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속으로콜콜Call/옛노래 선율

[악장가사] 연못이 얼면 여울도 좋으니 …「만전춘(별사)」

고려가요는 흔히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 남녀의 애정을 주제로 한 노래)’라 하여 조선시대 유학자들에게 배격의 대상이 되었다. 남녀 사이의 성적(性的)인 문제를 적나라하게 다룬 작품은 미풍양속을 헤치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하여, ‘사리부재(詞俚不載, 노랫말이 저속한 것은 문헌에 싣지 않는다)’의 원칙에 따라 대부분의 고려가요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런 조선 유학자의 ‘성리학적 도’를 실현시키기 위한 제재 속에서 살아남은 작품 중 하나가 「만전춘(별사)」이다. 비록 궁중속악가사 중 ‘비리지가(鄙俚之訶)’의 대표로 유학자들의 비판을 받으며 악곡만 채용되고 가사는 「만전춘(별사)」를 한시로 개작한 「봉황음」으로 대체되었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인간의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궁정에 가득 찬 봄]」를 들여다본다.

1연은 가정법을 사용하여 임과의 열정적인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데, 고려가요 작품 가운데 가히 절창(絶唱)이라 평가할 수 있다.

어름 우희 댓닙 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 주글만뎡
어름 우희 댓닙 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 주글만뎡
졍(情) 둔 오범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만들어 임과 내가 얼어 죽을망정
정을 나눈 오늘밤 더디 새어라!

화자는 임을 만나 사랑의 희열 속에 있지만, 얼음 위에 댓잎으로 이부자리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가 끝내 죽을지언정, 임과 같이 지내는 밤이 더디게 새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임과 헤어지는 것이 죽기보다 더 싫다는 화자의 절실한 심정의 표현이다. 비록 음악적 필요에 의한 것이지만, 화자의 심정을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에서 그 간절함이 더 생생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눈 하룻밤이 지나고, 임은 떠났다. 화자는 임이 떠난 뒤 홀로 지내는 자신의 처지를 춘풍에 흔들리는 도화(桃花)와 대비시켜 형상화한다.

경경(耿耿) 고침샹(孤枕上)애 어느 미 오리오
셔창(西窓)을 여러 니 도화(桃花)ㅣ 발(發)두다
도화(桃花) 시름 업서 쇼츈풍(笑春風)다 쇼츈풍(笑春風)다

뒤척뒤척 외로운 잠자리에 어찌 잠이 오리오?
서쪽 창문을 열어젖히니 복숭아꽃이 피어나는구나!
복숭아꽃은 근심이 없어 봄바람에 웃는구나!

‣ 경경(耿耿) : 근심함.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고 염려가 됨.
‣ 고침상(孤枕上) : 외로운 배갯머리

불안했던 사랑. 결국은 떠나버린 임. 임을 잃은 텅 빈 겨울 같은 싸늘한 마음은 복숭아꽃이 만발하여 즐겁게 웃고 있는 봄의 경치와 대비되어, 더욱 고조된다. ‘외로운 베개’, ‘서창’, ‘복숭아꽃’, ‘봄바람’ 등은 화자의 “잠을 이루지 못 하겠다”는 하소연의 바탕을 이루는 재료가 되고 있다. 임이 떠나고 쓸쓸한 마음은 곧 원망으로 바뀐다.

넉시라도 님을  녀닛 경(景) 너기다니
넉시라도 님을  녀닛 경(景) 너기다니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뉘러시니잇가 

넋이라도 임과 함께 가는 정경을 생각하였더니
어기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 녀닛 경(景) : 가는 광경. 남의 경향
‣ 벼기더시니 : 어기던 이가

죽은 후에 넋이라도 서로 떨어지지 말자고 맹세한 사람이 누구였던가? 화자는 지켜지지 못한 약속과 이를 어기고 떠나간 임에 대한 원망을 토해낸다. 하지만 이 원망은 임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올하 올하 아련 비올하
여흘란 어듸 두고 소해 자라 온다
소콧 얼면 여흘도 됴니 여흘도 됴니

오리야, 오리야, 어린 비오리야!
여울일랑 어디 두고 연못에 자러 오는가?
연못 곧 얼면 여울도 좋거니.

(오리, 여울, 소 등에 대한 해석이 다소 엇갈리기는 하지만) 오리는 떠나간 임을 의미한다. 그것도 이리저리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 마음이 여린 오리. 오리는 연못에서도 자고, 여울에서도 잔다. 떠나간 임이 간 곳, 즉 다른 여자의 집을 연못에, 자신의 집을 여울에 비유하여 말하고 있다. ‘연못이 얼면 여울도 좋다’라고 하는 말은 임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리라. 이런 마음은 다음 연에서도 드러난다.

남산(南山)애 자리 보와 옥산(玉山)을 벼여 누어
금슈산(錦繡山) 니블 안해 샤향(麝香) 각시를 아나 누어
남산(南山)애 자리 보와 옥산(玉山)을 벼어 누어
금슈산(錦繡山) 니블 안해 샤향(麝香) 각시를 아나 누어
약(藥)든 가을 맛초사이다 맛초사이다

남산에 잠자리를 보아 옥산을 베고 누워
금수산 이불 안에 사향 각시를 품고 누워
사향이 든 가슴을 맞추옵시다.

‣ 사향(麝香) : 사향노루 수컷의 사향샘을 건조해 만든 흑갈색의 가루로, 주로 약재나 향료로 쓰인다.

이성의 환심을 살 수 있다하여 여성들이 많이 애용했던 사향을 지니고 임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 연에서 화자는 임과 다시 만나 잠자리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대담, 솔직하게 읊어내고 있다.

아소 님하 원평(遠代平生)애 여힐  모새

아소서! 임이시여, 평생토록 이별할 줄 모르고 지냅시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갔지만, 그럼에도 임과 헤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화자의 소원은 마지막까지도 이어진다.

「만전춘」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고, 그 설들이 다소 엇갈리기는 하지만 이 작품이 남녀 사이의 애정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조선 유학자들의 검열의 칼날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작품 「만전춘」, 허식이 없고 감정과 정서의 표현이 직설적이며, 인간의 진솔한 감정을 담아낸 우리의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