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속으로콜콜Call/옛노래 선율

[악장가사]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임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 … 「이상곡」

『악장가사』에 실려 전하는 「이상곡(履霜曲)」은 흔히 「쌍화점」, 「만전춘별사」와 더불어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의 대표작으로 거론된다.[각주:1]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가요들은 『악학궤범(樂學軌範)』, 『악장가사(樂章歌詞)』,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등 조선 시대에 간행된 음악 서적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초기 성리학자들이 궁중에 필요한 음악을 정리하면서 ‘남녀상열지사’나 ‘사리부재(詞俚不載, 노랫말이 저속하여 문헌에 싣지 않음)’를 근거로, 고려가요는 엄격한 검열을 받아야 했다. 「이상곡」은 만날 기약이 없는 임에 대한 그리움을 직설적이고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상곡(履霜曲)」은 ‘서리 밟는 노래’라는 뜻으로 여인의 한스러운 사랑을 서리에 비유한 곡이다. ‘이상(履霜)’은 『주역』「곤괘초육(坤卦初六)」에서 나온 것이다.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 즉 ‘서리를 밟게 되면 장차 단단한 얼음의 계절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어야 된다.’는 이 말을 참고한다면 ‘서리가 내린 땅을 밟는다’는 뜻의 「이상곡」은 혼자가 된 여인이 걸어가야 할 험난한 삶의 길을 노래한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상곡」의 13개의 행은 내용상 크게 세 단락으로 나뉘는데, 첫째 단락(1~5행)은 여성 화자, 둘째 단락(6~10행)은 남성 화자가 여성 화자의 말을 받고, 셋째 단락(11~13행)은 다시 여성화자가 등장하여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듯 작품이 전개되고 있다.

 

비 오다가 개야 아 눈 하 디신 나래
서린 석석사리 조 곱도신 길헤
다롱디우셔 마득사리 마득너즈세 너우지
잠 간 내 니믈 너겨
깃 열명길헤 자라 오리이가

비 오다가 날이 개어 아! 눈이 많이 내린 날에
엉킨 숲을 좁디좁은 휘돌아 가는 길에
다롱디우셔 마득사리 마득너즈세 너우지
잠을 앗아 간 내 임을 그리워하지만
그런 무시무시한 길에 임이 자러 오실까요?

► 석석사리 : 나무 숲. 섶섶[薪], 곧 ‘섭섭’이 ‘석석’으로 바뀌었고, 거기에 명사에 붙은 접미사인 ‘-사리’가 더해졌다. 여기서 ‘섶(섶나무)’이란 땔나무를 동틀어 일컫는 말이다.
► 열명길 : 저승길. 원래는 불교에서 말하는 ‘십분노명왕(十忿怒明王)’, 곧 저승에서 죽은 사람을 재판하는 10명의 대왕(시왕, 열왕)처럼 무서운 길이라는 뜻이다. 「이상곡」에서는 ‘무서운 길’ 정도의 의미로 쓰였다.

죵죵 벽력(霹靂) (生) 함타무간(陷墮無間)
고대셔 싀여딜 내 모미
죵 벽력(霹靂) 아 (生) 함타무간(陷墮無間)
고대셔 싀여딜 내 모미
내 님 두고 년뫼 거로리

때때로 벼락이 쳐 무간지옥에 떨어져
즉시에 사라질 내 몸이
때때로 벼락이 쳐 무간지옥에 떨어져
즉시에 사라질 내 몸이
내 임 두고 다른 산길을 걷겠습니까?

► 함타무간(陷墮無間) :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다. ‘무간지옥’은 불교에서 말하는 여러 지옥 중 고통이 가장 극심한 지옥으로, 범어(梵語) 아비치(Avici)를 음역하여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한다. 무구지옥(無救地獄)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팔열지옥(八熱地獄)의 하나로, 사바세계(娑婆世界) 아래, 2만 유순(由旬)되는 곳에 있다.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이 이곳에 떨어지면 그 당하는 괴로움이 끊임없기[無間, 쉴 사이가 없다]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다.

이러쳐 뎌러쳐
이러쳐 뎌러쳐 긔약(期約)이잇가
아소 님하  녀졋 긔약(期約)이이다

이렇게 저렇게
이렇게 저렇게 하고자 하는 기약이 있겠습니까?
마소서, 임이시여. 임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기약입니다.

 

 

  1. 이 노래는 오지 않는 임을 그리는 자유로운 사랑의 노래, 즉 남녀상열지사로 해석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남편을 잃고 독수공방하는 여인이 서리를 밟듯 방황하고 고뇌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여 작자를 청상과부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는 한 명의 단독 화자가 아닌, 1단락은 여자가, 2단락은 남자가, 다시 3단락은 여자가 부르는 사설이라고 해석해 연극적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때로는 2단 구성으로 해석되어, 앞 단락은 서정적 자아가 속한 고통의 세계, 즉 임과 함께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고통이 서린 세계로 노래하고, 뒤 단락은 그러한 고통의 세계를 넘어 임과 함께 하고자 하는 기약을 노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임과 함께 하지 못하는 고통의 세계와 임과 함께 하는 경지와 대립시킨 다음, 기어이 임과의 만남을 기약하는 변증법적 통합(正-임과 함께 하지 못하는 세계/ 反-임과 함께 하는 경지/ 合-임과의 만남을 기약)을 모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