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백편의자현

[서평] 호세 마리아 플라사 『처음 만나는 돈 키호떼』(혜원출판사)

꾸마이 2011. 9. 29. 07:38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고전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았던 지난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세계에서 명작으로 불리는 작품들은 나에게 감흥과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동양고전인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의 동양고전과 만나면서 그 속에 숨 쉬던 이야기들은 내 마음에도 숨 쉬며 조선의 학자들이 지켜낸 그들의 사상을 현재의 나에게도 살아났었다. 불과 1년 전의 이야기다. 독평을 읽으며 만났던 철학 사상들은 더 많은 철학서들을 탐미하게 했고 동양사상뿐만 아니라 세계의 사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했다. 난 그렇게 지난 1년을 철학서 속에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 난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한 달에 한 두 권씩을 읽어가고 있다. 고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독평의 <서툰 청춘을 위한 고전 다독다독>의 영향이었다. 공학도라는 둘레에 갇혀 있어서일까 난 유독 문학작품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소설 같은 책을 읽을 시간에 전공서를 한 권 더 읽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고전들의 일부 내용도 모르고 지내왔다. 그것이 독평에 소개된 책들을 읽으면서 얼마나 아쉬움으로 남았는지 모른다. 좀 더 빨리 알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해져서.

 

이번 9월 한 달 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건 『돈 끼호떼』다. 남미에서 1년을 지내며 스페인어를 익혀서일까 스페인문학이라는 『돈 끼호떼』는 단숨에 날 잡아당겼다. 독평에 실린 글을 읽고 난 후 난 곧장 도서관을 찾아 돈 끼호떼에 관한 책들을 모두 빌려왔다.

 

 

 

 

 

 

 

처음 만나는 돈 키호테

호세 마리아 플라사 | 김수진 역 | 혜원출판사 | 2005

 

호세 마리아 플라사의 유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필체는 돈키호테의 모험을 내 마음에 그대로 그려냈다. 내가 돈끼호떼가 되어 함께 싸우고 함께 쓰러지는 즐거움을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세계의 문호들이 찬사를 보낸다는 이 작품은 너무 막연하게 다가왔다. 2권의 두꺼운 책으로 된 완역판을 먼저 읽으려니 읽기에 앞서 질려버렸다. 이런 나에게 『처음 만나는 돈 키호테』는 돈 끼호떼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하는 도움닫기 역할을 해 주었다.

 

이 책은 『돈 끼호떼 1편』의 모든 모험과 에피스드를 살리고, 원작의 인물들을 모두 등장시키면서도 지루한 장면은 쳐내고 재미있는 사건은 더 재미있게 쓰여 있다. 읽기 쉬운 문체에 책 곳곳에 있는 단순하고 굵직한 선으로 그린 동그란 얼굴의 삽화는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한번 책을 잡은 손을 놓지 못하게 했다. 특히 삽화는 책을 다 읽고 난 후 다시 책장을 넘기며 다시 보게 만드는 묘한 재주를 가졌다. 책을 읽으며 그냥 지나쳤던 그림들을 다시 보며 그 에피소드가 생생히 살아나고, 얼굴에는 미소가 절로 띄워졌다.

 

그리고 호세 마리아 플라사의 유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필체는 돈키호테의 모험을 내 마음에 그대로 그려냈다. 내가 돈끼호떼가 되어 함께 싸우고 함께 쓰러지는 즐거움을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돈 끼호떼』의 번역본이 아니다. 하지만 세르반테스의 목소리를 유지하면서 오늘의 우리들에게 ‘『돈 끼호떼』는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야.’라고 말해주는 듯한 책이다. 완역판 『돈 끼호떼』를 읽기 전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 호기심과 설렘으로 난 세르반테스의 『돈 끼호떼』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