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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백편의자현/독서_톡톡Talk

낄낄낄, 아버지의 웃음소리 … 박완서「배반의 여름」

몸이 피곤해 쉬려해도 잠이 안 오는 날이 있다. 지루한 시간에 책만큼 좋은 친구는 없다. 박완서 전집 중 2권을 펼쳐 읽기 시작한다. 총 6권으로 된 박완서 단편집 중 2권인 『배반의 여름』은 총 1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다른 일을 하다가, 또는 다른 책을 읽다가 지겨워질 때면 즐겨 보는 전집인데,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어 가볍게 읽고자 할 때 보면 제격이다. 그냥 술술 넘어가버리는 탓에 잠깐 본다는 것이 한 권을 다 읽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손이 가는 대로 몇 편을 읽고 난 후, 책의 제목이기도 한 「배반의 여름」에서 잠시 읽는 것을 멈추고, 생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다.

 

 

 

 

 

 

 

배반의 여름

박완서 | 문학동네 | 2006

 

짧으면서도 강렬한 젊음의 시기, 여름을 배경으로, 「배반의 여름」은 성장기의 한 소년이 정신적인 번민을 거듭하면서 정신적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년이 겪은 세 차례의 배반은 좁은 자의식의 울타리를 벗어나 넓은 세상과 마주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는 고독한 현실을 직시하게끔 소년을 단련시킨다.

 

읽을 때마다 『데미안』과 겹쳐 보이며,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의 이 유명한 구절이 떠오른다. 「배반의 여름」은 만물이 성장하는 계절 여름을 배경으로, 성장기의 한 소년이 정신적 성숙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의 제목인 ‘배반의 여름’에 소설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는데, ‘여름’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짧으면서도 강렬한 정열의 시기를 상징하며, ‘배반’은 유년기에 형성된 소년의 미숙한 내면세계가 외부 현실과 부딪히며 거듭나는 계기를 상징한다. 이렇게 소설 「배반의 여름」을 풀어 가면 꼭 국어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말하는 듯해 이 작품이 재미없어 지려나? 실제로 고등학교 시험에 예문으로 나온다고 하니 영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제목을 곱씹어보면 ‘정말 잘 표현했다’는 감탄이 절로 나오기에 제목에 대해 말하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가 없다. 처음 이 작품의 제목을 대했을 때 ‘배반’이라는 단어가 주는 충격은 컸다. 드라마의 영향 때문인지 ‘배반’이란 단어에는 한 여자의 치열한 복수가 따르는 듯해서. 또 여름이지 않는가. 얼마나 대단한 복수극을 그리고 있기에 제목이 이리도 강렬한가 했다. 하지만 이 짧은 소설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이 작품은 학창시절 한 번은 들었을 ‘성장소설’이다.

 

살아가면서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몰랐던 사실을 깨달을 때,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의 실체가 밝혀졌을 때, 내가 가진 기대나 신념이 무너진 경험은 ‘배반’이란 단어와 딱 떨어진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인생 자체가 ‘배반’의 연속이 아닌가? 이러한 ‘배반’의 성장통을 겪으며 인간은 한 단계 성장해 나간다.

 

「배반의 여름」에서 주인공 ‘나’가 성장하는 계기는 3가지 일화와 함께 제시되고 있다. 주인공 ‘나’가 여섯 살인 여름에 누이동생이 물에 빠져 죽는다. 이 일이 있은 후 아버지는 소년에게 수영 배우기를 강요했지만, 소년은 동생의 원혼이 물밑에서 자신을 잡아당겨 놓아주지 않을 것 같은 불안에 수영 배우기를 단념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런 소년을 억지로 풀장으로 밀어 넣는다. 물에 대한 공포감에 물에서 허우적거리다 물의 깊이가 깊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소년은 물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는 배신감과 아버지는 자신을 동생보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다. 배신당한 충격과 분노로 소년은 수영을 배우게 되고, 물과 친해지면서 아버지에 대한 오해도 풀린다. 그리고 이 첫 번째 배신으로 인한 물에 대한 공포의 극복은 자신 때문에 누이동생이 죽었다는 죄의식에서의 극복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새까맣고, 찬란한 금빛 단추, 소맷부리와 모자의 굵은 금줄… 화려한 제복을 입은 아버지는 소년의 초등학교 시절 그를 지배한 우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함께 출근했다가 소년은 아버지가 수위란 걸 알게 된다. 항상 늠름하고 씩씩하게 보이던 아버지가 하는 일이 ‘대머리 까진 키 작은 쪼오다’ 회사 간부들에게 경례를 하는 것이었다. 또한 서울 시내에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동네는 외곽의 변두리 마을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 두 번째 배신으로 소년은 누구보다 존귀한 존재로 이상화했던 아버지의 이미지를 넘어서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소년은 전구라 선생을 정신적 지주로서 흠모하고 동경의 대상으로 존경한다. 하지만 아버지에게서 전구라가 치사하고 위선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듣게 되고, 세 번째 배신을 당한다. 아버지라는 우상에 이어 전구라라는 우상까지 깨어지면서 소년은 자기 안에서 고독하게 ‘늠름함’을 키워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아버지가 나를 풀 속으로 팽개쳤을 때 허위적대다 바닥을 딛기까지는 순식간이었고, 아버지가 자신의 우상을 스스로 깨뜨리고 나를 자동문 밖으로 팽개쳤을 때 허위적대다가 설 자리를 찾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 허위적거림에서 설 자리를 찾고 바로 서기까지는 좀 더 오랜 시일이 걸릴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외부에서 찾던 진정한 늠름함, 진정한 남아다움을 앞으론 내 내부에서 키우지 않는 한 그건 영원히 불가능한 채 다만 허위적거림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홀로 늠름해지기란, 아, 아 그런 얼마나 고되고도 고독한 작업이 될 것인가.
나는 고독했다. 아버지의 낄낄낄이 내 고독을 더욱 모질게 채찍질했다.

 

여기서 ‘아버지의 낄낄낄’은 소년이 배반을 느낄 때마다 되풀이되는 아버지의 웃음소리이다. 이 웃음소리의 반복은 책을 읽는 동안 소년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거슬리는 소리였기에 다 읽고 난 후에도 곱씹어 보게 했다. 왜 아버지는 자식에게 ‘배반’을 심겨주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넘어서야 할 시점에서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 웃음소리는 소년의 충격을 더 커지게도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한계, 환상 등에서 벗어나도록 재촉하도록 돕기도 한다. 인간은 나약하다. 시련과 부딪쳤을 때 이겨내려 하기보다 회피하고 싶은 생각이 더 많이 든다. 하지만 모든 성장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다. 아버지의 ‘한꺼번에 여러 개의 질자배기가 깨지는 것 같은’ 웃음소리는 기대와 믿음이 무너지는 ‘배반’을 통해 소년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는 소리일 것이다. 물에 던졌을 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줄 때, 전구라 사진을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의 실체를 알려 줄 때, 아버지는 자식의 틀을 잔인하게 던져버림으로 스스로 극복하고 일어서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나 밖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동안 소년이 느꼈던 배반은 배반이 아닌 자신의 좁은 소견이 아닌가.

 

세상에 대한 아름다운 기대가 무너져 내리는 경험은 고통스럽고 두렵다. 그래서 그 기대가 깨어질 때마다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소년이 생각한 그 아름다움이 깨지며, ‘늠름함’을 자신의 내부에서, 고독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깨닫는 것에서 고독한 인간과 현실에 대한 서글픔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이 서글픔에서 끝나지 않는 것은 아버지란 존재 덕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