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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속으로콜콜Call/옛노래 선율

[노계가집] 사제에서의 삶을 노래하다 … 박인로「사제곡」

만력신해춘(萬曆辛亥春) 한음대감명작차곡(漢陰大鑒命作此曲) 사제승지명(莎堤勝地名) 재용진강동거오리허(在龍津江東距五里許) 대감강정소재처야(大鑒江亭所在處也)

만력(萬曆, 중국 명나라 신종의 연호 1573~1619) 신해년(1611) 봄 한음(漢陰)대감이 이 곡을 짓게 명하셨다. 사제(莎堤)는 승지(勝地)의 이름으로 용진강(龍津江) 동쪽 5리쯤에 있으니 대감의 강정(江亭)이 있는 곳이다.

사제(莎堤)는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 말년을 지내다 묻힌 남양주 운길산 남쪽 기슭, 북한강 북쪽의 동네를 말한다. 「사제곡(莎堤曲)」은 이덕형과 친분이 두터웠던 동갑내기 박인로(朴仁老)가 그를 찾아갔을 때 읊은 노래로, 사제(莎堤)의 뛰어난 경치와 그곳에 한가로이 소요(逍遙)·자적(自適)하는 이덕형의 생활을 그린 것이다. 지은이가 박인로이지만, 실질적인 내용의 주인공은 이덕형으로 박인로가 대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리고 졸(拙) 몸애 영총(榮寵)이 이극(已極)니
국궁진췌(鞠躬盡悴)야 주거야 말려 너겨
숙야비해(夙夜匪懈)야 밥을 닛고 사탁(思度)
군솔의 현 블로 일월명(日月明)을 도올런가
시위반식(尸位伴食)을 몃 나 디내연고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 임금의 지극한 총애로 온갖 영화를 다 누렸으니
힘을 다해 나라를 생각하며 죽고서야 말겠다고 생각하여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아니하고,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생각하고 헤아려본들,
관솔에 켠 불로 일월(日月)의 밝음을 도울 수 있겠는가?
하는 일 없이 녹(祿)만 탄 것이 몇 해나 지났는가?

‣ 영총(榮寵) : 임금에게 받은 특별한 사랑과 영화.
‣ 이극(已極)니 : 이미 더할 수 없는 상태에 이름. 곧 매우 지극함.
‣ 국궁진췌(鞠躬盡悴) : 국궁진췌(鞠躬盡瘁). 몸을 굽히고 힘을 다하여 나라 일에 바침. 國事(국사)를 위하여 몸을 바침. [鞠躬盡瘁 死而後已(국궁진췌 사이후이) 몸을 굽혀 모든 힘을 다하며 죽은 후에야 그만둔다. - 출전 : 諸葛亮(제갈량)의 後出師表(후출사표)]
‣ 주거야 말려 너겨 : 죽고야 말겠다고 생각하여.
‣ 숙야비해(夙夜匪懈) :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아니함. [夙夜匪懈 以事一人(숙야비해 이사일인) 새벽부터 밤늦도록 게을리 하지 않고 임금을 섬긴다. - 출전 : 시경(詩經)의 대아(大雅) 증민(烝民)편]
‣ 군솔의 현 블로 : 관솔에 켠 불. ‘관솔’은 소나무에 있는 송진이 굳어서 소나무 속에 옹이로 생긴 것을 말한다. 불에 잘 타는 송진이 굳어 있어 불이 잘 붙으므로 여기에 불을 붙여 등불 대신 사용하였다. 여기서 ‘군솔’은 한음(漢陰)을 비유한 말이다.
‣ 일월명(日月明)을 도올런가 : 일월의 밝음을 도울 수 있겠는가? ‘일월’은 일월같이 밝은 임금의 성덕(聖德)을 비유한 말이다.
‣ 시위반식(尸位伴食) : 하는 일 없이 벼슬자리를 지키면서 녹(祿)만 타 먹음.

늙고 병(病)이 드러 해골(骸骨)을 빌니실
한수(漢水) 동(東)다히로 방수심산(訪水尋山)야
용진강(龍津江) 디내올나 사제(莎堤) 안 도라드니
제일강산(第一江山)이 님재 업시 렷다

이제 늙고 병이 들어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간청하여 이에 허락해 주셨으니,
한강 동쪽 땅의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용진강(龍津江)을 거슬려 사제(莎堤) 마을에 올라와 보니
천하제일의 경관이 임자 없이 버려져 있구나.

‣ 해골(骸骨)을 빌니실 : 『사기』권7 「항우본기」에 나오는 말로, 나이가 들어 벼슬에서 물러나고자 할 때 임금에게 주청할 때 사용한다. ‘걸해골(乞骸骨, 해골을 빈다)’란 말은 신하는 모든 것을 임금과 백성을 위해 바치기 때문에, 물러날 때 남은 것이라곤 해골밖에 없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다. 자리에서 물러나 은퇴하고 싶을 때 간곡한 사직(辭職)의 의지의 표현이다. 초(楚)나라 항우와 한(漢)나라 유방이 대치하고 있을 때, 항우는 한나라 진평의 이간계에 빠져 책사 범증을 의심한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항우를 보고 범증은 천하의 대세가 이미 유방 쪽으로 기울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천하의 대세는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이제는 전하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원컨대 신의 해골을 내려주시면 초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하며 사직을 요청한다. 여기서 해골을 내리다는 ‘사해골(賜骸骨)’이란 표현이 나왔고, 이것이 ‘걸해골(乞骸骨)’로 변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가던 범증은 화를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항우는 천하를 차지할 좋은 기회를 여러 번 잡았지만 결국 해하(垓下)에서 유방군에 포위되어 대패하고, 오강(烏江)으로 빠져나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고려⋅조선시대 때 재신들이 임금에게 벼슬을 사퇴할 것을 청할 때 이 말로 표현했다고 한다.
‣ 방수심산(訪水尋山)야 : 물과 산을 찾아가서.
‣ 용진강(龍津江) : 영산강의 본래 이름.
‣ 사제(莎堤) : 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한음 이덕형이 이곳에서 은거하였다.
‣ 제일강산(第一江山) : 경치가 빼어난 강산.

평생몽상(平生夢想)이 오라야 그러던디
수광산색(水光山色)이 녯  다시 본 
무정(無情) 산수(山水)도 유정(有情)야 보이다

평생 꿈꾸던 생각이 오래되어서 그랬는지
이곳 산수의 경치들이 옛날에 본 것처럼
무정한 산수도 낯설지가 않구나.

‣ 평생몽상(平生夢想) : 한 평생 꿈꾸던 생각.
‣ 수광산색(水光山色) : 물빛과 산의 색깔. 맑은 강물과 아름다운 산의 경치.

백사정반(白沙汀畔)의 낙하(落霞) 빗기 고
삼삼오오(三三五五)히 섯거 노 뎌 백구(白鷗)이야
너려 말 뭇쟈 놀나디 마라라
이 명구승지(名區勝地)를 어라 드럿던다

흰 모래 깔린 물가에 떨어지는 노을이 비스듬히 띠고,
삼삼오오 (떼 지어 날며) 섞어 노는 저 흰 새들아,
네게 말 좀 물어보자. 놀라지 말거라.
경치 빼어난 이 동네 이름이 무엇이랴 하더냐?

‣ 백사정반(白沙汀畔)의 : 흰 모래가 깔린 물가에.
‣ 명구승지(名區勝地) :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곳.
‣ 어라 드럿던다 : 어디라고 들었던가?

벽파(碧波)이 양양(洋洋)니 위수(渭水) 이천(伊川) 아닌 게오
봉만(峯巒)이 수이(秀異)니 부춘(富春) 기산(箕山) 아닌 게오
임심노흑(林深路黑)니 회옹(晦翁) 운곡(雲谷) 아닌 게오
천감토비(泉甘土肥)니 이원(李愿) 반곡(盘谷) 아닌 게오
세원인망(世遠人亡)야 천재고종(千載孤蹤)이 아히 그처시니
배회사억(徘徊思憶)호 아모 줄 내 몰래라

푸른 물결이 넘실대니 위수(渭水)나 이천(伊川)은 아닌 것인가?
봉우리마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니 부춘산(富春山)이나 기산(箕山)은 아닌 것인가?
숲이 깊고 산실이 어두컴컴하니 주자가 살던 운곡(雲谷)은 아닌 것인가?
샘물은 맑고 땅은 기름지니 이원(李愿)이 살던 반곡(盘谷)은 아닌 것인가?
세월이 흘러 인걸은 돌아가시어 천 년 전의 아득한 종적이 그쳤으니,
돌아다니며 생각해보았지만 어디인 줄 나는 모르겠구나!

‣ 양양(洋洋)니 : 끝없는 모양. 물이 출렁출렁 흐르는 모양.
‣ 위수(渭水) : 중국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 북쪽에 위치하는 위하(渭河)는 황하(黃河)의 한 지류(支流)로 강태공(姜太公)이 낚시를 했던 강으로 유명하다.
‣ 이천(伊川) : 중국 허난성(河南省)에서 동북으로 흐르는 강. 중국 북송(北宋) 중기의 유학자로, 정주학(程朱學)의 창시자로 알려진 정이(程頤)의 집이 이 강이 흐르는 숭산(嵩山) 밑에 있었으므로 이천(伊川)이라고 함.
‣ 봉만(峯巒)이 수이(秀異)니 : 산꼭대기의 뾰족뾰족한 봉우리가 유별나니.
‣ 부춘(富春) : 중국 浙江省 富陽縣.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옛 친구였던 엄자릉(嚴子陵, 이름 光)이 숨어 살던 곳. 엄광은 젊어서부터 명성이 높았고, 후한의 광무제와 함께 공부했다. 광무제가 즉위하고 그를 불러 경사(京師)에 왔는데,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지냈다. 광무제가 그를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제수하려고 했지만 사양하고 부춘산(富春山)에 은거했다.
‣ 기산(箕山) : 요(堯) 임금 때 소부(巢父)와 허유(許由)가 벼슬하지 않고 절조를 지켜 숨어 살던 산. 허유는 요(堯) 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 하니 받지 않고 귀가 더러워졌다며, 영천(潁川)의 물에 귀를 씻고 기산(箕山)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한다. 한편 소부(巢父)는 소를 몰고 가다가 허유가 귀를 씻는 까닭을 듣고는, 그 물을 소에 먹일 수 없다며 더 상류로 올라가 물을 먹였다고 한다.
‣ 임심노흑(林深路黑) : 숲이 우거져서 길이 컴컴함.
‣ 회옹(晦翁) : 중국 남송의 유학자이며, 주자학의 시조인 주희(朱熹)의 호(號).
‣ 운곡(雲谷) : 중국 남송(宋)의 대학자 주희(朱憙)가 살던 곳으로, 초당을 지어 운곡정사(雲谷精舍)라 이름하고, 제자를 기르며 책을 읽음.
‣ 천감토비(泉甘土肥) : 샘물이 달고 땅이 기름짐.
‣ 이원(李愿) : 당나라의 학자로 어린 시절 아버지가 환난 중에 죽은 것을 잊지 못해, 벼슬에 뜻을 버리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결혼도 하지 않고 낙양(洛陽) 혜림사(惠林寺)에서 스님들과 재계(齋戒)하면서 암혈에서 살았다고 한다.
‣ 반곡(盘谷) : 이원이 은거한 곳.
‣ 세원인망(世遠人亡) : 세월이 흘러 세대수가 멀어지면서 사람들이 죽어서.
‣ 천재고종(千載孤蹤)이 : 천 년 전의 외로운 종적이.
‣ 배회사억(徘徊思憶)호 : 돌아다니며 생각하되.

안지정란(岸芝汀蘭)은 청향(淸香)이 욱욱(郁郁)야 원근(遠近)에 니어잇고
남간동계(南澗東溪)에 낙화(落花)이  겻거
형극(荊棘)을 헤혀 드러 초옥수간(草屋數間) 지어두고
학발(鶴髮)을 뫼시고 종효(終孝)를 려 너겨
원거원처(爰居爰處)니 차강산지(此江山之) 님재로다
삼공불환 차강산(三公不換此江山)은 엇 닐온 말인고

언덕의 풀들과 강가 난초들의 진동하는 향기가 멀리 가까이 온 동네에 퍼져 있고
남쪽 시내와 동쪽 계곡은 떨어진 꽃잎이 가득 잠겼는데,
가시덩굴을 헤치고 산속으로 들어가 초가 몇 채 지어놓고
늙으신 어르신 돌아가실 때까지 효도를 다해보려고
여기 저기 자리 잡고 보니 내가 바로 이 강산의 주인이로구나.
삼정승 자리와 이 자리를 바꾸지 않겠다는 말이 어찌 이른 말씀인지 알겠노라.

‣ 안지정란(岸芝汀蘭) : 낭떠러지에 난 지초와 물가에 난 난초. [岸芷汀蘭 郁郁靑靑(안지정란 욱욱청청) 강 언덕의 지초와 물가 난초의 향기가 자욱히 퍼지고 푸릇푸릇하다 - 출전 : 범중엄(范仲淹) 「악양루기(岳陽樓記)」]
‣ 욱욱(郁郁)야 : 향기가 성하여.
‣ 남간동계(南澗東溪) : 남쪽 시내와 동쪽 시냇물.
‣ 학발(鶴髮) : 학의 깃털처럼 하얗게 센 머리털, 늙음을 뜻한다. ‘백발’(白髮)과 같은 뜻이지만 더 고상한 표현이다. 여기서는 늙은 어버이, 즉 한음의 노부(老父)를 말한다.
‣ 종효(終孝) : 부모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효도함.
‣ 원거원처(爰居爰處)니 : 이곳에 거처하니. 여기에 있고 여기에 삶, 또는 여기저기 옮겨 사는 것.[爰居爰處 爰喪其馬 于以求之 于林之下(원거원처 원상기마 우이구지 우림지하)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머물던 곳에서 타던 말까지 잃어버려 어디 갔는지 모르는구나. 어디 가서 말을 찾을까, 숲 아래를 헤매이네. - 출전 : 『시경(詩經)』「패풍(邶風)」격고(擊鼓) 편]
‣ 삼공불환차강산(三公不換此江山) : 삼정승 같은 높은 벼슬을 준다 해도 이 강산과는 바꾸지 아니함. ‘삼공(三公)’은 영의정(領議政)⋅좌의정(左議政)⋅우의정(右議政). 삼괴(三槐). 삼정승(三政丞). [萬事無心一釣竿(만사무심일조간) 만사 생각 없고 다만 낚싯대라. 三公不換此江山(삼공불환차강산) 삼공벼슬에도 이 강산을 놓을 소냐. - 출전 : 『대복고(戴復古)』「조대(釣臺, 낚시터)」]

나 말 업시 수이도 밧고완쟈
항산(恒産)도 보려니 옴업시 이노매라
어즈러온 구로(鷗鷺)와 수(數)업 미록(麋鹿)을
내 혼자 거려 육축(六畜)을 삼앗거든
갑 업 청풍명월(淸風明月)은 절로 기물(己物) 되여시니
과 다 부귀(富貴)는 이  몸애 잣고야
이 부귀(富貴)이 가지고 뎌 부귀(富貴)이 부소냐
부 줄 모거든 사괼 줄 알리런가

나는 힘 들이지 않고 쉽게도 바꾸었구나.
늘 있는 경치를 남의 간섭 없이 나 혼자 즐길 수 있으니
날아다니는 갈매기, 해오라기와 수많은 고라니, 사슴들을
나 혼자 기르는 가축으로 삼았거든,
값 치를 필요 없는 맑은 바람 밝은 달은 저절로 내 것이 되었으니,
남과 다른 부귀를 이 한 몸에 지녔구나.
이렇게 부귀를 누리면서 다른 부귀를 부러워할 것인가?
부러워할 줄 모르거든 어찌 사귈 줄 알겠는가?

‣ 항산(恒産) : 생활할 수 있는 일정한 재산.
‣ 구로(鷗鷺) : 갈매기와 해오라기.
‣ 미록(麋鹿) : 고라니와 사슴.
‣ 육축(六畜) : 소, 말, 돼지, 양, 개, 닭 등 여섯 종의 가축.
‣ 갑 업 청풍명월(淸風明月) :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얼마든지 쓰고 볼 수 있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즉 대자연. [淸風明月不用一錢買(청풍명월불용일전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사는 데는 돈 한 푼도 들지 않으니 玉山自倒非人推(옥산자도비인추) 옥산이 절로 무너졌지 사람이 밀치는 것 아니라네. - 출전 : 이백(李白)「양양가(襄陽歌)」]
‣ 기물(己物) 되여시니 : 내 물건이 되었으니.

홍진(紅塵)도 머러가니 세상(世上)일을 듯볼소냐
화개엽락(花開葉落) 아니면은 어 절(節)를 알리런고
중은암(中隱菴) 쇠붑소 곡풍(谷風)의 섯거 라 매창(梅窓)의 니거
오수(午睡) 야 병목(病目)을 여러보니
밤예 픤 가지 암향(暗香)을 보내야 봄쳘을 알외다

인간 세상과 멀리 있으니 세상일을 듣고 볼 것인가?
꽃 피고 잎 지는 일 아니면 어찌 절기를 알겠는가?
중은암(中隱菴)의 쇠북소리 바람결에 섞여 날아 매화 핀 창에 이르거든
낮잠에서 갓 깨어나 앓는 눈을 뜨고 보니
밤비에 갓 핀 가지가 은은한 향내를 뿜으며 봄이 왔음을 알리는구나.

‣ 홍진(紅塵) : 햇빛에 비치어 벌겋게 일어나는 티끌. 번거롭고 속된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화개엽락(花開葉落) : 꽃이 피고 잎이 떨어짐. 곧 자연의 변화.
‣ 중은암(中隱菴) : 사제(莎堤)에 있는 암자의 이름.
‣ 쇠붑소 : 쇠북소리. 종소리. 쇠붑>쇠북.
‣ 암향(暗香) : 그윽이 스며드는 향기.

춘복(春服)을 뵈와 닙고 여경(麗景)이 더듼 적의
청려장(靑藜杖) 빗기 쥐고 동자(童子) 육칠(六七) 블러내야
솝닙 난 쟌예 족용중(足容重)케 흣거러
청강(淸江)의 발을 싯고 풍호강반(風乎江畔)야 흥(興)을 고 도라오니
무우영이귀(舞雩詠而歸) 져그나 부소냐

다 늦게 봄옷으로 갈아입고 봄 경치가 거의 끝날 무렵에야
명아주 지팡이 손에 잡고 아이들 6~7명 불러내어
속잎 돋은 잔디 위를 천천히 밟으며 걸어 나가
맑은 강에 발을 씻고 바람 쐬며 강변을 거닐다가 흥을 타고 돌아오니
무우대(舞雩臺)에 올라 읊조리며 돌아오는 사람을 조금이나마 부러워하겠는가?

‣ 춘복(春服) : 봄 옷.
‣ 여경(麗景) : 밝고 아름다운 햇빛. 찬란하게 빛을 뿜으며 솟아오르는 해.
‣ 더듼 적의 : 더딘 때에. 모춘(暮春)을 말함.
‣ 족용중(足容重)케 : 발걸음을 무겁게. 곧 걸음을 점잖게.
‣ 풍호강반(風乎江畔)야 : 강가에서 바람을 쏘여.
‣ 무우영이귀(舞雩詠而歸) : 무우대(舞雩臺)에 올라 읊조리며 돌아옴.『논어(論語)』「선진(先進)」편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그 제자인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 등에게 뜻한 바를 물었는데, 증석이 “늦은 봄에 봄옷을 지어 입은 뒤, 어른 5~6명, 어린 아이 6~7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을 하고 무우대(舞雩臺)에서 바람을 쐬고는 노래를 읊조리며 돌아오겠다.[莫春者,春服既成,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浴乎沂,風乎舞雩,詠而歸。]”고 대답하여 공자가 감탄했다고 한다.  ‘무우대’는 하늘에 비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춘흥(春興)이 이러커든 추흥(秋興)이라 져글런가
금풍(金風)이 슬슬(瑟瑟)야 정반(庭畔)의 디내 부니
머괴 디 닙피 머근 귀 놀라다
정치추풍(正値秋風)을 중심(中心)에 믄득 반겨
대 두러 메고 홍료(紅蓼) 헤혀 려
소정(小艇)을 글너 노하 풍범낭즙(風帆浪楫)으로 가 대로 더뎌두니
유하전탄(流下前灘)야 천수변(淺水邊)의 오도고야
석양(夕陽)이 거읜 저긔 강풍(江風)이 짐즛 부러 귀범(歸帆)을 뵈와 
아던 전산(前山)도 홀후산(忽後山)의 보이다

봄의 흥취가 이렇거든 가을 흥취라고 적을런가?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서 뜰 가에 지나 부니
오동잎 지는 소리에 (가을임을 깨닫고) 어두운 귀가 놀라는구나.
때마침 불어오는 가을바람 소리가 마음속으로 반가워
낚싯대 둘러메고 붉은 여귀 헤치며 (강변으로) 내려가서
작은 배 띄워놓고, 바람으로 돛을 삼고 물결로 노를 삼아 가는대로 놓아두니
앞 여울로 흘러내려 얕은 강가에 이르렀구나.
석양이 저물 무렵 강바람이 절로 불어 집으로 가는 배를 재촉하는 듯,
아득하던 앞산이 어느새 뒤로 보이는구나.

‣ 정치추풍(正値秋風) : 때마침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만남. [張翰江東去(장한강동거) 正値秋風時(정치추풍시) 장한이 멀리 강동으로 떠나가니 마침 가을바람에 낙엽 지는 계절을 맞았구나. - 출전 : 이백(李白)「송장사인지강동(送張舍人之江東)」. ‘정치(正値)’는 마침 ~할 때마다. ‘장한(張翰)’은 중국 진나라 사람으로, 청재(淸才)가 있고 글을 잘해서 齊(제)나라 왕이 대사마(大司馬)를 삼았더니,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 오나라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그리워 벼슬을 그만두고 수레를 돌려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
‣ 풍범낭즙(風帆浪楫) : 바람으로 돛을 삼고 물결로 노를 삼음. 곧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 유하전탄(流下前灘)야 : 앞 여울로 흘러내려서.
‣ 거읜 저긔 : 거의 되었을 때.
‣ 짐즛 부러 : 일부러 불어.
‣ 홀후산(忽後山)의 보이다 : 문득 산이 뒤에 보이는구나. 배가 빨리 나아감을 말함.

수유우화(須臾羽化)야 연엽주(蓮葉舟)에 올란 
동파(東坡) 적벽유(赤壁遊)인 이내 흥(興)에 엇 더며
장한(張翰) 강동거(江東去)인 이 청흥(淸興)에 미런가

잠시 날개가 나 신선이 되어서 연꽃 배에 올라앉은 듯하니,
소동파의 적벽놀이인들 나의 이런 흥취보다 어찌 더 나으며,
장한이 강동에 가서 느꼈던 흥이 이 내 흥에 미칠 수 있겠는가?

‣ 수유우화(須臾羽化) : 잠깐 사이에 깃이 나서. 잠깐 사이에 신선이 되어. 소동파(蘇東坡) 「적벽부(赤壁賦)」에 ‘한 조각 작은 배 가는 대로 내어 맡기고 망망한 만경창파를 건너간다. 넓고 넓은 것이 허공을 타고 바람을 모는 듯, 그 머무는 곳을 모르겠고 가벼이 떠올라 속세를 버리고 우뚝 서 있는 듯, 날개 돋아 신선이 되어 하늘을 오르는 듯하다[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如馮虛御風 而不知其所止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라는 표현에서 나온 말.

거수(居水)에 이러커든 거산(居山)이라 우연(偶然)랴
산방(山房)의 추만(秋晩)커 유회(幽懷) 둘  업서
운길산(雲吉山) 돌길에 막대 딥고 쉬여 올나
임의소요(任意逍遙)며 원학(猿鶴)을 벗을 삼아
교송(喬松)을 비긔여 사우(四隅)로 도라보니
천공(天工)이 공교(工巧)야 묏비 미가

물놀이가 이렇게 즐거운데 산에 사는 재미야 더 말해 무엇하리?
깊은 산속 거처에 늦가을이 찾아오니 그윽한 회포를 가눌 길 없어,
운길산(雲吉山) 돌길을 지팡이 의지하여 쉬엄쉬엄 올라,
마음대로 이러 저리 거닐며 원숭이와 학을 벗 삼아,
큰 소나무에 기대어 사방을 돌아보니
조물주 솜씨가 교묘하여 산색(山色)을 꾸몄구나.

‣ 거수(居水) : 물에서의 생활.
‣ 임의소요(任意逍遙)며 : 마음대로 거닐며 바람을 쏘임.

흰구 근  편편(片片)이 혀내야
노피락 치락 봉봉(峯峯)이 골골이 면면(面面)이 버럿거든
서리 틴 신남기 봄도곤 블거시니
금수병풍(錦繡屛風)을 첩첩(疊疊)이 둘럿 
천태만상(千態萬狀)이 참람(僭濫)야 보이다
힘세니 토면 내 분(分)에 올가마
금(禁)리 업 나도 두고 노니노라

흰 구름과 맑은 안개와 놀을 조각조각 떼어내서
높은 곳 낮은 곳 봉우리 골짜기마다 곳곳에 벌리어 있거든,
서리 내려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가 봄꽃보다 더욱 붉었으니,
비단에 수놓아 꾸민 병풍을 겹겹이 둘러친 듯,
천태만상(千態萬狀)이 방자할 정도로 제 모양을 뽐내고 있구나.
남과 다투어야 얻을 수 있다면 어찌 내 차지가 될 수 있었으랴마는
못 누리게 막는 이 없으니 나도 두고 즐길 수 있구나.

‣ 근  : 맑은 연하(煙霞, ① 안개와 놀 ②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 서리 틴 신남기 : 서리 맞은 단풍나무.
‣ 천태만상(千態萬狀) : 천차만별(千差萬別)의 상태(狀態). 천 가지 만 가지 모양
‣ 참람(僭濫)야 : 제 분수를 넘어서 방자스러워.

며 남산(南山) 린 그 오곡(五穀)을 초 심거
먹고 못 나마도 긋나 아니면
내 집의 내 밥이 그 마시 엇뇨
채산조수(採山釣水)니 수륙품(水陸品)도 잠 다
감지봉양(甘旨奉養)을 족(足)다사 가마
오조함정(烏鳥含情)을 베ㅂ고야 말렷노라

더구나 남산이 뻗어 내린 끝자락에 오곡(五穀)을 골고루 갖추어 심고
먹고 남기지는 못해도 모자라지만 않으면
내 집에서 먹는 밥맛을 어디에 비할까?
산나물 캐고 물고기 낚아 땅이나 물에서 나는 음식을 잠시라도 갖추니
맛있는 음식 아버님께 해 드리는 것이 흡족하지는 못해도
까마귀가 늙은 어미 봉양하는 정도로 나도 효도를 하고 싶구나.

‣ 채산조수(採山釣水)니 : 산에서 나물 캐고 물에서 낚시질하니.
‣ 감지봉양(甘旨奉養) : 맛있는 음식으로 어버이를 받들어 모심.
‣ 오조함정(烏鳥含情) : 까마귀가 반포(反哺)의 효도를 하는 마음씨. ‘까마귀는 새끼였을 때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어미새가 늙으면 성장한 까마귀는 먹이를 물어다 잘게 씹어내어 이빨이 빠져 씹지 못하는 늙은 어미새를 먹이는 습성이 있다.’라는 본초강목(本草綱目)의 말에서 유래한다.
‣ 베ㅂ고야 말렷노라 : 벱고야 말렷노라. 베풀고야 말겠노라.

사정(私情)이 이러야 아직 믈러 나와신
망극(罔極) 성은(聖恩)을 어 각(刻)애 니즐런고
견마미성(犬馬微誠)은 백수(白首)에야 더옥 깁다
시시(時時)로 머리 드러 북신(北辰)을 라보니
 모 눈믈이 두 매예 다 젓다

내 생각이 이러하여 멀리 물러나 살고 있으나
망극한 임금의 은총을 어느 땐들 잊을쏘냐?
신하의 작은 충성심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어진다.
가끔 머리 들어 임금 계신 북쪽을 바라보니,
남모르는 눈물이 소매를 적시는구나.

‣ 각(刻) : 시각
‣ 견마미성(犬馬微誠) : 개와 말이 사람을 충성스럽게 섬기듯이 임금님을 섬기고자 하는 작은 정성.
‣ 북신(北辰) : 북극성이 있는 쪽. 곧 임금이 계신 궁궐.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共之(위정이덕 비여북신 거기소 이중성공지)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은 제자리에 있고 모든 별들이 그를 바라보며 따르는 것과 같다. - 『논어(論語)』「위정(爲政)」편]

이 눈믈 보거든 마 믈러날가마
 부재(不才)예 병(病) 나 디터 가고
훤당노친(萱堂老親)은 팔순(八旬)이 거의거든
탕약(湯藥)을 긋치며 정성(定省)을 뷔올런가
이제야 어 예 이 산(山) 밧 나로소니
허유(許由)의 시슨 귀예 노래자(老萊子)의 오 닙고
압뫼해 뎌 솔이 프  되도록 학발(鶴髮)을 뫼시고
백발(白髮)애 아 줄 모도록  뫼셔 늘그리라

이 눈물 보면 임금 곁을 어찌 떠나 왔을까마는
재주 없는 몸에 병까지 얻어 더해 가고
늙으신 어머니가 팔순이 다 되어 가시니
어찌 탕약을 올리고 조석 인사드림을 그칠 수 있겠는가?
이제 어느 사이에 이 산 밖으로 나가 살 수 있겠는가?
허유(許由) 같이 속세를 멀리하고 노래자 같이 아버님 좋아하시게 때때옷 갈아입고,
앞산의 소나무 있는 곳이 푸른 연못이 되도록 늙은 어버이를 모시고,
백발이 되어 아무도 못 알아 볼 때까지 함께 모시며 늙어가겠노라.

‣ 훤당노친(萱堂老親) : 늙으신 어머니. 어머니가 계시는 방을 원추리 '헌(萱)'을 써서 훤당(萱堂)이라고 한다. 이는 어머니 거처인 내당의 뒤뜰에 원추리를 심었던 것에 연유한 것이라 한다.
‣ 정성(定省) :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준말. 부모를 모시는 이가 저녁에는 부모님의 잠자리를 보아드리고, 아침이면 편히 주무셨는가를 문안드리는 일.
‣ 허유(許由)의 시슨 귀예 : 허유는 요(堯) 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 하니 받지 않고 귀가 더러워졌다며, 영천(潁川)의 물에 귀를 씻고 기산(箕山)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고 한다.
‣ 노래자(老萊子)의 오 닙고 : 노래자(老萊子)는 중국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현인으로 난을 피하여 몽산(蒙山) 남쪽에서 농사를 짓고 살면서, 70세의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어린애 장난을 하면서 늙은 부모를 즐겁게 해 주었다고 전해진다.
‣ 프  : 푸른 소(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