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어역
(전라도) 남원에 양생(梁生)이 살고 있었는데, 일찍이 어버이를 잃은 데다 아직 장가도 들지 못했으므로 만복사(萬福寺)전라도 남원 기린산에 있던 절로, 고려 문종 때 창건했다. 1957년 정유재란 때 왜적의 침입으로 불타 버렸으나, 남원 왕정동에서 절터가 발굴되어 현재는 오층석탑, 불상 석좌, 당간지주, 석불 입상 등의 석조물이 남아 있다의 동쪽에서 혼자 살았다. 방 밖에는 배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마침 봄이 되어 꽃이 활짝 피었다. 마치 옥으로 만든 나무 같기도 하고, 은 조각이 쌓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양생은 달이 뜬 밤마다 나무 아래를 거닐며 낭랑하게 시를 읊었는데, 그 시는 이렇다. 한 그루 배꽃나무 쓸쓸함을 벗 삼으니, 외로운 저 비취(翡翠)는 제 홀로 날아가고 시를 다 읊고 나자 갑자기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대가 참으로 아름다운 짝을 얻고 싶다면 어찌 이뤄지지 않으리라고 걱정하느냐?” 양생은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그 이튿날은 마침 삼월 이십사일이었다. 이 고을에서는 만복사에 등불을 밝히고 복을 비는 풍속이 있었는데, 남녀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소원을 빌었다. 날이 저물고 법회도 끝나자 사람들이 드물어졌다. 양생이 소매 속에서 저포(摴蒲)백제시대 노름의 한 가지로 윷놀이와 비슷하다. 나무로 만든 주사위를 던져서 승부를 다투었다.를 꺼내어 부처 앞에다 던지면서 (소원을 빌었다.) "제가 오늘 부처님을 모시고 저포놀이를 하여 볼까 합니다. 만약 제가 지면 법연(法筵)불도를 강설하고 범패를 올리는 자리인데, 법석과 같은 뜻을 차려서 부처님께 치성을 드리겠습니다. 만약 부처님이 지시면 아름다운 여인을 얻어서 제 소원을 이루게 하여 주십시오." 빌기를 마치고 곧 저포를 던지자, 양생이 과연 이겼다. 그래서 부처 앞에 무릎은 꿇고 앉아서 말하였다. "인연이 이미 정하여졌으니, 속이시면 안 됩니다." 그는 불좌(佛座)부처를 모신 자리 뒤에 숨어서 그 약속에 이루어지기를 기다렸다. 얼마 뒤에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들어오는데, 나이는 열대여섯쯤 되어 보였다. 머리를 두 갈래로 땋고 깨끗하게 차려 입었는데, 아름다운 얼굴과 고운 몸가짐이 마치 하늘의 선녀 같았다. 바라볼수록 얌전하였다. 그 여인은 기름병을 가지고 와서 등잔에 기름을 따라 넣은 다음 향을 꽂았다.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아 슬피 탄식하였다. "인생이 박명(薄命)복이 없고 팔자가 서러움하다지만, 어찌 이럴 수가 있으랴?" 그리고는 품속에서 축원문을 꺼내어 불탁(佛卓)부처를 모신 탁자 위에 바쳤다. 그 글은 이렇다. 아무 고을 아무 동네에 사는 소녀 아무개가 (외람됨을 무릅쓰고 부처님께 아룁니다.) 지난번에 변방의 방어가 무너져 왜구가 쳐들어오자, 싸움이 눈앞에 가득 벌어지고 봉화가 여러 해나 계속되었습니다. 왜놈들이 집을 불살라 없애고 생민들을 노략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동서로 달아나고 좌우로 도망하였습니다. 우리 친척과 종들도 각기 서로 흩어졌었습니다. 저는 버들처럼 가냘픈 소녀의 몸이라 멀리 피난을 가지 못하고, 깊숙한 규방에 들어앉아 끝까지 정절을 지켰습니다. 윤리에 벗어난 행실을 저지르지 않고서 난리의 화를 면하였습니다. 저의 어버이께서도 여자로서 정절을 지킨 것이 그르지 않았다고 하여, 외진 곳으로 옮겨 초야(草野)‘풀이 난 들’이라는 뜻으로 궁벽한 시골을 말함에 붙여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런지가 벌써 삼 년이나 되었습니다. 가을 달밤과 꽃 피는 봄날을 아픈 마음으로 헛되이 보내고, 뜬구름 흐르는 물과 더불어 무료하게 나날을 보냈습니다. 쓸쓸한 골짜기에 외로이 머물면서 제 박명한 평생을 탄식하였고, 아름다운 밤을 혼자 지새우면서 (짝 잃은) 채란(彩鸞)『산해경』을 보면 여장의 산에 꿩처럼 생긴 새가 오색 무늬를 띠었는데 난조(鸞鳥)라 한다고 했다. 부부 금실이 좋아서, 짝을 잃은 난조가 삼 년 동안 울지 않다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슬피 울면서 하늘로 튀어 올라 죽었다는 고사가 있다. 채란은 난새라고도 한다.의 외로운 춤을 슬퍼하였습니다. 그런데 날이 가고 달이 가니 이제는 혼백마저 사라지고 흩어졌습니다. (기나긴) 여름날과 겨울밤에는 간담이 찢어지고 창자까지 찢어집니다. 오직 부처님께 비오니, 이 몸을 가엽게 여기시어 각별히 돌보아 주소서. 인간의 생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으며 선악의 응보를 피할 수 없으니, 제가 타고난 운명에도 인연이 있을 것입니다. 빨리 배필을 얻게 해 주시길 간절히 비옵니다. 여인이 빌기를 마치고 나서 여러 번 흐느껴 울었다. 양생은 불좌 틈으로 여인의 얼굴을 보고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으므로, 갑자기 뛰쳐나가 말하였다. "조금 전에 글을 올린 것은 무슨 일 때문이신지요?" 그는 여인이 부처님께 올린 글을 보고 얼굴에 기쁨이 흘러넘치며 말하였다. "아가씨는 어떤 사람이기에 혼자서 여기까지 왔습니까?" 여인이 대답하였다. "저도 또한 사람입니다. 대체 무슨 의심이라도 나시는지요? 당신께서는 다만 좋은 배필만 얻으면 되실 테니까, 반드시 이름을 묻거나 그렇게 당황하지 마십시오." 이때 만복사는 이미 퇴락하여 스님들은 한쪽 구석진 방에 머물고 있었다. 법당 앞에는 행랑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고, 행랑이 끝난 곳에 아주 좁은 판잣방이 있었다. 양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판잣방으로 들어가자, 여인도 어려워하지 않고 들어왔다. 서로 즐거움을 나누었는데, 보통 사람과 한가지였다. 이윽고 밤이 깊어 달이 동산에 떠오르자 창살에 그림자가 비쳤다. 문득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여인이 물었다. "누구냐? 시녀가 찾아온 게 아니냐?" 시녀가 말하였다. "예, 평소에는 아가씨가 문 밖에도 나가지 않으시고 서너 걸음도 걷지 않으셨는데, 어제 저녁에는 우연히 나가셨다가 어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오늘의 일은 우연이 아니다. 하느님이 도우시고 부처님이 돌보셔서, 고운 님을 맞이하여 백년해로를 하게 되었다. 어버이께 여쭙지 못하고 시집가는 것은 비록 예법에 어그러졌지만, 서로 즐거이 맞이하게 된 것은 또한 평생의 기이한 인연이다. 너는 집으로 가서 앉을 자리와 술안주를 가지고 오너라." 시녀가 그 명령대로 가서 뜰에 술자리를 베푸니, 시간은 벌써 사경(四更)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누었을 때, 네 번째 시간. 새벽1시부터 3시 사이다이나 되었다. (시녀가 차려 놓은) 방석과 술상은 무늬가 없이 깨끗하였으며, 술에서 풍기는 향내도 정녕 인간 세상의 솜씨는 아니었다. 양생은 비록 의심나고 괴이하였지만, 여인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맑고 고우며 얼굴과 몸가짐이 얌전하여, '틀림없이 귀한 집 아가씨가 (한때의 마음을 잡지 못하여) 담을 넘어 나왔구나' 생각하고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여인이 양생에게 술잔을 올리면서 시녀에게 명하여 “노래를 불러 흥을 도우라.” 하고는, 양생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는 옛 곡조밖에 모릅니다. 저를 위하여 새 노래를 하나 지어 흥을 도우면 어떻겠습니까?" 양생이 흔연히 허락하고는 곧 「만강홍(滿江紅)노랫가락의 이름으로, 송나라 때부터 이 가락에다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것이 유행이었다」 가락으로 가사를 하나 지어 시녀에게 부르게 하였다. 쌀쌀한 봄추위에 명주 적삼은 아직도 얇아 노래가 끝나자 여인이 서글프게 말하였다. "지난번에 봉도(蓬島)중국 전설에 나오는 가상의 산으로 신령스러운 산이라 여겨짐.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가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었다는 고사가 있다.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은 어겼지만, 오늘 소상강(瀟湘江)소수와 상수를 함께 부르는 이름. 상수는 중국 광서성 홍안현에서 흘러나와 호남성의 동정호로 흘러드는 강물인데, 영릉 부근에서 소수와 만난다. 순임금이 남쪽 지방을 돌아보다가 창오산에서 죽자, 그의 두 아내 아황과 여영이 이곳에 찾아와 피눈물을 뿌리고 울다가 상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에서 옛 낭군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하늘이 내린 행운이 아니겠습니까? 낭군께서 저를 멀리 버리지 않으신다면 끝까지 시중을 들겠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제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신다면 저는 영원히 자취를 감추겠습니다." 양생이 이 말을 듣고 한편 놀라며 한편 고맙게 생각하여 대답하였다. "어찌 당신의 말에 따르지 않겠소?" 그러면서도 여인의 태도가 범상치 않았으므로, 양생은 유심히 행동을 살펴보았다. 이때 달이 서산에 걸리자 먼 마을에서는 닭이 울고 절의 종소리가 들려 왔다. 먼동이 트려 하자 여인이 말하였다. "얘야. 술자리를 거두어 집으로 돌아가거라." 시녀는 대답하자마자 없어졌는데,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여인이 말하였다. "인연이 이미 정해졌으니 낭군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양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마을을 지나가는데, 개는 울타리에서 짖고 사람들이 길에 다녔다. 그러나 길 가던 사람들은 그가 여인과 함께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렇게 물을 뿐이었다. "양 총각, 새벽부터 어디에 다녀오시오?" 양생이 대답하였다. "어젯밤 만복사에서 취해 누웠다가 이제 친구가 사는 마을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날이 새자 여인이 양생을 이끌고 깊은 숲을 헤치며 가는데, 이슬이 흠뻑 내려서 갈 길이 아득하였다. 양생이 말하였다. "어찌 당시 거처하는 곳이 이렇소?" 여인이 대답하였다. "혼자 사는 여자의 거처가 원래 이렇답니다." 여인이 또 (『시경』에 나오는 옛 시 한 수를 외워) 농을 걸어왔다. 이슬 축축이 젖은 길 양생 또한 (『시경』에 나오는 옛 시 한 수를) 농 삼아 화답하였다. 여우가 어슬렁어슬렁 둘이 읊고 한바탕 웃은 다음에 함께 개령동(開寧洞)거령(居寧)을 말하는 듯한데, 지금의 전라북도 임실군 청웅면이다.으로 갔다. (한 곳에 이르자) 다북쑥이 들을 덮고 가시나무가 하늘로 치솟은 가운데 한 집이 있었는데, 작으면서도 아주 아름다웠다. 그는 여인이 이끄는 대로 따라 들어갔다. 방안에는 이부자리와 휘장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밥상을 올리는 것도) 어젯밤 (만복사에) 차려온 것과 같았다. 양생은 그곳에서 사흘을 머물렀는데, 즐거움이 평상시와 같았다. 시녀는 아름다우면서도 교활하지 않았고, 그릇은 깨끗하면서도 무늬가 없었다.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여인의 은근한 정에 마음이 끌려,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마 뒤에 여인이 양생에게 말하였다. "이곳의 사흘은 인간세상의 삼 년과 같습니다. 낭군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셔서 생업을 돌보십시오." 드디어 이별의 잔치를 베풀며 헤어지게 되자, 양생이 서글프게 말하였다. "어찌 이별이 이다지도 빠르오?" 여인이 말하였다. "다시 만나 평생의 소원을 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누추한 곳에 오시게 된 것도 반드시 묵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웃 친척들을 만나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양생이 '좋다'고 하자 곧 시녀에게 시켜, 사방의 이웃에게 알려 모이게 하였다. 첫째는 정씨이고, 둘째는 오씨이며, 셋째는 김씨이고, 넷째는 류씨인데, 모두 문벌이 높은 귀족집의 따님들이었다. 이 여인과는 한 마을에 사는 친척 처녀들이었다. 성품이 온화하며 풍운(風韻)풍류와 운치이 보통 아니었고, 총명하고 글도 또한 많이 알아 시를 잘 지었다. 이들이 모두 칠언절구 네 수씩을 지어 양생을 전송하였다. 정씨는 태도와 풍류가 갖추어진 여인인데, 구름같이 쪽진 머리가 귀밑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정씨가 탄식하며 시를 읊었다. 봄이라 꽃피는 밤 달빛마저 고운데 칠등(漆燈)무덤 속 등불엔 불빛도 없으니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매화 지니 정다운 약속도 부질없이 되어 버렸네.매화가 떨어져 시드는 것을 처녀가 결혼할 시기를 놓친 데 비유한 말이다. 『시경』 소남편 「표유매」 장에 “매실이 다 떨어지고 그 열매 일곱만 남았네. 나를 데려가실 총각님네들 길일을 받아서 빨리 장가드세요.” 했다. 꽃다운 청춘을 하염없이 지내려니 오씨는 두 갈래로 땋은 머리에 가냘픈 몸매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정회를 걷잡지 못하며, 뒤를 이어 읊었다. (만복사) 절에 향 올리고 돌아오던 길이던가 복사꽃 붉은 뺨에 새벽이슬이 젖건마는 해마다 오는 제비는 봄바람에 춤을 추건만 푸른 산 속에 다락이 하나 높이 솟아 김씨가 얼굴빛을 가다듬고 얌전한 태도로 붓을 잡더니, 앞에 읊은 시들이 너무 음탕하다고 꾸짖으면서 말하였다. "오늘 모임에서는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고, 이 자리의 광경만 읊으면 됩니다. 어찌 자기들의 속마음을 베풀어 우리의 절조를 잃게 하고, (저 손님으로 하여금) 우리들의 마음을 인간 세상에 전하도록 하겠습니까?" 그리고는 낭랑하게 시를 읊었다. 밤 깊어 오경(五更)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누었을 때, 마지막 시간. 새벽3시부터 5시 사이다이 되니 소쩍새가 슬피 울고 오정주(烏程酒)오정에서 만든 술. 오정은 지금의 절강성 오흥현이다를 가득히 금술잔에 부으리다 초록빛 소맷자락 부드럽게 드리우고 구름같이 고운 머리가 티끌 된 지 몇 해던가 류씨는 엷게 화장하고 흰옷을 입어 아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법도가 있어 보였다. 말없이 가만있다가 (자기의 차례가 되자) 빙그레 웃으면서 시를 지어 읊었다. 금석같이 굳세게 정절을 지켜온 지 몇 해던가. 우습구나. 복사꽃과 자두꽃은 봄바람에 못 이겨서 연지도 분도 게을러 바르지 않고 머리는 다북쑥 같아 아가씨는 이제야 백면(白面)글만 읽어서 얼굴이 흰 선비, 흔히 백면서생이라고 한다 낭군을 만났으니 여인은 류씨가 읊은 시의 마지막 장을 듣고 감사하여, 앞으로 나와서 말하였다. "저도 또한 자획은 대강 분별할 정도이니, 어찌 홀로 시를 짓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칠언율시 한 편을 지어 읊었다. 개령동 골짜기에 봄 시름을 안고서 양생도 또한 문장에 능한 사람이어서, 그들의 시법이 맑고도 운치가 높으며 음운이 맑게 울리는 것을 보고 칭찬하여 마지않았다. 그도 곧 즉석에서 고풍(古風)당나라 이전에 있던 옛 시로, 법칙이 엄격하지 않고 자유로웠음 장단편긴 구절과 짧은 구절이 뒤섞인 한시를 가리킨다 한 장을 지어 화답하였다. 이 밤이 어인 밤이기에 술이 다하여 헤어지게 되자, 여인이 은그릇 하나를 내어 양생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내일 저희 부모님께서 저를 위하여 보련사에서 음식을 베풀 것입니다. 당신이 저를 버리지 않으시겠다면, (보련사로 가는) 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저와 함께 절로 가서 부모님을 뵙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양생이 대답하였다. "그러겠소." (이튿날) 양생은 여인의 말대로 은그릇 하나를 들고 보련사로 가는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어떤 귀족의 집안에서 딸자식의 대상(大祥)사람이 죽은 지 25개월 만에 지내는 제사을 치르려고 수레와 말을 길에 늘어세우고서 보련사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길가에서 한 서생이 은그릇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고는, 하인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아가씨 장례 때에 무덤 속에 묻은 그릇을 벌써 어떤 사람이 훔쳐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이 말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인이 말하였다. "저 서생이 가지고 있는 은그릇을 보고 드린 말씀입니다." 주인이 마침내 탔던 말을 멈추고 (양생에게 은그릇을 얻게 된 사연을) 물었다. 양생이 전날 여인과 약속한 그대로 대답하였더니, (여인의) 부모가 놀라며 의아스럽게 여기다가 한참 뒤에 말하였다. “내 슬하에 오직 딸자식 하나가 있었는데, 왜구의 난리를 만나 싸움판에서 죽었다네. 미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개령사 곁에 임시로 묻어 두고는 이래저래 미루어 오다가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다네. 오늘이 벌써 대상 날이라, (어버이된 심경에) 재나 올려 명복을 빌어줄까 한다네. 자네가 정말 그 약속대로 하려거든, 내 딸자식을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오게나. 놀라지는 말게나.” 그 귀족은 말을 마치고 먼저 (개령사로) 떠났다. 양생은 우두커니 서서 (여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약속하였던 시간이 되자 과연 한 여인이 계집종을 데리고 허리를 간들거리며 오는데, 바로 그 여인이었다. 그들은 서로 기뻐하면서 손을 잡고 절로 향하였다. 여인은 절 문에 들어서자 먼저 부처에게 예를 드리고 곧 흰 휘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친척과 절의 스님들은 모두 (양생이 전하는) 그 말을 믿지 못했고, (여인은) 오직 양생만이 혼자서 보았다. 그 여인이 양생에게 말하였다. "함께 저녁이나 드시지요." 양생이 그 말을 여인의 부모에게 알리자, 여인의 부모가 시험해 보려고 같이 밥을 먹게 하였다. 그랬더니 (그 여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으면서) 오직 수저 놀리는 소리만 들렸는데, 인간이 식사하는 것과 한가지였다. 그제야 여인의 부모가 놀라 탄식하면서, 양생에게 권하여 휘장 옆에서 같이 잠자게 하였다. 한밤중에 말소리가 낭랑하게 들렸는데, 사람들이 가만히 엿들으려 하면 갑자기 그 말소리가 끊어졌다. 여인이 양생에게 말하였다. "제가 법도를 어겼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에 『시경』과『서경』을 읽었으므로, 예의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습니다.『시경』에서 말한「건상(褰裳)」『시경』정풍의 시편. 음탕한 여인이 남자를 유혹하는 시이 얼마나 부끄럽고「상서(相鼠)」『시경』용풍의 시편. 무례한 사람을 풍자한 시가 얼마나 얼굴 붉힐 만한 시인지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도 오래 다북쑥 우거진 속에 묻혀서 들판에 버려졌다가 사랑하는 마음이 한 번 일어나고 보니, 끝내 걷잡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난번 절에 가서 복을 빌고 부처님 앞에서 향불을 사르며 박명했던 한평생을 혼자서 탄식하다가 뜻밖에도 삼세(三世)불교에서 전세(前世), 현세(現世), 내세(來世)의 세 가지 세상을 가리킴의 인연을 만나게 되었으므로, 소박한 아내가 되어 백년의 높은 절개를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술을 빚고 옷을 기워 평생 지어미의 길을 닦으려 했었습니다만, 애달프게도 업보(業報)전생에 주어진 운명를 피할 수가 없어서 저승길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즐거움을 미처 다하지도 못하였는데, 슬픈 이별이 닥쳐왔습니다. 이제는 제가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운우(雲雨)는 양대(陽臺)에 개고송옥이 지은 『고당부서』에 나오는 이야기로, 춘추시대 초나라 회왕이 ‘고당’이라는 누대에 놀러갔다가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 무산(巫山)의 선녀가 나타나 정을 통했다. 선녀가 회왕을 모신 뒤에 떠나면서, 자기는 “아침에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양대 아래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회왕이 아침에 보니 과연 구름이 떠 있었다. 이 뒤부터 남녀가 육체적으로 관계하는 것을 운우(雲雨)라고 표현했다. 오작(烏鵲)은 은하에 흩어질 것입니다.견우와 직녀가 칠석날이면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서 만남 이제 한번 헤어지면 뒷날을 기약하기가 어렵습니다. 헤어지려고 하니 아득하기만 해서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여인의 영혼을 전송하자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혼이 문 밖을 나가자 소리만 은은하게 들려 왔다. 저승길도 기한 있으니 남은 소리가 차츰 가늘어지더니 목메어 우는 소리와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여인의 부모는 그제야 그동안 있었던 일이 사실인 것을 알고 더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양생도 또한 그 여인이 귀신인 것을 알고는 더욱 슬픔을 느끼게 되어, 여인의 부모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울었다. 여인의 부모가 양생에게 말하였다. "은그릇은 자네가 쓰고 싶은 대로 맡기겠네. 또 내 딸자식 몫으로 밭 몇 마지기와 노비 몇 사람이 있으니, 자네는 이것을 신표뒷날 증거로 삼기 위해 서로 주고받는 물건로 하여 내 딸자식을 잊지 말게나." 이튿날 양생이 고기와 술을 마련하여 (개령동) 옛 자취를 찾아갔더니, 과연 시체를 임시로 묻어 둔 곳이 있었다. 양생은 제물을 차려 놓고 슬피 울면서 그 앞에서 지전(紙錢)종이로 만든 가짜 돈. 저승에 가서 쓰라는 뜻으로 관에 넣거나 제사를 지낼 때 태웠음을 불사르고 정식으로 장례를 치러 준 뒤에, 제문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의 뜻을 담은 글을 지어 위로하였다. 아아. 영이시여. 당신은 어릴 때부터 천품이 온순하였고, 자라면서 얼굴이 말끔하였소. 자태는 서시(西施)춘추시대 월나라의 미인 같았고, 문장은 숙진(淑眞)송나라 여류 시인 주숙진을 말하는데, 총명하고 시를 잘 지었다보다도 나았소. 규문(閨門)부녀자가 머물던 곳 밖에는 나가지 않으면서 가정교육을 늘 받아 왔었소. 난리를 겪으면서 정조를 지켰지만, 왜구를 만나 목숨을 잃었구려. 다북쑥 속에 몸을 내맡기고 홀로 지내면서, 꽃 피고 달 밝은 밤에는 마음이 아팠겠구려. 봄바람에 애간장이 끊어지면 두견새의 피울음 소리가 슬프고, 가을 서리에 쓸개가 찢어지면 버림받는 비단부채를 보며 탄식했겠구려. 지난번에 하룻밤 당신을 만나 기쁨을 얻었으니, 비록 저승과 이승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알면서도 물 만난 고기처럼 즐거움을 다하였소. 장차 백 년을 함께 지내려 하였건만, 하루 저녁에 슬피 헤어질 줄이야 어찌 알았겠소? 임이여. 그대는 달나라에서 난새를 타는 선녀가 되고, 무산에 비 내리는 아가씨가 되리다. 땅이 어두워서 돌아오기도 어렵고, 하늘이 막막해서 바라보기도 어렵구려. 나는 집에 들어가도 어이없어 말도 못하고, 밖에 나간대도 아득해서 갈 곳이 없다오. 영혼을 모신 휘장을 볼 때마다 흐느껴 울고, 술을 따를 때에는 마음이 더욱 슬퍼진다오. 아리따운 그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낭랑한 그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오. 아아. 슬프구려. 그대의 성품은 총명하였고, 그대의 기상은 말쑥했었소. 몸은 비록 흩어졌다지만 혼령이야 어찌 없어지겠소? 응당 하늘에서 내려와 뜰에 오르시고, 옆에 와서 슬픔을 돌보소서. 비록 사생(死生)이 다르다지만 이 글이 당신의 마음에 전해지리라 믿소. 장례를 치른 뒤에도 양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밭과 집을 모두 팔아 사흘 저녁이나 잇따라 재(齎)를 올렸더니, 여인이 공중에서 양생에게 말하였다. "저는 당신의 은혜를 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저승과 이승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당신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도 이제 다시 정업(淨業)불교에서 온갖 착한 업을 가리키는 말로, 선업이라고도 함을 닦아 저와 함께 윤회(輪回)사람이 이승에서의 번뇌와 업에 따라,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고 또 죽는 것을 반복하는 일을 말함. 수레바퀴가 끝없이 도는 것과 같아서 윤회라고 했다를 벗어나십시오." 양생은 그 뒤에 다시 장가들지 않았다.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었는데, 언제 죽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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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原有梁生者, 早喪父母, 未有妻室, 獨居萬福寺之東. 房外有梨花一株, 方春盛開, 如瓊樹銀堆, 生每月夜, 逡巡朗吟其下. 詩曰: 一樹梨花伴寂廖, 可憐辜負月明宵. 翡翠孤飛不作雙, 鴛鴦失侶浴晴江. 吟罷, 忽空中有聲曰: “君欲得好逑, 何憂不遂.” 生心憙之, 明日卽三月二十四日也. 州俗燃燈於萬福寺祈福, 士女騈集, 各呈其志. 日晩梵罷人稀, 生袖摴蒲, 擲於佛前曰: “吾今日, 與佛欲鬪蒲戱, 若我負, 則設法筵以賽, 若不負, 則得美女, 以遂我願耳.” 祝訖, 遂擲之, 生果勝, 卽跪於佛前曰: “業已定矣, 不可誑矣.” 遂隱於几下, 以候其約. 俄而有一美姬, 年可十五六, 丫鬟淡飾, 儀容婥妁, 如仙姝天妃, 望之儼然, 手携油甁, 添燈揷香, 三拜而跪, 噫而歎曰: “人生薄命, 乃如此邪?” 遂出懷中狀詞, 獻於卓前. 其詞曰: “某州某地居住, 何氏某, 竊以曩者, 邊方失禦倭寇來侵, 干戈滿目, 烽燧連年, 焚蕩室廬, 盧掠生民, 東西奔竄, 左右逋逃, 親戚僮僕, 各相亂離, 妾以蒲柳弱質, 不能遠逝, 自入深閨, 終守幽貞, 不爲行露之沾, 以避橫逆之禍, 父母以女子守節不爽, 避地僻處, 僑居草野, 已三年矣. 然而秋月春花, 傷心虛度, 野雲流水, 無聊送日, 幽居在空谷, 歎平生之薄命, 獨宿度良宵, 傷彩鸞之獨舞, 日居月諸, 魂銷魄喪, 夏日冬宵, 膽裂腸摧, 惟願覺皇, 曲垂憐愍, 生涯前定, 業不可避, 賦命有緣, 早得歡娛, 無任懇禱之至.” 女旣投狀, 嗚咽數聲. 生於隙中, 見其姿容, 不能定情, 突出而言曰: “向者投狀, 爲何事也?” 見女狀辭, 喜溢於面, 謂女子曰: “子何如人也, 獨來于此?” 女曰: “妾亦人也, 夫何疑訝之有, 君但得佳匹, 不必問名姓, 若是其顚倒也.” 時寺已頹落, 居僧住於一隅, 殿前只有廊廡, 蕭然獨存, 廊盡處, 有板房甚窄. 生挑女而入, 女不之難, 相與講歡, 一如人間. 將及夜半, 月上東山, 影入窓柯, 忽有跫音, 女曰: “誰耶? 將非侍兒來耶?” 兒曰: “唯. 向日娘子, 行不過中門, 履不容數步, 昨暮偶然而出, 一何至於此極也?” 女曰: “今日之事, 蓋非偶然, 天之所助, 佛之所佑, 逢一粲者, 以爲偕老也. 不告而娶, 雖明敎之法典, 式燕以遨, 亦平生之奇遇也. 可於茅舍, 取裀席酒果來.” 侍兒一如其命而往, 設筵於庭, 時將四更也. 鋪陳几案, 素淡無文, 而醪醴馨香, 定非人間滋味. 生雖疑怪, 談笑淸婉, 儀貌舒遲意必貴家處子, 踰墻而出, 亦不之疑也. 觴進, 命侍兒, 歌以侑之, 謂生曰: “兒定仍舊曲, 請自 製一章以侑, 如何?” 生欣然應之曰: “諾.” 乃製滿江紅一闋, 命侍兒歌之曰: 惻惻春寒羅衫薄, 幾回腸斷金鴨冷. 歌竟, 女愀然曰: “曩者蓬島, 失當時之約, 今日瀟湘, 有故人之逢, 得非天幸耶. 郞若不我遐棄, 終奉巾櫛, 如失我願, 永隔雲泥.” 生聞此言, 一感一驚曰: “敢不從命?” 然其態度不凡, 生熟視所爲, 時月掛西峯, 鷄鳴荒村, 寺鐘初擊, 曙色將暝. 女曰: “兒可撤席而歸, 隨應隨滅不知所之.” 女曰: “因緣已定, 可同携手.” 生執女手, 經過閭閻, 犬吠於籬, 人行於路, 而行人不知與女同歸, 但曰: “生早歸何處?” 生答曰: “適醉臥萬福寺, 投故友之村墟也” 至詰朝, 女引至草莽間, 零露瀼瀼, 無逕路可遵. 生曰: “何居處之若此也?” 女曰: “孀婦之居, 固如此耳.” 女又謔曰: 於邑行路, 豈不夙夜, 謂行多露. 生乃謔之曰: 有狐綏綏, 在彼淇梁. 魯道有蕩, 齊子翶翔. 吟而笑傲. 遂同去開寧洞, 蓬蒿蔽野, 荊棘參天, 有一屋, 小而極麗, 邀生俱入, 裀褥帳幃極整, 如昨夜所陳. 留三日, 歡若平生然, 其侍兒, 美而不黠, 器皿潔而不文, 意非人世, 而繾綣意篤, 不復思廬, 已而女謂生曰: “此地三日不下三年君當還家以顧生業也.” 遂設離宴以別, 生悵然曰: “何遽別之速也?” 女曰: “當再會, 以盡平生之願爾, 今日到此弊居, 必有夙緣, 宜見鄰里族親, 如何?” 生曰: “諾.” 卽命侍兒, 報四鄰以會. 其一曰鄭氏. 其二曰吳氏. 其三曰金氏. 其四曰柳氏. 皆貴家巨族, 而與女子, 同閭閈親戚, 而處子者也. 性俱溫和, 風韻不常, 而又聰明識字, 能爲詩賦, 皆作七言短篇四首以贐, 鄭氏態度風流, 雲鬟掩鬢, 乃噫而吟曰: 春宵花月兩嬋娟, 長把春愁不記年. 漆燈無焰夜如何, 星斗初橫月半斜. 摽梅情約竟蹉跎, 辜負春風事已過. 一春心事已無聊, 寂寞空山幾度宵. 吳氏, 丫鬟妖弱, 不勝情態, 繼吟曰: 寺裏燒香歸去來, 金錢暗擲竟誰媒. 漙漙曉露浥桃腮, 幽谷春深蝶不來. 年年燕子舞東風, 腸斷春心事已空. 一層樓在碧山中, 連理枝頭花正紅. 金氏, 整其容儀, 儼然染翰, 責其前詩, 淫佚太甚, 而言曰: “今日之事, 不必多言, 但叙光景, 胡乃陳懷, 以失其節, 傳鄙懷於人間.” 遂郞然賦曰: 杜鵑鳴了五更風, 寥落星河已轉東. 滿酌烏程金叵羅, 會須取醉莫辭多. 綠紗衣袂懶來垂, 絃管聲中酒百巵. 幾年塵土惹雲鬟, 今日逢人一解顔. 柳氏, 淡粧素服, 不甚華麗, 而法度有常, 沈黙不言, 微笑而題曰: 確守幽貞經幾年, 香魂玉骨掩重泉. 却笑春風桃李花, 飄飄萬點落人家. 脂粉慵拈首似蓬, 塵埋香匣綠生銅. 娘娘今配白面郞, 天定因緣契闊香. 女乃感柳氏終篇之語, 出席而告曰: “余亦粗知字畵, 獨無語乎.” 乃製近體七言四韻, 以賦曰: 開寧洞裏抱春愁, 花落花開感百憂. 晴江日暖鴛鴦竝, 碧落雲銷翡翠遊. 生亦能文者. 見其詩法淸高, 音韻鏗鏘, 唶唶不已. 卽於席前, 走書古風長短篇一章, 以答曰: 今夕何夕, 見此仙姝. 酒盡相別, 女出銀椀一具, 以贈生曰: “明日, 父母飯我于寶蓮寺. 若不遺我, 請遲于路上, 同歸梵宇, 同覲我父母, 如何?” 生曰: “諾.” 生如其言, 執椀待于路上, 果見巨室右族, 薦女子之大祥車馬騈闐上于寶蓮, 見路傍, 有一書生, 執椀而立, 從者曰: “娘子殉葬之物, 已爲他人所偸矣.” 主曰: “如何?” 從者曰: “此生所執之椀.” 遂聚馬以問, 生如其前約以對, 父母感訝良久曰: “吾止有一女子, 當寇賊傷亂之時, 死於干戈, 不能窀窆, 殯于開寧寺之間, 因循不葬, 以至于今. 今日大祥已至, 暫設齌筵, 以追冥路. 君如其約, 請竢女子以來, 願勿愕也.” 言訖先歸. 生佇立以待. 及期, 果一女子, 從侍婢, 腰裊而來, 卽其女也. 相喜携手而歸, 女入門禮佛, 投于素帳之內, 親戚寺僧, 皆不之信, 唯生獨見, 女謂生曰: “可同茶飯.” 生以其言, 告于父母. 父母試驗之, 遂命同飯, 唯聞匙筋聲, 一如人間. 父母於是驚歎, 遂勸生, 同宿帳側, 中夜言語琅琅, 人欲細聽, 驟止其言曰: “妾之犯律, 自知甚明. 少讀詩書, 粗知禮義, 非不諳褰裳之可愧, 相鼠之可赧, 然而久處蓬蒿, 抛棄原野, 風情一發, 終不能戒. 曩者, 梵宮祈福, 佛殿燒香, 自嘆一生之薄命, 忽遇三世之因緣. 擬欲荊釵椎䯻, 奉高節於百年, 羃酒縫裳, 修婦道於一生. 自恨業不可避, 冥道當然, 歡娛未極, 哀別遽至. 今則步蓮入屛, 阿香輾車, 雲雨霽於陽臺, 烏鵲散於天津, 從此一別, 後會難期. 臨別凄惶, 不知所云.” 送魂之時, 哭聲不絶, 至于門外, 但隱隱有聲曰: 冥數有限, 慘然將別. 餘聲漸滅, 嗚哽不分, 父母已知其實, 不復疑問. 生亦知其爲鬼, 尤增傷感, 與父母聚頭而泣, 父母謂生曰: “銀椀任君所用. 但女子, 有田數頃, 蒼赤數人, 君當以此爲信, 勿忘吾女子.” 翌日, 設牲牢朋酒, 以尋前迹, 果一殯葬處也. 生設奠哀慟, 焚楮鏹于前, 遂葬焉. 作文以弔之曰: “惟靈, 生而溫麗, 長而淸渟. 儀容侔於西施, 詩賦高於淑眞, 不出香閨之內, 常聽鯉庭之箴. 逢亂離而璧完, 遇寇賊而珠沈. 托蓬蒿而獨處, 對花月而傷心. 腸斷春風, 哀杜鵑之啼血, 膽裂秋霜, 歎紈扇之無緣. 嚮者, 一夜邂逅, 心緖纏綿. 雖識幽明之相隔, 實盡魚水之同歡. 將謂百年以偕老, 豈期一夕而悲酸. 月窟驂鸞之姝, 巫山行雨之娘, 地黯黯而莫歸, 天漠漠而難望. 入不言兮恍惚, 出不逝兮蒼茫. 對靈幃而掩泣, 酌瓊漿而增傷. 感音容之窈窈, 想言語之琅琅. 嗚虖哀哉. 爾性聰慧, 爾氣精詳. 三魂縱散, 一靈何亡. 應降臨而陟庭, 或薰蒿而在傍. 雖死生之有異, 庶有感於些章.” 後極其情哀, 盡賣田舍, 連薦再三夕, 女於空中, 唱曰: “蒙君薦拔, 已於他國, 爲男子矣. 雖隔幽明, 寔深感佩. 君當復修淨業, 同脫輪回.” 生後不復婚嫁, 入智異山採藥, 不知所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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