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20년간 분열되었던 일본이 통일되었고, 머지 않아 조선을 침략할 지 모른다는 소식이었다. 조정에서는 일본에 사신을 보내 이를 조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두 사신의 의견이 서로 달라 조정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년 뒤 일본은 조총을 비롯한 신무기에 20만이 넘는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다.
관군이 일본군에 무너지면서 나라 전체가 큰 어려움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왕과 조정은 평양으로, 다시 의주로 피난을 떠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군의 손에 죽었고, 나라 안 곳곳이 일본군에 짓밟혔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단지 명의 구원이 있기만을 학수고대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일본군을 무찔러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바로 이순신이 이끈 수군과 고향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던 의병들이었다.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휘하에서 일본군과 싸웠던 인물이다. 이후 무과에 급제해 부산에서 나라 수비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선상탄(船上歎)」은 박인로가 을사년(1605년, 선조38) 45세 때 통주사(統舟師)로 부임하여, 진동영(지금의 부산)에 내려갔을 때 지은 가사이다. 전쟁에 직접 참전하여 그 참상을 보았던 박인로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평화로운 세상이 도래하기를 염원했다. 「선상탄」(배 위에서의 탄식)은 그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런 그의 심정을 ‘배’를 소재로 하여 노래하고 있다. 전반부에는 전란의 원인을 '배'로 보고 '배'를 원망하지만, 후반부에는 ‘배’가 풍류와 흥취를 느낄 수 있는 풍류의 도구로 인식하여 전쟁이 끝나고 전선(戰船)이 놀잇배가 되는 태평성대가 되기를 바란다.
「선상탄」은 전쟁이 끝난 뒤 수군의 병선 위에서 지켜본 변방의 피폐한 상황에 대한 탄식이다. 화자는 왜군의 침략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관문인 부산진에서, 큰 칼을 비스듬히 차고 병선에 올라 눈을 부릅뜨고 적진 대마도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7년이 지났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다. 여전히 대마도의 왜구들은 조선의 영토를 호시탐탐 넘보았기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렇게 무서운 기세로 바라본 대마도는 바람을 따라 이동하는 누런 구름에 휩싸여 있다. 이는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으며, 전쟁이 다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을 의미한다. 아득한 푸른 물결이 긴 하늘과 한 빛으로 푸른데, 그 가운데 덮인 누런 구름은 화자의 심정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
늘고 병(病)든 몸을 주사(舟師)로 보실
을사(乙巳) 삼하(三夏)애 진동영(鎭東營) 려오니
관방 중지(關防重地)예 병(病)이 깁다 안자실랴
일장검(一長劍) 비기 고 병선(兵船)에 구테 올나
여기 진목(勵氣瞋目)야 대마도(對馬島)을 구어보니
람 조친 황운(黃雲)은 원근(遠近)에 사혀 잇고
아득 창파(滄波) 긴 하과 빗칠쇠
(임금께서) 늙고 병든 몸을 수군 통주사로 보내시므로
을사년(1605, 선조38) 여름에 부산진으로 내려오니
국경의 요새지에서 병이 깊다고 앉아만 있겠는가?
한 자루 긴 칼을 비스듬히 차고 병선에 구태여[감히, 굳이] 올라
기운을 떨치고 눈을 부릅떠 대마도를 굽어보니
바람을 따라 이동하는 누런 구름은 멀고 가깝게 쌓여 있고
아득한 푸른 물결은 긴 하늘과 한 빛이로다.
‣ 주사(舟師) : 수군(水軍) 통주사(統舟師) |
배 위를 배회하며 옛날과 오늘을 생각하다보니,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배’가 원망스럽다. ‘헌원씨’가 처음 배를 만든 것이 원망스럽고, 일본이란 나라를 만든 계기가 된 ‘진시황’과 ‘서불’이 한탄스럽다. 이것은 배 때문에 왜적이 우리나라를 넘보고 건너왔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일본은 섬나라로 배가 아니면 거센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를 넘볼 수가 없는데, 헌원씨(軒轅氏)가 배를 만들어 그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선상(船上)에 배회(徘徊)며 고금(古今)을 사억(思憶)고
어리미친 회포(懷抱)애 헌원씨(軒轅氏)를 애노라
대양(大洋)이 망망(茫茫)야 천지(天地)예 둘려시니
진실로 아니면 풍파 만리(風波萬里) 밧긔
어 사이(四夷) 엿볼넌고
무 일 려 야 못기를 비롯고
만세 천추(萬世千秋)에 업 큰 폐(弊) 되야
보천지하(普天之下)애 만민원(萬民怨) 길우다
배 위에서 서성거리며 옛날과 오늘날을 생각하며
어리석고 미친 듯한 마음에 (배를 처음 만들었다는) 헌원씨를 원망하노라.
큰 바다가 아득히 넓어 천지에 둘러 있으니,
진실로 배가 없었다면 풍파가 이는 바다 만 리 밖에서
어느 사방의 오랑캐가 (우리 나라를) 엿볼 것인가?
무슨 일을 하려고 배 만들기를 시작하였던가?
장구한 세월에 무한한 큰 폐단이 되어,
온 세상 만백성의 원망을 길렀는가?
‣ 사억(思憶)고 : 생각하고 |
하지만 헌원씨가 배를 만들었다고 해도 왜라는 민족이 생기지 않았다면 배가 있어도 우리나라를 감히 넘보지 못했을 것이다. 진시황(䄅始皇)은 영생을 얻기 위해 신하 서불(徐巿)에게 어린 남녀 수천 명과 함께 신산(神山)에 가서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했다. 하지만 서불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진시황은 50세의 나이에 죽고 만다. 돌아오지 않은 서불은 일본에 정착해서 일본 왕실의 시조가 되었고, 함께 갔던 이들의 후손이 일본의 선조가 되었다고 한다. 화자는 진시황이 영생을 얻으려는 욕심으로 서불과 함께 젊은 남녀를 보낸 것이 일본이 생겨난 이유라고 생각하고 진시황을 원망한다.
하지만 이것도 서불이 일본에 머물지 않았다면 일본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제 서불을 원망한다. 불로초를 구하지 못했으면 빨리 돌아올 것이지 왜 일본으로 망명을 해 전쟁이 일어나게 했느냐며, 자신이 시름하는 것을 서불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어즈버 라니 진시황(䄅始皇)의 타시로다
비록 잇다 나 왜(倭)를 아니 삼기던들
일본(日本) 대마도(對馬島)로 뷘 졀로 나올넌가
뉘 말을 미더 듯고
동남 동녀(童男童女)를 그도록 드려다가
해중(海中) 모든 셤에 난당적(難當賊)을 기쳐 두고
통분(痛憤) 수욕(羞辱)이 화하(華夏)애 다 밋나다
장생(長生) 불사약(不死藥)을 얼나 어더 여
만리장성(萬里長城) 놉히 사고 몃 만년(萬年)을 사도고
로 죽어 가니 유익(有益) 줄 모로다
어즈버 각니 서불(徐巿) 등(等)이 이심(已甚)다
인신(人臣)이 되야셔 망명(亡命)도 것가
신선(神仙)을 못 보거든 수이나 도라오면
주사(舟師) 이 시럼은 견혀 업게 삼길럿다
아, 깨달으니 진시황의 탓이로다.
배가 비록 있다 하나 왜국을 만들지 않았던들,
일본 대마도로부터 빈 배가 저절로 나올 것인가?
누구 말을 믿어 듣고
젊은 남녀를 그토록 데려다가
바다 가운데 모든 섬에 감당하기 어려운 도적(왜적)을 남기어 두어,
통분한 수치와 모욕이 중국에까지 미치게 하였느냐?
장생불사(長生不死)한다는 약을 얼마나 얻어내어
만리장성 높이 쌓고 몇 만 년이나 살았던가?
(진시황도) 남과 같이 죽어가니, (사람들을 보낸 일이) 유익한 줄을 모르겠다.
아, 돌이켜 생각하니 서불의 무리들이 매우 지나친 일을 하였다.
신하의 몸이 되어서 남의 나라로 도망을 하는 것인가?
신선을 못 만났거든 얼른 돌아왔더라면,
(섬나라 오랑캐의 씨가 퍼지지 않아) 수군인 나의 근심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 삼기던들 : 삼기다(자동사), 만들다(타동사). 여기서는 만들었더라면. |
하지만 이런 원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화자는 곧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이 고집스럽고, 어리석다 자책한다. 그리고 장한(張翰)을 떠올리며, 그가 가을바람이 불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고향으로 가서 가을바람을 만나도 배를 타지 않으면 풍류를 즐길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원망의 대상이었던 ‘배’가 풍류와 흥취를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도구로 바뀌는 순간이다. 정승자리와도 바꾸지 않을 어부의 생애도 한 조각 작은 ‘배’라도 없다면 실현될 수 없으니….
두어라 기왕불구(旣往不咎)라 일너 무엇로소니
쇽졀업 시비(是非)를 후리쳐 더뎌 두쟈
잠사각오(潛思覺悟)니 내 도 고집(固執)고야
황제 작주거(黃帝作舟車) 왼 줄도 모로다
장한(張翰) 강동(江東)애 추풍(秋風)을 만나신들
편주(扁舟) 곳 아니 타면 천청해활(天淸海闊)다
어 흥(興)이 졀로 나며 삼공(三公)도 아니 밧골 제일강산(第一江山)애
부평(浮萍) 어부생애(漁父生涯)을
일엽주(一葉舟) 아니면 어 부쳐 힐고
그만 두어라, 이미 지난 일을 탓해서 무엇 하겠는가?
공연한 시비는 팽개쳐 던져두자.
곰곰히 생각하여 깨달으니 내 뜻도 지나친 고집이다.
황제가 배와 수레를 만든 것은 그릇된 줄도 모르겠다.
(저 진나라 때) 장한이 강동으로 돌아가 가을바람을 만났다고 해도,
만일 작은 배를 타지 않았다면, 하늘이 맑고 바다가 넓다고 한들,
무슨 흥이 저절로 나겠으며, 정승자리와도 바꾸지 않을 만큼 경치 좋은 강산에
개구리밥 같이 물에 떠다니는 어부의 생활이
한 조각의 작은 배가 아니면 무엇에 의탁하여 다닐 것인가?
‣ 기왕불구(旣往不咎) : 이미 지난 일을 탓하지 않음. |
그런데 화자는 주야(晝夜)로 배를 타고 있지만 옛날의 배를 타며 즐겼던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다. 그리고 소동파(蘇東坡)의 ‘전적벽부(前赤壁賦)’의 내용을 연상하니 전쟁의 참상이 더 쓸쓸하게 다가온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술잔과 술상이 어수선하게 흩어진 체 술을 마시며 풍류를 즐기던 놀잇배였는데, 지금은 큰 칼과 긴 창이 즐비한 싸움배가 되어 있으니 그 참담함 어떠할까.
일언 닐 보건 삼긴 제도(制度)야
지묘(至妙) 덧다마 엇디 우리 물은
판옥선(板屋船)을 주야(晝夜)의 빗기 고
임풍영월(臨風咏月)호 흥(興)이 젼혀 업게오
석일(昔日) 주중(舟中)에 배반(杯盤)이 낭자(狼籍)터니
금일(今日) 주중(舟中)에 대검장창(大劍長鎗)이로다
가지 언마 가진 다라니
기간(其間) 우락(憂樂)이 서로 지 못도다
이런 일을 보면, 배를 만든 제도야
지극히 묘한 듯하지만, 어찌하여 우리 무리들은
나는 듯한 판옥선을 밤낮으로 비스듬히 타고,
풍월을 읊되 흥이 전혀 없는 것인가?
옛날 (소동파가 적벽강 위에 띄운) 배에는 술상이 어지럽게 흩어졌더니
오늘 우리가 탄 배에는 큰 칼과 긴 창 뿐이로구나.
같은 배이건만 가진 바가 다르니,
그 사이 근심과 즐거움이 서로 같지 못하도다.
‣ 임풍영월(臨風咏月) :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보며 시를 짓고 즐겁게 놂. |
결국 최전선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늙은 무신(武臣)은 눈물로 비애를 털어놓는다. 우리 문물이 한나라와 당나라, 송나라에 뒤떨어지지 않는데, 국운이 불행하여 전쟁을 겪은 민족의 현실이 아프기만하다. 하지만 이런 위태로운 시련은 민족적 자부심을 높게 하고, 연군(戀君)의 정은 더욱 두터워지게 했나보다.
시시(時時)로 멀이 드러 북신(北辰)을 라보며
상시 노루(傷時老淚) 천일방(天一方)의 디이다
오동방(吾東方) 문물(文物)이 한당송(漢唐宋)애 디랴마
국운(國運)이 불행(不幸)야 해추(海醜) 흉모(兇謀)애
만고수(萬古羞)을 안고 이셔
백분(百分)에 가지도 못 시셔 려거든
이 몸이 무상(無狀) 신자(臣子)ㅣ 되야 이셔다가
궁달(窮達)이 길이 달라 몬 뫼고 늘거신
우국 단심(憂國丹心)이야 어 각(刻)애 이즐넌고
때때로 머리를 들어 임금 계신 곳을 바라보며
시국을 근심하는 늙은이의 눈물을 하늘 한 모퉁이에 떨어뜨린다.
우리나라의 문물이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에 뒤지랴마는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다 보니 왜적들의 흉악한 꾀에 빠져
오랜 세월 동안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안고서
그 백분의 일도 못 씻어 버렸거든
이 몸이 변변치 못하지만 신하가 되어 있다가
신하와 임금의 신분이 서로 달라 모시지 못하고 늙은들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향한 충성스러운 마음이야 어느 때라고 잊을 수 있겠는가?
‣ 멀이 : 머리. |
그리고 우국충정으로 왜적을 무찔러야겠다는 의기는 하늘을 찌를 듯 강개하다. 제갈량은 죽었지만 사마의를 이겼고, 손빈은 다리가 없었지만 방연에게 복수를 하였듯이, 화자 자신도 왜적에 당한 치욕을 반드시 갚겠노라 다짐한다. 제강공명과 비교해 목숨이 살아 있고, 손빈과 비교해 수족도 있는데, 무엇을 두렵겠냐면서….
강개(慷慨) 계운 장기(壯氣) 노당익장(老當益壯) 다마
됴고마 이 몸이 병중(病中)에 드러시니
설분신원(雪憤伸寃)이 어려올 건마
그러나 사제갈(死諸葛)도 생중달(生仲達)을 멀리 좃고
발 업 손빈(孫臏)도 방연(龐涓)을 잡아거든
믈며 이 몸은 수족(手足)이 자 잇고
명맥(命脉)이 이어시니
서절 구투(鼠竊狗偸)을 저그나 저흘소냐
비선(飛船)에 려드러 선봉(先鋒)을 거치면
구시월(九十月) 상풍(霜風)에 낙엽(落葉)가치 헤치리라
칠종칠금(七縱七禽)을 우린 못 것가
근심하고 분하게 여기는 마음을 이기지 못한 씩씩한 기운은 늙어가면서 더욱 장하다마는,
조그마한 이 몸이 병중에 들었으니,
분함을 씻고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 버리기가 어려울 듯 하건마는,
그러나 죽은 제갈량도 살아있는 중달(사마의)을 멀리 쫓아 버렸고,
발이 없는 손빈도 (그 발을 자른) 방연을 잡았는데,
하물며 이 몸은 손과 발이 갖추어 있고
목숨이 붙어 있으니
쥐나 개와 같은 도적(왜구)을 조금이라도 두려워 하겠느냐?
나는 듯이 빠른 배에 달려들어 선봉을 무찌르면,
구시월 서릿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헤치리라.
칠종칠금을 우리라고 못 할 것인가?
‣ 강개(慷慨) : (불의나 불법을 보고) 의기가 북받치어 원통하고 슬픔, 또는 그 마음. |
그러나 화자의 궁극적 의도는 복수나 전쟁이 아니다. 왜적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있지만, 평화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을 갈망하며 공존 속에서 화해를 모색한다. 그래서 화자는 왜구들에게 항복을 촉구하며, 침략만큼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태평 시절이 돌아오면 싸움배를 놀잇배로 만들어 풍류를 즐기겠다며 평화를 염원하고 있다.
준피 도이(蠢彼島夷)들아 수이 걸항(乞降) 야라
항자 불살(降者不殺)이니 너를 구 섬멸(殲滅)랴
오왕(吾王) 성덕(聖德)이 욕병생(欲并生) 시니라
태평천하(太平天下)애 요순(堯舜) 군민(君民) 되야 이셔
일월광화(日月光華) 조부조(朝復朝) 얏거든
전선(戰船) 던 우리 몸도 어주(漁舟)에 창만(唱晩)고
추월추풍(秋月春風)에 놉히 베고 누어 이셔
성대(聖代) 해불 양파(海不揚波) 다시 보려 노라
비틀거리는(꾸물거리는) 벌레 같은 저 섬나라 오랑캐들아, 빨리 항복하여 용서를 빌어라.
항복한 자는 죽이지 않는다 하니, 너희들을 구태여 다 죽이겠는가?
우리 임금의 성스러운 덕이 너희와 함께 살기를 바라신다.
태평천하에 요순시대와 같은 화평한 임금과 백성이 되어 있어,
해와 달 같은 임금의 성덕이 아침마다 밝게 비치니,
전쟁하는 배를 타던 우리 몸도 고기잡이배에서 저녁 늦도록 노래하고,
가을 달 봄바람에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워서,
성군 치하의 태평성대를 다시 보려 하노라.
‣ 요순(堯舜) 군민(君民) : 태평성대의 임금과 백성. |
화자는 일장검을 집고서 병선에 올라 대마도를 바라보면서 배를 만든 유래와 일본의 침략에 대한 비난, 배로 인해 일어나는 흥취와 우락(憂樂)이 서로 다름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우국충정으로 왜적을 무찔러야겠다는 의기를 보이며, 전쟁이 끝나 태평천하가 도래하기를 염원하고 있다. 서두에서 비록 자신을 늙고 병든 몸이라 낮추어 말하고 있지만, 산전수전을 모두 치러온 무인의 풍모가 그려지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 전쟁에 책임이 있던 조정은 일본의 침략을 비난하였을 뿐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는데, 그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 아쉽다. 7년에 걸친 전쟁으로 온 나라는 폐허가 되었고 숱한 사람이 죽었지만, 전쟁을 막지도, 전쟁동안 민중들을 보살피지도 못했던 왕과 조정은 건재하지 않았는가? 전쟁의 참상을 직접 보았던 화자라면 좀 더 다른 시선으로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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