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백편의자현/독서_톡톡Talk

'나'를 인형의 집에서 해방하라 … 헨리크 입센『인형의 집』

『인형의 집』은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3막 희곡으로, 1879년에 코펜하겐 왕립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한 권짜리 작은 문고본은 발표되자마자 사회전체를 발칵 뒤집으며 숫한 화제를 몰고 다녔다. 주인공인 노라에 대한 모의재판이 벌어지기도 했고, 야유회 초대장에 “노라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말하지 말 것”이라고 적을 정도로 사교계에서는 금지된 화제이기도 했다. 당시 여성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었고, 노라를 따라 가출하는 여성들이 속출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인형의 집』은 세계 근대극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고, 입센의 육필 원고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지정됐다. 심지어는 일제 강점기였던 1925년에 한국에서도 공연됐을 정도니, 이 작품의 인기와 의미가 얼마나 컸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입센의 『인형의 집』을 살펴보면서, 100년이 훌쩍 넘은 옛이야기에서 오늘을 발견하는 여행을 떠나보자.

 

『인형의 집』의 줄거리는 별로 복잡하지 않다. 노라는 가난한 변호사 남편 헬메르의 사랑받는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혼 때 병든 남편을 위해서 죽은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해 악덕 고리대금업자에 돈을 빌린 일이 문제가 된다. 남편이 은행장으로 취직할 은행에 그 고리대금업자가 일하고 있었고, 그는 해고의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노라는 자신의 잘못이 알려질까 두려워 그의 협박대로 남편에게 청탁을 했지만, 남편은 그를 해고를 했고, 이에 분노한 고리대금업자는 노라의 비밀을 폭로한다. 남편은 노라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그녀를 비난하면서 가정에 불화가 생긴다. 일이 해결되고 남편은 노라와 결합을 원하지만 이미 노라의 마음은 멀어져 있었다. 사건을 겪으면서 8년의 결혼 생활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으며, 자신은 종달새나 인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라는 한 인간으로 당당히 살기 위해 집을 나온다.

 

비교적 간단한 줄거리지만 입센은 교묘하게 대화를 전개하면서 사건, 배경, 인물 등을 제시한다. 인물들이 서로 부딪히고 끌어당기면서 이루어지는 대화들은 언제 읽어도 생생하다.

 

헬메르 하지만 이건 창피스러운 일이오. 당신의 가장 신성한 의무를 이런 식으로 저버릴 생각이오.
Helmer It's shocking. This is how you would neglect your most sacred duties.

노 라 무엇이 저의 가장 신성한 의무란 말입니까?
Nora What do you consider my most sacred duties?

헬메르 그런 것까지 이야기해 주어야겠소? 남편과 아이에 대한 의무가 당신의 의무가 아니라는 거요?
Helmer Do I need to tell you that? Are they not your duties to your husband and your children?

노 라 저에게는 또 하나의 그와 똑같은 신성한 의무가 있습니다.
Nora I have other duties just as sacred.

헬메르 그런 의무는 있을 수 없소. 도대체 어떤 의무를 말하는 거요?
Helmer That you have not. What duties could those be?

노 라 제 자신에 대한 의무죠.
Nora Duties to myself.

헬메르 다른 모든 것에 앞서 당신은 아내이며 어머니인 것이오.
Helmer Before all else, you are a wife and a mother.

노 라 그런 것은 더 이상 믿지 않아요. 저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을 믿어요. 당신이 하나의 인간인 것처럼 저도 힘자라는 데까지 하나의 참다운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겠어요. 저는 잘 알고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리라는 것을. 책에도 그렇게 씌어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거나 책에 씌어 있는 것에는 만족할 수가 없게 된 거예요. 저는 모든 일에 대해서 제 자신이 생각하여 사물이 지닌 참다운 뜻을 알고 싶어요.
Nora I don't believe that any longer. I believe that before all else I am a reasonable human being, just as you are--or, at all events, that I must try and become one. I know quite well, Torvald, that most people would think you right, and that views of that kind are to be found in books; but I can no longer content myself with what most people say, or with what is found in books. I must think over things for myself and get to understand them.

 

이처럼 긴장감 있게 펼쳐지는 대사는 인물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노라가 집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이유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이런 점 때문에 주인공 노라의 이름은 일약 '신여성'의 대명사가 됐고, 여성 해방 운동 또한 전 세계적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작품의 마지막 행인 "아래쪽에서 문이 꽝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려온다."라는 문장은 여성 해방의 폭발음이 돼 수많은 노라들을 탄생시켰다.

 

입센은 이 작품의 주제를 '인간 해방'이라고 강조했다. 굳이 인간 해방, 여성 해방 가운데 한 가지의 눈으로 읽을 필요는 없으나 어쨌든 여성 문제가 더욱 강조되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복합적인 의미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인형의 집』이다.

 

어떻게 읽든지 이제 노라는 더 이상 연극의 등장인물만이 아니라 현실 속의 인간이다. '아내이며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살겠다'고 나선 노라의 변화 과정은 새로운 근대 인간의 탄생이었으며 수많은 근대인들의 삶을 바꿔 놓았다.


네, 그래요. 제가 아버지 곁에 있었을 무렵, 아버지는 자신의 생각을 어떤 것이라도 나에게 자세히 얘기해 주셨어요. 그리고 저도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생각이 다를 경우엔 전 그것을 숨겼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면 아버지께서 마음에 들지 않아 하셨을 테니까요. 아버지는 저를 인형 아기라고 불렀지요. 마치 제가 인형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기나 한 것처럼 말이에요. 그러다가 당신에게로 왔죠.
It is perfectly true, Torvald. When I was at home with papa, he told me his opinion about everything, and so I had the same opinions; and if I differed from him I concealed the fact, because he would not have liked it. He called me his doll-child, and he played with me just as I used to play with my dolls. And when I came to live with you—

아버지의 손에서 당신의 손으로 건너갔다는 의미예요. 당신은 모든 것을 자신의 취미에 따라 해 왔어요. 그래서 나도 당신과 같은 취미를 갖고 말았어요. 하지만 그런 체했을 뿐인지도 몰라요. 그 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둘 다 였는지도 모르죠. 어떤 때는 이렇게, 어떤 때는 저렇게 말이죠.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나는 이 집에서 거지처럼 살아왔는지도 몰라요. 나는 당신에게 여러 가지 재주를 부려 보이면서 살아왔죠. 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소망이기도 했어요. 당신도, 아버지도 저에게 굉장한 죄를 범한 거예요. 제가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은 당신들의 죄예요.
I mean that I was simply transferred from papa's hands into yours. You arranged everything according to your own taste, and so I got the same tastes as your else I pretended to, I am really not quite sure which—I think sometimes the one and sometimes the other. When I look back on it, it seems to me as if I had been living here like a poor woman—just from hand to mouth. I have existed merely to perform tricks for you, Torvald. But you would have it so. You and papa have committed a great sin against me. It is your fault that I have made nothing of my life.

 

※ 우리 고전 소설에서도 중세의 봉건적 가치관을 벗어던진 당당한 여성상을 발견할 수 있다. 『장끼전』에서 개가하는 까투리, 「서동지전」에서 남편의 부당한 처사에 반발하여 집을 나온 아내 다람쥐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인형의 집』과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 엮어 읽어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