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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이생이 담 너머로 아가씨를 엿보다 … 김시습「이생규장전」(전문)

현대어역

송도(松都)개성 낙타교(駱駝橋)개성 보정문 안에 있던 탁타교의 또 다른 이름. 고려 태조 때 거란이 낙타 쉰 마리를 바쳤는데, 태조가 받지 않고 이 다리 밑에 매어 두었더니 모두 굶어 죽었다고 함 옆에 이생(李生)이 살고 있었는데, 나이는 열여덟이었다. 풍모가 맑고 재주가 뛰어나 일찍부터 국학(國學)성균관에 다녔는데, 길을 가면서도 시를 읽었다.

선죽리(善竹里)개성 선죽교 부근에 있던 마을 귀족 집에는 최씨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나이는 열대여섯쯤 되었다. 태도가 아리땁고 수도 잘 놓았으며, 시와 문장도 잘 지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이렇게 칭찬하였다.

풍류로워라 이 총각
아리따워라 최 처녀.
그 재주와 그 얼굴 듣기만 해도
주린 창자가 배불러지네.

이생은 일찍부터 책을 옆에 끼고 학교에 다닐 때에 언제나 최씨네 집 북쪽 담 밖으로 지나다녔다. 수양버들 수십 그루가 간들거리며 그 담을 둘러싸고 있었다.

어느 날 이생이 그 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담 안을 엿보았더니, 이름난 꽃들이 활짝 피고 벌과 새들이 다투어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 곁에는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꽃떨기 사이로 은은히 보였다. 주렴이 반쯤 가려 있고 비단 휘장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는데, 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수를 놓다가 지쳐 잠시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며 턱을 괴고 시를 읊었다.

사창(紗窓)비단 바른 창에 홀로 기대앉아 수놓기도 귀찮구나.
온갖 꽃떨기 속에 꾀꼬리 소리 다정도 해라.
마음속으로 부질없이 봄바람을 원망하며
말없이 바늘 멈추고는 임 생각에 잠겼어라.

저기 가는 저 총각은 어느 집 도련님일까.
푸른 옷깃 넓은 띠성균관의 선비가 입던 옷차림가 늘어진 버들 사이로 비쳐 오네.
이 몸이 죽어 가서 대청 위의 제비 되면
주렴 위를 가볍게 스쳐 담장 위를 날아 넘으리.

이생은 그 여인이 읊은 시를 듣고 마음이 근질근질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집의 담이 높고도 가파르며 안채가 깊숙한 곳에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서운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그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흰 종이 한 장에다 시 세 수를 써서 기와 쪽에 매달아 담 안으로 던져 넣었다.

무산 열두 봉우리 첩첩이 쌓인 안개 속에
반쯤 드러난 봉우리가 붉고도 푸르구나.
양왕의 외로운 꿈을 수고롭게 하지 마오.
구름 되고 비가 되어 양대(陽臺)에서 만나 보세.송옥이 지은 『고당부서』에 나오는 이야기로, 춘추시대 초나라 회왕이 ‘고당’이라는 누대에 놀러갔다가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 무산(巫山)의 선녀가 나타나 정을 통했다. 선녀가 회왕을 모신 뒤에 떠나면서, 자기는 “아침에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양대 아래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회왕이 아침에 보니 과연 구름이 떠 있었다. 양왕은 회왕이 무산의 선녀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그 고당에서 노닐며 회왕의 시절의 일을 회고했다고 한다. 무산은 중국 사천성 무산현 동남쪽에 있는 산 이름. 양대는 무산현 동쪽에 있는 양대산을 말함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되어 탁문군(卓文君)을 꾀어내려니사마상여는 전한의 문인으로, 젊었을 때 촉나라 임공 땅을 지나다가 거문고를 타서 부잣집 딸인 탁문군을 꾀어냈다
마음속에 품었던 생각은 이미 다 이루어졌네.
붉은 담머리의 복사꽃과 자두꽃은
바람에 날려서 어디로 떨어지나.

좋은 인연되려는지 나쁜 인연 되려는지
부질없는 이 내 시름 하루가 일 년 같아라.
스물여덟 자칠언절구 시의 자수. 이생이 지어서 담 안으로 던진 시가 칠언절구 시였다로 황혼의 기약을 맺었으니
남교(藍橋)에서 어느 날 신선을 만나려나.남교는 중국 섬서성 남전현 남계에 놓인 다리 이름으로, 당나라 때 사람 배항이 운교부인을 만났더니 ‘남교’에 가면 아름다운 배필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배항은 그 뒤 남교로 가서 운영이라는 여인을 만났다

최랑이 몸종 향아(香兒)를 시켜서 그 편지를 주워다 보니, 바로 이생이 지은 시였다. 최랑이 그 시를 펼쳐서 두세 번 읽고는 마음속으로 혼자 기뻐하였다. 종이쪽지에 여덟 자를 써서 담 밖으로 던져 주었다.

님이여. 의심 마세요. 황혼에 만나기로 해요.

이생이 그 말대로 황혼이 되자 최랑의 집을 찾아갔다. 갑자기 복사꽃 한 가지가 담 위로 넘어오면서 하늘거리는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생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넷줄에 대바구니를 매어서 아래로 늘어뜨려 놓았다. 이생은 그 줄을 잡고 담을 넘었다.

마침 달이 동산에 떠올라 꽃 그림자가 땅에 비껴, 맑은 향내가 사랑스러웠다. 이생은 자기가 신선 세계에 들어왔다고 생각하여 마음은 비록 기뻤지만, 자기의 마음이나 지금 하려는 일이 비밀스러워서 머리칼이 모두 곤두섰다.

이생이 좌우를 둘러보았더니, 최랑은 꽃떨기 속에서 향아와 같이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는, 외진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최랑이 이생을 보고 방긋 웃으면서 시 두 구절을 먼저 읊었다.

복사나무와 자두나무 가지 속에 꽃송이 탐스럽고복사나무와 자두나무는 재주 많고 아름다운 이생과 최랑을 가리킨다
원앙새 베개원앙은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하는 새다. 원앙새 베개는 부부가 함께 자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선 이생과 최랑의 만남을 말한다 위엔 달빛도 고와라.

이생이 뒤를 이어 시를 읊었다.

다음날 어쩌다가 봄소식이 새 나간다면부모의 허락도 없이 만난 이생과 최랑의 비밀스런 사랑이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말함
무정한 비바람부모의 노여움을 뜻함에 더욱 가련해지리라.

최랑이 얼굴빛이 변하면서 말하였다.

“저는 본디 당신과 함께 부부가 되어 끝까지 남편으로 모시고 영원히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어요. 그런데 당신은 어찌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저는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마음이 태연한데, 장부의 의기를 가지고도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다음날 규중의 일이 누설되어 친정에서 꾸지람을 듣게 되더라도, 제가 혼자 책임을 지겠습니다. 향아야. 방 안에서 술과 안주를 가져오너라.”

향아가 시키는 대로 가버리자, 사방이 고요하여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이생이 최랑에게 물었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최랑이 말하였다.

“이곳은 뒷동산에 있는 작은 누각 아래이지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가 외동딸이기 때문에 여간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연못가에다 이 누각을 따로 지어 주셨지요. 봄이 되어 이름난 꽃들이 활짝 피면 몸종 향아와 함께 즐겁게 놀라고 하신 거지요. 부모님이 계신 곳은 여기서 멀기 때문에 아무리 웃으며 크게 이야기해도 쉽게 들리지는 않는답니다.”

최랑이 술 한 잔을 따라 이생에게 권하면서 고풍(古風)당나라 이전에 있던 옛 시로, 법칙이 엄격하지 않고 자유로웠음으로 한 편을 읊었다.

부용못 푸른 물을 난간에서 굽어보다
꽃떨기 속에서 임들이 속삭이네.
향기로운 안개 깔린 속에 봄빛이 화창해서
새 가사를 지어내어「백저사(白紵詞)중국 오나라의 춤곡인 「백저가」의 다른 이름으로, 사랑노래임」를 부르는구나.
꽃그늘에 달빛이 비껴 털방석에 스며들고
긴 가지 함께 잡으니 붉은 꽃비가 떨어지네.
바람이 향내를 끌어와 옷 속에 스며들자
첫봄을 맞은 아가씨가 햇살 속에 춤추네.
비단 적삼 가볍게 해당화를 스쳤다가
꽃 사이에 졸고 있던 앵무새이생을 가리킴만 깨웠네.

이생도 바로 시를 지어 화답하였다.

도원(桃源)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에 무릉도원이 이상향으로 나오는데, 여기서는 복사꽃이 만발한 최랑의 집 뒷동산을 표현한 것임에 잘못 들어와 보니 복사꽃이 만발한데
많고 많은 이 내 정회(情懷)를 다 말할 수가 없네.
구름같이 쪽 찐 머리에 금비녀 낮게 꽂고
산뜻한 봄 적삼을 모시 베로 지었구나.
나란히 달린 가제에 꽃이 봄바람에 피었으니
저 많은 꽃가지에 비바람아 부지 마소.
선녀의 소맷자락 나부껴 그림자도 하늘거리고
계수나무 그늘 속에선 항아(姮娥)달나라에 산다고 하는 선녀의 이름. 소아(素娥)는 달을 달리 이르는 말임가 춤을 추네.
기쁨이 다하기 전에 시름이 따를 테니
함부로 새 곡조 지어 앵무새에게 가르치지 마오.

술자리가 끝나자 최랑이 이생에게 말하였다.

"오늘의 일은 결코 작은 인연이 아니랍니다. 당신은 저를 따라오셔서 정을 나누는 것이 좋겠어요."

말을 마치고 최랑이 북쪽 창문으로 들어가자 이생도 그 뒤를 따라갔다. (그곳에는) 누각에 달린 사다리가 있었는데, 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더니 과연 다락이 나타났다. 문방구와 책상들이 아주 말끔했으며, 한쪽 벽에는「연강첩장도(烟江疊嶂圖)송나라 왕선이 그린 안개 낀 강 위에 첩첩이 싸인 산봉우리를 담은 그림」와 「유황고목도(幽篁古木圖)원나라 화가 가구사가 그린 이래 여러 사람이 그린, 그윽한 대밭과 오래 묵은 나무를 담은 그림」가 걸려 있었는데, 모두 이름난 그림이었다. 그 그림 위에는 시가 씌어 있었는데, 누가 지은 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첫째 그림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어떤 사람의 붓끝에 힘이 넘쳐
이 강 속에다 겹겹이 쌓인 산을 그렸던가?
웅장해라. 삼만 길의 저 방호산(方壺山)신선이 산다는 신산. 봉래산, 영주산과 더불어 삼신산으로 불리는데, 이 이야기는 『사기』「열자」에서 비롯되었다
아득한 구름 사이로 반쯤만 드러났네.
저 멀리 산세(山勢)는 몇 백 리까지 뻗어 있는데
푸른 소라처럼 쪽진 머리멀리 바라보이는 푸른 산의 모양을 비유함가 가까이 보이네.
끝없이 푸른 물결 공중에 닿았는데
저녁노을 바라보니 고향이 그리워라.
이 그림 구경하며 사람 마음이 쓸쓸해져
소상강(瀟湘江)소수와 상수를 함께 부르는 이름. 상수는 중국 광서성 홍안현에서 흘러나와 호남성의 동정호로 흘러드는 강물인데, 영릉 부근에서 소수와 만난다. 순임금이 남쪽 지방을 돌아보다가 창오산에서 죽자, 그의 두 아내 아황과 여영이 이곳에 찾아와 피눈물을 뿌리고 울다가 상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비바람에 배 띄운 듯하여라.

둘째 그림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쓸쓸한 대숲에선 가을 소리가 들리는 듯
비스듬히 누운 고목은 옛정을 품은 듯해라.
구부러진 늙은 뿌리엔 이끼가 가득 끼었고
굵고 곧은 가지는 바람과 천둥을 이겨 왔네.
가슴속에 간직한 조화가 끝이 없으니
미묘한 이 경지를 누구에게 말할 텐가.
위언(韋偃)당나라 때 화가로 산수나 대나무, 인물을 잘 그렸다과 여가(輿可)송나라 때 화가 문동(文同)의 자. 대나무와 산수를 잘 그렸다도 이미 귀신이 되었으니
천기를 누설할 자가 그 몇이나 되려나.
갠 창가 그윽한 곳에서 말없이 바라보니
삼매경에 든 필법이 못내 사랑스러워라.

한쪽 벽에는 사철의 경치를 읊은 시를 각각 네 수씩 붙였는데, 역시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글씨는 송설(松雪)원나라때 서화가 조맹부의 호. 우리나라에는 송설체를 본받아 글씨를 배운 사람이 많았다의 서체를 본받아 자체가 아주 곱고도 단정하였다.

그 첫째 폭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연꽃 그린 휘장은 따뜻하고 향내는 실 같은데
창밖에 붉은 살구꽃이 비 내리듯 하는구나.
누각 머리에서 새벽 종소리에 남은 꿈을 깨고 보니
개나리 무성한 둑에 때까치가 우짖네.

제비 날고 해 길어졌는데 안방 깊숙이 들어앉아
귀찮은 듯 말도 없이 금바늘을 멈추었네.
꽃 아래로 쌍쌍이 나비들 짝 지어 날며
그늘진 동산으로 지는 꽃을 따라가네.

꽃샘추위가 초록 치마를 스쳐 가면
무정한 봄바람에 이 내 간장 끊어지네.
말없는 이 심정을 그 누가 헤아릴까
온갖 꽃 만발한 속에 원앙새가 춤추는구나.

봄빛이 황사양(黃四孃)의 집에 깊이 들어두보가 지은 시에 “황사양의 집에는 꽃이 길에 가득해, 천 떨기 만 떨기가 가지를 무겁게 누르고 있네.”라는 구절이 있다
붉은 꽃잎 푸른 나뭇잎 사창에 비치었네.
뜰 안 가득 꽃과 풀들은 봄 시름에 겨웠는데
주렴을 가볍게 걷고 지는 꽃을 바라보네.

그 둘째 폭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밀 이삭 갓 패고 제비 새끼 날아드는데
남쪽 뜰엔 석류꽃이 두루 피었구나.
푸른 창가에 앉아 길쌈하는 아가씨는
붉은 비단을 마름질하여 새 치마를 지으려네.

매실이 익는 철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
홰나무 그늘에 꾀꼬리 울고 제비는 주렴으로 날아드네.
또 한 해 봄 풍경이 시들어 가니
고련화[棟花]멀구슬나무꽃, 멀구슬나무는 4, 5월에 꽃이 피며 이 꽃이 지면 여름이 된다 떨어지고 죽순이 삐죽 솟았네.

푸른 살구 손에 쥐고 꾀꼬리에게 던져 보네.
남쪽 난간에 바람 일고 해그림자 더디어라.
연잎에 향내 가시고 못에는 물이 가득한데
푸른 물결 깊은 곳에서 원앙새가 목욕하네.

등나무 평상 대자리에는 무늬가 물결지고
소상강 그린 병풍에는 구름이 한 자락 있네.
낮 꿈을 깨고도 나른해 누웠더니
반창에 비낀 햇살이 서쪽 하늘을 물들이네.

그 셋째 폭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가을바람이 쌀쌀하니 찬 이슬이 맺히고
가을 달빛도 고우니 물빛 더욱 푸르구나.
한 소리 또 한 소리 기러기 울며 돌아가는데
우물에 오동잎 지는 소리를 다시금 듣고파라.

침상 밑에서는 온갖 벌레들이 처량하게 울고
침상 위에서는 아가씨가 구슬 눈물을 떨어뜨리네.
만 리 밖 싸움터에 몸을 바친 임에게도
오늘밤 옥문관(玉門關)중국 서쪽 변방에 있던 관문. 중국의 국경이었으므로 외국을 정벌하는 군사들이 이곳을 지났다에 달빛이 환하겠지.

새 옷을 지으려니 가위가 차가워라.
나직이 아이 불러 다리미를 가져오라네.
다리미에 불 꺼진 걸 살피지 못하다가
아쟁을 뜯다가 머리를 긁적이네.

작은 연못에 연꽃도 지고 파초 잎도 누래지자
원앙 그린 기와 위에 첫서리가 내렸네.
묵은 시름 새 원한을 막을 길이 없는데
귀뚜라미 울음까지 골방에 들리네.

그 넷째 폭에 쓰인 시는 이러하였다.

한 매화가지 그림자가 창 앞으로 뻗었는데
바람 센 서쪽 행랑에 달빛 더욱 밝아라.
화롯불 꺼졌는지 부젓가락으로 헤쳐 보고는
아이를 불러다 찻주전자를 바꾸라네.

밤 서리에 놀란 잎사귀 자주 흔들리고
돌개바람이 눈을 몰아 긴 마루로 들어오네.
임 그리워 밤새도록 꿈속에 뒤척이니
빙하(氷河)가 어디런가, 그 옛날 전쟁터일세.

창에 가득한 붉은 해는 봄날처럼 따뜻한데
시름에 잠긴 눈썹에 졸음까지 더하네.
병에 꽂힌 작은 매화는 필 듯 말듯 하는데
수줍어 말도 못 하고 원앙새만 수놓는구나.

쌀쌀한 서리 바람이 북쪽 숲을 스치는데
처량한 까마귀가 달을 보며 우는구나.
등불 앞에 임 생각 눈물 되어 흐르니
실에도 떨어지고 바늘에도 떨어지네.

한쪽에 작은 방 하나가 따로 있었는데, 휘장⋅요⋅이불⋅베개들이 또한 아주 깨끗하였다. 휘장 밖에는 사향[麝]사향노루의 사향샘을 말려서 얻은 향료을 태우고 난초 향 기름의 등불을 켜놓았는데, 환하게 밝아서 마치 대낮 같았다. 이생은 최랑과 더불어 마음껏 즐거움을 누리면서 여러 날 머물렀다.

(어느 날) 이생이 최랑에게 말하였다.

“옛 성인의 말씀에, ‘어버이가 계시면 나가 놀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곳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제 내가 부모님을 떠난 지가 사흘이나 되었소. 부모님께서 반드시 대문에 기대어 기다리실 테니, 이 어찌 아들의 도리라고 하겠소?”

최랑은 서운하게 여기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을 넘어 보내 주었다. 이생을 이 뒤부터 저녁마다 최랑을 찾아가지 않는 날이 없었다.

어느 날 저녁에 이생의 아버지가 이생을 꾸짖으며 말하였다.

“네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것은 옛 성인의 어질고 의로운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요즘은 저녁에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반드시 경박한 놈들의 행실을 배워 남의 집 담을 넘어서 아가씨나 엿보고 다닐게다. 이런 일이 만일 탄로 나면 남들은 모두 내가 자식을 엄하게 가르치지 못했다고 책망할 것이다. 또 그 처녀도 지체 높은 집안의 딸이라면 반드시 네 미친 짓 때문에 그 집안을 더럽히게 될 것이다. 남의 집에 죄를 지었으니, 이 일이 작지 않다. 너는 빨리 영남으로 내려가서 종들을 데리고 농사나 감독하거라.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그 이튿날 (이생의 아버지가 이생을) 울주로 내려 보냈다.

최랑은 저녁마다 화원에서 이생을 기다렸지만, 여러 달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최랑은 이생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여, 향아를 시켜 이생의 이웃들에게 물래 물어 보게 하였다. 이웃들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도령은 그 아버지에게 죄를 지어 영남으로 떠난 지가 벌써 여러 달이나 되었다오.”

최랑은 이 소식을 듣고 병을 얻어 침상에 누웠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일어나지 못하고, 음식도 먹지 못하였다. 말도 앞뒤가 맞지 않았으며, 얼굴이 초췌해졌다.

최랑의 부모가 이상하게 여겨 그 병의 증상을 물었지만, 묵묵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딸의 상자 속을 들추어보았더니, 이생과 지난날에 주고받은 시들이 있었다. 최랑의 부모들이 그제야 놀라서 무릎을 치며 말하였다.

"어이구. 우리 딸자식을 잃어버릴 뻔했구려."

그리고는 딸에게 물었다.

"이생이 누구냐?"

이렇게 되자 최랑도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목구멍에서 겨우 나오는 소리로 부모에게 아뢰었다.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길러 주신 은혜가 깊으니, 어찌 사실을 숨기겠습니까? 저 혼자 생각해보니 남녀가 서로 사랑을 느끼는 것은 인정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결혼할 좋은 시기를 놓치지 마라’는 말은『시경(詩經)』의 주남(周南) 편에도 나타나고,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흉하다’는 말은『주역(周易)』에서도 경계하였습니다.

저는 버들처럼 가냘픈 몸으로 얼굴빛이 시드는 것은 생각지 않고서 절개를 지키지 못하여, 옆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새삼 덩굴이 다른 나무에 의지해서 살듯이 저는 벌써 위당(渭塘)의 처녀원나라 금릉에 살던 왕생이 위당에 갔다가 그곳 처녀와 눈이 맞아 마침내 부부가 되었다. 『전등신화』「위당기우기」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노릇을 하게 되었으니, 죄가 이미 가득 차 집안에까지 누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 아름다운 도련님[狡童]원래 얼굴은 아름답지만 마음이 아름답지 못한 남자를 가리킨다. 『시경』 정풍 편에 「교동」장의 첫 장에 “저 교활한 사람이 나하고는 말도 하지 않네. 자기 때문에 나는 밥도 못 먹게 되었다네.”라 했다과 한 번 정을 통한 뒤부터는 도련님께 대한 원망[喬怨]‘교생(喬生)에 대한 원망’이란 뜻이다. 원나라 때 교생이 어느 날 저녁에 여경이라는 미인을 만나서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여인이 귀신이라는 것을 알고 관계를 끊었는데, 여경은 이를 원망하여 교생의 손을 잡고 관으로 들어가 버렸다. 『전등신화』「모란등기」에 나오는 이야기이다이 천만 번 생기게 되었습니다. 연약한 몸으로 괴로움을 참으며 홀로 살아가려니, 그리운 정은 나날이 깊어 가고 아픈 상처는 나날이 더해 가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원한 맺힌 귀신으로 화(化)해 버릴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남은 목숨을 보존하게 되고, 이 간절한 청을 거절하신다면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생과 저승에서 다시 만나 노닐지언정, 맹세코 다른 가문에는 오르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부모도 이미 최랑의 뜻을 알았으므로 다시는 병의 증세를 묻지 않았다. 타이르고 달래면서 그녀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었다. 그리고는 중매쟁이의 예를 갖추어 이생의 집으로 보냈다.

이생의 아버지가 최씨 집안이 얼마나 번성한지 물은 뒤에 말하였다.

“우리 집 아이가 비록 어린 나이에 바람이 났지만, 학문에 정통하고 사람답게 생겼소. 앞으로 장원급제할 것이며 훗날 이름을 세상에 떨칠 것이니, 서둘러 혼처를 정하고 싶지 않소.”

중매쟁이가 돌아가서 그대로 아뢰자, 최씨가 다시 (중매인을 이씨 집으로) 보내어 말하게 하였다.

“한 시대의 친구들이 모두들 ‘그 댁의 영식(令息)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다’고 칭찬하였습니다. 아직은 똬리를 틀고 있지만, 어찌 끝까지 연못 속에 잠겨만 있겠습니까? 빨리 혼사 날을 정해 두 집안의 즐거움을 이루는 것이 좋겠습니다.”

중매쟁이가 돌아가서 또 그 말을 이생의 아버지에게 전하였더니, 이생의 아버지가 말하였다.

“나도 젊었을 때부터 책을 잡고 학문을 닦았지만, 나이 늙도록 성공하지 못하였소. 종들도 흩어지고 친척의 도움도 적어, 생업이 신통치 않고 살림도 궁색해졌소. 그러니 문벌 좋고 번성한 집안에서 어찌 한갓 빈한한 선비를 사위로 삼으려 하시겠소? 이는 반드시 일 만들기 좋아하는 이들이 우리 집안을 지나치게 칭찬해서 귀댁을 속이려는 것일 거요.”

중매쟁이가 (돌아와서) 또 최씨 집안에 전하자, 최씨 집안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예물 드리는 모든 절차와 옷차림은 모두 저희 집에서 갖추겠습니다. 좋은 날을 가려서 화촉(花燭)의 시기만 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중매쟁이가 또 돌아가서 이 말을 전하였다.

이씨 집안에서도 이렇게까지 되자 뜻을 돌려, 곧 사람을 보내어 이생을 불러다 그의 생각을 물었다. 이생을 스스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곧 시 한 수를 지었다.

깨어진 거울이 다시 둥글게 되니 만남도 때가 있어
은하의 까마귀와 까치들이 아름다움 기약을 도와주었네.
이제야 월로(月老)월하노인(月下老人)의 준말. 붉은 줄로 두 남녀의 발을 묶어 부부의 인연을 맺어 준다는 전설상의 노인. 중국 당나라의 위고가 달밤에 어떤 노인을 만나 장래의 아내에 대한 예언을 들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가 붉은 실을 잡아매었으니
봄바람이 건듯 불더라도 소쩍새를 원망 마소.

최랑이 이 시를 듣고는 병도 차츰 나아져, 자기도 시를 지었다.

나쁜 인연이 바로 좋은 인연이던가?
그 옛날 맹세가 마침내 이루어졌네.
어느 때나 님과 함께 작은 수레[鹿車]수레의 크기를 세 가지로 비유했는데, 양거(羊車), 녹거(鹿車), 우거(牛車)다. 녹거는 사슴 한 마리가 들어갈 정도의 작은 수레로, 여기서는 혼인을 뜻한다. 한나라 포선의 아내 환소군이 혼례식을 올린 뒤 남편과 함께 녹거를 끌며 시댁으로 갔다는 옛이야기가 있다를 끌고 갈까?
아이야, 나를 일으켜 다오. 꽃비녀를 손질하련다.

이에 좋은 날을 가려 마침내 혼례를 이루니, 끊어졌던 사랑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그들은 부부가 된 이후에 서로 사랑하면서도 공경하여 마치 손님처럼 대하니, 비록 양홍과 맹광[鴻光]양홍(梁鴻)은 후한 때 숨어 살던 가난한 선비로, 부잣집 딸인 맹광(孟光)을 아내로 맞이했다. 맹광이 시집와서 화려하게 치장했더니 양홍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맹광이 다시 소박하게 차렸더니 그제야 아내로 받아 주었다. 맹광은 한 고을에 살던 부잣집 딸이었지만, 남편 뜻을 받들어 한평생 밭 갈고 베 짜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 금슬이 좋으면서도 어질게 살았던 부부의 이상으로 꼽힌다.이나 포선과 환소군[鮑桓]포선(鮑宣)은 후한 때의 가난한 선비로 부잣집 딸인 환소군(桓少君)을 아내로 맞이했다. 시집갈 때 환소군의 집에서 보내는 재물이 매우 풍성하였는데, 포선이 이를 기뻐하지 않자 환소군은 하인과 의복, 장식품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짧은 베치마로 갈아입고, 포선과 함께 작은 수레를 타고 시집으로 갔다. 환소군은 남편의 뜻을 잘 받들어 검소하게 생활했으며 부부가 매우 화목했다고 한다이라도 그들의 절개와 의리를 따를 수가 없었다.

이생이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자, 그의 이름이 조정에 알려졌다.

신축년(辛丑年)고려 공민왕 10년인 1361년. 이 해에 홍건적 십만여 명이 고려를 침략했다 홍건적(紅巾賊)붉은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어 표시를 한 도적. 중국 원(元)나라 말기에 하북(河北)의 한산동(韓山董)을 두목으로 하여 생겨난 도적의 무리. 고려 말에 두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를 침범하였음.이 서울을 함락시키자 왕은 복주(福州)경상북도 안동의 옛 이름로 피난 갔다.고려 말 홍건적이 침입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홍건적의 침입은 둘의 사랑을 가로막는 ‘세계의 횡포’에 해당된다. 적들은 집을 불태워 없애버렸으며, 사람을 죽이고 가축을 잡아먹었다. 부부와 친척끼리도 서로 돌보지 못한 채 동서로 달아나 숨어서 제각기 살길을 찾았다.

(이 때) 이생은 가족들을 데리고 외진 산골로 숨었는데, 한 도적이 칼을 빼어들고 뒤를 쫓아왔다. 이생은 달아나 목숨을 건졌지만, 최랑은 도적에게 사로잡혔다. 도적이 최랑을 겁탈남의 것(물건이나 정조 등)을 폭력으로 빼앗음하려 하자, 최랑이 크게 꾸짖었다.

"창귀(倀鬼)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혼(魂)으로,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호랑이에게 붙어 다니면서 호랑이가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닐 때 앞장 서서 먹이를 찾아 준다고 한다. 못된 짓을 하는 데 남을 인도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같은 놈아. 나를 죽이고 잡아먹어라. 내 차라리 죽어서 시랑(豺狼)승냥이의 밥이 될지언정 어찌 개돼지 같은 놈의 짝이 되겠느냐?"

도적이 노하여 최랑을 죽이고 살을 도려내었다.

이생은 황량한 들판에 숨어서 겨우 목숨을 보전하다가, 도적이 이미 소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이 살던 옛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 집은 이미 전쟁으로 불타 없어졌다. 다시 최랑의 집으로 가보았더니 행랑채는 황량했으며, 집안에는 쥐들이 우글거리고, 새들만 지저귈 뿐이었다.전쟁이 휩쓸고 간 뒤 폐허가 된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이생의 슬프고 암담한 내적 심리를 드러낸다

이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지난날 놀던) 별당 누각에 올라가서 눈물을 거두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날이 저물도록 우두커니 홀로 앉아 지나간 일들을 생각해 보니, 완연히 한바탕 꿈만 같았다.

이경(二更)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누었을 때, 두 번째 시간. 밤9시부터 11시 사이다쯤 되자 은은한 달빛이 들보를 비추었다. 그때 행랑 아래에서 발자국 소리가 멀리서부터 차츰 가까이 다가왔다. 이르고 보니 바로 최랑이었다.

이생은 그녀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깊이 사랑하는 까닭에 의심하지도 않고 물어보았다.

"당신은 어디로 피난 가서 목숨을 보전하였소?"

여인이 이생의 손을 잡고 한바탕 통곡하더니, 이내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저는 본디 양갓집 딸로서 어릴 때부터 가정의 교훈을 받아 수놓기와 바느질에 힘썼고, 시서(詩書)와 예법을 배웠어요. 그래서 규방의 법도만 알뿐이지, 그 밖의 일이야 어찌 알겠어요? 마침 당신이 붉은 살구꽃이 핀 담 안을 엿보았으므로, 제가 푸른 바다에서 캐어 올린 구슬을 바친 거지요. 꽃 앞에서 한번 웃고 평생 사랑하며 함께하자 가약(佳約)좋은 언약, 혼약(婚約)을 맺었고, 휘장 속에서 다시 만날 때에는 정이 백년을 넘쳤었지요.”

여기까지 말하자 슬픔이 북받치는 듯했다. 다시 말을 이어

“장차 백년을 함께 하자고 하였는데, 뜻밖에 횡액(橫厄)갑자기 닥쳐오는 불행을 만나 구렁에 넘어질 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승냥이와 호랑이 같은 도적놈에게 끝까지 정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스스로 진흙탕에 제 몸이 찢겨 죽는 쪽을 택하였습니다.최랑이 왜 죽음을 택하였는지 말해 주는 구절이다. 정조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하였다는 말은 이생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컸음을 말해 준다. 역설적으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였다고 볼 수 있는 구절이다 하늘의 이치로 보자면 당연한 것이지만, 인간의 정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저는 당신과 그 날 궁벽한 산골짜기에서 헤어진 후 짝 잃어 외로이 나는 새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집도 없어지고 부모님도 돌아가셨으니, 피곤한 혼백을 의지할 곳도 없는 게 한스러웠답니다. 절의(節義)는 중요하고 목숨은 가벼우니, 쇠잔한 몸뚱이일망정 치욕을 면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지요. 그러나 마디마디 끊어진 제 마음을 그 누가 불쌍하게 여겨 주겠어요? 그저 애절하게 썩는 애간장에 원한만 맺힐 뿐입니다. 해골은 들판에 나뒹굴고, 내장은 땅바닥에 흩어지겠지요. 가만히 옛날의 즐거움을 생각해 보니 오늘의 슬픔을 위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추연(鄒衍)이 피리를 불어 따뜻한 기운을 일으켰듯이중국 전국 시대 제나라의 음양 오행가인 추연(鄒衍⋅騶衍)이 추운 지방에서 피리를 불어 날씨를 따뜻하게 했다고 한다 봄이 깊은 골짜기에 돌아왔으니, 천녀(倩女)당나라 진현우가 지은 전기소설 「이혼기(離魂記)」의 주인공. 형주에 살며 왕주를 사랑했지만 아버지 장일이 다른 데로 시집보냈다. 천녀는 왕주와 함께 사천으로 달아나 오 년 동안 함께 살며 자식을 둘 낳았는데, 실제 몸은 병든 채 친정에 누워 있었다. 왕주가 사천에서 함께 살았던 천녀는 영혼이었던 것이다의 혼이 이승으로 돌아왔듯이 제 환신(幻身)허깨비같이 허망하고 덧없는 몸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도 이승으로 돌아와 남은 인연을 맺으려 합니다. 봉래산에서 십이 년 만에 만나자는 약속이 얽혀 있고, 취굴(聚㵠)에서 삼생(三生)의 향이 향기로우니, 오랫동안 뵙지 못한 정을 이제 되살려서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겠어요. 당신이 지금도 그 맹세를 잊지 않으셨다면, 저도 끝까지 잘 모시고 싶답니다. 당신도 허락하시겠지요?”

이생이 이를 듣고 한편으로 기뻐하고 한편으로 슬퍼하며 말하였다.

"그게 애당초 내 소원이오."

그리고는 서로 정답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재산을 얼마나 도적들에게 빼앗겼는지 이야기가 나오자, 여인이 말하였다.

"조금도 잃지 않고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 묻어 두었답니다."

이생이 또 물었다.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어디에 모셨소?"

여인이 말하였다.

"어느 곳에다 그냥 버려두었지요."

서로 쌓였던 이야기를 마치고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지극한 즐거움이 예전과 같았다.

이튿날 여인이 이생과 함께 (재물을 묻어 둔) 곳을 찾아갔는데, 과연 금과 은 몇 덩어리가 있었고, 재물도 약간 있었다. 그들은 두 집 부모님의 해골을 거두고 금과 재물을 팔아 각각 오관산(五冠山) 기슭에 합장하였다. 나무를 세우고 제사를 드려 예절을 모두 다 마쳤다.

그 뒤에 이생은 벼슬을 구하지 않고 최씨와 함께 살게 되었다. 목숨을 구하려고 달아났던 종들도 또한 스스로 돌아왔다. 이생은 이때부터 인간세상의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으며, 아무리 친척이나 손님들의 길흉사가 있더라도 방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다. 언제나 최씨와 더불어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금실 좋게 지내었다. 그럭저럭 몇 년이 지났다.

어느 날 저녁에 여인이 이생에게 말하였다.

“세 번이나 가약을 맺었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즐거움이 다하기도 전에 슬프게 헤어져야만 하겠어요.”

여인이 목메어 울자 이생이 놀라면서 물었다.

"어찌 이렇게 되었소?"

여인이 대답하였다.

"저승길은 피할 수가 없답니다. 천제(天帝)천지를 주관하는 하느님께서 저와 당신의 연분이 끊어지지 않았고 또 전생에 아무런 죄도 지지 않았다면서, 이 몸을 환생시켜 당신과 잠시라도 시름을 풀게 해주었었지요. 그러나 제가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면서 산 사람을 미혹시킬 수는 없답니다."사람이 죽더라도 한(恨)이 맺힌 사람은 잠시 이승에 머물 수도 있다는 작가의 내세관과 영혼관이 드러난 부분이다

그리고는 몸종 향아를 시켜서 술을 올리게 하고는, 「옥루춘(玉樓春)노래 부를 수 있도록 짓는 사(詞)의 곡조 이름」 곡조에 맞추어 노래 한 가락을 지어 부르며 이생에게 술을 권하였다.

방패와 창이 어우러져 싸움이 가득한 판에
옥 부서지고 꽃 떨어지니 원앙도 짝을 잃었네.
흩어진 해골을 그 누가 묻어 주랴.
피에 젖어 떠도는 혼이 하소연할 곳도 없었네.
무산(巫山)의 선녀가 고당(高塘)에 한 번 내려온 뒤에송옥이 지은 『고당부서』에 나오는 이야기로, 춘추시대 초나라 회왕이 ‘고당’이라는 누대에 놀러갔다가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 무산의 선녀가 나타나 정을 통했다. 선녀가 회왕을 모신 뒤에 떠나면서, 자기는 “아침에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양대 아래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회왕이 아침에 보니 과연 구름이 떠 있었다.
깨어진 거울[破鏡]파경은 부부의 이별을 뜻한다이 거듭 갈라지니 마음 더욱 쓰리구나.
이제 한번 작별하면 둘이 서로 아득해질 테니
하늘과 인간세상 사이에 소식마저 막히리라.

노래를 한 마디 부를 때마다 눈물이 자꾸 내려 거의 곡조를 이루지 못하였다. 이생도 또한 슬픔을 걷잡지 못하며 말하였다.

“내 차라리 당신과 함께 구천(九泉)구지(九地)의 바로 밑에 있는 샘으로 황천(黃泉)을 말하며, 흔히 저승을 뜻함으로 갈지언정 어찌 무료하게 홀로 여생을 보전하겠소? 지난번 난리를 겪고 난 뒤에 친척과 종들이 저마다 서로 흩어지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해골이 들판에 내버려져 있었는데, 당신이 아니었다면 그 누가 장사를 지내 드렸겠소? 옛 사람 말씀에, ‘어버이가 살아 계실 때에는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신 뒤에는 예로써 장사지내라.’ 하셨는데「논어」에 나오는 구절로,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를 강조한 대목이다. 이러한 자식의 도리를 할 수 있도록 해준 아내 최랑에 대한 고마움이 나타나 있다, 이런 일을 모두 당신이 감당해 주었소. 당신은 정말 천성이 효성스럽고 인정이 두터운 사람이오. 나는 당신에게 고맙기 그지없고,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겠소홍건적이 쳐들어 왔을 때, 이생이 미처 아내 최랑을 돌보지 못하고 혼자만 몸을 피해 목숨을 건진 일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말이다. 당신도 인간 세상에 더 오래 머물다가 백년 뒤에 나와 함께 티끌이 되었으면 좋겠구려.”

여인이 말하였다.

"당신의 목숨은 아직 십이 년이 남아 있지만, 저는 이미 귀신의 명부[鬼籙]에 실려 있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볼 수가 없지요. 제가 굳이 인간세상을 그리워하며 미련을 가진다면 저승의 법도를 어기게 되니, 저에게만 죄가 미치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도 또한 누가 미치게 된답니다. 제 유골이 어느 곳에 흩어져 있으니, 만약 은혜를 베풀어주시려면 (그 유골이나 거두어) 비바람을 맞지 않게 해주세요."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낭군님,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말이 끝나자 차츰 사라지더니 마침내 자취가 없어졌다.

이생은 (여인의 말대로) 유골을 거두어 부모님의 무덤 곁에다 장사를 지내 주었다. 장사를 지낸 뒤에는 이생도 또한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다가 병을 얻어,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최랑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 주고 이생도 얼마 후 죽고 만다. 아내가 없는 이승에서의 삶은 이생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최랑에 대한 이생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마다 가슴 아파 탄식하며 그들의 아름다운 절개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원문

松都有李生者송도유이생자, 居駱駝橋之側거낙타교지측. 年十八년십팔, 風韻淸邁풍운청매, 天資英秀천자영수. 常詣國學상예국학, 讀詩路傍독시로방. 善竹里선죽리, 有巨室處崔氏유거실처최씨, 年可十五六년가십오륙, 態度艶麗태도염려, 工於刺繡공어자수, 而長於詩賦이장어시부. 世稱세칭:

風流李氏子풍류이씨자. 窈窕崔家娘요조최가낭. 才色若可餐재색약가찬, 可以療飢腸가이료기장.”

李生嘗挾冊詣學이생상협책예학, 常過崔氏之家상과최씨지가, 北牆外북장외, 垂楊裊裊수양뇨뇨, 數十株環列수십주환열, 李生憩於其下이생게어기하. 一日窺牆內일일규장내, 名花盛開명화성개, 蜂鳥爭喧봉조쟁훤, 傍有小樓방유소루, 隱映於花叢之間은영어화총지간, 株簾半掩주렴반엄, 羅幃低垂라위저수. 有一美人유일미인, 倦繡停針권수정침, 支頤而吟曰지이이음왈:

獨倚紗窓刺繡遲독의사창자수지, 百花叢裏囀黃鸝백화총리전황리.
無端暗結東風怨무단암결동풍원, 不語停針有所思불어정침유소사.

路上誰家白面郞로상수가백면랑, 靑衿大帶映垂楊청금대대영수양.
何方可化堂中燕하방가화당중연, 低掠珠簾斜度墻저략주렴사도장.

生聞之생문지, 不勝技癢불승기양, 然其門戶高峻연기문호고준, 庭闈深邃정위심수, 但怏怏而去단앙앙이거. 還時以白紙一幅환시이백지일폭, 作詩三首작시삼수, 繫瓦礫投之曰계와력투지왈:

巫山六六霧重回무산육육무중회, 半露尖峰紫翠堆반로첨봉자취퇴.
惱却襄王孤枕夢뇌각양왕고침몽, 肯爲雲雨下陽臺긍위운우하양대.

相如欲挑卓文君상여욕도탁문군, 多少情懷已十分다소정회이십분.
紅粉墻頭桃李艶홍분장두도리염, 隨風何處落繽紛수풍하처락빈분.

好因緣邪惡因緣호인연사악인연, 空把愁腸日抵年공파수장일저년.
二十八字媒已就이십팔자매이취, 藍橋何日遇神仙남교하일우신선.

崔氏최씨, 命侍婢香兒명시비향아, 往取見之왕취견지, 卽李生詩也즉이생시야. 披讀再三피독재삼, 心自喜之심자희지. 以片簡이편간, 又書八字우서팔자, 投之曰투지왈:

將子無疑장자무의, 昏以爲期혼이위기.”

生如其言생여기언, 乘昏而往승혼이왕, 忽見桃花一枝홀견도화일지, 過墻而有搖裊之影과장이유요뇨지영. 往視之則以鞦韆絨索왕시지즉이추천융삭, 繫竹兜下垂계죽두하수. 生攀緣而踰생반연이유, 會月上東山회월상동산, 花影在地화영재지, 淸香可愛청향가애. 生意謂已入仙境생의위이입선경, 心雖竊喜심수절희, 而情密事秘이정밀사비, 毛髮盡竪모발진수, 回眄左右회면좌우, 女已在花叢裏여이재화총리, 與香兒여향아, 折花相戴절화상대, 鋪罽僻地포계벽지, 見生微笑견생미소, 口占二句구점이구, 선창왈:

桃李枝間花富貴도리지간화부귀, 鴛鴦枕上月嬋娟원앙침상월선연.

生續吟曰생속음왈:

他時漏洩春消息타시루설춘소식, 風雨無情亦可憐풍우무정역가련.

女變色而言曰여변색이언왈: “本欲與君본욕여군, 終奉箕帚종봉기추, 永結歡娛영결환오, 郞何言之若是遽也랑하언지약시거야? 妾雖女類첩수여류, 心意泰然심의태연, 丈夫意氣장부의기, 肯作此語乎긍작차어호? 他日閨中事洩타일규중사설, 親庭譴責친정견책, 妾以身當之첩이신당지. 香兒可於房中향아가어방중, 賫酒果以進재주과이진.” 兒如命而往아여명이왕, 四座寂寥사좌적요, 闃無人聲격무인성, 生問曰생문왈: “此是何處차시하처?" 女曰여왈: “此是北園中小樓下也차시북원중소루하야. 父母以我一女부모이아일녀, 情鍾甚篤정종심독, 別構此樓于芙蓉池畔별구차누우부용지반, 方春時방춘시, 名花盛開명화성개, 欲使從侍兒遨遊耳욕사종시아오유이. 親闈之居친위지거, 閨閤深邃규합심수, 雖笑語啞咿수소어아이, 亦不能卒爾相聞也역불능졸이상문야.”

女酌綠蟻一巵여작녹의일치, 口占古風一篇曰구점고풍일편왈:

曲欄下壓芙蓉池곡란하압부용지, 池上花叢人共語지상화총인공어.
香霧霏霏春融融향무비비춘융융, 製出新詞歌白紵제출신사가백저.
月轉花陰入氍毹월전화음입구유, 共挽長條落紅雨공만장조락홍우.
風攪淸香香襲衣풍교청향향습의, 賈女初踏春陽舞고녀초답춘양무.
羅衫輕拂海棠枝나삼경불해당지, 驚起花間宿鸚鵡경기화간숙앵무.

生卽和之曰생즉화지왈:

誤入桃源花爛熳오입도원화난만, 多少情懷不能語다소정회불능어.
翠鬟雙綰金釵低취환쌍관금채저, 楚楚春衫裁綠紵초초춘삼재록저.
東風初拆竝帶花동풍초탁병대화, 莫使繁枝戰風雨막사번지전풍우.
飄飄仙袂影婆婆표표선몌영파파, 叢桂陰中素娥舞총계음중소아무.
勝事未了愁必隨승사미료수필수, 莫製新詞敎鸚鵡막제신사교앵무.

吟罷음파, 女謂生曰여위생왈: “今日之事금일지사, 必非小緣필비소연, 郞須尾我랑수미아, 以遂情款이수정관.” 言訖언흘, 女從北窓入여종북창입, 生隨之생수지, 樓梯在房中루제재방중. 綠梯而昇록제이승, 果其樓也과기루야. 文房几案문방궤안, 極其濟楚극기제초. 一壁展煙江疊嶂圖일벽전연강첩장도, 幽篁古木圖유황고목도, 皆名畵也개명화야. 題詩其上제시기상, 詩不知何人所作시부지하인소작. 其一曰기일왈:

何人筆端有餘力하인필단유여력, 寫此江心千疊山사차강심천첩산.
壯哉方壺三萬丈장재방호삼만장, 半出縹緲烟雲間반출표묘연운간.
遠勢微茫幾百里원세미망기백리, 近見崒嵂靑螺鬟근견줄률청라환.
滄波淼淼浮遠空창파묘묘부원공, 日暮遙望愁鄕關일모요망수향관.
對此令人意蕭索대차령인의소삭, 疑泛湘江風雨灣의범상강풍우만.

其二曰기이왈:

幽篁蕭颯如有聲유황소삽여유성, 古木偃蹇如有情고목언건여유정.
狂根盤屈惹苺苔광근반굴야매태, 老幹夭矯排風雷노간요교배풍뢰.
胸中自有造化窟흉중자유조화굴, 妙處豈與傍人說묘처기여방인설.
韋偃與可已爲鬼위언여가이위귀, 漏洩天機知有幾루설천기지유기.
晴窓嗒然淡相對청창탑연담상대, 愛看幻墨神三昧애간환묵신삼매.

一壁貼四時景일벽첩사시경, 各四首각사수, 亦不知爲何人所作역부지위하인소작. 其筆기필, 則摹松雪眞字즉모송설진자, 體極精姸체극정연. 其一幅曰기일폭왈:

芙蓉帳暖香如縷부용장난향여루, 窓外霏霏紅杏雨창외비비홍행우.
樓頭殘夢五更鐘루두잔몽오경종, 百舌啼在辛夷塢백설제재신이오.

燕子日長閨閤深연자일장규합심, 懶來無語停金針라래무어정금침.
花底雙雙飛蝶蛺화저쌍쌍비접협, 爭趰落花庭院陰쟁이락화정원음.

嫩寒輕透綠羅裳눈한경투록라상, 空對春風暗斷腸공대춘풍암단장.
脉脉此情誰料得맥맥차정수료득, 百花叢裏舞鴛鴦백화총리무원앙.

春色深藏黃四家춘색심장황사가, 深紅淺綠映窓紗심홍천록영창사.
一庭芳草春心苦일정방초춘심고, 輕揭珠簾看落花경게주렴간낙화.

其二幅曰기이폭왈:

小麥初胎乳燕斜소맥초태유연사, 南園開遍石榴花남원개편석류화.
綠窓工女幷刀饗록창공녀병도향, 擬試紅裙剪紫霞의시홍군전자하.

黃梅時節雨簾纖황매시절우렴섬, 鸎囀槐陰燕入簾앵전괴음연입렴.
又是一年風景老우시일년풍경노, 棟花零落笋生尖동화영락순생첨.

手拈靑杏打鸎兒수념청행타앵아, 風過南軒日影遲풍과남헌일영지.
荷葉已香池水滿하엽이향지수만, 碧波深處浴鸕鶿벽파심처욕로자.

藤牀筠簟浪波紋등상균점랑파문, 屛畵瀟湘一抹雲병화소상일말운.
懶慢不堪醒午夢라만불감성오몽, 半窓斜日欲西曛반창사일욕서훈.

其三幅曰기삼폭왈:

秋風策策秋露凝추풍책책추로응, 秋月娟娟秋水碧추월연연추수벽.
一聲二聲鴻雁歸일성이성홍안귀, 更聽金井梧桐葉갱청금정오동엽.

床下百蟲鳴喞喞상하백충명즐즐, 床上佳人珠淚滴상상가인주루적.
良人萬里事征戰양인만리사정전, 今夜玉門關月白금야옥문관월백.

新衣欲裁剪刀冷신의욕재전도냉, 低喚丫兒呼熨斗저환아아호위두.
熨斗火銷全未省위두화소전미성, 細撥秦箏又搔首세발진쟁우소수.

小池荷盡芭蕉黃소지하진파초황, 鴛鴦瓦上粘新霜원앙와상점신상.
舊愁新恨不能禁구수신한불능금, 況聞蟋蟀鳴洞房황문실솔명동방.

其四幅曰기사폭왈:

一枝梅影向窓橫일지매영향창횡, 風緊西廊月色明풍긴서랑월색명.
爐火未銷金筋撥로화미소금근발, 旋呼丫髻換茶鐺선호아계환다당.

林葉頻驚半夜霜임엽빈경반야상, 回風飄雪入長廊회풍표설입장랑.
無端一夜相思夢무단일야상사몽, 都在氷河古戰場도재빙하고전장.

滿窓紅日似春溫만창홍일사춘온, 愁鎖眉峰著睡痕수쇄미봉저수흔.
膽甁小梅腮半吐담병소매시반토, 含羞不語繡雙鴛함수불어수쌍원.

剪剪霜風掠北林전전상풍략북림, 寒鳥啼月正關心한조제월정관심.
燈前爲有思人淚등전위유사인루, 滴在穿絲小挫針적재천사소좌침.

一傍일방, 別有小室一區별유소실일구, 帳褥衾枕장욕금침, 亦甚整麗역심정려. 帳外爇麝臍장외설사제, 燃蘭膏연난고, 熒煌映徹형황영철, 恍如白晝황여백주. 生與女생여녀, 極其情歡극기정환, 遂留數日수유수일, 生謂女曰생위녀왈: “先聖有言선성유언, 父母在부모재. 遊必有方유필유방, 而今我定省이금아정성. 已過三日이과삼일, 親必倚閭而望친필의려이망, 非人子之道也비인자지도야.” 女惻然而頷之여측연이함지, 踰垣而遣之유원이견지. 生自是以後생자시이후, 無已不往무이불왕.

一夕일석, 李生之父이생지부, 問曰문왈: “汝朝出而暮還者여조출이모환자, 將以學先聖仁義之格言장이학선성인의지격언, 昏出而曉還혼출이효환, 當爲何事당위하사? 必作輕薄子필작경박자, 踰垣牆유원장, 折樹壇耳절수단이. 事如彰露사여창로, 人皆譴我敎子之不嚴인개견아교자지불엄, 而如其女이여기녀, 定是高門右族정시고문우족, 則必以爾之狂狡즉필이이지광교, 穢彼門戶예피문호, 獲戾人家획려인가, 其事不小기사불소, 速去嶺南속거영남, 率奴隷監農솔노례감농, 勿得復還물득복환.” 卽於翌日즉어익일, 謫送蔚州적송울주.

女每夕녀매석, 於花園待之어화원대지, 數月不還수월불환. 女意其得病녀의기득병, 命香兒명향아, 密問於李生之鄰밀문어이생지린, 鄰人曰린인왈: “李郞이랑, 得罪於家君득죄어가군, 去嶺南거영남, 已數月矣이수월의.” 女聞之녀문지, 臥疾在床와질재상, 轉轉不起전전불기, 水醬不入於口수장불입어구, 言語支離언어지리, 肌膚憔悴기부초췌, 父母怪之부모괴지, 問其病狀문기병상, 喑喑不言암암불언. 搜其箱篋수기상협, 得李生前日唱和詩득이생전일창화시, 擊節驚訝曰격절경아왈: “幾乎失我女子矣기호실아녀자의.” 問曰문왈: “李生誰耶이생수야?” 至是지시, 女不能復隱녀불능복은, 細語在咽中세어재인중, 告父母曰고부모왈: “父親母親부친모친, 鞠育恩深국육은심, 不能相匿불능상닉. 竊念男女相感절념남녀상감, 人情至重인정지중. 是以시이, 摽梅迨吉표매태길, 咏於周南영어주남, 咸腓之凶함비지흉, 刑於羲易형어희역. 自將蒲柳之質자장포류지질, 不念桑落之詩불념상낙지시, 行露沾衣행로첨의, 竊被傍人之嗤절피방인지치. 絲蘿托木사라탁목, 已作渭兒之行이작위아지행. 罪已貫盈죄이관영, 累及門戶루급문호. 然而彼狡童兮연이피교동혜, 一偸賈香일투가향, 千生喬怨천생교원, 以眇眇之弱軀이묘묘지약구, 忍悄悄之獨處인초초지독처, 情念日深정념일심, 沈痾日篤침아일독, 濱於死地빈어사지, 將化窮鬼장화궁귀. 父母如從我願부모여종아원, 終保餘生종보여생, 倘違情款당위정관, 斃而有已폐이유이. 當與李生당여이생, 重遊黃壞之下중유황괴지하, 誓不登他門也서불등타문야.”

於是어시, 父母已知其志부모이지기지, 不復問病불복문병, 且警且誘차경차유, 以寬其心이관기심, 復修媒妁之禮복수매작지례, 問于李家문우이가. 李氏問崔家門戶優劣曰이씨문최가문호우열왈: “吾家豚犬오가돈견, 雖年少風狂수년소풍광, 學問精通학문정통, 身彩似人신채사인, 所冀捷龍頭於異日소기첩용두어이일, 占鳳鳴於他年점봉명어타년, 不願速求婚媾也불원속구혼구야.” 媒者매자, 以言返告이언반고, 崔氏復遣曰최씨복견왈: “一時朋伴일시붕반, 皆稱令嗣才華邁人개칭령사재화매인, 今雖蟠屈금수반굴, 豈是池中之物기시지중지물. 宜速定嘉會之晨의속정가회지신, 以合二姓之好이합이성지호.” 媒者매자, 又以其言우이기언, 返告李生之父반고이생지부, 父曰부왈: “吾亦自少오역자소, 把冊窮經파책궁경, 年老無成년노무성. 奴僕逋逃노복포도, 親戚寡助친척과조, 生涯疎闊생애소활, 家計伶俜가계령빙, 而況巨家大族이황거가대족, 豈以一人寒儒기이일인한유, 留意爲贅郞乎유의위췌랑호. 是必好事者시필호사자, 過譽吾家과예오가, 以誣高門也이무고문야.” , 又告崔家우고최가, 崔家曰최가왈: “納采之禮납채지례, 漿束之事장속지사, 吾盡辨矣오진변의. 宜差穀旦의차곡단, 以定花燭之期이정화촉지기.” 媒者매자, 又返告之우반고지. 李家至是이가지시, 稍回其意초회기의, 卽遣人즉견인, 召生問之소생문지. 生喜不自勝생희부자승, 乃作詩曰내작시왈:

破鏡重圓會有時파경중원회유시, 天津烏鵲助佳期천진오작조가기.
從今月老纏繩去종금월로전승거, 莫向東風怨子規막향동풍원자규.

女聞之여문지, 病亦稍愈병역초유, 又作詩曰우작시왈:

惡因緣是好因緣악인연시호인연, 盟語終須到底圓맹어종수도저원.
共輓鹿車何日是공만녹거하일시, 倩人扶起理花鈿천인부기리화전.

於是어시, 擇吉日택길일, 遂定婚禮수정혼례, 而續其絃焉이속기현언. 自同牢之後자동뢰지후, 夫婦愛而敬之부부애이경지, 相待如賓상대여빈, 雖鴻光鮑桓수홍광포환, 不足言其節義也부족언기절의야. 生翌年생익년, 捷高科첩고과, 登顯仕등현사, 聲價聞于朝著성가문우조저.

辛丑年신축년, 紅賊據京城홍적거경성, 王移福州왕이복주. 賊焚蕩室廬적분탕실려, 臠炙人畜련자인축. 夫婦親戚부부친척, 不能相保불능상보, 東奔西竄동분서찬, 各自逃生각자도생. 生挈家생설가, 隱匿窮崖은닉궁애. 有一賊유일적, 拔劍而逐발검이축. 生奔走得脫생분주득탈, 女爲賊所虜여위적소로, 欲逼之욕핍지, 女大罵曰여대매왈: “倀鬼殺啗我창귀살담아, 寧死葬於豺狼之腹中영사장어시랑지복중, 安能作狗彘之匹乎안능작구체지필호?” 賊怒적노, 殺而剮之살이과지.

生竄于荒野생찬우황야, 僅保餘軀근보여구. 聞賊已滅문적이멸, 遂尋父母舊居수심부모구거, 其家已爲兵火所焚기가이위병화소분. 又至女家우지녀가, 廊廡荒凉랑무황량, 鼠喞鳥喧서즐조훤. 悲不自勝비부자승, 登于小樓등우소루, 收淚長噓수루장허. 奄至日暮엄지일모, 塊然獨坐괴연독좌, 佇思前遊저사전유, 宛如一夢완여일몽.

將及二更장급이경, 月色微吐월색미토, 光照屋梁광조옥량. 漸聞廊下점문랑하, 有跫然之音유공연지음, 自遠而近자원이근, 至則崔氏也지칙최씨야. 生雖知已死생수지이사, 愛之甚篤애지심독, 不復疑訝불복의아. 遽問曰거문왈: “避於何處피어하처, 全其軀命전기구명?” 女執生手여집생수, 慟哭一聲통곡일성. 乃敍情曰내서정왈: “妾本良族첩본량족, 幼承庭訓유승정훈, 工刺繡裁縫之事공자수재봉지사, 學詩書仁義之方학시서인의지방, 但識閨門之治단식규문지치, 豈解境外之修기해경외지수. 然而一窺紅杏之墻연이일규홍행지장, 自獻碧海之珠자헌벽해지주. 花前一笑화전일소, 恩結平生은결평생, 帳裏重遘장리중구, 情愈百年정유백년.” 言至於此언지어차, 悲慙曷勝비참갈승. “將謂偕老而歸居장위해로이귀거, 豈意橫折而顚溝기의횡절이전구, 終不委身於豺虎종불위신어시호, 自取磔肉於泥沙자취책육어니사, 固天性之自然고천성지자연, 匪人情之可忍비인정지가인. 却恨一別於窮崖각한일별어궁애, 竟作分飛之匹鳥경작분비지필조. 家亡親沒가망친몰, 傷殢魄之無依상체백지무의, 義重命輕의중명경, 幸殘軀之免辱행잔구지면욕. 誰憐寸寸之灰心수련촌촌지회심, 徒結斷斷之腐腸도결단단지부장, 骨骸暴野골해폭야, 肝膽塗地간담도지. 細料昔時之歡娛세료석시지환오, 適爲當日之愁寃적위당일지수원. 今則鄒律已吹於幽谷금즉추률이취어유곡, 倩女再返於陽閒천녀재반어양한. 蓬萊一紀之約綢繆봉래일기지약주무, 聚窟三生之香芬郁취굴삼생지향분욱, 重契闊於此時중계활어차시, 期不負乎前盟기부부호전맹, 如或不忘여혹불망, 終以爲好종이위호, 李郞其許之乎이랑기허지호?” 生喜且感曰생희차감왈: “固所願也고소원야.” 相與款曲抒情상여관곡서정. 言及家産被寇掠有無언급가산피구략유무, 女曰녀왈: “一分不失일분부실, 埋於某山某谷也매어모산모곡야.” 又問우문: “兩家父母骸骨安在양가부모해골안재?” 女曰여왈: “暴棄某處폭기모처.” 敍情罷서정파, 同寢極歡如昔동침극환여석.

明日명일, 與生俱往尋瘞處여생구왕심예처, 果得金銀數錠及財物若干과득금은수정급재물약간. 又得收拾兩家父母骸骨우득수습양가부모해골. 貿金賣財무금매재, 各合葬於五冠山麓각합장어오관산록, 封樹祭獻봉수제헌, 皆盡其禮개진기례.

其後기후, 生亦不求仕官생역불구사관, 與崔氏居焉여최씨거언. 幹僕之逃生者간복지도생자, 亦自來赴역자래부. 生自是以後생자시이후, 懶於人事라어인사, 雖親戚賓客賀弔수친척빈객하조, 杜門不出두문불출, 常與崔氏상여최씨, 或酬或和혹수혹화, 琴瑟偕和금슬해화, 荏苒數年임염수년.

一夕일석, 女謂生曰녀위생왈: “三遇佳期삼우가기, 世事蹉跎세사차타, 歡娛不厭환오불염, 哀別遽至애별거지.” 遂嗚咽수오인, 生驚問曰생경문왈: “何故至此하고지차?” 女曰녀왈: “冥數不可躱也명수불가타야, 天帝以妾與生천제이첩여생, 緣分未斷연분미단, 又無罪障우무죄장, 假以幻體가이환체, 與生暫割愁腸여생잠할수장, 非久留人世비구류인세, 以惑陽人이혹양인.” 命婢兒進酒명비아진주, 歌玉樓春一闋가옥루춘일결, 以侑生이유생, 歌曰가왈:

干戈滿目交揮處간과만목교휘처, 玉碎花飛鴛失侶옥쇄화비원실려.
殘骸狼籍竟誰埋잔해랑적경수매, 血汚遊魂無與語혈오유혼무여어.
高唐一下巫山女고당일하무산녀, 破鏡重分心慘楚파경중분심참초.
從玆一別兩茫茫종자일별양망망, 天上人間音信阻천상인간음신조.

每歌一聲매가일성, 飮泣數下음읍수하, 殆不成腔태불성강. 生亦悽惋不已曰생역처완불이왈: “寧與娘子영여낭자, 同入九泉동입구천, 豈可無聊獨保殘生기가무료독보잔생. 向者향자, 傷亂之後상난지후, 親戚僮僕친척동복, 各相亂離각상난리, 亡親骸망친해 狼籍原野랑적원야, 儻非娘子당비낭자, 誰能奠埋수능전매. 古人云고인운: 生事之以禮생사지이례, 死葬之以禮사장지이례. 盡在娘子진재낭자, 天性之純孝천성지순효, 人情之篤厚也인정지독후야. 感激無已감격무이, 自愧可勝자괴가승. 願娘子원낭자, 淹留人世엄류인세, 百年之後백년지후, 同作塵土동작진토.” 女曰녀왈: “李郞之壽이랑지수, 剩有餘紀잉유여기, 妾已載鬼籙첩이재귀록, 不能久視불능구시. 若固眷戀人間약고권련인간, 違犯條令위범조령, 非唯罪我비유죄아, 兼亦累及於君겸역누급어군. 但妾之遺骸단첩지유해, 散於某處산어모처, 倘若垂恩당약수은, 勿暴風日물폭풍일.” 相視泣下數行云상시읍하수행운: “李郞珍重이랑진중.” 言訖漸滅언흘점멸, 了無踪迹료무종적.

生拾骨생습골, 附葬于親墓傍부장우친묘방. 旣葬기장, 生亦以追念之故생역이추념지고, 得病數月而卒득병수월이졸. 聞者莫不傷歎문자막불상탄, 而慕其義焉이모기의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