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속으로콜콜Call/옛노래 선율 9

무이이야_다를 것이 없나이다

칼춤에 꽃놀이 도화전에 노랫가락 시리게 흥겨운데 오백 년 공들여 애써 온 대업 모두 허사로다 아비는 칼 맞아 스러지고 자식들은 세금에 찢겨 죽고 잿가루 날리는 만월대에 통곡 소리 구슬퍼라 무이이야 무이이야 세상에 묻노니 생사를 가름에 정치와 칼이 다를 게 무어냐 천중의 이름 없는 새야 왜 그리도 구슬프게 우느냐 어차피 들꽃이 진 자리는 찾을 수 없지 않느냐 천중의 이름 없는 새야 왜 그리도 구슬프게 우느냐 어차피 들꽃이 진 자리는 찾을 수 없지 않느냐 _『육룡이 나르샤』OST「무이이야」 다를 게 무어냐 『맹자』「양혜왕 상」제4장 전문 梁惠王曰양혜왕왈, “寡人願安承教과인원안승교。” 양혜왕이 “과인은 기꺼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孟子對曰맹자대왈, 殺人以梃與刃살인이정여인, 有以異乎유이이..

[노계가집] 가난을 원망 않고 즐기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 박인로「누항사」

陋巷詞 漢陰大鑑命作 어리고 迂闊  이내 우희 던 이 업다. 吉凶禍福을 하 브텨 두고, 陋巷 깁픈 곳의 草幕을 주피 혀고, 風朝雨夕의 서근 딥피 서피 되야, 닷홉 밥 서홉 粥에 烟氣도 하도 할샤. 얼머 만히 바 밥의 懸鶉稚子들은, 將碁 버덧 卒 미덧 나아오니, 人情天理예 마 혼자 머글넌가? 설더인 熟冷애 뷘  소길 이로다. 生涯 이러다 丈夫 을 옴길런가? 安貧一念을 져글만졍 품어 이셔, 隨宜로 살려니 날로조차 齟齬다. 히 不足거든 봄이라 有餘며, 주머니 뷔엿거든 병의라 담겨시랴? 다 나 뷘 독 우희 어론털 덜 도든 늘근 쥐, 貪多務得야 恣意揚揚니 白日 아래 强盜로다. 아야라 어든 거 다 狡穴에 앗겨두고, 碩鼠 三章을 時時로 吟詠며, 歎息無言야 搔白首니로다. 이 中..

[노계가집] 사제에서의 삶을 노래하다 … 박인로「사제곡」

莎堤曲 萬曆辛亥春 漢陰大鑒命作此曲 莎堤勝地名 在龍津江東距五里許 大鑒江亭所在處也 어리고 拙 몸애 榮寵이 已極니, 鞠躬盡悴야 주거야 말려 너겨, 夙夜匪懈야 밥을 닛고 思度, 군솔의 현 블로 日月明을 도올런가? 尸位伴食을 몃 나 디내연고? 늙고 病이 드러 骸骨을 빌니실, 漢水 東다히로 訪水尋山야, 龍津江 디내올나 莎堤 안 도라드니, 第一江山이 님재 업시 렷다. 平生夢想이 오라야 그러던디, 水光山色이 녯  다시 본 , 無情 山水도 有情야 보이다. 白沙汀畔의 落霞 빗기 고, 三三五五히 섯거 노 뎌 白鷗이야, 너려 말 뭇쟈 놀나디 마라라. 이 名區勝地를 어라 드럿던다? 碧波이 洋洋니 渭水 伊川 아닌 게오? 峯巒이 秀異니 富春 箕山 아닌 게오? 林深路黑니 晦翁 雲谷 아..

[노계집] 배 위에서 탄식하다 … 박인로 「선상탄」

일본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20년간 분열되었던 일본이 통일되었고, 머지 않아 조선을 침략할 지 모른다는 소식이었다. 조정에서는 일본에 사신을 보내 이를 조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두 사신의 의견이 서로 달라 조정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년 뒤 일본은 조총을 비롯한 신무기에 20만이 넘는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다. 관군이 일본군에 무너지면서 나라 전체가 큰 어려움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왕과 조정은 평양으로, 다시 의주로 피난을 떠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군의 손에 죽었고, 나라 안 곳곳이 일본군에 짓밟혔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단지 명의 구원이 있기만을 학수고대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일본군을 무찔러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사람들이 나타났..

[악장가사] 내 손목을 쥐더이다 … 「쌍화점」

KBS에서 하는 《불후의 명곡》은 내가 시청하는 몇 안 되는 TV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아버지 세대의 음악을 우리 세대의 가수들의 목소리로 다시 들으며,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게 해 주기에 특별히 일이 있지 않는 한 챙겨 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꽤 자주 ‘금지곡’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과거 ‘어떤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는 않지만 대부분 황당하여 웃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명분을 세워가며 ‘금지곡’을 지정했듯, 조선시대에도 금지곡이 있었다. ‘성리학의 도’라는 명분하에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던 수많은 노래 중 살아남은 노래가 「만전춘」, 「쌍화점」, 「이상곡」 등이다. 「쌍화점(雙花店)」은 고려속요 가운데서도 그 노골..

[악장가사]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임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 … 「이상곡」

『악장가사』에 실려 전하는 「이상곡(履霜曲)」은 흔히 「쌍화점」, 「만전춘별사」와 더불어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의 대표작으로 거론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가요들은 『악학궤범(樂學軌範)』, 『악장가사(樂章歌詞)』,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등 조선 시대에 간행된 음악 서적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초기 성리학자들이 궁중에 필요한 음악을 정리하면서 ‘남녀상열지사’나 ‘사리부재(詞俚不載, 노랫말이 저속하여 문헌에 싣지 않음)’를 근거로, 고려가요는 엄격한 검열을 받아야 했다. 「이상곡」은 만날 기약이 없는 임에 대한 그리움을 직설적이고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상곡(履霜曲)」은 ‘서리 밟는 노래’라는 뜻으로 여인의 한스러운 사랑을 서리에 비유한 곡이다. ‘이상(履霜)’은 『주역』「곤괘초육(坤卦初..

[악장가사] 연못이 얼면 여울도 좋으니 …「만전춘(별사)」

고려가요는 흔히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 남녀의 애정을 주제로 한 노래)’라 하여 조선시대 유학자들에게 배격의 대상이 되었다. 남녀 사이의 성적(性的)인 문제를 적나라하게 다룬 작품은 미풍양속을 헤치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하여, ‘사리부재(詞俚不載, 노랫말이 저속한 것은 문헌에 싣지 않는다)’의 원칙에 따라 대부분의 고려가요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런 조선 유학자의 ‘성리학적 도’를 실현시키기 위한 제재 속에서 살아남은 작품 중 하나가 「만전춘(별사)」이다. 비록 궁중속악가사 중 ‘비리지가(鄙俚之訶)’의 대표로 유학자들의 비판을 받으며 악곡만 채용되고 가사는 「만전춘(별사)」를 한시로 개작한 「봉황음」으로 대체되었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인간의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

[악장가사] 옥으로 새긴 연꽃이 꽃을 피운다면 …「정석가」

고려가요 「정석가(鄭石歌)」는 불가능한 상황을 전제로 하여, 그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면 임과 이별하겠다는 역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는 칭송을 받고 있는 「정석가」를 들여다본다. 노래의 제목인 ‘정석(鄭石)’은 노래의 서사에 나오는 ‘딩아 돌하’의 ‘딩’, ‘돌’의 차자이다. ‘딩’과 ‘돌’은 악기의 이름으로 ‘정석’은 그 악기를 의인화한 것이다(그러나 화자가 연모하는 대상의 이름이라는 설 등 이설도 있다). 딩아 돌하 당금(當今)에 계샹이다 딩아 돌하 당금(當今)에 계샹이다 션왕셩(先王聖代)예 노니와지이다 삭삭기 셰몰애 별헤 나 삭삭기 셰몰애 별헤 나 구은 밤 닷되를 심고이다 그 바미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 그 바미 우미 도다 삭나거시아 유덕(有德)신..

[악장가사] 밝은 달빛 아래에서 낚시를 즐기는 것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다 … 「감군은」

어느 왕조나 공식행사에 사용하던 음악이 있게 마련인데, 그때 불린 노래 가사가 ‘악장(樂章)’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악장은 대체로 조선 시대 궁중에서 불렀으며,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그 주체 세력들의 위업을 예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조선 건국이 천명(天命)이었음을 들어 창업주들의 공적을 찬양하고, 임금의 만수무강과 자손의 번창을 축원하며, 후대 임금을 권계(勸戒)하는 내용이다. (四海) 바닷 기픠 닫줄로 자히리어니와 님의 덕(德澤) 기픠 어 줄로 자히리잇고 향복무강(享福無彊)샤 만셰(萬歲) 누리쇼셔 향복무강(享福無彊)샤 만셰(萬歲) 누리쇼셔 일간명월(一竿明月)이 역군은(亦君恩)이샷다 태산(泰山)이 높다컨마 하해 몬 밋거니와 님의 높샨 은(恩)과 덕(德)과 하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