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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온누리

[북트레일러] 책을 홍보하던 영상이 작품으로

이제 책도 영상물로 홍보하는 시대가 되었다. ‘북 트레일러’를 처음 접했을 때 신선함을 느꼈었는데 이제 이 방법도 보편화되었다. 책의 예고편 ‘북 트레일러’는 영화 예고편을 가리키는 ‘필름 트레일러’에서 나온 말이다. 처음엔 사진이나 컴퓨터 그래픽, 작가의 인터뷰를 활용하여 영상을 만들었으나 요즘은 책과 영화의 만남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영화 예고편 수준의 ‘북 트레일러’가 많이 나오고 있다. 1~3분여의 시간동안 마치 영화의 예고편처럼 책의 인상적인 내용과 문구를 스토리 영상이나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글보다 동영상에 더 익숙한 현 세대에 북 트레일러는 감각을 자극하며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2011년 상반기 최고 화제작이었던 정유정의 장편소설 『7년의 밤』(은행나무)은 탄탄한 스토리와 스릴러 영화 예고편을 방불케 하는 북 트레일러가 맞물려 출간 한 달 만에 7만부가 판매되는 효과를 내었다. 또한 출간되자마자 15개의 영화사로부터 판권구매 제안을 받았고, 최근 1억원, 러닝 개런티 5%에 영화판권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책의 인상적인 내용과 문구들을 한편의 짧은 영상을 통해 압축적으로 드러내며 눈과 귀, 마음을 끌어당긴다. 북 트레일러는 책을 고르는 사람들이 책을 검색하면서 첫 번째로 기대하는 홍보수단이 되었다. 전통적인 홍보로는 효과를 보지 못하는 때에, 출판사들은 북 트레일러를 통한 마케팅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그것이 북 트레일러의 붐을 만들어내고, 우리는 좀 더 세련된 영상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책 홍보수단이었던 북 트레일러가 이제는 북 트레일러 자체 리뷰가 생길 정도로 하나의 작품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정유정의 『7년의 밤』(은행나무)의 트레일러는 으스스한 숲과 우물을 배경으로 한 음산한 풍경을 배경으로, 한 남자를 쫓는 두 남자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소설의 분위를 강렬하게 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장편영화의 예고편 같은 느낌을 준다.

7년의 밤
정유정 저

정수현의 『그녀가 죽길 바라다』(소담출판사)는 처음 접했을 때 이게 과연 북 트레일러인가 의심할 정도였다. 한 여자의 육체에 두 여자의 영혼이 존재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긴장감 있게 표현한 수준 높은 영상은 꼭 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듯했다. 미스터리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토마토와 두 여 배우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남아 책을 읽는 내내 영향을 줄 듯.

그녀가 죽길,바라다
정수현 저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문학동네)의 트레일러는 45초 분량으로 난지도 소년의 성장 과정을 담은 소설 내용을 뮤직비디오처럼 이미지화했다.

낯익은 세상
황석영 저

최근에 나온 김별아 『채홍』(해냄)의 트레일러는 배경음악이 드라마 《바람의 화원》 수록곡이어서 그런지 사극 드라마 예고편 같은 느낌을 먼저 받았다. 문종의 비로 동성애 스캔들을 일으켰던 순빈 봉씨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소설의 내용을 잘 표현했을 뿐 아니라 그 애절함까지도 느낄 수 있는 트레일러다.

채홍
김별아 저

신경숙의 『모르는 여인들』(문학동네)는 영상은 영화 같으나 형식은 작가와 독자들이 연이어 책을 낭독하는 형식이다. 몇몇 익숙한 배우들의 낭독도 있어 신선하게 다가온다.

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저

한정원의 『지식인의 서재』(행성:B잎새)는 ebs의 '지식채널e'의 느낌에 명사 15인의 개별 인터뷰를 넣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우리시대 지성인 15인의 서재 풍경과 그들의 책 이야기를 3분여의 영상에 담아낸 이 북 트레일러는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트레일러 자체도 소장하고 싶어진다.

 

지식인의 서재
한정원 저/전영건 사진

샌드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북트레일러도 있다. 최신규의 『멈추지 않는 팽이』(미래북스)의 북트레일러는 작가가 누구인지 잘 모르고 봤는데도 장난감과 관련된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멈추지 않는 팽이
최신규 저

아날로그의 책에 대한 통로를 열어주기 위한 이 디지털의 도구는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나 인터넷 서점, 각종 블로그 등 온라인 공간뿐만 아니라 책이나 신문 광고, 판촉물에 찍힌 QR코드를 통해 무시무시한 홍보 효과를 내며 수많은 출판사들의 홍보수단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북 트레일러의 붐이 마냥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거대 출판사들의 영화 같은 트레일러는 자칫 영세 출판사들의 입지를 더 낮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트레일러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책을 출간할 때 비용보다 트레일러 제작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다. 저렴한 비용을 들여 만들기 위해 유명 감독보다는 감독 지망생, 학생들을 쓴다면 영화, CF, 뮤직비디오 등의 감독 지망생들의 통로가 될 수도 있고, 학생들의 실험적인 영상물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책의 정보만 던져주는 것을 넘어서 정말로 밑줄 긋고 싶은 말들, 가슴을 파고드는 얘기를 들려주며 책에 대한 호기심을 던져주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가득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