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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속으로콜콜Call/옛소설의 향기

[금오신화]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집 『금오신화』의 저자 김시습과의 가상 인터뷰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금오신화』는 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 양식을 선보이며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다섯 살에 신동이라 불리었고,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매월당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상심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떠돌이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배운 것을 실천하며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했으며, 끝까지 신의를 지켜낸 생육신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율곡 이이는 이런 그를 백세의 스승이라 칭하며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다시는 세상에 발을 담그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미친 척하며 살아야 했던 서른한 살의 천재는 방황의 끝에 경주 금오산에 이르러 『금오신화』를 집필했다. 『금오신화』에 녹여낸 매월당의 삶을 들어본다.

 

지금껏 보지 못한 문학의 새 장르가 탄생하였습니다. 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 하나만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조선이 세워지고 새로운 사상이 대두된 지 채 100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을 세우며 품었던 이상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모순과 폐단이 생겨났지요. 세상과 나, 현실과 이상의 갈등은 깊은데 이를 해결할 길은 보이지 않아요. 이런 상황은 현실을 인식하게 하는 동시에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게도 하지요. 그 과정에서 환상은 꽤 유용합니다. 현실에 기초하면서도, 현실을 사실과 다르게 재배열한 환상은 현실 속에서 충족할 수 없는 욕망을 대리 만족해주죠. 이 점은 현실인식과 상상력을 요소로 하는 소설의 장르적 본질과 일치해요.
그리고 글을 통해 사람들이 현실을 인식하게 하고, 인생의 진면목이 무엇인지 제시해야 하는데 이전의 형식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소음이 반복되는 곳에서는 소음을 새로운 자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낯익은 것은 보통 인지하기가 힘이 드니까요. 물론 설화나 가전체 문학의 발달이 없었다면 소설이란 새로운 장르는 탄생할 수 없었겠지만 말입니다.

소설과 이전 문학 장르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등장인물의 심리와 성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자연을 실제적으로 그린다는 점이 이전 문학과의 차이점입니다. 우리의 소설은 옛날의 설화를 바탕으로 고려 시대에 정착됨으로써 패관문학, 가전체문학 등으로 발전한 서사문학의 전통 위에 간접적으로 중국 소설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서사 문학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요. 여기에 현실을 재료로 삼아 창작되지만 적당한 허구가 가미되고, 인물과 사건, 배경이 따로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사건의 원인과 결과는 분명한 장르가 소설입니다.

일부에선 명나라 초 구우가 쓴 『전등신화』를 모방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요.
모든 창조에는 원천적으로 ‘모방’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창작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으로부터 ‘아직 없는 것’을 발견하는 ‘모방’과 ‘변형’의 산물이죠. 이런 이유로 『전등신화』의 영향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전등신화』가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우리나라는 소설이 창작될 수 있는 충분한 여건과 기반이 형성되어 있었어요. 『금오신화』는 조선의 사람이 조선을 배경으로 한 조선의 풍속, 사상, 감정을 가지고 조선의 목소리로 쓴 창작물입니다. 단순히 『전등설화』의 소재와 내용에 유사한 점이 있다는 이유로 모방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 책을 쓰신 계기가 따로 있으신가요?
작은 아버지가 어린 조카를 내쫒고 왕위에 올랐을 때, 전 공부했던 책을 모두 불태워버렸습니다. 거열형으로 찢어진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여 한강을 건너 노량진에 묻고, 저는 세상에 더 이상 뜻을 두지 않으리라 결심했어요. 하지만 재능을 풀어낼 곳이 없는 현실은 고통이었습니다. 아내마저도 세상을 떠나고, 저는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했어요.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제약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소설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게 했고, 현실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해줬지요. 비록 외부 세계에서는 허구이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엄연히 실재하는 진실이었으니까요. 이 책에 있는 다섯 편의 작품을 읽어보셨다면 알겠지만 소설 속 세상은 제 삶에서 잉태된 것이지요.

드라마 《아랑사또전》에서 귀신과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 애달픔이 더 크게 다가오는데요. 선생님의 작품에서도 인간과 귀신의 사랑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네, 제 작품 「만복사저포기」의 양생이나 「이생규장전」의 이생 등은 《아랑사또전》의 은오가 아랑에게 하듯이, 잠시 머뭇거리기는 하지만 귀신을 여인으로 대하며 빠져듭니다. 단순히 귀신을 이성(異性)인 여성으로만 생각했다면 좀 더 다른 반응을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여인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이성이 아니었어요. 뭐, 《아랑사또전》의 은오와 아랑의 사랑이야기는 남녀의 사랑을 말하고 있는 듯 하지만요. 양생과 이생에게 여인은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과 목표입니다. 그래서 양생과 이생은 귀신이지만 여인과 인연을 맺음으로, 어렵게 이룬 꿈과 목표를 어떻게든 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여기서, 결과적으로 귀신과의 사랑을 이루어지고 있으니 마치 주인공들이 원하는 것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귀신이 뭡니까? 실체도 없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상 없는 존재 아닙니까? 실상은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는 허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귀신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주인공들의 꿈도 현실에서 함께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꿈이 없는 현실이 남은 것이지요. 그래서 이생과 양생은 귀신을 따라,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납니다. 꿈이 없는 현실에서 세상의 부귀와 같은 영화는 누리고 싶지 않다는 신념의 표시라고 할까요.
똑같은 이야기 반복하는 듯 하지만, 결국 제 작품들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포장되었지만, 단순한 로맨스 소설은 아닙니다. 이 이야기들 속에는 꿈과 희망이 좌절된 이들의 삶, 즉 저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들어가 있는 것이죠.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구요.

소설의 주인공들이 선생님의 분신이라 생각하면 되는 건가요?
아무리 허구의 소설이라 해도 있지도 않는 현실을 억지로 꾸며내지는 못해요. 비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글에는 작가의 경험과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제 소설은 특히 자서전적인 느낌이 강한 작품이죠. 소설 속 주인공들은 제 자신인 동시에 저를 뛰어넘는 존재들입니다.

다섯 작품 중 선생님과 가장 닮은 작품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하나를 꼽기 어렵지만, 굳이 하나를 고른다면「용궁부원록(龍宮赴宴錄)」의 주인공 한생이요. 「용궁부원록(龍宮赴宴錄)」은 몽유록의 형식을 빌었지만 몽중인지 현실인지 구별하기가 힘들 거예요. 철저하게 우의적으로 표현했으니까요. 이 작품은 어린 시절의 제가 주인공입니다. 주인공 한생은 저이고, 용궁은 궁궐을, 용왕은 세종대왕을, 용녀는 세자입니다. 어린 시절 세종의 부름을 받고, 그 앞에서 시를 척척 지어내던 생애 가장 찬란했던 순간, 훗날 큰 인재로 쓰겠다고 하시며 하사하신, 비단을 허리에 차고 궁궐문을 나왔던 황홀했던 기억이 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좌절된 신념과 꿈이었지만, 이렇게라도 표출하고 싶었던 저의 욕망이 담긴 작품입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으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질탕(跌宕)하여 명리(名利)를 즐겨하지 않고 생업을 돌보지 아니하였습니다. 다만 청빈하게 뜻을 지키는 것이 포부였어요. 본디 산수(山水)를 찾아 방랑하고자 하여, 좋은 경치를 만나면 시를 읊조리며 즐겼지만, 문장으로 관직에 오른다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들었을 때, 남아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도(道)를 행할 수 있는데도 몸을 깨끗이 보전하지 못하여 윤강(倫綱- 삼강오륜)을 어지럽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도를 행할 수 없는 경우에는 홀로 그 몸이라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김시습 「탕유관서록(宕遊關西錄)」 후지
비록 제 소설 속 인물들이 비범한 인물로 표현되었지만, 그들은 모두 현실의 결함을 자각하고 아픔을 느낍니다. 책을 읽으며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면서 여러분은 현실에서 도피보다 현실의 혁신을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이더라도 신념을 지키며 사십시오. 신념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다보면 언젠가는 그 신념에 근접해 갈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세조란?
나침반!

세조를 향한 원망이 깊을 텐데, 왜?
세조를 보며 원망이 아니라 경계로 삼아야 겠다 다짐하고 있습니다. 한 번 물러서게 되면 그 다음엔 그를 감추기 위해 두 번 물러서게 되고, 그 다음엔 갈지(之) 자로 엉망이 된 자기 발자국 속에서 처음에 어디로 가고자 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나침반의 바늘이 흔들리는 한 그 나침반은 틀리는 일이 없어요. 저는 수없이 흔들렸고, 또 흔들릴 테지만, 한 번 물러섰던 세조를 나침반으로 삼아 제 자신을 경계함에 엄격해 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세조는 나침반입니다.

● 위 글은 2008년 12월 11일, 『금오신화』를 읽고 난 후 작성한 독서노트 중 하나이다. ● 마지막 두 질문과 답변은 2010년 방영된 드라마《성균관스캔들》에 나온 말 중 김시습과 세조의 관계가 혹시 이렇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과 이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2010년 11월 5일 덧붙였고, ● 중간의 드라마《아랑사또전》과 연관시킨 질문과 답변은 최근 드라마를 보며 '귀신과 인간'의 사랑에 대해 생각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