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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백편의자현/詩로빚어낸마음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 … 이성복「음악」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하듯 음악을 통해 내 삶을 생각해보게 되는 날이 있다. 특히 운전을 하면서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악을 들을 때면 내 삶이 조명되어 보이는 날이 많은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이 세상에서 적어도 차 안에 있을 때는 그곳이 혼자만의 공간이 되니까. 비가 온다면 그 공간은 더 은밀하고, 시간마저도 힘을 잃은 공간이 된다.

 

비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듣다가 문득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이 내 인생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낀 화자가 있다. 지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꼭 내 이야기 같다는 생각, 혹은 내가 꿈꾸었던 삶이 음악에 그대로 적혀 있다는 느낌. 굳이 음악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면서 이런 경험들은 한번쯤은 겪어 봤을 것이다.

 

인생이 노래가 되고, 노래가 인생이 되는 삶을 이성복 시인의 「음악」을 통해 돌아본다.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 1993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 본다

 

 

 


비오는 날 차안에서 음악을 듣다가 문득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한다. 차안에 흐르는 ‘아름다운 음악’과 달리 자신의 삶은 아름답지 않으며, 자신이 꿈꾸었던 것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삶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호흡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노래하는 삶을 꿈꾸었건만, 자신의 삶은 그러한 삶에서 멀어져 있는 것 같다. 그의 입술은 자신의 꿈과는 다르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을 노래하고 있고, ‘아름다운 음’은 멀찍이서만 듣고 있을 뿐이다.

 

내 삶은 과연 어떤 음악일까? 그 음악이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라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와서 처음의 자리로 돌아갈 수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나 교과서적인 답으로 결론을 내고 있는 듯하지만, 화자는 원했던 삶이든 아니든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에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 원치 않았던 삶, 다른 사람의 삶처럼 느껴졌던 삶이라도 그것이 바로 자신의 삶임을 인정하고 있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좋든 싫든 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름다운 음악’에 미련을 두고, 그 음악과 멀리 서 있는 내 자신을 보며 시린 가슴만을 붙잡고 있다. 나는 언제쯤 화자처럼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신의 삶을 인정한 뒤에야 변화된 삶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하는데… 답을 바로 앞에 두고도 답을 찾는 어리석은 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