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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백편의자현/독서_톡톡Talk

생태도시의 표본이 된 꾸리찌바 … 박용남『꿈의 도시, 꾸리찌바』

 

 

 

 

 

 

 

꿈의 도시 꾸리찌바

재미와 장난이 만든 생태도시 이야기
박용남 | 녹색평론사 | 2009

 

남미의 한 변방도시 꾸리찌바가 공공영역을 중시하는 새로운 정치를 실험하고 구현하면서 사람과 장소를 환경친화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하게 바꿔놓은 사례를 소개한 보고서.

 

꾸리찌바시의 도시계획 중 성공요인을 뽑으라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시민과 단체의 ‘참여’일 것이다. 행정당국은 무엇보다도 시민을 존중하였다. 행정당국의 정책은 시민을 대상으로서 취급하지 않고 일방적인 당국의 일처리로도 끝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시민의 입장에서 모든 정책은 계획되고 시행되었다. 차는 사람을 실어 나르는 수단으로 주가 될 수 없었고 사람을 위한 보행도로와 꽃의 거리가 중심이 되었다. 행정당국은 이러한 시민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 열중이었고 시민 또한 이러한 행정당국의 노력에 의해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자각과 계기를 얻게 된 것이다.

당신이 사람들을 존경할 때, 그들 역시 당신을 존경한다. 사람들은 시가 그들을 위해 많은 것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책임을 다하기 시작한다.

도시계획연구소 소장인 오스왈도 알베스의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꾸리찌바처럼 시민을 존경하기는커녕 무시하는 것이 다반사이며 무엇이 정책의 주인지를 모르겠다. 몇 해 전 신문에 서울시의 ‘승용차 자유 요일제’에 대한 비판어린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이 기사가 날 때 즈음 꾸리찌바에 이 책을 읽었었는데 꾸리찌바와 우리나라의 차이점에 대해 깊이 실감했었다.

 

기사엔 ‘승용차 자유 요일제’, 이 운동이 말 그대로 시민의 자율적인 참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타율적이며, 반 강제적이라는 불만이 적혀 있었다. 승용차 자유 요일제는 서울시가 먼지 없는 깨끗한 서울을 만들고, 서울의 교통난을 덜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된 민관 협력운동이었다. 말 그대로 아무런 법적인 제제가 없이 순수한 시민의 참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서울시의 각 구에서는 이 운동의 참여자에 대해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혜택을 주고 있었다. 지하철 정액권의 제공이나, 약간의 세금혜택, 자동차수리 및 주차장이용에 따른 할인과 혜택 등등이다. 그러나 이 운동의 시행이 각 구청간의 실적 경쟁과 목표치 채우기에 급급하여 반강제 및 법적 제제도 가하고 있었다. 통장이나 반장들을 시켜 주민들의 신청을 반강제로 유도해 가고 있으며, 이를 어길시 거주자 우선주차제를 이용할 수 없다는 협박(?)까지 하고 있었다고 한다. 더구나 이렇게 신청한 이들 또한 대부분 이 운동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니, 도대체 무엇이 자율이고 참여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꾸리찌바가 생태도시의 표본으로써 지금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로 교통체계의 정비를 들 수 있다. 꾸리찌바가 버스로 대중교통수단의 대부분을 해결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지하철을 만들만큼의 예산이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버스교통체계 및 도로망의 확충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를 수 있는 굴절버스의 도입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자가용이 아닌 버스로 출퇴근을 하거나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당연히 버스 전용차로의 이용과 일방통행로의 도움으로 버스 배차시간이 거의 변화가 없고, 버스 환승 터미널도 매우 편리하게 되어 있어서 갈아타는 것에 번거러움이 없다 한다. 버스 요금 시스템도 굉장히 재미있게 되어 있는데 꾸리찌바의 (중심부에 가까이 사는 사람 즉, 버스를 타는 거리가 짧은 사람이 대부분 부유한 층이지만) 버스 요금은 어떠한 거리를 가더라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는 부유한 층이 사회에 이러한 방법으로 기여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시민들의 의식 수준을 말해주는 하나의 예가 된다. 내가 책을 보며 부러운 것 중 하나는 버스정류장이 마치 우리의 지하철 노선과 비슷하게 각 터미널이 노드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누구나 쉽게 이용하고, 알기 쉽게 노선을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같은 요금으로 계속 다른 노선을 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하철이 도심 곳곳을 연결하는 주요 대중교통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사실상 그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 직통 열차를 운행하고 있어도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사람들을 해결해 주고 있지는 못한다. 버스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다. 버스정류장에 대한 대대적인 공사작업이 있었고, 버스전용차로가 엄연히 도시를 달리고 있지만, 버스노선별 환승의 어려움과 정류장 근처의 교통체증은 고쳐지지 않았다. 지금 내가 이 출퇴근 전쟁통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세계는 지금 미래에 대한 도시, 국가 설계에 혈안이 되어있다. 지금까지의 도시와 국가 계획이 경제성장과 소비창출에 맞춰졌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끊임없는 빈부차와 환경오염 자원고갈, 도시의 생산 형태라는 현실문제로 그 비중을 맞추고 있다. 그 기본모델로 많은 도시들은 꾸리찌바를 연구하고 재현하고 있다. 꾸리찌바 역시 많은 유럽인들의 발길로 인해 급속도로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곳이었고, 그로 인해 여느 도시처럼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를 자각하고 오랜 기간 인간중심의 생태적인 도시로 다시 태어나게 된 좋은 케이스이기에 제3세계 변방지역의 그리 높은 소득을 보유하지 않은 곳이지만 많은 도시들로부터 부러워하는 곳이 된 것이다.

 

꾸리찌바의 도시계획은 레르네르 시장의 확고하고 꾸준한 신념과 현실문제에 대하여 창조적인 해결정책을 제시한 공무원, 막대한 자본에 의한 것이 아닌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꾸리찌바 도시계획의 기본 방침은

첫째 도시를 단지 경제적으로만 보지 않고 문화와 사회공동체로 보는 것이고,
둘째 도시교통 시스템의 주안점은 차를 나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나르는 것이며,
셋째 문제점을 장애물로 보지 않고 기회로 본다.

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방침의 전제에는 현실을 올바로 직시하고 과감히 둘 중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깔려있다. 레르네르 시장은 과감히 빠른 경제성장과 부의 창출을 포기하고 전체시민의 고른 경제생활에 중점을 두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현실문제로 소득향상이 아닌 환경파괴를 택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래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도시를 꾀하는 데 무엇이 중요한지를 올바로 직시한 결과이다. 우리는 바로 이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꾸리찌바를 비롯하여 지금 세계의 많은 도시는 환경에 대해 생산적인 도시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찌보면 이런 노력에 열중인 나라들이 어느 정도 풍요로움을 누리고 그러한 풍요로움 속에 부작용을 경험한 나라들일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래의 환경에 풍요로움과 빈곤함이 그 기준이 되어 역할이 나눠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다. 팽창할 때로 팽창한 서울이 신선한 자연의 바람이 불고, 시원한 나무 그들이 있고, 한강주변에서 강을 즐기면서 걸을 수 있는 그런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