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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만복사에서 저포놀이를 하다 … 김시습「만복사저포기」(전문)

현대어역

(전라도) 남원에 양생(梁生)이 살고 있었는데, 일찍이 어버이를 잃은 데다 아직 장가도 들지 못했으므로 만복사(萬福寺)전라도 남원 기린산에 있던 절로, 고려 문종 때 창건했다. 1957년 정유재란 때 왜적의 침입으로 불타 버렸으나, 남원 왕정동에서 절터가 발굴되어 현재는 오층석탑, 불상 석좌, 당간지주, 석불 입상 등의 석조물이 남아 있다의 동쪽에서 혼자 살았다. 방 밖에는 배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마침 봄이 되어 꽃이 활짝 피었다. 마치 옥으로 만든 나무 같기도 하고, 은 조각이 쌓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양생은 달이 뜬 밤마다 나무 아래를 거닐며 낭랑하게 시를 읊었는데, 그 시는 이렇다.

한 그루 배꽃나무 쓸쓸함을 벗 삼으니,
휘영청 달 밝은 밤 홀로 보내기 괴로워라.
젊은 이 몸 홀로 누운 호젓한 창 너머로
어디선가 고운 님의 퉁소 소리 들리네.

외로운 저 비취(翡翠)는 제 홀로 날아가고
원앙(鴛鴦)은 짝을 지어 맑은 물에 노니는데,비취(물총새)는 짝이 없고, 원앙은 짝이 있는 것으로 대구(반대)표현이다. 원앙에서 鴛은 수컷이고, 鴦은 암컷으로 원앙이라는 자체가 한 쌍을 의미한다. 그래서 실려(失侶)는 짝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주위에 벗들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바둑알 두드리며 인연을 그리다가
등불로 점치고는등불 심지가 타서 그 끝에 꽃 모양의 불똥이 생기면 길하다 했고, 생기지 않으면 흉하다고 했다. 창가에서 시름하네.

시를 다 읊고 나자 갑자기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대가 참으로 아름다운 짝을 얻고 싶다면 어찌 이뤄지지 않으리라고 걱정하느냐?”

양생은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그 이튿날은 마침 삼월 이십사일이었다. 이 고을에서는 만복사에 등불을 밝히고 복을 비는 풍속이 있었는데, 남녀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소원을 빌었다. 날이 저물고 법회도 끝나자 사람들이 드물어졌다. 양생이 소매 속에서 저포(摴蒲)백제시대 노름의 한 가지로 윷놀이와 비슷하다. 나무로 만든 주사위를 던져서 승부를 다투었다.를 꺼내어 부처 앞에다 던지면서 (소원을 빌었다.)

"제가 오늘 부처님을 모시고 저포놀이를 하여 볼까 합니다. 만약 제가 지면 법연(法筵)불도를 강설하고 범패를 올리는 자리인데, 법석과 같은 뜻을 차려서 부처님께 치성을 드리겠습니다. 만약 부처님이 지시면 아름다운 여인을 얻어서 제 소원을 이루게 하여 주십시오."

빌기를 마치고 곧 저포를 던지자, 양생이 과연 이겼다. 그래서 부처 앞에 무릎은 꿇고 앉아서 말하였다.

"인연이 이미 정하여졌으니, 속이시면 안 됩니다."

그는 불좌(佛座)부처를 모신 자리 뒤에 숨어서 그 약속에 이루어지기를 기다렸다. 얼마 뒤에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들어오는데, 나이는 열대여섯쯤 되어 보였다. 머리를 두 갈래로 땋고 깨끗하게 차려 입었는데, 아름다운 얼굴과 고운 몸가짐이 마치 하늘의 선녀 같았다. 바라볼수록 얌전하였다.

그 여인은 기름병을 가지고 와서 등잔에 기름을 따라 넣은 다음 향을 꽂았다.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아 슬피 탄식하였다.

"인생이 박명(薄命)복이 없고 팔자가 서러움하다지만, 어찌 이럴 수가 있으랴?"

그리고는 품속에서 축원문을 꺼내어 불탁(佛卓)부처를 모신 탁자 위에 바쳤다. 그 글은 이렇다.

아무 고을 아무 동네에 사는 소녀 아무개가 (외람됨을 무릅쓰고 부처님께 아룁니다.) 지난번에 변방의 방어가 무너져 왜구가 쳐들어오자, 싸움이 눈앞에 가득 벌어지고 봉화가 여러 해나 계속되었습니다.

왜놈들이 집을 불살라 없애고 생민들을 노략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동서로 달아나고 좌우로 도망하였습니다. 우리 친척과 종들도 각기 서로 흩어졌었습니다. 저는 버들처럼 가냘픈 소녀의 몸이라 멀리 피난을 가지 못하고, 깊숙한 규방에 들어앉아 끝까지 정절을 지켰습니다. 윤리에 벗어난 행실을 저지르지 않고서 난리의 화를 면하였습니다. 저의 어버이께서도 여자로서 정절을 지킨 것이 그르지 않았다고 하여, 외진 곳으로 옮겨 초야(草野)‘풀이 난 들’이라는 뜻으로 궁벽한 시골을 말함에 붙여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런지가 벌써 삼 년이나 되었습니다.

가을 달밤과 꽃 피는 봄날을 아픈 마음으로 헛되이 보내고, 뜬구름 흐르는 물과 더불어 무료하게 나날을 보냈습니다. 쓸쓸한 골짜기에 외로이 머물면서 제 박명한 평생을 탄식하였고, 아름다운 밤을 혼자 지새우면서 (짝 잃은) 채란(彩鸞)『산해경』을 보면 여장의 산에 꿩처럼 생긴 새가 오색 무늬를 띠었는데 난조(鸞鳥)라 한다고 했다. 부부 금실이 좋아서, 짝을 잃은 난조가 삼 년 동안 울지 않다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슬피 울면서 하늘로 튀어 올라 죽었다는 고사가 있다. 채란은 난새라고도 한다.의 외로운 춤을 슬퍼하였습니다.

그런데 날이 가고 달이 가니 이제는 혼백마저 사라지고 흩어졌습니다. (기나긴) 여름날과 겨울밤에는 간담이 찢어지고 창자까지 찢어집니다. 오직 부처님께 비오니, 이 몸을 가엽게 여기시어 각별히 돌보아 주소서. 인간의 생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으며 선악의 응보를 피할 수 없으니, 제가 타고난 운명에도 인연이 있을 것입니다. 빨리 배필을 얻게 해 주시길 간절히 비옵니다.

여인이 빌기를 마치고 나서 여러 번 흐느껴 울었다. 양생은 불좌 틈으로 여인의 얼굴을 보고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으므로, 갑자기 뛰쳐나가 말하였다.

"조금 전에 글을 올린 것은 무슨 일 때문이신지요?"

그는 여인이 부처님께 올린 글을 보고 얼굴에 기쁨이 흘러넘치며 말하였다.

"아가씨는 어떤 사람이기에 혼자서 여기까지 왔습니까?"

여인이 대답하였다.

"저도 또한 사람입니다. 대체 무슨 의심이라도 나시는지요? 당신께서는 다만 좋은 배필만 얻으면 되실 테니까, 반드시 이름을 묻거나 그렇게 당황하지 마십시오."

이때 만복사는 이미 퇴락하여 스님들은 한쪽 구석진 방에 머물고 있었다. 법당 앞에는 행랑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고, 행랑이 끝난 곳에 아주 좁은 판잣방이 있었다.

양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판잣방으로 들어가자, 여인도 어려워하지 않고 들어왔다. 서로 즐거움을 나누었는데, 보통 사람과 한가지였다.

이윽고 밤이 깊어 달이 동산에 떠오르자 창살에 그림자가 비쳤다. 문득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여인이 물었다.

"누구냐? 시녀가 찾아온 게 아니냐?"

시녀가 말하였다.

"예, 평소에는 아가씨가 문 밖에도 나가지 않으시고 서너 걸음도 걷지 않으셨는데, 어제 저녁에는 우연히 나가셨다가 어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오늘의 일은 우연이 아니다. 하느님이 도우시고 부처님이 돌보셔서, 고운 님을 맞이하여 백년해로를 하게 되었다. 어버이께 여쭙지 못하고 시집가는 것은 비록 예법에 어그러졌지만, 서로 즐거이 맞이하게 된 것은 또한 평생의 기이한 인연이다. 너는 집으로 가서 앉을 자리와 술안주를 가지고 오너라."

시녀가 그 명령대로 가서 뜰에 술자리를 베푸니, 시간은 벌써 사경(四更)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누었을 때, 네 번째 시간. 새벽1시부터 3시 사이다이나 되었다. (시녀가 차려 놓은) 방석과 술상은 무늬가 없이 깨끗하였으며, 술에서 풍기는 향내도 정녕 인간 세상의 솜씨는 아니었다.

양생은 비록 의심나고 괴이하였지만, 여인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맑고 고우며 얼굴과 몸가짐이 얌전하여, '틀림없이 귀한 집 아가씨가 (한때의 마음을 잡지 못하여) 담을 넘어 나왔구나' 생각하고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여인이 양생에게 술잔을 올리면서 시녀에게 명하여 “노래를 불러 흥을 도우라.” 하고는, 양생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는 옛 곡조밖에 모릅니다. 저를 위하여 새 노래를 하나 지어 흥을 도우면 어떻겠습니까?"

양생이 흔연히 허락하고는 곧 「만강홍(滿江紅)노랫가락의 이름으로, 송나라 때부터 이 가락에다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것이 유행이었다」 가락으로 가사를 하나 지어 시녀에게 부르게 하였다.

쌀쌀한 봄추위에 명주 적삼은 아직도 얇아
몇 차례나 애태웠던가, 향로 불이 꺼졌는가 하고,
날 저문 산은 눈썹처럼 엉기고
저녁 구름은 일산[繖]왕이 행차할 때 받치던 의장 양산처럼 퍼졌는데,
비단 장막 원앙 이불에 짝지을 이가 없어서
금비녀 반만 꽂은 채 퉁소를 불어 보네.
아쉬워라, 저 세월이 이다지도 빨랐던가
마음 속 깊은 시름이 답답하여라.
낮은 병풍 속에서 등불은 가물거리는데
나 홀로 눈물진들 그 누가 돌아보랴.
기뻐라, 오늘 밤에는
피리를 불어 봄이 왔으니,중국 전국 시대 제나라의 음양 오행가인 추연(鄒衍⋅騶衍)이 추운 지방에서 피리를 불어 날씨를 따뜻하게 했다고 한다
겹겹이 쌓인 천고의 한이 스러지네
「금루곡(金縷曲)」가락에 술잔을 기울이세.
한스런 옛 시절을 이제 와 슬퍼하니
외로운 방에서 찌푸리며 잠이 들었었지.

노래가 끝나자 여인이 서글프게 말하였다.

"지난번에 봉도(蓬島)중국 전설에 나오는 가상의 산으로 신령스러운 산이라 여겨짐.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가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었다는 고사가 있다.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은 어겼지만, 오늘 소상강(瀟湘江)소수와 상수를 함께 부르는 이름. 상수는 중국 광서성 홍안현에서 흘러나와 호남성의 동정호로 흘러드는 강물인데, 영릉 부근에서 소수와 만난다. 순임금이 남쪽 지방을 돌아보다가 창오산에서 죽자, 그의 두 아내 아황과 여영이 이곳에 찾아와 피눈물을 뿌리고 울다가 상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에서 옛 낭군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하늘이 내린 행운이 아니겠습니까? 낭군께서 저를 멀리 버리지 않으신다면 끝까지 시중을 들겠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제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신다면 저는 영원히 자취를 감추겠습니다."

양생이 이 말을 듣고 한편 놀라며 한편 고맙게 생각하여 대답하였다.

"어찌 당신의 말에 따르지 않겠소?"

그러면서도 여인의 태도가 범상치 않았으므로, 양생은 유심히 행동을 살펴보았다. 이때 달이 서산에 걸리자 먼 마을에서는 닭이 울고 절의 종소리가 들려 왔다. 먼동이 트려 하자 여인이 말하였다.

"얘야. 술자리를 거두어 집으로 돌아가거라."

시녀는 대답하자마자 없어졌는데,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여인이 말하였다.

"인연이 이미 정해졌으니 낭군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양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마을을 지나가는데, 개는 울타리에서 짖고 사람들이 길에 다녔다. 그러나 길 가던 사람들은 그가 여인과 함께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렇게 물을 뿐이었다.

"양 총각, 새벽부터 어디에 다녀오시오?"

양생이 대답하였다.

"어젯밤 만복사에서 취해 누웠다가 이제 친구가 사는 마을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날이 새자 여인이 양생을 이끌고 깊은 숲을 헤치며 가는데, 이슬이 흠뻑 내려서 갈 길이 아득하였다. 양생이 말하였다.

"어찌 당시 거처하는 곳이 이렇소?"

여인이 대답하였다.

"혼자 사는 여자의 거처가 원래 이렇답니다."

여인이 또 (『시경』에 나오는 옛 시 한 수를 외워) 농을 걸어왔다.

이슬 축축이 젖은 길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엔 어찌 다니지 않나?
길에 이슬이 많기 때문이라네.

양생 또한 (『시경』에 나오는 옛 시 한 수를) 농 삼아 화답하였다.

여우가 어슬렁어슬렁
저 기수 다릿목에 어정거리네,
노나라 오가는 길 평탄하여
제나라 아가씨 나는 듯 수레 달려가네.

둘이 읊고 한바탕 웃은 다음에 함께 개령동(開寧洞)거령(居寧)을 말하는 듯한데, 지금의 전라북도 임실군 청웅면이다.으로 갔다. (한 곳에 이르자) 다북쑥이 들을 덮고 가시나무가 하늘로 치솟은 가운데 한 집이 있었는데, 작으면서도 아주 아름다웠다.

그는 여인이 이끄는 대로 따라 들어갔다. 방안에는 이부자리와 휘장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밥상을 올리는 것도) 어젯밤 (만복사에) 차려온 것과 같았다. 양생은 그곳에서 사흘을 머물렀는데, 즐거움이 평상시와 같았다.

시녀는 아름다우면서도 교활하지 않았고, 그릇은 깨끗하면서도 무늬가 없었다.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여인의 은근한 정에 마음이 끌려,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마 뒤에 여인이 양생에게 말하였다.

"이곳의 사흘은 인간세상의 삼 년과 같습니다. 낭군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셔서 생업을 돌보십시오."

드디어 이별의 잔치를 베풀며 헤어지게 되자, 양생이 서글프게 말하였다.

"어찌 이별이 이다지도 빠르오?"

여인이 말하였다.

"다시 만나 평생의 소원을 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누추한 곳에 오시게 된 것도 반드시 묵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웃 친척들을 만나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양생이 '좋다'고 하자 곧 시녀에게 시켜, 사방의 이웃에게 알려 모이게 하였다.

첫째는 정씨이고, 둘째는 오씨이며, 셋째는 김씨이고, 넷째는 류씨인데, 모두 문벌이 높은 귀족집의 따님들이었다. 이 여인과는 한 마을에 사는 친척 처녀들이었다. 성품이 온화하며 풍운(風韻)풍류와 운치이 보통 아니었고, 총명하고 글도 또한 많이 알아 시를 잘 지었다.

이들이 모두 칠언절구 네 수씩을 지어 양생을 전송하였다.

정씨는 태도와 풍류가 갖추어진 여인인데, 구름같이 쪽진 머리가 귀밑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정씨가 탄식하며 시를 읊었다.

봄이라 꽃피는 밤 달빛마저 고운데
그지없이 봄 시름에 잠겨 나이조차 모르겠네.
한스러워라, 이 몸이 비익조(比翼鳥)암수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밖에 없어서 나란히 붙어야만 비로소 날 수 있다는 상상의 새나 된다면
푸른 하늘에서 둘이서 춤추고 놀련만.

칠등(漆燈)무덤 속 등불엔 불빛도 없으니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북두칠성 가로 비끼고 달도 반쯤 기울었네.
서글퍼라, 무덤 속을 그 누가 찾아오랴
푸른 적삼은 구겨지고 쪽진 머리도 헝클어졌네.

매화 지니 정다운 약속도 부질없이 되어 버렸네.매화가 떨어져 시드는 것을 처녀가 결혼할 시기를 놓친 데 비유한 말이다. 『시경』 소남편 「표유매」 장에 “매실이 다 떨어지고 그 열매 일곱만 남았네. 나를 데려가실 총각님네들 길일을 받아서 빨리 장가드세요.” 했다.
봄바람 건듯 부니 모든 일이 지나갔네.
베갯머리 눈물 자국 몇 군데나 젖었던가.
비도 무심하구나, 배꽃이 뜰과 산에 가득 떨어졌네.

꽃다운 청춘을 하염없이 지내려니
적막한 이 빈 산에서 잠 못 이룬 지 몇 밤이던가.
남교(藍橋)에 지나는 나그네 보이지 않는데
어느 해나 배항(裴航)처럼 운교(雲翹)부인을 만나려나.당나라 때 배항이 아직 과거에 오르지 못했을 때에 운교부인을 만났는데, ‘남교’에 가면 신선이 사는 굴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배항은 그 뒤 남교로 가서 선녀 운영을 만나 결혼했다.

오씨는 두 갈래로 땋은 머리에 가냘픈 몸매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정회를 걷잡지 못하며, 뒤를 이어 읊었다.

(만복사) 절에 향 올리고 돌아오던 길이던가
가만히 저포를 던지니 그 소원을 누가 맺어 주었나.
꽃 피는 날 가을 달밤에 그지없는 이 원한을
임이 주신 한 잔 술로 저근덧 녹여 보세.

복사꽃 붉은 뺨에 새벽이슬이 젖건마는
깊은 골짜기라 한봄 되어도 나비조차 아니 오네.
기뻐라. 이웃집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고
새 곡조를 다시 부르며 황금술잔이 오가네.

해마다 오는 제비는 봄바람에 춤을 추건만
내 마음 애가 끊어져 모든 일이 헛되어라.
부럽구나. 저 연꽃은 꼭지나마 나란히 하여
밤 깊어지면 한 연못에서 함께 목욕하는구나.

푸른 산 속에 다락이 하나 높이 솟아
연리지(連理枝)전국시대 한풍 부부의 무덤 위에 났다는 두 그루의 가래나무로, 뿌리가 맞닿아 있으며, 나뭇가지는 서로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 뒤부터 금슬 좋은 부부나 남녀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에 열린 꽃은 해마다 붉건마는
한스러워라. 우리 인생은 저 나무보다도 못하여
박명한 이 청춘에 눈물만 고였구나.

김씨가 얼굴빛을 가다듬고 얌전한 태도로 붓을 잡더니, 앞에 읊은 시들이 너무 음탕하다고 꾸짖으면서 말하였다.

"오늘 모임에서는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고, 이 자리의 광경만 읊으면 됩니다. 어찌 자기들의 속마음을 베풀어 우리의 절조를 잃게 하고, (저 손님으로 하여금) 우리들의 마음을 인간 세상에 전하도록 하겠습니까?"

그리고는 낭랑하게 시를 읊었다.

밤 깊어 오경(五更)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누었을 때, 마지막 시간. 새벽3시부터 5시 사이다이 되니 소쩍새가 슬피 울고
희미한 은하수는 동쪽으로 기울었네.
애끊는 옥퉁소를 다시는 불지 마오
한가한 이 풍정을 속인이 알까 걱정스럽네.

오정주(烏程酒)오정에서 만든 술. 오정은 지금의 절강성 오흥현이다를 가득히 금술잔에 부으리다
취하도록 잡으시고 술이 많다 사양 마오.
날이 밝아 저 동풍이 사납게 불어오면
한 토막 봄날의 꿈을 내 어이하려나.

초록빛 소맷자락 부드럽게 드리우고
풍류 소리 들으면서 백 잔 술을 드소서.
맑은 흥취 다하기 전엔 돌아가지 못하시리니
다시금 새로운 말로 새 노래를 지으소서.

구름같이 고운 머리가 티끌 된 지 몇 해던가
오늘에야 님을 만나 얼굴 한번 펴보았네.
고당(高塘)의 신기한 꿈을 자랑하지 마소서.송옥이 지은 『고당부서』에 나오는 이야기로, 춘추시대 초나라 회왕이 ‘고당’이라는 누대에 놀러갔다가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 무산(巫山)의 선녀가 나타나 정을 통했다. 선녀가 회왕을 모신 뒤에 떠나면서, 자기는 “아침에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양대 아래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회왕이 아침에 보니 과연 구름이 떠 있었다.
풍류스런 그 이야기가 인간에 전해질까 두려워라.

류씨는 엷게 화장하고 흰옷을 입어 아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법도가 있어 보였다. 말없이 가만있다가 (자기의 차례가 되자) 빙그레 웃으면서 시를 지어 읊었다.

금석같이 굳세게 정절을 지켜온 지 몇 해던가.
향기로운 넋과 옥 같은 얼굴이 구천에 깊이 묻혔네.
그윽한 봄밤이면 달나라 항아(姮娥)달나라에 산다고 하는 선녀의 이름와 벗을 삼아
계수나무 꽃그늘에 외로운 잠을 즐겼다오.

우습구나. 복사꽃과 자두꽃은 봄바람에 못 이겨서
이리저리 나부끼다 남의 집에 떨어지네.
한평생 내 절개에 쇠파리가 없을지니
곤산옥(崑山玉)중국 서쪽에 있다는 전설상의 산인 곤륜산에서 나는 옥이다. 불에 녹지 않고 색깔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옥이라고 한다 같은 내 마음에 티가 될까 두려워라.

연지도 분도 게을러 바르지 않고 머리는 다북쑥 같아
경대에는 먼지 쌓이고 거울에는 녹이 슬었네.
오늘 아침엔 다행히도 이웃 잔치에 끼였으니
머리에 꽂은 붉은 꽃이 보기만 해도 부끄러워라.

아가씨는 이제야 백면(白面)글만 읽어서 얼굴이 흰 선비, 흔히 백면서생이라고 한다 낭군을 만났으니
하늘이 정하신 인연 한평생 꽃다워라.
월로(月老)월하노인(月下老人)의 준말. 붉은 줄로 두 남녀의 발을 묶어 부부의 인연을 맺어 준다는 전설상의 노인. 중국 당나라의 위고가 달밤에 어떤 노인을 만나 장래의 아내에 대한 예언을 들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가 이미 금슬(琴瑟)악기 가운데 가장 잘 어울린다는 거문고와 비파를 말한다. 그래서 부부 사이의 화락한 즐거움을 거문고 금(琴), 비파 슬(瑟) 자를 써서 금슬지락(琴瑟之樂), 또는 ‘금실이 좋다’고 했다.의 줄을 전했으니
이제부터 두 분이 양홍과 맹광[鴻光]양홍(梁鴻)은 후한 때 숨어 살던 가난한 선비로, 부잣집 딸인 맹광(孟光)을 아내로 맞이했다. 맹광이 시집와서 화려하게 치장했더니 양홍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맹광이 다시 소박하게 차렸더니 그제야 아내로 받아 주었다. 맹광은 한 고을에 살던 부잣집 딸이었지만, 남편 뜻을 받들어 한평생 밭 갈고 베 짜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 금슬이 좋으면서도 어질게 살았던 부부의 이상으로 꼽힌다.처럼 지내소서.

여인은 류씨가 읊은 시의 마지막 장을 듣고 감사하여, 앞으로 나와서 말하였다.

"저도 또한 자획은 대강 분별할 정도이니, 어찌 홀로 시를 짓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칠언율시 한 편을 지어 읊었다.

개령동 골짜기에 봄 시름을 안고서
꽃 지고 필 때마다 온갖 근심을 느꼈었네.
초협(楚峽)중국에 있는 무산을 가리키는데, 사천성 무산현 동쪽에 있다. 초나라 회왕과 양왕이 선녀를 만났다는 곳이다 구름 속에서 고운 님을 여의고는
소상강(瀟湘江) 대숲에서 눈물을 뿌렸었네.소수와 상수를 함께 부르는 이름. 상수는 중국 광서성 홍안현에서 흘러나와 호남성의 동정호로 흘러드는 강물인데, 영릉 부근에서 소수와 만난다. 순임금이 남쪽 지방을 돌아보다가 창오산에서 죽자, 그의 두 아내 아황과 여영이 이곳에 찾아와 피눈물을 뿌리고 울다가 상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이 피눈물이 대나무에 묻어서, 소상강 유역의 대나무는 아롱진 무늬가 아름답다고 한다
따뜻한 날 맑은 강에 원앙은 짝을 찾고
푸른 하늘에 구름이 걷히자 비취새가 노니누나.
님이여, 동심결(同心結)부부 사이에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맹세하며 매는 매듭 또는 그런 실을 우리도 맺읍시다.
비단 부채처럼 맑은 가을을 원망하지 말게 하오.부채는 여름에만 쓸모 있고 가을에는 필요 없으므로, 버림받은 여인이 자신을 흔히 ‘가을날의 비단부채’에다 비유했다

양생도 또한 문장에 능한 사람이어서, 그들의 시법이 맑고도 운치가 높으며 음운이 맑게 울리는 것을 보고 칭찬하여 마지않았다. 그도 곧 즉석에서 고풍(古風)당나라 이전에 있던 옛 시로, 법칙이 엄격하지 않고 자유로웠음 장단편긴 구절과 짧은 구절이 뒤섞인 한시를 가리킨다 한 장을 지어 화답하였다.

이 밤이 어인 밤이기에
이처럼 고운 선녀를 만났던가.
꽃 같은 얼굴은 어이 그리도 고운지
붉은 입술은 앵두 같아라.
게다가 시마저 더욱 교묘하니
이안(易安)송나라 때 유명한 여류시인 이청조의 호도 마땅히 입을 다물리라.
직녀 아씨가 북 던지고 인간세계로 내려왔는가
항아가 약방아 버리고 달나라를 떠났는가.
대모(玳瑁)열대지방에 사는 바다거북으로, 등껍데기가 장식품으로 귀중하게 쓰였다로 꾸민 단장이 자리를 빛내 주니
오가는 술잔 속에 잔치가 즐거워라.
운우의 즐거움이 익숙하진 못할망정
술 따르고 노래 부르며 서로들 즐겨하네.
봉래섬(蓬萊島)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산(神山) 가운데 하나인 봉래산을 가리킨다을 잘못 찾아든 게 도리어 기뻐라
신선세계가 여기던가, 풍류도를 만났구나.
옥잔의 맑은 술은 향기로운 술통에 가득 차 있고
서뇌(瑞腦)용뇌향(龍腦香)의 준말, 동인도에서 자라는 식물인 용뇌수의 줄기에서 덩어리로 나온다. 용뇌는 약재에 귀중하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용을 붙인 명칭이며, 방향성이 있으며 약재로도 쓰인다의 고운 향내가 금사자 향로에 서려 있네.
백옥상 놓은 앞에 매운 향내 흩날리고
푸른 비단 장막에는 실바람이 살랑이는데,
님을 만나 술잔을 합하며 잔치를 베풀게 되니
하늘에 오색구름 더욱 찬란하여라.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문소(文蕭)와 채란(彩鸞)이 만난 이야기와진나라 때 서생 문소와 선녀 오채란이 만나 부부가 되었다는 옛이야기로, 중국 당나라 때 소설 『전기』에 실려 있다
장석(張碩)이 난향(蘭香) 만난 이야기를한나라 때 선인 장석이 선녀 두난향을 만나 부부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중국 육조시대 소설집 『수신기(搜神記)』에 전한다
인생이 서로 만나는 것도 반드시 인연이니
모름지기 잔을 들어 실컷 취해 보세나.
님이시여. 어찌 가벼이 말씀하시오?
가을바람에 부채 버린다는 서운한 말씀을,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배필이 되어
꽃 피고 달 밝은 아래에서 끊임없이 노닐려오.

술이 다하여 헤어지게 되자, 여인이 은그릇 하나를 내어 양생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내일 저희 부모님께서 저를 위하여 보련사에서 음식을 베풀 것입니다. 당신이 저를 버리지 않으시겠다면, (보련사로 가는) 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저와 함께 절로 가서 부모님을 뵙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양생이 대답하였다.

"그러겠소."

(이튿날) 양생은 여인의 말대로 은그릇 하나를 들고 보련사로 가는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어떤 귀족의 집안에서 딸자식의 대상(大祥)사람이 죽은 지 25개월 만에 지내는 제사을 치르려고 수레와 말을 길에 늘어세우고서 보련사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길가에서 한 서생이 은그릇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고는, 하인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아가씨 장례 때에 무덤 속에 묻은 그릇을 벌써 어떤 사람이 훔쳐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이 말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인이 말하였다.

"저 서생이 가지고 있는 은그릇을 보고 드린 말씀입니다."

주인이 마침내 탔던 말을 멈추고 (양생에게 은그릇을 얻게 된 사연을) 물었다. 양생이 전날 여인과 약속한 그대로 대답하였더니, (여인의) 부모가 놀라며 의아스럽게 여기다가 한참 뒤에 말하였다.

“내 슬하에 오직 딸자식 하나가 있었는데, 왜구의 난리를 만나 싸움판에서 죽었다네. 미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개령사 곁에 임시로 묻어 두고는 이래저래 미루어 오다가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다네. 오늘이 벌써 대상 날이라, (어버이된 심경에) 재나 올려 명복을 빌어줄까 한다네. 자네가 정말 그 약속대로 하려거든, 내 딸자식을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오게나. 놀라지는 말게나.”

그 귀족은 말을 마치고 먼저 (개령사로) 떠났다. 양생은 우두커니 서서 (여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약속하였던 시간이 되자 과연 한 여인이 계집종을 데리고 허리를 간들거리며 오는데, 바로 그 여인이었다.  그들은 서로 기뻐하면서 손을 잡고 절로 향하였다.

여인은 절 문에 들어서자 먼저 부처에게 예를 드리고 곧 흰 휘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친척과 절의 스님들은 모두 (양생이 전하는) 그 말을 믿지 못했고, (여인은) 오직 양생만이 혼자서 보았다. 그 여인이 양생에게 말하였다.

"함께 저녁이나 드시지요."

양생이 그 말을 여인의 부모에게 알리자, 여인의 부모가 시험해 보려고 같이 밥을 먹게 하였다. 그랬더니 (그 여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으면서) 오직 수저 놀리는 소리만 들렸는데, 인간이 식사하는 것과 한가지였다. 그제야 여인의 부모가 놀라 탄식하면서, 양생에게 권하여 휘장 옆에서 같이 잠자게 하였다. 한밤중에 말소리가 낭랑하게 들렸는데, 사람들이 가만히 엿들으려 하면 갑자기 그 말소리가 끊어졌다.

여인이 양생에게 말하였다.

"제가 법도를 어겼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 『시경』과『서경』을 읽었으므로, 예의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습니다.『시경』에서 말한「건상(褰裳)」『시경』정풍의 시편. 음탕한 여인이 남자를 유혹하는 시이 얼마나 부끄럽고「상서(相鼠)」『시경』용풍의 시편. 무례한 사람을 풍자한 시가 얼마나 얼굴 붉힐 만한 시인지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도 오래 다북쑥 우거진 속에 묻혀서 들판에 버려졌다가 사랑하는 마음이 한 번 일어나고 보니, 끝내 걷잡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난번 절에 가서 복을 빌고 부처님 앞에서 향불을 사르며 박명했던 한평생을 혼자서 탄식하다가 뜻밖에도 삼세(三世)불교에서 전세(前世), 현세(現世), 내세(來世)의 세 가지 세상을 가리킴의 인연을 만나게 되었으므로, 소박한 아내가 되어 백년의 높은 절개를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술을 빚고 옷을 기워 평생 지어미의 길을 닦으려 했었습니다만, 애달프게도 업보(業報)전생에 주어진 운명를 피할 수가 없어서 저승길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즐거움을 미처 다하지도 못하였는데, 슬픈 이별이 닥쳐왔습니다.

이제는 제가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운우(雲雨)는 양대(陽臺)에 개고송옥이 지은 『고당부서』에 나오는 이야기로, 춘추시대 초나라 회왕이 ‘고당’이라는 누대에 놀러갔다가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 무산(巫山)의 선녀가 나타나 정을 통했다. 선녀가 회왕을 모신 뒤에 떠나면서, 자기는 “아침에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양대 아래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회왕이 아침에 보니 과연 구름이 떠 있었다. 이 뒤부터 남녀가 육체적으로 관계하는 것을 운우(雲雨)라고 표현했다. 오작(烏鵲)은 은하에 흩어질 것입니다.견우와 직녀가 칠석날이면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서 만남 이제 한번 헤어지면 뒷날을 기약하기가 어렵습니다. 헤어지려고 하니 아득하기만 해서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여인의 영혼을 전송하자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혼이 문 밖을 나가자 소리만 은은하게 들려 왔다.

저승길도 기한 있으니
슬프지만 이별이라오.
우리 님께 비오니
저버리진 마옵소서.
애달프다 우리 부모
나의 배필을 못 지었네.
아득한 구원(九原)저승에서
마음에 한이 맺히겠네.

남은 소리가 차츰 가늘어지더니 목메어 우는 소리와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여인의 부모는 그제야 그동안 있었던 일이 사실인 것을 알고 더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양생도 또한 그 여인이 귀신인 것을 알고는 더욱 슬픔을 느끼게 되어, 여인의 부모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울었다.

여인의 부모가 양생에게 말하였다.

"은그릇은 자네가 쓰고 싶은 대로 맡기겠네. 또 내 딸자식 몫으로 밭 몇 마지기와 노비 몇 사람이 있으니, 자네는 이것을 신표뒷날 증거로 삼기 위해 서로 주고받는 물건로 하여 내 딸자식을 잊지 말게나."

이튿날 양생이 고기와 술을 마련하여 (개령동) 옛 자취를 찾아갔더니, 과연 시체를 임시로 묻어 둔 곳이 있었다. 양생은 제물을 차려 놓고 슬피 울면서 그 앞에서 지전(紙錢)종이로 만든 가짜 돈. 저승에 가서 쓰라는 뜻으로 관에 넣거나 제사를 지낼 때 태웠음을 불사르고 정식으로 장례를 치러 준 뒤에, 제문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의 뜻을 담은 글을 지어 위로하였다.

아아. 영이시여. 당신은 어릴 때부터 천품이 온순하였고, 자라면서 얼굴이 말끔하였소. 자태는 서시(西施)춘추시대 월나라의 미인 같았고, 문장은 숙진(淑眞)송나라 여류 시인 주숙진을 말하는데, 총명하고 시를 잘 지었다보다도 나았소. 규문(閨門)부녀자가 머물던 곳 밖에는 나가지 않으면서 가정교육을 늘 받아 왔었소. 난리를 겪으면서 정조를 지켰지만, 왜구를 만나 목숨을 잃었구려. 다북쑥 속에 몸을 내맡기고 홀로 지내면서, 꽃 피고 달 밝은 밤에는 마음이 아팠겠구려. 봄바람에 애간장이 끊어지면 두견새의 피울음 소리가 슬프고, 가을 서리에 쓸개가 찢어지면 버림받는 비단부채를 보며 탄식했겠구려. 지난번에 하룻밤 당신을 만나 기쁨을 얻었으니, 비록 저승과 이승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알면서도 물 만난 고기처럼 즐거움을 다하였소. 장차 백 년을 함께 지내려 하였건만, 하루 저녁에 슬피 헤어질 줄이야 어찌 알았겠소?

임이여. 그대는 달나라에서 난새를 타는 선녀가 되고, 무산에 비 내리는 아가씨가 되리다. 땅이 어두워서 돌아오기도 어렵고, 하늘이 막막해서 바라보기도 어렵구려. 나는 집에 들어가도 어이없어 말도 못하고, 밖에 나간대도 아득해서 갈 곳이 없다오. 영혼을 모신 휘장을 볼 때마다 흐느껴 울고, 술을 따를 때에는 마음이 더욱 슬퍼진다오. 아리따운 그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낭랑한 그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오.

아아. 슬프구려. 그대의 성품은 총명하였고, 그대의 기상은 말쑥했었소. 몸은 비록 흩어졌다지만 혼령이야 어찌 없어지겠소? 응당 하늘에서 내려와 뜰에 오르시고, 옆에 와서 슬픔을 돌보소서. 비록 사생(死生)이 다르다지만 이 글이 당신의 마음에 전해지리라 믿소.

장례를 치른 뒤에도 양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밭과 집을 모두 팔아 사흘 저녁이나 잇따라 재(齎)를 올렸더니, 여인이 공중에서 양생에게 말하였다.

"저는 당신의 은혜를 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승과 이승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당신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도 이제 다시 정업(淨業)불교에서 온갖 착한 업을 가리키는 말로, 선업이라고도 함을 닦아 저와 함께 윤회(輪回)사람이 이승에서의 번뇌와 업에 따라,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고 또 죽는 것을 반복하는 일을 말함. 수레바퀴가 끝없이 도는 것과 같아서 윤회라고 했다를 벗어나십시오."

양생은 그 뒤에 다시 장가들지 않았다.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었는데, 언제 죽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원문

南原有梁生者남원유양생자, 早喪父母조상부모, 未有妻室미유처실, 獨居萬福寺之東독거만복사지동. 房外有梨花一株방외유이화일주, 方春盛開방춘성개, 如瓊樹銀堆여경수은퇴, 生每月夜생매월야, 逡巡朗吟其下준순랑음기하. 詩曰시왈:

一樹梨花伴寂廖일수이화반적료, 可憐辜負月明宵가련고부월명소.
靑年獨臥孤窓畔청년독와고창반, 何處玉人吹鳳簫하처옥인취봉소.

翡翠孤飛不作雙비취고비불작쌍, 鴛鴦失侶浴晴江원앙실려욕청강.
誰家有約敲碁子수가유약고기자, 夜卜燈花愁倚窓야복등화수의창.

吟罷음파, 忽空中有聲曰홀공중유성왈: “君欲得好逑군욕득호구, 何憂不遂하우불수.” 生心憙之생심희지, 明日卽三月二十四日也명일즉삼월이십사일야. 州俗燃燈於萬福寺祈福주속연등어만복사기복, 士女騈集사녀병집, 各呈其志각정기지. 日晩梵罷人稀일만범파인희, 生袖摴蒲생수저포, 擲於佛前曰척어불전왈: “吾今日오금일, 與佛欲鬪蒲戱여불욕투포희, 若我負약아부, 則設法筵以賽칙설법연이새, 若不負약불부, 則得美女즉득미녀, 以遂我願耳이수아원이.” 祝訖축흘, 遂擲之수척지, 生果勝생과승, 卽跪於佛前曰즉궤어불전왈: “業已定矣업이정의, 不可誑矣불가광의.” 遂隱於几下수은어궤하, 以候其約이후기약.

俄而有一美姬아이유일미희, 年可十五六연가십오륙, 丫鬟淡飾아환담식, 儀容婥妁의용작작, 如仙姝天妃여선주천비, 望之儼然망지엄연, 手携油甁수휴유병, 添燈揷香첨등삽향, 三拜而跪삼배이궤, 噫而歎曰희이탄왈: “人生薄命인생박명, 乃如此邪내여차사?” 遂出懷中狀詞수출회중장사, 獻於卓前헌어탁전. 其詞曰기사왈: “某州某地居住모주모지거주, 何氏某하씨모, 竊以曩者절이낭자, 邊方失禦倭寇來侵변방실어왜구래침, 干戈滿目간과만목, 烽燧連年봉수연년, 焚蕩室廬분탕실려, 盧掠生民로략생민, 東西奔竄동서분찬, 左右逋逃좌우포도, 親戚僮僕친척동복, 各相亂離각상난리, 妾以蒲柳弱質첩이포유약질, 不能遠逝불능원서, 自入深閨자입심규, 終守幽貞종수유정, 不爲行露之沾불위행로지첨, 以避橫逆之禍이피횡역지화, 父母以女子守節不爽부모이녀자수절불상, 避地僻處피지벽처, 僑居草野교거초야, 已三年矣이삼년의. 然而秋月春花연이추월춘화, 傷心虛度상심허도, 野雲流水야운류수, 無聊送日무료송일, 幽居在空谷유거재공곡, 歎平生之薄命탄평생지박명, 獨宿度良宵독숙도량소, 傷彩鸞之獨舞상채란지독무, 日居月諸일거월제, 魂銷魄喪혼소백상, 夏日冬宵하일동소, 膽裂腸摧담렬장최, 惟願覺皇유원각황, 曲垂憐愍곡수련민, 生涯前定생애전정, 業不可避업불가피, 賦命有緣부명유연, 早得歡娛조득환오, 無任懇禱之至무임간도지지.”

女旣投狀녀기투장, 嗚咽數聲오열수성. 生於隙中생어극중, 見其姿容견기자용, 不能定情불능정정, 突出而言曰돌출이언왈: “向者投狀향자투장, 爲何事也위하사야?” 見女狀辭견녀장사, 喜溢於面희일어면, 謂女子曰위녀자왈: “子何如人也자하여인야, 獨來于此독래우차?” 女曰녀왈: “妾亦人也첩역인야, 夫何疑訝之有부하의아지유, 君但得佳匹군단득가필, 不必問名姓불필문명성, 若是其顚倒也약시기전도야.” 時寺已頹落시사이퇴락, 居僧住於一隅거승주어일우, 殿前只有廊廡전전지유랑무, 蕭然獨存소연독존, 廊盡處랑진처, 有板房甚窄유판방심착. 生挑女而入생도녀이입, 女不之難녀불지난, 相與講歡상여강환, 一如人間일여인간.

將及夜半장급야반, 月上東山월상동산, 影入窓柯영입창가, 忽有跫音홀유공음, 女曰녀왈: “誰耶수야? 將非侍兒來耶장비시아래야?” 兒曰아왈: “. 向日娘子향일낭자, 行不過中門행불과중문, 履不容數步리불용수보, 昨暮偶然而出작모우연이출, 一何至於此極也일하지어차극야?” 女曰녀왈: “今日之事금일지사, 蓋非偶然개비우연, 天之所助천지소조, 佛之所佑불지소우, 逢一粲者봉일찬자, 以爲偕老也이위해로야. 不告而娶불고이취, 雖明敎之法典수명교지법전, 式燕以遨식연이오, 亦平生之奇遇也역평생지기우야. 可於茅舍가어모사, 取裀席酒果來취인석주과래.”

侍兒一如其命而往시아일여기명이왕, 設筵於庭설연어정, 時將四更也시장사경야. 鋪陳几案포진궤안, 素淡無文소담무문, 而醪醴馨香이료례형향, 定非人間滋味정비인간자미. 生雖疑怪생수의괴, 談笑淸婉담소청완, 儀貌舒遲意必貴家處子의모서지의필귀가처자, 踰墻而出유장이출, 亦不之疑也역불지의야. 觴進상진, 命侍兒명시아, 歌以侑之가이유지, 謂生曰위생왈: “兒定仍舊曲아정잉구곡, 請自청자 製一章以侑제일장이유, 如何여하?” 生欣然應之曰생흔연응지왈: “.” 乃製滿江紅一闋내제만강홍일결, 命侍兒歌之曰명시아가지왈:

惻惻春寒羅衫薄측측춘한나삼박, 幾回腸斷金鴨冷기회장단금압냉.
晩山凝黛만산응대, 暮雲張繖모운장산.
錦帳鴛衾無與伴금장원금무여반, 寶釵半倒吹龍管보채반도취용관.
可惜許光陰易跳丸가석허광음이도환, 中情懣중정만.
燈無焰銀屛短등무염은병단, 徒收淚誰從款도수루수종관.
喜今宵희금소, 鄒律一吹回暖추율일취회난.
破我佳城千古恨파아가성천고한, 細歌金縷傾銀椀세가금루경은완.
悔昔時抱恨회석시포한, 蹙眉兒眠孤館축미아면고관.

歌竟가경, 女愀然曰녀초연왈: “曩者蓬島낭자봉도, 失當時之約실당시지약, 今日瀟湘금일소상, 有故人之逢유고인지봉, 得非天幸耶득비천행야. 郞若不我遐棄랑약불아하기, 終奉巾櫛종봉건즐, 如失我願여실아원, 永隔雲泥영격운니.” 生聞此言생문차언, 一感一驚曰일감일경왈: “敢不從命감불종명?” 然其態度不凡연기태도불범, 生熟視所爲생숙시소위, 時月掛西峯시월괘서봉, 鷄鳴荒村계명황촌, 寺鐘初擊사종초격, 曙色將暝서색장명. 女曰여왈: “兒可撤席而歸아가철석이귀, 隨應隨滅不知所之수응수멸부지소지.” 女曰녀왈: “因緣已定인연이정, 可同携手가동휴수.” 生執女手생집녀수, 經過閭閻경과여염, 犬吠於籬견폐어리, 人行於路인행어로, 而行人不知與女同歸이행인부지여녀동귀, 但曰단왈: “生早歸何處생조귀하처?” 生答曰생답왈: “適醉臥萬福寺적취와만복사, 投故友之村墟也투고우지촌허야

至詰朝지힐조, 女引至草莽間녀인지초망간, 零露瀼瀼령로양양, 無逕路可遵무경로가준. 生曰생왈: “何居處之若此也하거처지약차야?” 女曰녀왈: “孀婦之居상부지거, 固如此耳고여차이.” 女又謔曰녀우학왈:

於邑行路어읍행로, 豈不夙夜기불숙야, 謂行多露위행다로.

生乃謔之曰생내학지왈:

有狐綏綏유호수수, 在彼淇梁재피기양. 魯道有蕩노도유탕, 齊子翶翔제자고상.

吟而笑傲음이소오. 遂同去開寧洞수동거개령동, 蓬蒿蔽野봉호폐야, 荊棘參天형극참천, 有一屋유일옥, 小而極麗소이극려, 邀生俱入요생구입, 裀褥帳幃極整인욕장위극정, 如昨夜所陳여작야소진. 留三日유삼일, 歡若平生然환약평생연, 其侍兒기시아, 美而不黠미이불힐, 器皿潔而不文기명결이불문, 意非人世의비인세, 而繾綣意篤이견권의독, 不復思廬불복사려, 已而女謂生曰이이녀위생왈: “此地三日不下三年君當還家以顧生業也차지삼일불하삼년군당환가이고생업야.” 遂設離宴以別수설리연이별, 生悵然曰생창연왈: “何遽別之速也하거별지속야?” 女曰녀왈: “當再會당재회, 以盡平生之願爾이진평생지원이, 今日到此弊居금일도차폐거, 必有夙緣필유숙연, 宜見鄰里族親의견린리족친, 如何여하?” 生曰생왈: “.” 卽命侍兒즉명시아, 報四鄰以會보사린이회.

其一曰鄭氏기일왈정씨. 其二曰吳氏기이왈오씨. 其三曰金氏기삼왈김씨. 其四曰柳氏기사왈류씨. 皆貴家巨族개귀가거족, 而與女子이여녀자, 同閭閈親戚동려한친척, 而處子者也이처자자야. 性俱溫和성구온화, 風韻不常풍운불상, 而又聰明識字이우총명식자, 能爲詩賦능위시부, 皆作七言短篇四首以贐개작칠언단편사수이신, 鄭氏態度風流정씨태도풍류, 雲鬟掩鬢운환엄빈, 乃噫而吟曰내희이음왈:

春宵花月兩嬋娟춘소화월량선연, 長把春愁不記年장파춘수불기년.
自恨不能如比翼자한불능여비익, 雙雙相戱舞靑天쌍쌍상희무청천.

漆燈無焰夜如何칠등무염야여하, 星斗初橫月半斜성두초횡월반사.
惆悵幽宮人不到추창유궁인불도, 翠衫撩亂鬢鬖취삼료난빈삼사.

摽梅情約竟蹉跎표매정약경차타, 辜負春風事已過고부춘풍사이과.
枕上淚痕幾圓點침상루흔기원점, 滿庭山雨打梨花만정산우타이화.

一春心事已無聊일춘심사이무료, 寂寞空山幾度宵적막공산기도소.
不見藍橋經過客불견남교경과객, 何年裴航遇雲翹하년배항우운교.

吳氏오씨, 丫鬟妖弱아환요약, 不勝情態불승정태, 繼吟曰계음왈:

寺裏燒香歸去來사리소향귀거래, 金錢暗擲竟誰媒금전암척경수매.
春花秋月無窮恨춘화추월무궁한, 銷却樽前酒一盃소각준전주일배.

漙漙曉露浥桃腮단단효로읍도시, 幽谷春深蝶不來유곡춘심접불래.
却喜隣家銅鏡合각희린가동경합, 更歌新曲酌金疊갱가신곡작금첩.

年年燕子舞東風년년연자무동풍, 腸斷春心事已空장단춘심사이공.
羨却芙蕖猶竝蔕선각부거유병체, 夜深同浴一池中야심동욕일지중.

一層樓在碧山中일층루재벽산중, 連理枝頭花正紅연리지두화정홍.
却恨人生不如樹각한인생불여수, 靑年薄命淚凝瞳청년박명루응동.

金氏김씨, 整其容儀정기용의, 儼然染翰엄연염한, 責其前詩책기전시, 淫佚太甚음일태심, 而言曰이언왈: “今日之事금일지사, 不必多言불필다언, 但叙光景단서광경, 胡乃陳懷호내진회, 以失其節이실기절, 傳鄙懷於人間전비회어인간.” 遂郞然賦曰수랑연부왈:

杜鵑鳴了五更風두견명료오경풍, 寥落星河已轉東요락성하이전동.
莫把玉簫重再弄막파옥소중재롱, 風情恐與俗人通풍정공여속인통.

滿酌烏程金叵羅만작오정금파라, 會須取醉莫辭多회수취취막사다.
明朝捲地東風惡명조권지동풍약, 一段春光奈夢何일단춘광내몽하.

綠紗衣袂懶來垂록사의몌라래수, 絃管聲中酒百巵현관성중주백치.
淸興未闌歸未可청흥미란귀미가, 更將新語製新詞갱장신어제신사.

幾年塵土惹雲鬟기년진토야운환, 今日逢人一解顔금일봉인일해안.
莫把高唐神境事막파고당신경사, 風流話柄落人間풍류화병락인간.

柳氏류씨, 淡粧素服담장소복, 不甚華麗불심화려, 而法度有常이법도유상, 沈黙不言침묵불언, 微笑而題曰미소이제왈:

確守幽貞經幾年확수유정경기년, 香魂玉骨掩重泉향혼옥골엄중천.
春宵每與姮娥伴춘소매여항아반, 叢桂花邊愛獨眠총계화변애독면.

却笑春風桃李花각소춘풍도리화, 飄飄萬點落人家표표만점락인가.
平生莫把靑蠅點평생막파청승점, 誤作崑山玉上瑕오작곤산옥상하.

脂粉慵拈首似蓬지분용념수사봉, 塵埋香匣綠生銅진매향갑록생동.
今朝幸預鄰家宴금조행예린가연, 羞看冠花別樣紅수간관화별양홍.

娘娘今配白面郞낭낭금배백면랑, 天定因緣契闊香천정인연계활향.
月老已傳琴瑟線월로이전금슬선, 從今相待似鴻光종금상대사홍광.

女乃感柳氏終篇之語녀내감류씨종편지어, 出席而告曰출석이고왈: “余亦粗知字畵여역조지자화, 獨無語乎독무어호.”

乃製近體七言四韻내제근체칠언사운, 以賦曰이부왈:

開寧洞裏抱春愁개령동리포춘수, 花落花開感百憂화락화개감백우.
楚峽雲中君不見초협운중군불견, 湘江竹下泣盈眸상강죽하읍영모.

晴江日暖鴛鴦竝청강일난원앙병, 碧落雲銷翡翠遊벽락운소비취유.
好是同心雙綰結호시동심쌍관결, 莫將紈扇怨淸秋막장환선원청추.

生亦能文者생역능문자. 見其詩法淸高견기시법청고, 音韻鏗鏘음운갱장, 唶唶不已차차불이. 卽於席前즉어석전, 走書古風長短篇一章주서고풍장단편일장, 以答曰이답왈:

今夕何夕금석하석, 見此仙姝견차선주.
花顔何婥妁화안하작작, 絳脣似櫻珠강순사앵주.
風騷尤巧妙풍소우교묘, 易安當含糊이안당함호.
織女投機下天津직녀투기하천진, 嫦娥抛杵離淸都항아포저리청도.
靚粧照此玳瑁筵정장조차대모연, 羽觴交飛淸讌娛우상교비청연오.
殢雨尤雲雖未慣체우우운수미관, 淺斟低唱相怡愉천짐저창상이유.
自喜誤入蓬萊島자희오입봉래도, 對此仙府風流徒대차선부풍류도.
瑤漿瓊液溢芳樽요장경액일방준, 瑞腦霧噴金猊爐서뇌무분금예로.
白玉牀前香屑飛백옥상전향설비, 微風撼波靑紗廚미풍감파청사주.
眞人會我合巹巵진인회아합근치, 綵雲冉冉相縈紆채운염염상영우.
君不見文簫遇彩鸞군불견문소우채란, 張碩逢杜蘭장석봉두란.
人生相合定有緣인생상합정유연, 會須擧白相闌珊회수거백상란산.
娘子何爲出輕言낭자하위출경언, 道我掩棄秋風紈도아엄기추풍환.
世世生生爲配耦세세생생위배우, 花前月下相盤桓화전월하상반환.

酒盡相別주진상별, 女出銀椀一具녀출은완일구, 以贈生曰이증생왈: “明日명일, 父母飯我于寶蓮寺부모반아우보련사. 若不遺我약불유아, 請遲于路上청지우로상, 同歸梵宇동귀범우, 同覲我父母동근아부모, 如何여하?” 生曰생왈: “.”

生如其言생여기언, 執椀待于路上집완대우로상, 果見巨室右族과견거실우족, 薦女子之大祥車馬騈闐上于寶蓮천녀자지대상차마병전상우보련, 見路傍견로방, 有一書生유일서생, 執椀而立집완이립, 從者曰종자왈: “娘子殉葬之物낭자순장지물, 已爲他人所偸矣이위타인소투의.” 主曰주왈: “如何여하?” 從者曰종자왈: “此生所執之椀차생소집지완.” 遂聚馬以問수취마이문, 生如其前約以對생여기전약이대, 父母感訝良久曰부모감아량구왈: “吾止有一女子오지유일녀자, 當寇賊傷亂之時당구적상난지시, 死於干戈사어간과, 不能窀窆불능둔폄, 殯于開寧寺之間빈우개령사지간, 因循不葬인순부장, 以至于今이지우금. 今日大祥已至금일대상이지, 暫設齌筵잠설제연, 以追冥路이추명로. 君如其約군여기약, 請竢女子以來청사녀자이래, 願勿愕也원물악야.” 言訖先歸언흘선귀.

生佇立以待생저립이대. 及期급기, 果一女子과일녀자, 從侍婢종시비, 腰裊而來요뇨이래, 卽其女也즉기녀야. 相喜携手而歸상희휴수이귀, 女入門禮佛녀입문예불, 投于素帳之內투우소장지내, 親戚寺僧친척사승, 皆不之信개불지신, 唯生獨見유생독견, 女謂生曰녀위생왈: “可同茶飯가동차반.” 生以其言생이기언, 告于父母고우부모. 父母試驗之부모시험지, 遂命同飯수명동반, 唯聞匙筋聲유문시근성, 一如人間일여인간. 父母於是驚歎부모어시경탄, 遂勸生수권생, 同宿帳側동숙장측, 中夜言語琅琅중야언어낭랑, 人欲細聽인욕세청, 驟止其言曰취지기언왈: “妾之犯律첩지범률, 自知甚明자지심명. 少讀詩書소독시서, 粗知禮義조지예의, 非不諳褰裳之可愧비불암건상지가괴, 相鼠之可赧상서지가난, 然而久處蓬蒿연이구처봉호, 抛棄原野포기원야, 風情一發풍정일발, 終不能戒종불능계. 曩者낭자, 梵宮祈福범궁기복, 佛殿燒香불전소향, 自嘆一生之薄命자탄일생지박명, 忽遇三世之因緣홀우삼세지인연. 擬欲荊釵椎䯻의욕형채추고, 奉高節於百年봉고절어백년, 羃酒縫裳멱주봉상, 修婦道於一生수부도어일생. 自恨業不可避자한업불가피, 冥道當然명도당연, 歡娛未極환오미극, 哀別遽至애별거지. 今則步蓮入屛금즉보련입병, 阿香輾車아향전차, 雲雨霽於陽臺운우제어양대, 烏鵲散於天津오작산어천진, 從此一別종차일별, 後會難期후회난기. 臨別凄惶임별처황, 不知所云부지소운.” 送魂之時송혼지시, 哭聲不絶곡성부절, 至于門外지우문외, 但隱隱有聲曰단은은유성왈:

冥數有限명수유한, 慘然將別참연장별.
願我良人원아양인, 無或踈闊무혹소활.
哀哀父母애애부모, 不我匹兮불아필혜.
漠漠九原막막구원, 心糾結兮심규결혜.

餘聲漸滅여성점멸, 嗚哽不分오경불분, 父母已知其實부모이지기실, 不復疑問불복의문. 生亦知其爲鬼생역지기위귀, 尤增傷感우증상감, 與父母聚頭而泣여부모취두이읍, 父母謂生曰부모위생왈: “銀椀任君所用은완임군소용. 但女子단녀자, 有田數頃유전수경, 蒼赤數人창적수인, 君當以此爲信군당이차위신, 勿忘吾女子물망오녀자.”

翌日익일, 設牲牢朋酒설생뢰붕주, 以尋前迹이심전적, 果一殯葬處也과일빈장처야. 生設奠哀慟생설전애통, 焚楮鏹于前분저강우전, 遂葬焉수장언. 作文以弔之曰작문이조지왈:

惟靈유령, 生而溫麗생이온려, 長而淸渟장이청정. 儀容侔於西施의용모어서시, 詩賦高於淑眞시부고어숙진, 不出香閨之內불출향규지내, 常聽鯉庭之箴상청리정지잠. 逢亂離而璧完봉난리이벽완, 遇寇賊而珠沈우구적이주침. 托蓬蒿而獨處탁봉호이독처, 對花月而傷心대화월이상심. 腸斷春風장단춘풍, 哀杜鵑之啼血애두견지제혈, 膽裂秋霜담렬추상, 歎紈扇之無緣탄환선지무연. 嚮者향자, 一夜邂逅일야해후, 心緖纏綿심서전면. 雖識幽明之相隔수식유명지상격, 實盡魚水之同歡실진어수지동환. 將謂百年以偕老장위백년이해로, 豈期一夕而悲酸기기일석이비산. 月窟驂鸞之姝월굴참란지주, 巫山行雨之娘무산행우지낭, 地黯黯而莫歸지암암이막귀, 天漠漠而難望천막막이난망. 入不言兮恍惚입불언혜황홀, 出不逝兮蒼茫출불서혜창망. 對靈幃而掩泣대령위이엄읍, 酌瓊漿而增傷작경장이증상. 感音容之窈窈감음용지요요, 想言語之琅琅상언어지낭랑. 嗚虖哀哉오호애재. 爾性聰慧이성총혜, 爾氣精詳이기정상. 三魂縱散삼혼종산, 一靈何亡일령하망. 應降臨而陟庭응강임이척정, 或薰蒿而在傍혹훈호이재방. 雖死生之有異수사생지유이, 庶有感於些章서유감어사장.”

後極其情哀후극기정애, 盡賣田舍진매전사, 連薦再三夕련천재삼석, 女於空中녀어공중, 唱曰창왈: “蒙君薦拔몽군천발, 已於他國이어타국, 爲男子矣위남자의. 雖隔幽明수격유명, 寔深感佩식심감패. 君當復修淨業군당복수정업, 同脫輪回동탈륜회.”

生後不復婚嫁생후불복혼가, 入智異山採藥입지이산채약, 不知所終부지소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