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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속으로콜콜Call/옛소설의 향기

[홍길동전] 홍길동이 왕인 율도국은 이상향인가?

남쪽의 기름진 평야가 수천 리가 펼쳐져 있고, 평화롭고 살기 좋던 율도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평화롭던 이 나라에 어느 날 수만의 군대가 침입한다. 갑작스런 외적의 공격에 율도국의 태수는 목숨 바쳐 싸웠지만 강력한 군사력을 내세운 홍길동의 군대를 당해낼 수 없었다. 성을 차지한 길동은 율도국의 왕에게 격서를 보내어 항복을 종용한다.

“의병장(義兵將) 홍길동은 글월을 율도 왕에게 부치나니 대저 임금은 한 사람의 임금이 아니요, 천하 사람의 임금이라. 내 천명을 받아 기병(起兵)하매 먼저 철봉을 파하고 물밀 듯 들어오니 왕은 싸우고자 하거든 싸우고 불연측(不然則) 일찍 항복하여 살기를 도모하라.”

율도국의 왕은 항복하고, 율도국에는 새 왕조가 들어선다. 율도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왕이 됐다는 이야기는 홍길동 개인으로 보면 인간 승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평화롭던 율도국에 강력한 군사력을 내세워 침략한 홍길동을 율도국의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과연 그가 스스로 칭한 의병장이라는 말처럼 ‘의로운’ 것이었을까? 율도국은 홍길동이 지배하기 전에도 충분히 살기 좋은 땅이었다. 적어도 그곳에는 의로운 홍길동이 부수어야 할 불의는 없었다. 그곳에 살던 사람에게 홍길동은 힘을 내세워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침략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렇게 세운 나라는 조선과 다르지 않다. 물론 그가 왕이 되고 나라는 평화롭고 백성은 풍족한 삶을 누리며 태평성대를 누린다. 하지만 그것은 홍길동이 다스리기 전에도 그러했다. 율도국의 기존 백성들이 느끼는 삶의 변화는 크지 않았을 거라 생각된다. 오히려 홍길동은 독립국이었던 율도국을 조선의 속국으로 만들어버림으로 섬겨야 할 나라가 생겨버렸다. 길동이 율도국왕이 된 후 길동은 조선의 왕에게 그간의 사정을 적은 표문(表文)을 올린다. 그리고 표문을 받은 조선의 왕은 홍인형을 위유사(慰諭使)로 삼아 유서(諭書)를 내렸다.

“내 조선 성상께 표문(表文)을 올리려 하나니 경은 수고를 아끼지 말라.”
하고 표문과 서찰을 홍부(洪府)에 붙이니라. 백룡이 조선에 득달하여 먼저 표문을 올린대 상이 표문을 보시고 이에 감탄하여 가로되,
“홍길동은 짐짓 기재(奇才)로다.”
하시고 홍인형을 위유사(慰諭使)를 삼으사 유서(諭書)를 내리오시니 …(하략)…

여기서 ‘표문(表文)’은 신하가 임금에게 격식을 차려 올리는 글을 말한다. 그리고 ‘위유사(慰諭使)’는 재난이나 전쟁이 일어난 지역에 임금이 파견한 임시 관직이다. 홍길동은 조선의 왕을 군주로 여겼고, 조선의 왕 또한 율도국을 독립국이 아닌 조선의 변방으로 여겼다는 증거다. 자신의 운명에 한탄하며 조선을 떠나 새 나라를 세우고 나서. 기껏 한 일이 조선을 본국으로 여기고 자신을 조선의 신하로 만든 것이었다.

길동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핍박받던 이들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이런 그가 조선을 떠나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면 그 나라는 자신과 같은 변두리 인생이 없는, 약자가 존중받는 나라여야 한다. 하지만 율도국은 지배자만 바뀌어 있을 뿐 조선을 그대로 옮겨 놓은 나라에 불과했다. 홍길동이 건설한 율도국은 모두가 행복한, 모두의 이상향이 아닌 홍길동의 이상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