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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한국사노트

[사상사_유학] 3-3. 자연과학자 홍대용, 과학을 통해 세상을 보다

홍대용(洪大容, 1731~1783)

호는 담헌(湛軒). 노론 가정에서 태어나, 청을 왕래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임하경륜」, 「의산문답」, 「주해수용」 및 기행문인 「연기」 등을 저술하였는데, 그의 대표적인 저서 『담헌서(湛軒書)』에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

홍대용은 「임하경륜(林下經綸)」을 통해서 (완전)균전제를 주장하며 토지 개혁에도 관심을 보였다. 놀고먹는 선비들이 생산 활동에 종사할 것을 역설하고, 성인 남자들에게 2결의 토지를 나누어 줄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병농일치의 군대조직을 제안했다.

「의산문답(醫山問答)」은 홍대용이 1766년(영조42) 초 베이징[北京]에서 중국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새롭게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쓴 ‘과학 논문’이다. 실옹(實翁)과 정통 성리학자인 허자(虛子) 두 사람이 나눈 대화 형식을 빌려, 지금까지 믿어온 고정관념을 상대주의 논법으로 비판하였다. 김석문의 지구회전설(「역학도해」, 처음으로 지구가 1년에 366회씩 자전한다고 주장하여 천동설을 부정하였다.)을 이어받아, 1일 일주 회전설(지전설)을 주장하고(그가 주장한 지전설은 코페르니쿠스와 달리 지구가 1년에 한 번 태양을 돈다는 공전과 함께 말한 것은 아니다.), ‘다른 별들에도 우주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등 파격적인 우주관(무한우주론)을 피력하였다. 자연 과학에서 얻은 상대주의적 입장에서 ‘중국만을 화(華)라고 할 수 없다.’며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당시 지식인의 세계관[華夷論]을 거부하고, 만일 공자가 중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곳의 역사를 중심으로 「춘추」를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다른 만물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과거의 인본적(人本的)인 사고방식을 부정하고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똑같은 것으로 상대화하였다. 이 밖에도 교육의 기회는 균등히 부여되어야 하며, ‘재능과 학식에 따라 일자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기술의 혁신과 문벌제도의 철폐, 성리학의 극복이 부국강병의 요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중국은 서양(西洋)과 경도(經度) 차이가 180도에 이르는데, 중국인은 중국을 중심[正界]으로 삼고 서양을 변두리[倒界]로 삼으며, 서양인은 서양을 중심으로 삼고 중국을 변두리로 삼는다. 그러나 실제는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 사람은 지역에 따라서 모두 그러하니, 중심도 변두리도 없이 모두가 중심이다.

지구가 9만 리를 한 바퀴 도는데 그 회전 속도가 매우 빠르다. 저 성계(星界)에서 지구까지의 거리가 겨우 반경(半徑)이라도 몇 천만, 몇 억 리인지도 알 수 없거늘, 하물며 성계 밖에 또 별들[星辰]이 있음이랴? 우주 공간[空界]에 다함이 없다면, 별이 분포하는 영역에도 또한 다함이 없다. 그 별들이 한 바퀴 돈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 궤도의 둘레가 얼마인지 먼 거리는 이미 헤아릴 수 없다. 하루 동안에 얼마나 빨리 회전할지 생각해 본다면, 천둥⋅번개나 포탄의 속도를 계산하더라도 이보다 빠르지는 못할 것이다.

홍대용은 서양 학문이 산수(算數 : 수학)로 근본을 삼았다고 평가하고, 중국과 서양, 우리나라의 수학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여 「주해수용(籌解需用)」이라는 수학책을 썼다. 수학 공식뿐만 아니라 예제와 풀이까지 기록하여 공부하는 사람의 편의까지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