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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백편의자현/多모아書보기

'인간'의 삶을 뛰어넘는 '그들'이 말하는 세상

「금수회의록」이나 『동물농장』에서 사람이 아닌 각종 동물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모습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평소와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의외의 시선이 인간이 바라볼 때는 결코 만만치 않는 진지함이 있다. 무심한 듯 살아가는 非인간 존재들이 보는 인간의 세상을 그린 작품들을 모아본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한 번도 쥐를 잡지 않았고, 인간을 연구⋅관찰하는 것이 취미이며, 호기심 많은 고양이가 화자이다. 고양이는 주인인 진노 구샤미의 일가와 그 집 서재에 모여드는 지식인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그들의 속물근성과 추악함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조소한다. 책을 읽으며 쿠샤미 주변 사람들이 늘어놓는 궤변에 잠깐씩 웃음 짓기도 하고, 고양이의 날카로운 분석 앞에 고개를 끄덕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속물근성과 추악함을 비판하는 고양이의 날카로움 앞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씁쓸함이 스민다. 특별히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통쾌함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인간의 모습은 우리의 내면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게 한다.

소설 쓰는 쥐 퍼민
샘 새비지 저

어쩌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고양이가 잡지 않아 살아남았을지도 모르는(^^) 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 작품도 있다. 『소설 쓰는 쥐 퍼민』은 쥐 퍼민의 시각과 생각을 빌려 현대인들이 의사소통의 부재로 인해 겪는 소외감, 외로움, 아픔 등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헌책방에서 태어나 발치에 있는 종이 쪼가리를 씹으며 살아남았던 퍼민은 점차 책의 가장자기를 읽기 시작하더니 읽기에 빠져 든다. 책을 읽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 퍼민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며, 인간의 세상을 동경하기까지 한다. 인간과의 소통을 간절히 원하고, 심지어 인간을 사랑하지만 아무런 의사 표현도 할 수 없다. 온갖 책 속에서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지만 그럴수록 퍼민은 쥐도 인간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만 경험할 뿐이다. 쥐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소비적이지도 생산적이라고 할 수 없는 삶. 퍼민의 삶은 그 속에 그려진 인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소설 쓰는 쥐 퍼민』은 쥐 퍼민의 시각을 빌려 현대인의 부조리한 삶을 유쾌하면서도 심오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나는 지갑이다
미야베 미유키 저

동물만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갑이다』는 열 개의 지갑이 전하는 생생한 목소리로 연쇄 살인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다. 우리의 지갑에는 깨끗한 돈도, 더러운 돈도 모두 같은 모습으로 들어가 있지만, 지갑의 시선으로 보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 ‘형사의 지갑’에서 시작하여 열 개의 지갑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가 하나의 장편을 만든다. 지갑의 시선으로 일련의 연쇄살인을 둘러싼 실마리가 잡히고 사건은 해결을 향해 다가간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욕망 앞에서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혹은 그 유혹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시도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긴장감이 가득한 이 책은 진정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