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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속으로콜콜Call/옛소설의 향기

[홍길동전] 허균의 『홍길동전』은 적서차별을 부르짖는 사회비판 작품인가?

홍길동은 ‘서자’의 대변자이다. 조선 시대 자신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억압받던 이들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홍길동전』이 그 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작품인가? 홍길동이 서자로 태어났고,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주지 않는 세상에 대해 한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행보를 보면 능력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바탕으로 여러 투쟁을 거쳐 승리를 이끌어낸다는 개인의 이야기일 뿐 시대를 변화시키고 새 세상을 만들고자 한 노력이 보이지는 않는다. 뭐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서자가 오를 수 없는 병조판서가 되고, 결국엔 율도국의 왕이 된다는 점을 세상을 변혁하고자 한 노력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 모든 행보가 자신이 한탄했던 조선의 통치 질서를 향한 저항은 아니다.

우선 길동의 활빈당 활동은 새로운 조선을 향해 있지 않다. 길동이 조선을 떠나기 전 왕을 찾아가 한 말을 보면 그 의적 행위가 자신이 천하게 태어나 벼슬이 막혔음을 왕이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신이 전하를 받들어 만세를 모실까 하오나, 천비 소생이라 문(文)으로 옥당(玉堂)에 막히옵고 무(武)로는 선천(宣薦)에 막힐지라. 이러므로 사방에 오유(遨遊)하와 관부(官簿)와 작폐(作弊)하고 조정(朝廷)의 득죄(得罪)하옴은 전하(殿下)가 아시게 하옴이러니 신의 소원을 풀어 주옵시니 전하를 하직하고 조선을 떠나가오니 복망(伏望) 전하는 만수무강하소서.”
하고 공중에 올라 표연히 날거늘 상이 그 재주를 못내 칭찬하시더라. 이 후로는 길동의 폐단이 없으매 사방이 태평하더라.

의적으로 맹위를 떨치며 백성들의 지지를 받던 길동은 병권의 최고 관직인 병조판서를 제수 받은 후 조선을 떠난다. 변화를 꿈꾸며 활빈당에 지지를 보냈던 백성들은 그런 홍길동을 보며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래도 이미 불합리한 모순으로 가득 차 있던 조선을 개혁하기 어려워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새로운 땅으로 떠났다고 생각하면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율도국의 건설에서 홍길동이 개혁의지가 없음을 확실하게 드러난다. 의로운 군대의 장군(의병장)이라 스스로 칭하며 홍길동은 사방 수천 리 크기의 비옥한 섬 율도국의 왕에게 항복을 종용한다. 그리고 평화롭던 율도국에 강력한 군사력을 내세워 침략한 홍길동은 율도국의 왕이 된다. 그런데 그가 만든 율도국의 세상이 조선의 세상과 다른 점은 뭘까? 자신의 서자 신분을 한탄했음에도 홍길동은 율도국에서 다시 서자를 만들어냈다.

왕이 3자 2녀를 생(生)하니 장자 차자는 백씨 소생이요, 삼자 차녀는 조씨 소생이라. 장자 현(現)으로 세자를 봉하고 기여(其餘)는 다 봉군(封君)하니라. 왕이 치국(治國) 30년에 홀연득병하여 붕(崩)하니 수(壽)가 72세라. 왕비 이어 붕하매 선릉에 안장한 후 세자 즉위하여 대대로 계계승승(繼繼承承)하여 태평을 누리더라.

두 명의 아내에게서 아이들이 태어났다. 장자는 세자가 되고 그 나머지는 군으로 봉해졌다. 왕의 자녀라는 점에서 길동의 서자 신분과 다르다 생각할 수 있지만, 세자가 아닌 왕족의 삶이 길동의 처지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능력과 상관없이 변두리를 떠돌며 살아야 하는 군(君)들의 삶은 양반의 서자의 삶과 같다.

적서차별이 당당히 자리잡고 있던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는 『홍길동전』은 조선에서도, 율도국에서도 적서차별의 사회제도를 그대로 남겨놓았다. 적서차별의 부당함에 온몸으로 투쟁을 했던 홍길동의 삶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홍길동전』은 시작만 비판의 색깔을 냈다가 중간과 끝은 그저 홍길동 개인의 성취의 역사 밖에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