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이 분은 부끄러움을 아셨습니다 … 드라마《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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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 |||
SBS | 2012.8.13.~10.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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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 김희선, 유오성, 이필립, 류덕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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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은 공민왕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재야에서 은거하고 있는 ‘익재 이제현’과 그의 제자 ‘목은 이색’ 등을 만났다. 하지만 그들은 공민왕을 보필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그래서 학자들은 최영을 불러 묻는다. 그리고 최영은 재야에 숨어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쏟아내면서도, 정작 주군을 향해 가져야 하는 우국충정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학자들에게 강렬하고 통쾌한 일침 한방을 날리며 명쾌한 해답을 안겨주었다.
이제현 : 어째서 지금 주상인가?
최영 : 예?
이제현 : 지난 7년, 출세에도, 재물에도, 세상 무엇에도 미련이 없던 자네가 어째서 갑자기 지금 주상인가?
최영 : 지금 저더러 주상에 대한 품평을 하라는 겁니까?
이제현 : 우린 이미 고려 왕실에 대한 미련을 다 버린 사람들이야. 각자 남은 나날 숨만 쉬며 버티고 있지. 이런 우리들에게 설명을 해 보게. 왜 지금 주상인가?
최영 : …….
이제현 : 새로 온 주상전하, 자네가 본 중 특히 총명하신가?
최영 : 총명하시긴 합니다만…
이제현 : 백성에 대한 자비심은 특히 깊으신가?
최영 : 친히 백성들을 대하는 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현 : 원나라에 대한 자주심은 강하신가?
최영 : 그러신 것 같습니다.
이제현 : 우리 고려의 자긍, 자립을 위해 능히 목숨도 바치실 분이신가?
최영 : 시험해 본적이 없어 모르겠습니다.
이제현 : 그럼 이렇게 묻지? 새로 온 주상께 우리의 남은 생을 바친다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실 수 있는가?
최영 : 먼저 한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이제현 : 듣고 있네.
최영 : 어르신들께서 원하는 주상은 대체 어떤 분입니까? …… 태어날 때부터 제갈공명의 머리를 갖고 태어나 백성들에겐 부처와 같이 자비롭고, 따르는 자에게는 부와 명예와 만수무강까지 주는, 그런 분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그러신 겁니까? 그래서 지금 간을 보고 계시는 거냐구요?
이제현 : 다시 묻지. 자네 최영, 어째서 지금 주상인가?
최영 : 제가 처음으로 스스로 택한 주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현 : 무엇이 자네로 하여금 스스로 택하게 하였는가?
최영 : 나약하시어 때로 겁도 내시고, 결정을 함에 혼란스러워도 하시고. 저지른 일에 자주 후회도 하십니다만… 이 분은… 부끄러움을 아셨습니다.
이제현 : 부끄러움?
최영 : 그래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이 분, 그 부끄러움에 둔해지기 전에 지켜드려야겠다고… 답이 되었습니까?
- 드라마 《신의》 제11회 중에서
내가 만약 왕을 택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을 택할까? 최영이 일침을 가했 듯 총명하고, 백성에 대한 자비심이 깊은 소위 ‘왕재(王才)’의 조건을 갖춘 이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최영은 이런 보이는 모습이 아닌 왕이 지녀야 할 근본적인 조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부끄러움”.
부끄러움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참(慙)의 부끄러움과 괴(愧)의 부끄러움. ‘참’이란 자기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괴’란 사람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맹자는 흥미로운 예를 들었다.
“지금 무명지(네번째 손가락)가 구부려져서 펴지지 않는 경우, 아프거나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아니 할지라도, 만일 그 무명지를 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의 먼 길도 멀다고 여기지 않고 찾아간다. 자기 손가락이 남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다른 사람과 다르면 싫어할 줄 알면서도 마음이 남과 다른 것을 싫어할 줄 모른다면, 이것을 일러 일의 경중[類]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孟子曰 “今有無名之指, 屈而不信, 非疾痛害事也, 如有能信之者, 則不遠秦楚之路, 爲指之不若人也。 指不若人, 則知惡之, 心不若人, 則不知惡, 此之謂不知類也。” _『맹자』「고자 상」제12장 전문
손가락이 달라 남들이 볼까 부끄러워하는 것은 ‘괴’의 부끄러움이고, 마음이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하늘이 알까 부끄러워하는 것은 ‘참’의 부끄러움이다. 우리는 ‘괴’의 부끄러움은 쉽게 느끼지만, 정작 ‘참’의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염치가 없이 사는 편이다. 매체의 수많은 뉴스를 접하다 보면 ‘과연 이 시대가 양심이 있기는 한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살인을 하고도 사람들 앞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구는 이들이 있고, 강도짓을 하고도 버젓이 시대의 양심 운운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공공장소에서 하는 XX녀, XX남 등의 몰염치한 행동은 누구 옳고 그른 것인가 하는 판단도 하기 힘들게 한다. 이 시대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을 넘어 아예 부끄러움 자체를 무시해 버리는 듯하다.
최영이 말한 ‘부끄러움을 안다’는 말은 ‘참’의 부끄러움을 안다는 뜻이다. 맹자는 ‘부끄러움’과 관련해 맹자는 의미 있는 구절을 남겼다.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부끄러움이 있을 수 없고, 부끄러운 일도 하지 않게 된다.”
孟子曰 “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 _『맹자』「진심 상」제6장 전문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것을 할 때에 느끼는 도덕적 자각인 수치심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올바른 기준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내면의 단단함과 가치관이 확고하지 않다면 스스로 내면을 성찰하여 부끄러움을 알기란 어렵다.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고, 양심이 살아 있지 않다면 부끄러움을 느낄 수 없다. 맹자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의 기준에 기초해 일어나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바로 도덕적 인격을 완성해서 더 이상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출발점임을 강조하고 있다. 부끄러움을 알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문명을 살펴보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이 되면 그 문명은 머지않아 멸망의 길로 들어갔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아는’ 지도자가 서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양심이 살아 있음을 말해주는 확실한 증거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바름의 기준’이 바로 서 있다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기를 반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부끄러워 할 것이 없는, 어렸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은 없다. 완벽한 인생이란 없으니까. 그래서 스스로에게서 잘못의 이유를 찾아 반성하고,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 즉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충분할 터다.
최영은 그 부끄러움이 둔해지기 전에 왕을 지키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은 맹자의 표현처럼 띠풀로도 가로막힐 수 있는 것이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산비탈 작은 길의 조그만 틈이라도 늘 오고 가면 길이 된다. 그러나 잠시라도 오고 가지 않으면 띠풀이 자라 길을 막는다. 지금 그대의 마음을 띠풀이 막았도다.”
孟子謂高子曰 “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 則茅塞之矣。 今茅塞子之心矣。” _『맹자』「진심 하」제21장 전문
마음은 계속 공부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띠풀로도 막힐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왕은 그릇된 생각으로 마음이 막히기 쉬운 자리이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젊었을 때 아주 총명하고 용감했던 상나라의 임금 주왕은 폭군으로 유명하다. 최영이 택한 공민왕도 노국공주가 죽고 난 이후의 행적은 좋은 왕과는 거리가 멀다. 역사의 수많은 패자들이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겨 부끄러워하지 않아 일어났던 수많은 비극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길을 잘못 접어들었을 때 방향을 잡지 못하면 나중에는 아무리 되돌리려 해도 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막히지 않게 지켜주겠다는 최영의 말은 이런 이치를 잘 알고 있었기에 나온 말이다.
유가에서 말하는 어진 정치는 인성에서 출발한다. 인성이 선으로 향하는 것은 진실함에서 시작되고, 그 진실함에서 벗어날 때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스스로에 내린 자기 처벌의 표현이며, 부끄러움은 마음속에서부터 자연스레 피어나는 인간의 지혜인 것이다. 그 지혜를 아는 왕이 진정한 ‘왕재’일 것이다. 그래서 몸을 사렸던 재야의 학자들도 목숨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왕에게 희망을 품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