신발의 윤곽선에 잘 보이듯이 선이 매우 빠르고 탄력이 있다. 이렇게 빠르고 변화 많은 선으로 그렸으므로, 아이의 춤사위는 절로 경쾌한 율동감이 넘쳐난다. …(중략)… 앞서 “우리 옛 그림에서만 볼 수 있는 멋드러진 선”이라고 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의 인물화에서는 이와 유사한 선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중략)… 우리 옛 그림에 보이는 자연스러움과는 영 다른 것이다. 이 자연스러움은 어쩌면 만사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우리 조상들의 타고난 낙천성과 대범함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생각된다.


작품 전체를 보면 소년의 옷선이 가장 진하고 해금 주자, 대금 주자 순으로 점차 뒤로 물러나면서 먹선의 농도가 일정하게 흐려졌다. 차례로 흐려진 묵선은 일체 배경이 없는 이 작품에 강한 내적 질서감을 준다. 구도는 《씨름》과 마찬가지로 원형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심이 비어 있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 …(중략)… 화폭 가운데 가상의 원 중심을 두고 살펴보면 무동의 옷자락이며 좌고의 둥글채, 그리고 오른편 피리, 대금, 해금의 선이 모두 방사선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