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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全문보기/삼국유사

자용절대의 미인, 수로부인을 위해서라면

《해가》와 《헌화가》는 일연이 쓴 『삼국유사』 권2, 기이 제2에 있는 「수로부인(水路夫人)」조에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배경설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바위 절벽이 아스라이 솟구쳐 있고, 푸른 동해가 펼쳐져 있는 사이로 모래 해안을 따라 길이 놓여 있다. 화랑과 승려들이 주로 지나다니는 경주에서 강릉까지 이어져 있는 해안길이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신라 33대 성덕왕 시절, 이 길을 순정공 일행이 걷고 있다. 절벽에 핀 꽃이 아름답다며 따 달라는 여인. 위험하니 따 드릴 수 없다며 거부하는 주변사람들. 여인을 호위하는 힘 있는 이들조차 어쩔 수 없는 높이 천 길의 위험한 절벽.

 

마침 한 노인이 암소를 몰고 근처를 지나간다. 아무도 수로 부인에게 꽃을 따 주지 않자 노인은 망설이며 선다. 노인은 꽃을 갖고 싶다는 여인에게 그 꽃을 바치고 싶었다. 마침내 결심한 노인은 암소를 끌고 가던 고삐를 놓고 직접 절벽으로 올라가 꽃을 따 온다. 그리고 노래를 지어서 꽃과 함께 바친다. 꽃을 바치며 불렀다고 하여 ‘헌화가’로 이름 붙여진 이 노래는 34자의 짧은 글이지만 아름답다.

 

한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꽃과 「헌화가」를 바친 지 이틀이 지났다. 길을 가던 순정공과 수로부인 일행은 엄청난 일을 겪게 된다. 평소에도 절세미인으로 신물에게 납치당했던 수로부인은 갑자기 나타난 해룡(海龍)에게 납치당해 바다로 들어갔다. 남편인 순정공은 땅바닥에 엎어져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하지만, 아무런 해결책도 내지 못 한다.

 

이때 또 다른 노인이 나타나,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며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 용이 부인을 내놓을 것이라 한다. 순정공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따르니, 과연 해룡이 부인을 돌려보냈다.

 

뭍으로 돌아온 수로 부인에게 남편이 바닷속 일에 대해 묻는다. 인간의 음식과 달랐다는 부인의 말과 부인의 옷에 스며 있는 이 세상과 다른 향기는 바다의 환상적인 공간을 상상하게 한다.

 

『삼국유사』의「수로부인」조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 《헌화가》의 해석은 따로 한다.

 

聖德王성덕왕 純貞公순정공江陵강릉太守태수() 行次海汀晝饍행차해정주선. 傍有石嶂방유석장 如屛臨海여병림해 高千丈고천장上有躑躅花盛開상유척촉화성개

성덕왕 대에 순정공이 강릉(지금의 명주) 태수로 부임하여 가다가 바닷가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옆[傍]에는 석장(石嶂, 바위 절벽)이 마치 병풍과 같이 바다를 두르고 있었는데,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 위에[高千丈上] 척촉(躑躅, 철쭉) 꽃이 만발해[盛開] 있었다.

 

순정공(純貞公) : 순정(純貞)은 ‘순결한 정조’ 또는 ‘순수하고 정숙한 여인의 몸가짐’이란 뜻이다. 어쩌면 순종공이라는 칭호는 당대 제일인 자용절대(姿容絶代)의 미녀였지만, 바람기 다분한 여자를 부인으로 둔 남편의 희망사항일지도 모르겠다. 해룡이 부인을 약람해 갔을 때 순정공이 엎어지고 넘어지며 땅을 치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은 부인이 어떠한 여자임을 알았기에 순정(純貞)을 더럽힐까 걱정해서 나타난 본능적인 안타까움의 표출일지도 모른다.

척촉(躑躅) : 머뭇거릴 척(躑)과 머뭇거릴 촉(躅)으로 구성된 척촉(躑躅)은 주로 벼랑 위와 같은 산지에서 피는 철쭉의 한자식 표현이다. 수로부인이 벼랑 위의 철쭉을 따달라고 한다면 척촉(躑躅)이 지닌 의미처럼 누구든지 일단은 ‘머뭇거리게’ 될 것이다. 또한 발 족(足)을 공통 부수로 하는 형성문자의 짝으로 맺어진 ‘척촉(躑躅)’은 ‘발품을 팔아야만 가까이 볼 수 있는 꽃’임을 암시한다.

 

公之夫人공지부인水路수로見之견지 謂左右曰위좌우왈: 「折花獻者其誰절화헌자기수?」 從者曰종자왈: 「非人跡所到비인적소도.」 皆辭不能개사불능

公의 부인 수로(水路)가 그것을 보고 좌우(左右)에 말하였다.
“꽃을 꺾어 바칠 사람이 누구인가?”
종자(從者)가 말하였다.
“인적(人跡)이 이를 수 없는 곳입니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사양하였다.

 

수로(水路) : 순정공의 일행이 걷고 있는 길은 수로(水路, 동해길)이며, 수로와 가까이에 있는 임해(臨海)한 장소에 머물 때마다 신물들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약람(掠攬)한다. 또한 해룡에 의해 대택(大澤), 즉 바다 속으로 끌려갔지만 부인은 오히려 신기한 대접을 받는다. 수로(水路, 수변 도로)와 연관된 부인의 이름은 이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傍有老翁牽牸牛而過者방유노옹견자우이과자 聞夫人言문부인언 折其花절기화 亦作歌詞獻之역작가사헌지 其翁不知何許人也기옹부지하허인야

(마침) 옆으로[傍] 자우(牸牛,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過] 노인[老翁]이 있었는데, 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 와서 가사(歌詞)까지 지어 바쳤다. 그 노인[翁]이 어떤 사람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翁) : 옹(翁)은 깃털[羽] 위에 귀인의 뜻을 지닌 공(公)이 붙어 이루어진 형성문자로, 1늙은이, 2어르신네, 3아비, 장인, 시아버지, 4훨훨 나는 모습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노인이 젊은 종자(從者)들도 마다하는 고천장(高千丈) 벼랑 위를 훨훨 나는 듯이 올라가 철쭉을 딸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옹(翁)에 달린 깃털[羽] 덕분인지도 모른다.

 

便行二日程변행이일정 又有臨海亭우유림해정 海龍忽攬夫人入海해룡홀람부인입해

다시 이틀째 길을 가다가 또 바다에 닿아 있는 정자[臨海亭]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해룡(海龍)이 갑자기 부인을 낚아채[攬, 잡아당기다] 바다로 들어가 버렸다.

 

公顚倒躄地공전도벽지 計無所出계무소출. 又有一老人告曰우유일노인고왈: 「故人有言고인유언 衆口鑠金중구삭금 今海中傍生금해중방생 何不畏衆口乎하불외중구호? 宜進界內民의진계내민 作歌唱之작가창지 以杖打岸이장타안 則可見夫人矣즉가견부인의.」 公從之공종지 龍奉夫人出海獻之용봉부인출해헌지

公이 엎어지고, 넘어지고, 발을 굴렀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또 다른 노인이 있었는데, 고하여 말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여러 사람의 말[衆口]은 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 바다 속의 생물이라도 어찌 여러 사람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으리오? 마땅히 경내(境內)의 백성들이 나아가,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지팡이로 언덕을 두드린다면, 곧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공이 그 말에 따르니, 용이 부인을 받들어 모시고[奉] 바다에서 나와 바쳤다.

 

公問夫人海中事공문부인해중사 : 「七寶宮殿칠보궁전 甘滑香潔감골향결 非人間煙火비인간연화.」 夫人衣襲異香부인의습리향 非世所聞비세소문

公이 부인에게 바다 속의 일에 대해 물었더니, (부인이) 말하였다.
“일곱 가지 보물로 꾸민 궁전에[七寶宮殿], 음식은 맛이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롭고 조촐하여 인간 세상의 음식[煙火]이 아니었습니다.”
부인의 옷에는 색다른 향기가 스며 있었는데,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水路수로姿容絶代자용절대 每經過深山大澤매경과심산대택 屢被神物掠攬누피신물약람

수로 부인의 자태(姿態)와 용모(容貌)가 당대에서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절세미인[姿容絶代]이어서, 심산(深山, 깊은 산)이나 대택(大澤, 바다)을 지날 때마다 신물(神物)들에게 약람(掠攬)을 당하였다.

 

자용절대(姿容絶代) : 산골이건 해변이건 그녀가 지나가는 낌새를 접한 신물(神物 : 사실은 미색을 탐하는 지역민들이라 보는 것이 타당)들은 우연을 가장, 그녀에게 접근하여 작업 멘트를 날리며 수작을 부리거나, 일단 납치부터 하고보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심신산골이나 외딴 바닷가까지 입소문을 타고 전해진 수로부인의 아름다움 탓이었으니, 수로부인은 은근히 그러한 사건들을 즐겼을 것이다.
이놈저놈 가릴 것 없이 자신의 처를 노리는 바람에 속 타고 애먹는 사람은 수로부인의 남편인 순정공(純貞公) 뿐이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남정네들의 손때를 타 순결(純潔), 정숙(貞淑)한 조강지처의 이미지를 지우게 된 수로부인!
그녀의 타이틀인 자용절대(姿容絶代)는 “자태와 용모에서 당대에 비교대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절대적 미의 화신”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그 정도였으니까 유부녀가 되었어도 남정네들의 숨을 가쁘게 만든 것이리라.

 

衆人唱海歌중인창해가, 詞曰사왈:

여러 사람들이 ‘해가’를 불렀는데, 그 가사는 이러하다.

 

龜乎龜乎出水路구호구호출수로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를 내놓아라.

掠人婦女罪何極약인부녀죄하극

남의 아내 약탈해 간 죄 그 얼마나 큰가?

汝若悖逆不出獻여야패역불출헌

네 만약 어기어 바치지 않으면

入網捕掠燔之喫입망포략번지끽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老人獻花歌曰노인헌화가왈:

노인의 ‘헌화가’는 이러하다.

 

紫布岩乎过希자포암호변희執音乎手母牛放敎遣집음호수모우방교견
吾肹不喩慚肹伊賜等오힐불유참힐이사등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화힐절질가헌호리음여.

 

水路夫人

聖德王代, 純貞公赴江陵太守(今溟州), 行次海汀晝饍. 傍有石嶂, 如屛臨海, 高千丈上有躑躅花盛開. 公之夫人水路見之, 謂左右曰: 「折花獻者其誰?」 從者曰: 「非人跡所到.」 皆辭不能. 傍有老翁牽牸牛而過者, 聞夫人言, 折其花, 亦作歌詞獻之, 其翁不知何許人也. 便行二日程, 又有臨海亭, 晝膳次, 海龍忽攬夫人入海. 公顚倒躄地, 計無所出. 又有一老人告曰: 「故人有言, 衆口鑠金, 今海中傍生, 何不畏衆口乎? 宜進界內民, 作歌唱之, 以杖打岸, 則可見夫人矣.」 公從之, 龍奉夫人出海獻之. 公問夫人海中事, 曰: 「七寶宮殿, 所饍甘滑香潔, 非人間煙火.」 此夫人衣襲異香, 非世所聞. 水路姿容絶代, 每經過深山大澤, 屢被神物掠攬. 衆人唱海歌詞曰:

龜乎龜乎出水路, 掠人婦女罪何極, 汝若悖逆不出獻, 入網捕掠燔之喫.

老人獻花歌曰:

紫布岩乎过希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肹不喩慚肹伊賜等,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 일연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2 수로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