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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백편의자현/독서_톡톡Talk

행복과 자유를 위한 여행 … 아르토 파실린나『기발한 자살여행』

어느 유명인사가 추천한 책이라 하여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치게 된 것은 드라마 《특수사건전담반 TEN》을 보는 중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TEN》 제1, 3화에서 다룬 내용이 자살이었는데,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무거워져서 그 무거움을 좀 내려놓을 만한 뭔가가 필요했다. 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이기는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큭큭 웃었던 기억으로 가득한 책 『기발한 자살여행』을 다시 읽어본다.

 

 

 

 

 

 

 

기발한 자살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저 | 김인순 역 | 솔 | 2005
원제 : Der wunderbare Massenselbstmord

 

‘자살’이란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으면서도 가슴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

 

『기발한 자살여행』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핀란드의 작가가 쓴 작품이다. 핀란드 작가의 작품 중 우리가 알만한 작품은 아마 토베 얀손의 『즐거운 무민 가족』시리즈 정도일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러하다. 하얀 피부, 커다란 눈, 볼록 나온 배, 짧은 다리와 꼬리… ‘무민’의 모험 동화를 보며 핀란드란 나라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지만, 우리나라에는 이상하리만큼 핀란드 작가의 작품은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아 생소한 문화임엔 틀림없다. 그리고 ‘자살’이라는 제목은 마음을 무겁게 해 책이 선뜻 잡아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을 떨치고 막상 책을 잡으면 『기발한 자살여행』은 유머 가득한 재미가 가득한 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살’이란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으면서도 가슴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 『기발한 자살여행』과 함께 핀란드와 유럽 곳곳으로 모험을 떠나본다.

 

『기발한 자살여행』을 처음 읽었을 때, 핀란드의 여름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한참을 핀란드 여행 가이드를 펼쳐보았었다. 핀란드는 밤이 가장 짧은 하지에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절정에 이른다. 24시간 내내 여름의 태양을 쬐고 있어야 한다는 건 그냥 생각만 해도 괴롭다. 핀란드의 가장 중요한 명절인 ‘성 요한절’ 즉, 하지(6월 22일)에 대부분의 핀란드 인들은 호숫가에서 밤새 모닥불을 피우고 수영이나 뱃놀이를 하며 지낸다고 한다. 아르토 파실린나의 표현을 그대로 따르면 성 요한절은 ‘한여름에 펼쳐지는 빛과 기쁨의 축제’다. 해가 지지 않는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에 투사처럼 당당하게 맞서는 날이라 말한다.

한여름에 펼쳐지는 빛과 기쁨의 축제, 성 요한절은 핀란드 사람들에게 심신을 갉아먹는 우울증을 일치단결하여 물리치려고 하는 치열한 전투나 다름없다. 성 요한절 전야에 온 국민은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군복무 능력이 있는 남자들만이 아니라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도 싸움터를 향해 돌격한다. 수천 개에 이르는 핀란드 호숫가에서 거대한 이교도의 횃불이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타오르고, 푸른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깃발이 하늘 높이 나부낀다. 전주투를 앞둔 오백만 명의 핀란드 전사들이 기름진 소시지와 돼지고기 바비큐 요리로 원기를 보강하고, 마음껏 술을 마시며 용기를 북돋운다. 전투 부대가 적을 섬멸하기 위해서 순풍금 소리에 맞추어 전진한다. 밤새도록 계속되는 전투에 적은 굴복하고 만다.

육박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남녀가 서로 짝을 찾고 여자들은 수태를 한다. 남자들은 쾌속정을 몰고 나가 호수나 바다에서 익사한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오리나무 숲과 쐐기풀 덤불 속에서 전사한다. 스스로 몸을 던져 희생하는 용기와 수많은 영웅적인 행위들. 기쁨과 행복이 승리를 쟁취하고 우울은 추방당한다. 국민들은 암울한 압제자를 무력으로 제압한 후에, 적어도 일년 중 하룻밤은 자유를 만끽한다. 

첫 장을 펼치면서 생소한 핀란드 명절의 분위기를 한번 만끽해 보고 싶었지만, 그 기회는 미래에 맡겨둔다. 이 성 요한절에 자살을 준비하는 두 명의 남자가 있다. 과거 세 번의 자살시도를 했다가 상처만을 남기고 미수로 끝나버리고 다시 시도하려는 온니 렐로넨. 그는 여러 사업을 시도했다가 파산한 사업가였으며, 현재는 세탁소 주인이다. 렐로넨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자살하려는 또 한 명의 남자, 헤르만니 켐파이넨 대령. 그는 아내를 암으로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군대에서마저 대기 발령 중이었다. 우연히 같은 장소에서 자살을 하려 했던 이 두 남자의 만남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우연에 의해 서로의 생명을 구하고, 둘은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은 테라스에 앉아서 그날의 주제에 대해 토론을 계속했다. 앞으로 좋은 친구가 되기로 의견 일치를 보았으며, 그때까지 다른 누구에게 이야기 한 적이 없는 일들을 서로 털어놓았다. 그리고 목숨을 끊으려던 일이 사람의 아들 두 명을 아주 가까운 사이로 만들어주었다고 이구동성으로 확정 지었다. 남자들은 서로 상대방에게서 본인은 전혀 짐작조차 못했던 많은 장점들을 발견했으며, 아주 옛날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인 듯이 생각되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면서 사이사이 수영을 했다. 그러자 원기가 왕성해졌고 살아 있다는 것이 무척 근사하게 여겨졌다.

성 요한절에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같은 운명을 짊어진 동지와 함께 수영을 하는 경우에, 세상은 정말로 아주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런 세상을 굳이 서둘러 떠날 필요가 있겠는가?  

세상을 등지려는 계획을 유예하고, 이 두 남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자살을 원하는 이들을 한 자리에 집합시켜 합리적으로(?) 자살을 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전국적인 규모의 일간지의 부고란에 자살단 모집 광고를 낸다.

당신은 자살을 생각하는가?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자살 생각을 품고 있을뿐더러, 더욱이
실제 경험도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많다.
당신과 당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편지를 써라.
우리가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달라.
우리가 당신에게 연락을 취할 것이다.
편지의 내용은 전적으로 비밀이 보장된다.
제삼자의 손에 들어가는 일은 절대로 없다.
모험가여, 고민하지 말라.
헬싱키 중앙 우체국 앞으로
우정어린 편지를 보내라. 암호는,
“공동의 시도”

놀랍게도 이 광고를 보고 연락해 온 이들은 무려 612명이나 된다. 그 편지에 답장을 보내기 위해 그 답신을 보낸 사람 중 시민대학 부학장인 헬레나 푸사리에게 도우미를 부탁한다. 이 세 사람이 만나면서 비밀 자살 세미나를 열게 되고, 이 세미나를 시작으로 기발한 자살여행단이 결성된다.

많은 사람들이 공동의 단체를 창건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들은 외로움과 실의에 빠지게 되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하고 무기력해진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고 끔찍하게도 언제나 혼자 있는 경우에는, 일상적인 단순한 일을 해결하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다 함께 운명에 도전해 대규모 집단 자살을 감행하자는 제안이 토론의 의제로 올랐다. 놀랍게도 그 제안은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세미나 참가자들 다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단체 행동을 지지했으며, 뜻을 모아 함께 자살하는 것은 어쨌든 애정 어린 확실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운수회사 사장인 코르펠라의 신형 버스로 30여 명의 자살단은 노르웨이에 있는 북쪽 끝 절벽 노르카프를 최종 목적지로 삼고 여행을 시작한다. 핀란드의 여러 도시를 돌아 노르카프에 도착했을 때, 마지막 순간 사람들은 머뭇거린다.

버스는 텐트 옆 길가에 주차되어 있었다. 코르펠라가 열린 차창을 통해, 자 이제 일어나서 차에 탈 시간이라고 소리쳤다. 이번에는 승객 모두가 정차 스위치를 눌러도, 절대로 버스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텐트 안에서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기어 나오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아직도 다들 곤히 자는 모양이군. 코르펠라는 버스의 시동을 끄고서, 최후의 주행을 위해 자살자들을 깨우려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텐트 안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코 고는 소리가 요란했다. 마치 자살자들은 몇 주일 동안이나 밤을 꼬박 지새운 듯 곤히 자고 있었다. 코르펠라가 코고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의 다리를 잡아 흔들자, 그는 한 번 숨을 깊이 들이마셨을 뿐 돌아누워 계속 잤다. …… 코르펠라가 기상이라고 울부짖었다. …… 모두들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는데, 깊이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다만 코르펠라가 운전하는 죽음의 버스에 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제의 일을 겪은 후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사이에 삶을 긍정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뀐 게 분명했다.

자살을 연기하며 버스는 스웨덴, 독일을 거쳐 스위스에 이르고, 프랑스, 스페인을 거쳐 포르투갈 최남단 세인트 빈센트 곶에 다다른다. 30여명의 ‘죽음을 향한 무명인사’들은 여행을 통해 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하면서 핀란드에서 느꼈던 문제들이 작은 일들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과연 굳이 집단 자살을 감행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고향 핀란드에서 엄청나 보였던 문제들이 유럽의 다른 곳에서는 아주 사소해 보인다고 서서히 깨달았다. 같은 운명을 짊어진 동료들과의 긴 여행은 다시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유대감은 자의식을 굳건하게 다져주었다. 그리고 좁은 생활 영역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자살자들은 새롭게 삶의 재미를 발견했다. 초여름에 생각했던 것보다 미래가 훨씬 더 밝게 보였다. …… 자살자들은 죽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아 결론지었다.

발길 닿는 대로 떠날 수 있는 자유, 사회적⋅경제적인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마시고 즐길 수 있는 자유 속에서 죽음을 원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살을 향한 여행은 삶에서 잃어버린 행복과 자유를 위한 여행을 변한다. 삶에서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사는 것이 어두워만 보일 때조차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책 『기발한 자살여행』. 웃으면서도 삶을 생각해보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