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數大葉
杏壇說法 雨順風調 : 공자가 단에서 설법하듯, 비가 순하고 바람 적절한 듯, 한가롭고 태평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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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興亡(흥망)이 : 흥하고 망하는 것이. |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가끔은 화려한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인간사의 허망함을 곱씹어 볼 때가 있다. 페루의 마추픽추를 떠올려보면 처음에는 함성이 터질 만큼 감동적이지만 그 사이를 걷고 있으면 오래되어 빛바랜 작고 초라한 돌덩이들이 무겁게 다가온다. 사라져 버린 건물, 언젠가부터 사람이 살지 않고 버려진 도시. 그 과거가 찬란할수록 무상한 세월의 허무함은 더 커지는 것 같다.
화자는 고려의 옛 궁궐인 만월대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니,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고려의 잔해들이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기와집과 후원의 화려함은 권세가들의 손에 의해 점차 황폐해지기 시작했고, 불과 반백년 사이에 고려의 숨결은 몇 개의 기둥과 주춧돌에서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끼 낀 돌덩이 사이로 재빨리 자신의 영역을 늘렸던 풀들마저도 시들어 가는 가을이니 폐허는 더욱더 심란한 정취를 자아낸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져 황금빛 석양을 뽐내고 있지만, 곧 닥칠 밤을 생각하니 우울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화려했던 옛 터에서 들려오는 것은 목동의 피리소리뿐. 더욱 쓸쓸해진 감정에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어느덧 만월대와 풀, 하늘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잠겼다. 내 삶의 흔적도 이같이 홀연히 사라질까? 오래 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기는 했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팔만대장경과 청자 등 고려가 낳은 영혼의 보물들은 무수히 많다. 그 무엇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2013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오늘, 세월의 허무함에 젖어 눈물 흘리기보다 미처 눈으로 지각하지 못한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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