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인의(仁義)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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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의 나라 주(周)나라의 힘이 약해지면서, 중국은 200여개의 제후국이 공방전을 벌였던 춘추시대를 거쳐 7개의 강대국과 그 주변의 약소국이 다스리는 전국시대로 들어섰다. 춘추 시대와 같은 혼란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전국 시대 역시 분열이 끊이지 않던 난세였다. 이 시기 제후들의 목표는 패자(覇者)의 위치에 오르기 위한 부국강병이었고, 이를 위해 더 넓은 땅과 더 많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힘썼다.
이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몇 번이나 전쟁에서 패한 양나라[위(魏)나라] 혜왕은 큰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그는 이 고민을 해결해 줄 특별한 사람을 초빙했다.
“선생님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역시 장차 우리나라에 이로움이 있겠지요?”
“왕께서는 어째서 나라의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중요한 것은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王曰 "叟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이익[利]과 인의(仁義)를 대비시킨 이 구절은 『맹자』의 첫 장에 나오는 내용이자, 맹자의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를 담고 있는 부분이다. 어떻게 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묻는 혜왕에게 맹자는 ‘인의(仁義)’를 바탕으로 도덕정치를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국가를 운영하는 원칙은 오직 인의일 뿐, 이익이 그 자리에 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해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다 보면, 기존의 도덕과 사회 질서를 쉽게 내팽개쳐 버리게 된다. 또 이익을 쫓아 권력자들이 힘으로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전쟁을 벌이고 백성을 수탈한다면, 일시적으로는 강력해질지 몰라도 결국 사회는 분열되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맹자는 당장의 부유함이나 강한 무력보다 스스로에 대한 책임과 ‘호연지기(浩然之氣)’ 등의 수양을 강조한다. 즉 모든 사람이 인의를 중요하게 여기고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나라는 어떤 나라보다 부강해질 수 있으며, 바로 이런 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도덕적 책임감을 느낄 때 올바른 정치가 실현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맹자의 정치사상의 핵심인 ‘인정(仁政)’ 또는 ‘왕도정치(王道政治)’다.
이를 위해 맹자는 먼저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고자 했고, 경제가 안정되면 교육을 통해 백성의 도덕적인 성품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충분한 생산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공정하게 분배되는 사회라면, 도덕성을 기르는 교육만으로도 부유하고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생각의 바탕에는 성선설로 알려진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의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하나 분명히 할 것은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의 본성이 선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맹자』에서 ‘성선(性善)’이라는 글자가 두 번 등장하지만, 맹자는 ‘사람의 본성이 본래 선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사람이 사단(四端), 즉 인의예지(仁義禮智) 네 가지의 선한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사람은 본성 안에 도덕적 가치를 담고 태어난다. 그러나 이 도덕적 가치는 오로지 실마리의 형태로 있기 때문에, 마음 밖의 사건을 만나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일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 마음속의 선한 싹을 키우지 못하고 외부 조건이나 상황에 의해 악으로 흐르게 된 사람이다. 바로 이 때문에 맹자는 토지나 조세, 교육 제도 같은 사회적 틀을 중요하게 여겼고, 토지를 모두 균등하게 나누어 갖는 정전법 같은 토지제도부터, 불필요한 세금을 없애는 조세 제도 등 여러 방법을 제안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할 묘안을 기대했던 혜왕에게 현실의 이익보다는 ‘인의’라는 도덕원칙을 강조하는 맹자의 답변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익추구 풍조가 만연했던 당시 상황에서 맹자의 답변은 ‘참 좋은 말이긴 하지만 현실성이 없는 이상론‘일 뿐이었을 테니……(그 상황은 지금도 다르지 않은 듯하지만). 맹자에게 인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혜왕만이 아니었다. 맹자는 추나라 목공, 등나라 문공, 제나라 선공 같은 여러 나라의 군주들을 만났지만 그의 주장을 정치적으로 실현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지만, 맹자가 제한한 도덕성에 바탕을 둔 정치 방법은 결과적으로 동아시아의 정치 사회를 이끄는 핵심 이념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것은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니까.
인의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맹자』 「양혜왕 상」 제1장 전반부
孟子見梁惠王.
맹자가 양나라[위(魏)나라] 혜왕을 접견했다.
王曰, "叟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왕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역시 장차 우리나라에 이로움이 있겠지요?”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어째서 나라의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중요한 것은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王曰, '何以利吾國?' 大夫曰, '何以利吾家?' 士庶人曰, '何以利吾身?'
왕부터 나라의 이익을 말씀하시면, 대부는 자기 가문의 이익을 챙기려 들고, 선비와 서민들은 내 한 몸의 이로움을 생각할 것입니다.
上下交征利, 而國危矣.
이처럼 위와 아래가 각자 이익만 취하려고 하면 나라는 위태로워 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