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 기아에 관한 어느 국제전문가의 비망록_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들인 어린이들이 구조적 부조리에서 제일 먼저 당하게 되는 사회적 사건을 기아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 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전 세계적 식량과잉의 시대에 수많은 어린이 무덤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과연 제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기아에 대한 그의 고민은 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과 자기가 속해 있는 작은 우주에 대한 질문 자체이다. 우리 사회의 어린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한국어판 서문]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은 서서히 변화하는 공공의식에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천만 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수억 명이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런 일로,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현재는 그 주범이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 경제 질서라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풍요가 넘쳐나는 행성에서 날마다 10만 명이 기아나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간다. 그렇지만 인간의 의식은, 희생자들 뿐만 아니라 북반구 국민들의 의식은 이런 상태를 오래 참지 못할 것이다. 변화된 의식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참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1. 일상풍경이 된 굶주림
잘사는 서구 사람들에게 그런 끔찍한 장면은 별로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아.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소말리아인들의 참상은 우리에게 그냥 평범한 일이 되고 말았어.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은 소말리아가 겪는 끔찍한 굶주림의 일부분일 뿐이야. 소말리아 남주의 갈카스크, 콜바, 두기우마, 제릴라 일대에서는 1년 전부터 극심한 기근이 계속 되어서, 문자 그대로 ‘시체의 산’을 이루고 있다는구나. 그리고 너는 이런 희생자들을 좀처럼 볼 수가 없어. …… 서방 언론의 카메라들은 이런 현장에서 몇 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에디오피아의 오가덴에 세워져 있거든. 그러니까 네가 텔레비전에서 보는 사람들은 그나마 국경을 넘어 오가덴의 난민 캠프까지 이동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지.
기적적으로 소말리아를 빠져나온 사람들도 자기 나라보다 별로 나을 게 없는 땅으로 피난하고 있는 셈이지. 에티오피아의 돌로나 카랄로에 있는 난민 캠프는 대부분 그야말로 시체 수용소나 다름 없어.
2. 8억 5,000만의 굶주리는 사람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농민들은 대단히 부지런하고 유능해. 이들은 전해 내려오는 농법으로 매일매일 뼈가 부서지게 일을 하지. 그런데도 이들은 평생을 배고픔에 시달린단다. 영양실조로 병에 걸려 사망하거나, 갑작스런 기근으로 죽기도 하지.
부유한 나라 사람들도 굶주릴 수 있어. 러시아가 바로 그런 예야. 러시아는 세계적으로 금, 우라늄, 석유, 천연가스 생산을 선도하고 있지. 군사력으로는 세계 2위의 국가란다. 콩고의 경우는 더 심해. 콩고는 중요한 지하자원을 보유한 나라지만,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지. 지구상에서 곡물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인 브라질에서는 살인적인 금융과두제가 모든 중요한 물품을 독점하고 있어. 그래서 이 나라 북동부에서는 영양실조가 만연하면서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는구나.
3. 기아는 자연도태?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운명?
19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눈부시게 향상되어, 오늘날에는 19세기 같은 ‘물질적인 결핍’이 사라지게 되었지. 하지만 벌써 사라졌을 것 같은 기아문제는 아직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어.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굶주림은 비극적인 방식으로 더 심해지고 있어.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그런 식으로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매년 수백만의 인구가 굶어죽고 있는 거야.
자연도태라. 이 말은 정말 얼토당토않은 말이야. 그런데도 이런 표현은 사람들의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등장하지. …… 숙명적인 기아가 지구의 과잉인구를 조절하는 확실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기아가 산아제한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는 거야.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자연도태설(토마스 맬서스, 1798). 이 개념에는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주의가 담겨 있어.
맬서스의 이론은 전적으로 틀린 것인데도요? 아까 우리 지구는 인구가 지금의 두 배가 되어도 너끈히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이 맬서스의 이론에 동의할 수 있는 거죠? 대답은 아주 간단하단다. 맬서스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렸지만,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키거든. 날마다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구호시설에서 웅크린 채 죽어가는 아이들. 수단의 덤불 속을 비쩍 마른 몸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일반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거든.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진정시키고,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분노를 몰아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맬서스의 신화를 신봉하고 있어. 끔찍한 사태를 외면하고 무관심하게 만드는 사이비 이론을 말이야.
4. 문제가 집중되는 나라, 소말리아
생각만으로는 무척 간단할 것 같은데 그렇게 복잡하군요. 전쟁을 일삼는 자들을 사라지게 하거나, 최소한 그들이 유엔 대표나 국제 NGO, 국경 없는 의사회, 국제적십자 등과 협력만 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에요? 무엇 하나 간단하지가 않단다. 특히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에서는 말이야.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말리아 사태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지. 군벌끼리의 갈등, 내전, 불안한 사회제도, 가뭄이나 사막화 같은 자연재해, 도로나 항만 같은 사회기반시설의 미정비, 유엔이나 인도적 지원조직의 협력을 거부하는 따위의 문제들이 겹쳐 있단다. 그래서 식량, 식수, 비타민 부족 등으로 소말리아 사람들은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 거야.
5. 생명을 선별하다
난민 캠프 앞에서는 젊은 에티오피아 간호사가 피난민들을 선별하고 있었어.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조치였지. …… 긴 여정에서 살아남아 아고르다드 난민 캠프에 도착한 피난민들은 대개 특별한 영양섭취와 집중치료를 필요로 했어. 하지만 식량이나 의약품은 한정되어 있어서, 간호사들은 누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 순간의 상태로 보아 누구를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지를 결정해야 했어.
마칼레와 코렘에서도 아고르다드와 똑같은 선별작업이 행해지고 있었단다. 그곳 의료진은 난민들의 상태를 보고 그들이 살아날 가망이 있는지, 별로 가망이 없는지를 판단했어. 정말 무자비한 선별작업이었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모두에게 배급하기에는 식량과 정맥주사, 비타민제, 프로테인이 충분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몸과 뇌가 아직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되지 않은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구하고자 노력했어. …(중략)… 간호사가 돌려보내야만 하는 사람들은 ……. 이렇게 선별작업을 해야 하는 간호사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해 볼 수 있겠니?
6. 긴급구호로 문제해결?
대개 ‘경제적 기아’의 희생자들은 뒤늦게 구호단체에 보고되는 경우가 많단다. 제3세계의 많은 정부들이 자신의 나라가 처한 상황을 오랫동안 외부에 알리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 …… 국제지원조직이 뒤늦게나마 기아의 실태를 파악하고 긴급구호체제에 돌입했다고 해도, 실제로 구호품과 해당 인력이 현지에 도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단다.
또다른 문제가 있어. 긴급구호는 쉬운 일이 아니고, 아주 잘 훈련된 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영양불량이 심각한 상태에 있는 아이들은 면밀한 계획에 따라 신중하게 치료해야 해. 굶주린 사람들에게 무턱대로 먹을 것을 주면 오히려 위험하단다. …(중략)… 잘못된 진단과 약해진 몸에 맞지 않는 무분별한 영양공급은 아주 위험하지. …(중략)… 전문 의료지식을 바탕으로 대단히 면밀하게 이루어지거든.
7. 부자들의 쓰레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먹을거리
정부관료나 군 장성, 부유한 상인이나 금융가 등의 고급주택에서 버리는 쓰레기들이었지. 그들의 사치스런 연회에서 먹고 남은 음식이 쓰레기로 나오면, 사막의 건조한 공기가 그 음식들이 상하지 않게 보존해주는 거야. 묘지에 사는 수만 명의 이주민들에게 부자들의 쓰레기는 매일의 양식이지. 네가 어릴 적 카이로에서 산책하며 보았던 광경만 떠올려도 될 거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세계 어디서나 그런 광경이 연출되고 있지. 기생충이 들어 있을 지도 모르는 음식 쓰레기로 연명해야 하다니 ……. 카림, 그런데 더욱 비참한 것은 배고픔의 저주가 세대에서 세대로 대물림된다는 거야.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린 수백만의 엄마들이 매년 지구 곳곳에서 수백만의 건강하지 않은 아이들을 낳고 있어.
8. 이름없는 작은 이들의 무덤
태어난 지 며칠 혹은 몇 주 되지 않아 배고픔과 쇠약, 설사, 탈수 등으로 숨진 이름 없는 아기들의 무덤. 법적으로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 의무지만 그 아기들의 부모는 너무 가난해서 그럴 형편이 안 됨.
9. 자금부족으로 고민하는 국제기구
“이유는 간단해요. 여기보다는 소말리아나 수단 남부의 상태가 더 열악하거든요. 세계식량계획은 자금이 부족하고요. 그래서 로마의 지도부는 두 나라를 돕는 데 집중하기로 결정했지요.” 이런 조치는 카프카스 남부의 난민시설과 실향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지.
10. 소는 배를 채우고, 사람을 굶는다?
프랑스의 르네 두몽이라는 농학자가 연구한 바로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피드 롯의 절반에서 연간 소비되는 옥수수의 양이,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면서도 만성적인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잠비아 같은 나라의 연간 필요량보다 더 많다는 계산이 나왔어.
그러니까 세계시장에는 곡식이 모자라는 모양이군요. 그래서 세계식량계획은 식량을 마음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건가요? 그것은 반쪽짜리 진실이야. 또 다른 문제는 세계시장에 비축된 식량의 가격이 종종 인위적으로 부풀려진다는 데 있어. 세계시장에서 거래되는 거의 모든 농산품 가격이 투기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니? 미국 시카고의 미시간 호숫가에는 위압적인 건물이 솟아 있어. 바로 시카고 곡물거래소야. 세계의 주요 농산물이 거래되는 곳이지. 이곳에서는 몇몇 금융자본가들이 좌지우지하고 있어. 사실 거래는 몇 안되는 거물급 곡물상의 손에서 결정돼.
11. 시장가격의 이면
가격은 단 한 가지 원칙에 복종해. 바로 이윤극대화라는 원칙이지. 시카고 거래소를 주름잡는 사람들은 차드, 에티오피아, 아이티 같은 가난한 나라의 정부가 높은 가격을 감당할 수 있을지 따위는 눈곱만큼도 고려하지 않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매주 수백만 달러를 더 벌어들이는 것이지. 배고픈 자들의 고통? 맙소사, 그들을 위해서는 유엔이 있고 국제적십자가 있잖아 하는 식이란다.
12. 세계에서 식량을 가장 쓸모없게 만드는 남자
부유한 나라들은 식량을 대량으로 폐기처분하거나, 법률이나 그 밖의 조치를 통해 농산물의 생산을 크게 제한하고 있어. 생산자들에게 최저가격을 보장한다는 것이 그 이유란다.
자국의 농민들을 살려야하고, 그 때문에 농산물가격을 높게 유지해야 해. 배고픈 사람들을 돕는 것은 FAO나 WEP의 과제일 따름이지. 하지만 이들 국제기구는 우선적으로 긴급한 지역만 도울 수 있을 뿐이야. 8억 이상이 고통을 받고 있는 ‘구조적 기아’,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식량의 가격이나 생산량의 결정, 그리고 식량의 공평한 분배 등에 대해 FAO나 WEP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야. 세계시장만이 힘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그 시장은 아주 잔인하단다.
13. 기아에 관해 가르치지 않는 학교
정규수업시간에 전쟁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기아에 대해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구나. 기아상황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 어떤 수단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토론하는 수업 같은 것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뜬구름 잡는 식의 정서적인 대응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배고픔은 다양한 방식으로 공격을 가하고 있어. 기아와 그 끔찍한 결과는 세부적이고 정확한 분석을 필요로 해. 하지만 학교는 침묵하고 있어. 그들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않고 있지. 그런 탓에 학생들은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애를 가지고 졸업할 뿐, 기아를 초래하는 구체적인 원인과 그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단다.
브라질의 조슈에 데 카스트로는 1952년에 이미 자신의 유명한 저서 『기아의 지리학』에서 이 ‘금기시되는 기아’를 언급했지. 그의 설명은 무척 흥미로워. 사람들이 기아의 실태를 아는 것을 대단히 부끄럽게 여긴다는 거야. 그래서 그 지식 위에 침묵의 외투를 걸친다는 거야. 오늘날 학교와 정부와 대다수 시민들도 이런 수치심을 가지고 있단다.
FAO는 「World Food Surveys」라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자료를 공표하고 있는데, 기아의 실태를 조금은 덜 심각하게 보거나 약간의 낙관주의를 확산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어. 왜요? 대규모 지원국은 대체로 민주주의 국가들이야. 그런 나라들에서 여론은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그래서 FAO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수밖에 없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FAO에 지원하는 것이 쓸데없는 일로 여겨져, 부유한 나라들이 좀처럼 상당한 액수의 자금을 지원하려 들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현실을 미화할 수밖에 없어.
14. 설상가상의 전쟁
그게 옳은 일일까요? 뭐가? 원조가? 아니면 구호품을 가로채는 것이? 원조를 계속하는 거요. 아빠는 구호단체의 방침에 동의해. 구호단체는 극단적인 조건에서 활동하고, 갖가지 모순들과 싸워야 해. 그러나 어떤 대가도 한 아이의 생명에 비할 수는 없어.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손해를 보상받게 되는 것이지.
15. 무기로 변한 기아
이라크에서 유엔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다가 최근에 퇴직한 아일랜드 출신의 데니스 할리데이에 따르면, 1994년 이후 매년6만 명의 이라크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의약품 부족으로 죽고 있다고 해. 상황은 계속 나빠져 가고 있어. 유니세프는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봉쇄로 인해 요즘 5세 미만의 아이들이 매달 5,000~6,000명이나 생명을 잃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어. 매일 200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셈이지. 할리데이는 199년 1월 18일,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리베라시옹」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기사를 맺고 있어. “이라크에서는 유엔이 민족살인의 주범이 되고 있다.”
16. 기아를 악용하는 국제기업
스위스 네슬레, 칠레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분유 무상배급 공약. 1971년 네슬레 본사는 칠레 정부와의 협력을 모두 거부함.
17. 국가 테러의 도구가 된 기아
북한(강제노동수용소), 기니 공화국(세꾸 뚜레, 검은 다이어트)
18. 사막화로 인한 환경난민
수억의 인구가 이미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식량과 식수 부족을 겪고 있고, 수백만의 ‘환경난민’이 새로 거처할 곳을 찾아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야.
19. 삼림파괴
20. 사막화 대처에 430억 달러?
1992년 유엔 환경개발회의 ‘지구 서미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림. ‘어젠다 21’이 정해졌고, ‘지속 가능한 개발위원회’를 설치, ‘사막화방지 협약’ 제정 등 합의. 사막화와 농지의 황폐화로 고통받고 있는 나라들은 선진국이 사막화방지 협약에 따라 파견하는 농업, 수리, 식물, 기후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단다. 그러면 전문가와 현지의 마을주민들이 협력해서 프로그램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지. 1998년 11월 30일부터 12월 11일까지, 사막화방지 협약의 당사국 대표들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 모여 두 번째 총회를 열었지. 보고내용은 대단히 심각했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사막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고, 사막화로 인해 수백만의 농민들이 목초지나 경작지를 잃고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었지. 이 회의에서 긴급히 실행해야 할 사항들이 결정되었어. 그리고 예상되는 비용도 추산되었는데, 무려 430억 달러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어.
아빠는 어떻게 그런 금액이 산출되었는지, 그리고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등을 그에게 물어보았어. 이언 존슨(세계은행 부총재)은 아빠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더니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더구나. “지글러 선생, 걱정 말아요. 누구도 그런 돈을 갖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21. 르 라이으를 찾아서
세네갈 다카르 일대 빈민촌 중 하나인 환경난민 거주지 르 라이으(Le Rail). 르 라이으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시내에서 짐꾼이나 구두닦이 또는 과일상으로 일하고 있단다. 구걸하거나 매춘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모두들 성실하게 일하고 있지. 하지만 시내에서 거의 7킬로미터를 걸어 르 라이으로 돌아올 때마다 그들의 뇌리에는 악몽이 떠나지가 않아. 낮 동안 어떤 투기꾼이 지방경찰의 도움을 받아 불도저로 내 함석집들을 쓸어버렸으면 어쩌지, 집과 함께 아이들과 가재도구를 싹 밀어버렸으면 어쩌지 하는 악몽이 떠오르는 거야.
르 라이으 농민들은 장차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용기를 가지고 하루를 시작했다가도 밤이면 오두막을 걱정하며 귀가하는 이 순박하고 성실한 사람들은 자기네 삶이, 그리고 자기네 아이들의 삶이 장차 어디로 향할지를 도무지 몰라. 종종 불도저가 그들의 보금자리를 밀어버리지. 그러면 난민들은 또다시 옮겨가야 해. 다른 공터를 찾아서 말이야. 그리고 드라마는 다시 시작된단다.
22. 계속 늘어나는 도시인구
유엔에서는 그런 슬럼가 주민들을 가르켜 ‘비공식 부문’이라 일컫는데, 2000년 라틴아메리카 총인구의 45퍼센트가 이 ‘비공식 부문’으로 파악되고 있단다. 비공식 부문이란 무슨 뜻이죠? '비공식 부문‘은 정해진 일자리나 거주지가 없고, 사회보장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말한단다. ’비공식‘이라는 말은 ’공식‘이라는 말의 반대야. ’공식 부문‘은 경제 주체로서 시민으로서의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말하지. 그러니까 ’비공식 부문‘이라는 말은 이른바 무산계급을 완곡하게 돌려서 말한 표현에 지나지 않아. 정규적인 수입이 없고 의료혜택이나 교육을 받지 못하는, 그리고 안정적인 가정생활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비공식 부문에 속한단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집이라 부를 만한 주거지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전염병이나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며, 만성적인 실업과 자연재해, 슬럼가를 지배하는 범죄조직에 무방비로 내맡겨져 있는 상태야.
최근에는 여행 붐이 일면서 세계가 더욱 좁아진 느낌이 든다고 해. 매년 수백만의 선진국 사람들이 브라질이나 페루, 인도네시아를 여행하고, 아프리카 연안이나 남미 고원지대, 멕시코 고원, 콜카타, 인더스 계곡 등지로 몰려가지. 하지만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맹인이나 마찬가지야. 여행지에서 기아 희생자들을 목격하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 …(중략)… 힘없는 몸통 위로 커다란 머리가 흔들거리고, 걸음걸이도 질질 끌 듯하여 무척 피곤해 보이지. 목소리도 약하고 얼굴이 창백해. 눈에는 두려움이 담겨 있어. 그런 모습은 마음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그런 아이들이 좋은 보육시설 등에 들어가면 몇 주 지나지 않아 무척 명랑하고 건강한 아이로 변신한단다.
23. 치유되지 않는 식민지정책의 상흔
식민지의 권력자들은 아프리카 농민들에게 유럽의 기업이 필요로 하는, 즉 유럽 시장에서 소비될 수 있는 작물을 경작하도록 했어(집중재배시스템). …(중략)… 세네갈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는데, 오로지 땅콩 농사에만 매달리도록 강요받았어.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런 수출만을 위한 단일경작(모노컬쳐)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중략)… 세네갈 정부는 땅콩을 수출해서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로 태국이나 캄보디아, 혹은 그 밖의 나라에서 쌀을 대량으로 구입하지. 세네갈의 주식은 쌀이거든. …(중략)… 세네갈은 해마다 식량의 외국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세네갈의 국민들은 무척 부지런해서 식량을 자급자족할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식량을 수입해야만 하는 시스템이 되어 있지. 게다가 식량 수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정부의 허가가 필요해. 그래서 고위 관리들이 식량 수입의 독점권을 가지고 막대한 재산을 모으고 있단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자국의 식량생산 증진에는 관심이 없지.
24. 토마스 상카라와의 만남
25. 메말라가는 대지, 사헬
국제적인 도움의 손실은 찔끔찔끔 주어지는 정도였어. …… 부르키나파소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도 아니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아니니까. 이 나라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 그저 타는 듯한 하늘과 돌과 덤불과 낙타, 그리고 사람 외에는……. 무엇보다 상카라의 정치는 프랑스와 그 식민지였던 나라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
26. 용기 있는 개혁자, 상카라
상카라가 추진한 정치 개혁 _ 자주관리정책(국내 30개 행정구를 자치구로 전환), 철도건설사업(국가차원의 대규모 프로젝트), 인두세 폐지, 개간 가능한 토지의 국유화 개혁의 성과는 어땠나요? 정말 놀라웠지! 4년도 지나지 않아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었어. 국가지출도 줄어들었고 그래서 자금이 도로나 상수도 건설, 농업교육의 보급, 지역의 수공업촉진 사업 등에 우선적으로 투자되었지. 부르키나파소는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고, 다민족 복잡한 사회구성은 한층 민주적이고 정의로워졌지.
27. 상카라의 최후
프랑스 본국 정부의 일부 세력은 상카라의 개혁을 반기지 않았지. 예언자는 살해되어야 했어. 상카라는 결국 자신의 동지이자 참모였던 콤파오레에 의해 살해되었지. 콤파오레는 현재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이란다. …… 토마스 상카라의 죽음은 살바도르 아옌데의 죽음과 비슷해. 외국세력의 조종을 받은 자국 군부에 의해 살해되었잖니.
상카라의 죽음과 함께 사람들의 커다란 희망도 깨졌지. 콤파오레 치하의 부르키나파소는 다시 보통의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말았어. 만연한 부패, 외국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 북부 지방의 만성적인 기아, 신식민주의적 수탈과 멸시, 방만한 국가 재정, 기생적인 관료들, 그리고 절망하는 농민들…….
28. 전정한 활로를 찾아서
토지 개량도, 사막화 대책도, 빈민가의 인프라 정비도, 농업지원도, 우물파기 프로젝트도 결국은 헛수고로 끝나버릴 응급조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아빠는 생각해. 그럼 무슨 일을 해야 하나요?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해.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
에필로그
영양의 질은 생활수준, 그리고 건강상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영양이 부족한 쪽에는 비참한 가난과 질별과 때 이른 죽음이 있고, 다른 쪽에는 안정된 수입과 희망찬 생활, 건강과 장수가 기다린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이미 이런 불평등의 운명을 짊어져야 한다. 영양은 지능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략)… 또한 아기의 건강과 지능, 발달능력, 생명력은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아기가 섭취하는 영양에 좌우된다.
브레히트는 “분노하는 것은 고통이다”라고 했다. 제네바의 은행가들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한다. 이 이데올로기가 바로 신자유주의(시장원리주의)라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특히 위험하다. 중심에 자유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규범도 가라, 규제도 가라, 국민국가도 가라, 장애만 될 뿐이다. 선거도 가라, 일치도 가라, 정권교체도 가라, 민족주체성도 가라. 자유! 자본을 위한 자유, 서비스를 위한 자유, 특허를 위한 자유만 남아라. 그것은 관료제나 모든 종류의 제한에 반대하는 것이다. 오직 ‘완전하게 리버럴한 시장’을 추구하는 시장원리주의(신자유주의)일 따름이다. …(중략)… 무엇이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 무엇이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를 따지지 않은 채, 그저 ‘경제 합리성’이라는 구호만이 난무하고 있다. …(중략)…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헐뜯고, 민족주체성을 헐뜯고, 선거를 통해 확정된 제도, 그리고 영토적인 경계짓기와 인간이 만든 민주주의적 규범을 헐뜯으면서 계몽주의의 유산을 파괴하고 있다.
혁명적인 행동은 제3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다. 가령 인도는 오늘날 자급자족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능력이 있다. 그런데도 인도에는 심각한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아이들의 수가 7,000만 명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2.5배에 이른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식량수출국에 속한다. 그런데도 대도시와 시골에서 아이들이 매일같이 굶주리고 있다. 지주의 1퍼센트가 경작지의 43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2000년의 경우, 1억 5,300만 헥타르의 땅이 경작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고, 500만의 농민들이 땅이 없이 가족과 함께 이 거대한 나라의 거리를 배회해야만 한다.
기아에 의한 생명 파괴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 _ ① 인도적 지원의 효율화 ② 원조보다는 개혁이 먼저 ③ 인프라의 정비 …… 이 모든 조처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세계 여론이 동원되어야 하며, 현재의 경제 지배자들의 각성과 연대의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기아와 투쟁해야 한다. 기아 문제를 시장의 자유로운 게임에만 방치할 수 없다. 이에 세계경제의 모든 메커니즘은 한 가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한 가지 대전제는 바로 기아는 극복되어야 하며 지구상의 모든 거주민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라고 썼다. 시장의 완전한 자유는 억압과 착취와 죽음을 의미한다. 법칙은 사회정의를 보장한다. 세계시장은 규범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민중의 집단적인 의지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경제의 유일한 견인차는 이윤지상주의라는 입장, 신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두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허구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이 시대의 급박한 과제이다.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과 의미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기 전에는 지상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서로 책임져 주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후기
열 살 미만의 아이가 7초마다 1명씩 기아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으며 6분에 1명씩 비타민A의 부족 혹은 썩은 물과 접촉함으로써 시력을 잃고 있다. 부자들의 부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는 이 작은 행성에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다.
배고픔의 숙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라도 말이다. 부족한 것은 연대감이며, 국제 공동체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하는 진짜 의지이다.
인도적인 도움은 절대적인 중립, 보편성, 독립성을 요구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통 받는 인간의 필요를 겨냥한 것이어야지, 결코 한 국가의 필요에 따른 것이어서는 안 된다.
소리 없이 매일 많은 사람을 죽이는 기아에 대한 범세계적 투쟁이 어려운 것은 또한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의 무차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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