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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부벽정에서 취하여 놀다 … 김시습「취유부벽정기」(전문)

현대어역

평양은 옛 조선의 서울이었다.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이기고 기자(箕子)를 방문하자, 기자가「홍범(洪範)」구주(九疇)의 법을 일러주었다.기자는 중국 은나라의 현인으로 이름은 서여(胥餘)이다. 주나라 무왕이 그에게 세상 다스리는 법을 물었는데, 기자가 홍범구주의 법을 가르쳤다. 홍범구주란 『서경』 주서 홍범 편에 기록되어 있는 정치 도덕의 아홉 가지 원칙이다 무왕이 기자를 이 땅에 봉하였지만 신하로 삼지는 않았다.

이곳의 명승지로는 금수산, 봉황대, 능라도, 기린굴, 조천석, 추남허 등이 있는데, 모두 고적(古跡)옛 유적지이다. 영명사(永明寺)의 부벽정(浮碧亭)부벽루라고도 불림. 평양에 있는 정자의 이름으로 ‘푸른 대동강 위에 떠 있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정자이기에 부벽(浮碧: 뜰 부, 푸를 벽)이라는 이름이 덧붙여졌다 한다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영명사 자리는 바로 고구려 동명왕의 구제궁(九梯宮) 터다. 이 절은 성 밖에서 동북쪽으로 이십 리 되는 곳이 있다. 긴 강을 내려다보고 평원을 멀리 바라보며 아득하기 그지없으니, 참으로 좋은 경치였다.

그림 그린 놀잇배와 장삿배들이 날 저물 무렵 대동문 밖에 있는 유기(柳磯)버들 숲 낚시터에 닿아 머물게 되면, 사람들은 으레 강물을 따라 올라와서 이곳을 마음대로 구경하며 실컷 즐기다가 돌아가곤 하였다.

부벽정 남쪽에는 돌을 다듬어 만든 사닥다리가 있다. 왼편에는 청운제(靑雲梯), 오른편에는 백운제(白雲梯)라고 돌에다 글자를 새겨 화주(華柱)화표주(華表柱), 길가에 세워 이정표를 삼거나 무덤 앞에 세우기도 하는 돌기둥를 세워 놓았으므로, (일 벌이기 좋아하는) 호사자(好事者)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천순(天順)명나라 영종의 연호로 1457∼1464년까지 초년천순 초년인 1457년은 조선 세조3년임에 개성에 홍생(洪生)이라는 부자가 있었다. 그는 나이도 젊고 얼굴도 잘생긴데다 풍도가 있었으며, 또한 글을 잘 지었다. 그가 한가윗날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평양에서 (여인을 유혹하려고) 베를 안고 와서 실을 바꾸었다[抱布貿絲]『시경』 위풍 「맹(氓)」의 한 구절. “베를 가지고 와서 비단실을 사네. 비단실을 사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꼬이려는 것이지[抱布貿絲, 匪來貿絲, 來卽我謀].” 여인을 유혹한다는 뜻임. 그런 뒤에 배를 강가에 대자, 성안의 이름난 기생들이 모두 성문 밖으로 나와서 홍생에게 추파를 던졌다.

성안에 이생(李生)이라는 옛 친구가 살았는데, 잔치를 베풀어 홍생을 환영하였다. 홍생은 술이 취하자 배로 돌아갔지만 밤이 서늘하고 잠도 오지 않아서, 문득 장계(張繼)가 지은 「풍교야박(楓橋夜泊)」이라는 시장계는 당나라 때 시인으로, 이 시의 원래 제목은 「야박풍교시」다가 생각났다. 그래서 맑은 흥취를 견디지 못해 작은 배를 타고는, 달빛을 싣고 노를 저어서 올라갔다. 흥취가 다하면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올라가다가, 이르고 보니 부벽정 아래였다.

홍생은 뱃줄을 갈대숲에 매어 두고, 사닥다리를 밟고 올라갔다.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며, 맑은 소리로 낭랑하게 시를 읊었다.

그때 달빛은 바다처럼 넓게 비치고 물결은 흰 비단처럼 고운데, 기러기는 모래밭에서 울고 학은 소나무에서 떨어지는 이슬방울에 놀라서 푸드덕거렸다. 마치 하늘 위에 옥황상제가 계신 곳에라도 오른 것처럼 몸과 마음이 서늘해졌다.

한편 옛 서울을 돌아보니 하얀 (회칠을 한) 성가퀴[堞]성 위에 낮게 쌓아 올린 담. 이곳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한다에는 안개가 끼어 있고, 외로운 성 밑에는 물결만 부딪칠 뿐이었다. 「맥수은허(麥秀殷墟)」은나라가 망한 뒤 기자가 고국의 옛 도읍 터를 지나가다가 보리가 나서 자란 것을 보고 서글퍼 지은 노래의 탄식이 저절로 나와, 이내 시 여섯 수를 지어 읊었다.

부벽정 올라와 시흥을 못 견디고 읊으니
흐느끼는 강물 소리가 애끓는 듯 하여라.
용 같고 호랑이 같던 고국의 기상은 이미 없어졌건만
황폐한 옛 성은 지금까지도 봉황 모습 그대로일세.
모래밭에 달빛이 희니 기러기는 갈 길을 잃고
풀밭에는 연기가 걷혀 반딧불만 반짝이네.
사람 세상에 바뀌고 보니 풍경마저 쓸쓸해져
한산사(寒山寺)중국 소주 오현 서쪽에 있는 절. 여기서는 영명사를 가리키지만, 장계의 「야박풍교시」에 한산사가 나오므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깊은 곳에서 종소리만 들려오네.

임금 계시던 궁궐에는 가을 풀만 쓸쓸하고
구름 낀 돌층계는 길마저 아득해라.
기관(妓館) 옛터에는 냉이풀만 우거졌는데
성가퀴[女墻]에 희미한 달 보며 까마귀만 우짖네.
풍류롭던 옛일은 티끌이 되었고
적막한 빈 궁성엔 찔레만 덮였구나.
오직 강물만이 옛날 그대로 울며 울며
도도히 흘러서 서쪽 바다로 향하누나.

대동강 저 물결은 쪽보다도 더 푸르네.
천고 흥망을 한탄한들 어이하랴.
우물에는 물이 말라 담쟁이만 드리웠고
이끼 낀 돌층계는 능수버들이 에워쌌네.
타향의 풍월을 천 수나 읊고 보니
고국의 정회(情懷)에 술이 더욱 취하여라.
달빛이 난간에 밝아 졸음조차 오지 않는데
밤 깊어지며 계화 향기가 살며시 떨어지네.

오늘이 한가위라 달빛은 곱기만 한데
외로운 옛 성은 볼수록 서글퍼라.
기자묘(箕子廟)기자의 사당. 평양성 안에 있음 뜰에는 교목이 늙어 있고
단군사(檀君祠)단군의 사당. 조선 세종 11년(1429)에 창건해 봄가을로 제사를 지낸다 벽 위에는 담쟁이가 얽히었네.
영웅들 적막하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풀과 나무만 의희(依稀)희미하다. 어렴풋하다. 서로 닮다. 비슷하다한데 몇 해나 되었던가?
오직 그 옛날의 둥근 달만 남아 있어
맑은 빛이 흘러나와 이내 옷깃을 비추네.

동산에 달이 뜨자 까막까치 흩어져 날고
밤 깊어지자 찬이슬이 나의 옷을 적시네.
천년 문물과 의관은 다 없어지고
만고의 강산에도 성곽은 허물어졌네.
하늘에 오른 성제(聖帝)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을 가리킴.께선 돌아오지 않으시니
인간 세상에 남긴 이야기를 무엇으로 증거하랴.
황금수레에 기린(麒麟)고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동물인데 좋은 일인 ‘길조’를 뜻하는 상상의 동물로 생김새는 말과 비슷하다. 고구려 시조 동명왕이 타고 다녔으며, 고구려를 떠나 신선이 되어 사라질 때 기린을 타고 떠났다고 한다 말도 이제는 자취 없어
연로(輦路)임금의 수레가 오가던 길. 궁중의 길을 가리킴에는 풀 우거지고 스님만이 홀로 가네.

찬이슬이 내리자 뜰의 풀이 다 시드는데
청운교와 백운교는 마주보고 서 있구나.
수나라 대군고구려에 쳐들어왔다가 청천강에서 을지문덕에게 몰살당한 수나라의 수십만 대군을 가리킴의 넋이 여울에서 울어예니
수양제의 정령(精靈)이 원통한 매미 되었던가.
한길에는 연기만 낀 채 수레 소리도 끊어졌는데
소나무 우거진 행궁(行宮)임금이 행차할 때에 머물던 별궁에는 저녁 종소리만 들리네.
누각에 올라 시를 읊어도 그 누가 함께 즐길 건가
달 밝고 바람도 맑아 시흥이 시들지 않네.

홍생은 읊기를 마친 뒤에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일어나 그 자리에서 춤을 추었다. 한 구절을 읊을 때마다 ‘어허’ 소리를 내며 탄식하였다. 비록 뱃전을 두드리고 퉁소를 불며 서로 화답하는 즐거움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느꺼워하였다. (그가 시를 읊는 소리는) 깊은 구렁에 잠긴 용도 따라서 춤추게 할 만하였고, 외로운 배에 있는 과부도 울릴 만하였다.소동파의 「적벽부」에서 따온 구절이다. 「적벽부」에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계수나무 노여! 목란 상앗대여! 투명한 물을 치고 달빛을 거슬러 올라가노라. 아득하구나, 나의 그리움이여! 하늘 끝 미인을 기다리네.’다. 손님 중에 퉁소를 부는 사람이 있어 노래에 기대어 화답하였다. 그 소리가 구슬픈 듯,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노래하는 듯, 하소연 하는 듯. 남은 소리는 간드러지고 실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그윽한 골짜기 교룡이 춤을 추고, 외로운 배에 있는 과부도 울릴 만 하였다[於是飲酒樂甚﹐ 扣舷而歌之。歌曰﹕ "桂棹兮蘭槳﹐擊空明兮溯流光。渺渺兮于懷﹐望美人兮天一方。" 客有吹洞蕭者﹐ 倚歌而和之﹐ 其聲嗚嗚然﹕ 如怨如慕﹐如泣如訴﹔ 余音裊裊﹐ 不絕如縷﹔ 舞幽壑之潛蛟﹐ 泣孤舟之嫠婦。].“고 했다

시 읊기를 마치고 돌아오려 하자 밤은 벌써 삼경(三更)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누었을 때, 세 번째 시간. 밤11시부터 1시 사이다이나 되었다. 이때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서쪽에서 들려 왔다. 홍생은 마음속으로 ‘절의 스님이 시 읊는 소리를 듣고 이상하게 생각하여 찾아오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하며 앉아서 기다렸다. 그런데 나타나고 보니 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두 시녀가 좌우에서 따르며 모셨는데, 한 여인은 옥자루가 달린 불자(拂子)삼이나 짐승 털을 묶어서 자루 끝에 매달아 만든 일종의 총채. 먼지를 털거나 벌레를 쫓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선(禪)에서는 마치 먼지를 털듯, 상념을 털어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를 잡았고, 다른 한 시녀는 비단 부채를 들고 있었다. 여인은 위엄이 있고도 단정하여, 마치 귀족집 처녀 같았다.

홍생은 계단을 내려가 담 틈으로 비켜서서 그녀가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았다. 여인은 남쪽 난간에 기대어 서서 달빛을 보며 작은 소리로 시를 읊었는데, 풍류와 몸가짐이 단정하여 범절이 있었다. 시녀가 비단방석을 펴자, 여인이 얼굴빛을 고치고 자리에 앉아 낭랑한 소리로 말하였다.

“여기서 방금 시를 읊던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 어디에 있소? 나는 꽃이나 달의 요물도 아니고, 연꽃 위를 거니는 주희(姝姬)주(姝)는 아름다운 여인인데, 연꽃 위를 거니는 아름다운 여인은 남조 제나라의 반귀비(潘貴妃)다. 제나라 황제 동혼후가 금으로 연꽃 모양을 만들어 땅에 붙여 두자, 반귀비가 그 위로 가면서 춤을 추어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시를 지었다도 아니라오. 다행히도 오늘처럼 아름다운 밤을 맞고 보니, 장공만리(長空萬里)만 리나 길게 펼쳐져 있는 드넓은 하늘 하늘에는 구름도 걷히었소. 달이 높이 뜨고 은하수는 맑은데다, 계수나무 열매가 떨어지고 백옥루(白玉樓)달 속에 있다는 궁전. 백옥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고 함는 차갑기에, 한잔 술에 시 한 수로 그윽한 심정을 유쾌히 풀어 볼까 하였소. 이렇게 좋은 밤을 어찌 그대로 보내겠소?”

홍생이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로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였다. 그래서 어찌할까 머뭇거리다가 가늘게 기침소리를 내었다. 시녀가 기침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와서 청하였다.

"저희 아가씨께서 모시고 오라 하였습니다."

홍생이 조심스럽게 나아가서 절하고 꿇어앉았다. 여인도 또한 별로 어려워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그대도 이리 올라오시지요."

시녀가 낮은 병풍으로 잠깐 앞을 가리었으므로, 그들은 얼굴을 서로 반만 보았다. 여인이 조용히 말하였다.

"그대가 조금 전에 읊은 시는 무슨 뜻이오? 나에게 외어 주시오."

홍생이 그 시를 하나하나 외어 주자, 여인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는 나와 함께 시에 대하여 이야기할 만하오."

여인이 시녀에게 명하여 술을 한차례 권하였는데, 차려 놓은 음식이 인간세상의 것과 같지 않았다. 먹으려 해봐도 굳고 딱딱하여 먹을 수가 없었다. 술맛도 또한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여인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였다.

“속세의 선비가 어찌 백옥례(白玉醴)신선이 마시는 단술와 홍규포(紅虯脯)용고기로 만든 포육를 알겠소.”

여인이 시녀에게 명하였다.

"너 빨리 신호사(神護寺)에 가서 절밥을 조금만 얻어 오너라."

시녀가 시키는 대로 가서 곧 절밥을 얻어 왔다. 그러나 밥뿐이었고, 반찬이 또한 없었다. 그래서 다시 시녀에게 명하였다.

“얘야. 주암(酒巖)평양부 동북쪽 십 리 되는 곳에 있는 바위로, 『동국여지승람』에 이르길 “술이 바위틈에서 흘러나왔는데 아직도 흔적이 있어 이름을 술바위라고 하였다.”고 한다. 주암 아래 못에는 용이 살았다고 전한다에 가서 반찬도 얻어 오너라.”

얼마 되지 않아서 시녀가 잉어구이를 얻어 가지고 왔다. 홍생이 그 음식들을 먹었다. 그가 음식을 먹고 나자, 여인이 이미 홍생은 시에 따라 그 뜻에 화답하였다. 향기로운 종이에 시를 써서 시녀로 하여금 홍생에게 주도록 하였는데, 그 시는 이러하였다.

부벽정 오늘밤에 달빛 더욱 밝은데
맑은 이야기에 감회가 어떻던가?
어렴풋한 나무 빛은 일산처럼 펼쳐졌고
넘치는 저 강물은 비단치마를 둘렀네.
세월은 나는 새처럼 어느새 지나갔고
세상일도 자주 변해 흘러가 버린 물 같아라.
오늘밤의 정회를 그 누가 알아주랴
내 낀 숲에서 종소리만 이따금 들려오네.

옛 성에 올라 보니 대동강이 또렷한데
푸른 물결 밝은 모래밭에 기러기 떼가 울며 가네.
기린 수레는 오지 않고 용마도 벌써 가셨으니
봉황 피리 소리 끊어졌고 흙무덤만 남았어라.
갠 산에 비가 오려나, 내 시를 벌써 이뤄졌는데
들판 절에는 사람도 없어 나 혼자 술에 취하였네.
가시밭에 자빠진 동타(銅駝)구리 낙타. 당나라 방현령이 지은 『진서』「색정전」에 “색정이 선견지명이 있어서 세상이 장차 어지러워질 줄 알고 낙양 공중의 동타를 가리키면서 탄식하기를 ‘네가 반드시 가시밭 속에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타형극(銅駝荊棘)은 가시밭에 파묻힌 낙타의 상이라는 뜻으로 황폐한 상태를 이른다를 내 차마 보지 못하니
천년의 옛 자취가 뜬구름 되었어라.

풀뿌리 차갑다고 쓰르라미 울어대네.
높은 정자에 올라 보니 생각조차 아득해라.
비 그치고 구름 끼니 지나간 일이 가슴 아픈데
떨어진 꽃 흐르는 물에 세월이 느껴지네.
가을이라 밀물소리 더더욱 비장한데다
물에 잠긴 저 누각엔 달빛마저 처량해라.
이곳이 그 옛날엔 문물이 번성했었지
황폐한 성 늙은 나무가 남의 애를 끊는구나.

금수산(錦繡山) 앞에 금수(錦繡)가 쌓여 있어나뭇잎이 수놓은 비단같이 쌓여있음을 표현
강가의 단풍들이 옛 성을 비쳐 주네.
어디서 또닥또닥 다듬이소리가 들려오나?
뱃노래 한 가락에 고깃배가 돌아오네.
바위에 기댄 고목에는 담쟁이가 얽혀 있고
풀 속에 쓰러진 비석에는 이끼가 끼었구나.
말없이 난간에 기대어 지난 일을 생각하니
달빛과 파도소리까지 모두가 슬프기만 해라.

별들이 드문드문 하늘에 널렸는데
은하수 맑고 옅어 달빛 더욱 밝구나.
이제야 알겠으니 모두가 허사로다
저승을 기약키 어려우니 이승에서 만나 보세.
술 한 잔 가득 부어 취해 본들 어떠랴
풍진 세상의 석 자 흙무더기를 마음에 두지 마세.
만고의 영웅들도 흙무더기가 되었으니
세상에 남는 것은 죽은 뒤의 이름뿐일세.

이 밤이 어찌 되었나, 밤은 이미 깊어졌네.
담 위에 걸린 달이 이제는 둥글어졌네.
그대는 지금 두 세상을 떨어져 있지만
나를 만났으니 천 일의 즐거움에 내맡겨 보소.
강가의 누각에는 사람들이 흩어지고
뜰 앞의 나무에는 찬이슬이 내리네.
이 뒤에 다시 한 번 만날 때를 알고 싶다니
봉래산에 복숭아 익고 푸른 바다도 말라야 한다네.

홍생은 시를 받아 보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돌아갈까 봐 염려되어, 이야기를 하면서 붙잡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보았다.

“송구스럽지만 당신의 성씨와 족보를 듣고 싶습니다.”

여인이 한숨을 쉬더니 대답하였다.

“나는 은나라 임금의 후손이며 기씨의 딸이라오. 나의 선조(기자)께서 이 땅에 봉해지자 예법과 정치제도를 모두 탕왕(湯王)폭군 걸왕을 쳐서 하나라를 정벌하고 은나라를 세운 임금의 가르침에 따라 행하였고, 팔조(八條)의 금법(禁法)『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후한서』에 “기자가 조선에 와서 팔조의 교법을 만들어 백성을 교화시켰다.“고 했다. 『한서』「지리지」에는 낙랑조선에서 시행되고 있던 팔조법금 가운데 세 개 조항을 소개했는데 다음과 같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한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으며, 속죄하려는 자는 오십만 전을 내야 한다.”으로써 백성을 가르쳤으므로, 문물이 천년이나 빛나게 되었지요기자의 예법 정치 덕분에 이 땅의 문화가 빛날 수 있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자긍심은 작가의 ‘조상에 대한 자긍심’이자 ‘역사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간접적으로 투영된 것이다.

갑자기 나라의 운수가 곤경에 빠지고 환난이 문득 닥쳐와, 나의 선친(준왕)께서 필부(匹夫)신분이 낮고 보잘것없는 사내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고조선의 준왕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연나라 사람 위만을 말한다의 손에 실패하여 드디어 종묘사직을 잃으셨소. 위만(衛滿)이 이 틈을 타서 보위(寶位)를 훔쳤으므로, 우리 조선의 왕업은 끊어지고 말았소.

나는 이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절개를 굳게 지키기로 다짐하고 죽기만 기다렸을 뿐인데, 홀연히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나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셨소. ‘나는 본래 이 나라의 시조인데, 나라를 잘 다스린 뒤에 바다 섬에 들어가 죽지 않는 선인(仙人)이 된 지가 벌써 수천 년이나 되었다. 너도 나를 따라 하늘나라 궁궐에 올라가 즐겁게 노니는 것이 어떻겠느냐?’ 내가 응낙하자 그 분이 마침내 나를 이끌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서 별당을 지어 나를 머물게 하고, 나에게 현주(玄洲)북해에 있다는 신선의 섬의 불사약을 주셨소.

그 약을 먹고 몇 달이 지나자 홀연히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건장해지더니, 날개가 달려 신선이 된 것 같았소. 그때부터 하늘에 높이 떠서 천지 사방을 오가며 동천복지(洞天福地)천하에 이름난 산과 경치 좋은 곳으로 36동천과 72복지가 있다고 했다를 찾아 십주(十洲)신선이 산다는 열군데 섬와 삼도(三島)신선이 산다는 세 군데 산.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를 유람하지 않은 곳이 없었소.

하루는 가을 하늘이 활짝 개어 밝은 데다 달빛이 물처럼 맑기에 달을 쳐다보니, 갑자기 먼 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소. 그래서 달나라에 올라가서 광한청허지부(廣寒淸虛之府)왕인유가 지은 『천보유사』에 “명황(明皇, 당나라 현종)이 달나라 궁전에서 놀았는데 현판을 보니 ‘광한청허지부’라고 하였다.”고 했다에 들어가 수정궁으로 항아(嫦娥)달나라에 산다고 하는 선녀의 이름를 방문하였더니, 항아가 나더러 절개가 곧고 글을 잘 짓는다고 칭찬하면서 이렇게 달래었소.

‘인간세상의 선경(仙境)을 비록 복지(福地)라고는 하지만, 모두 풍진(風塵)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나라에 올라와서 흰 난새[鸞]『산해경』을 보면 여장의 산에 꿩처럼 생긴 새가 오색 무늬를 띠었는데 난조(鸞鳥)라 한다고 했다. 부부 금실이 좋아서, 짝을 잃은 난조가 삼 년 동안 울지 않다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슬피 울면서 하늘로 튀어 올라 죽었다는 고사가 있다.를 타고 계수나무 아래에서 맑은 향내를 맡으며, 푸른 하늘에서 달빛을 띠고 옥경(玉京)옥황상제가 산다는 하늘나라의 수도로, 백옥경이라고도 한다에서 즐겁게 놀거나 은하수에서 목욕하는 것보다야 낫겠느냐?’

그리고는 나를 향안(香案)옥황상제 앞에 놓는 향로를 바치는 상이다 받드는 시녀로 삼아 자기 곁에 있도록 하여 주었는데, 그 즐거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소.

그러다가 오늘 저녁에 갑자기 고국 생각이 나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고향땅을 굽어보았소. 산천은 옛 그대로였지만 사람들은 달라졌고, 밝은 달빛이 연기와 티끌들을 가려 주었으며, 맑은 이슬이 대지에 쌓인 먼지를 깨끗이 씻어 놓았기에, 옥경을 잠시 하직하고 살며시 내려와 보았소. 조상님의 산소에 절하고는 부벽정이나 구경하면서 회포를 풀어 볼까 해서 이리로 왔었소.

마침 글 잘하는 선비를 만나고 보니, 한편 기쁘고도 하고 한편 부끄럽소. 더군다나 그대의 뛰어난 시에다 노둔한 붓을 펼쳐 화답하였으니, 감히 시라고 한 게 아니라 회포를 대강 펼쳤을 뿐이오.”

홍생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아래 세상의 우매한 사람이야 초목과 함께 썩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나라의) 왕손이신 선녀를 모시고 시를 주고받게 될 줄이야 어찌 뜻하였겠습니까?”

홍생은 (여인의 시를) 그 자리에서 한 번 훑어보고는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다시 엎드려서 말하였다.

“우매한 이 사람은 전세에 지은 죄가 많아서 신선의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만, 다행히도 글자는 대강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녀께서 지으신 시도 조금은 이해하였는데,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사미(四美)네 가지 아름다움. 좋은 계절, 아름다운 경치, 이를 즐기는 마음, 즐겁게 노는 일를 갖추기가 어려운데 (이제 이 네 가지가 다 갖추어졌으니), 이번에는 ‘강정추야완월(江亭秋夜玩月)’강가 정자에서 가을밤에 달을 구경하다로 제목을 삼아서 사십 운(韻)의 시를 지어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붓을 적셔 한 번에 죽 내리썼다. 구름과 연기가 서로 얽힌 듯하였다. 붓을 달려서 곧바로 지었는데, 그 시는 이러하였다.

부벽정 달 밝은 밤에
먼 하늘에서 옥 같은 이슬이 흐르네.
맑은 빛은 은하수에 빛나고
서늘한 기운은 오동잎에 서려 있네.
눈부시게 깨끗한 삼천리에
십이루(十二樓)반고가 지은 『한서』「교사지」에 “방사가 말하길, 황제 때에 오성(五城) 십이루를 짓고 신인(神人)을 모셨다.”고 했는데, 응소의 <주>에서 “곤룡 현포 오성 십이루는 신선이 늘 사는 곳이다.”라고 했다가 아름다워라.
가녀린 구름에는 반 점 티끌도 없는데
가벼운 바람이 눈앞을 스치네.
넘실넘실 넘치며 흐르는 물에
아물아물 떠나는 배를 보내네.
배 안에서 창틈으로 엿보니
갈대꽃이 물가를 비추는구나.
「예상곡(霓裳曲)」「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의 준말. 달나라 궁전의 음악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하는 곡조. 여기서는 달나라의 음악을 가리킨다이 들리는 건가
옥도끼로 다듬은 건가.
진주조개로 집을 지어조개로 만든 대궐은 용궁을 가리킨다
무소의 빛이 염부주(閻浮洲)불교의 세계관에 따르면 수미산 주변에 네 곳의 땅이 있는데, 수미산 남쪽에 있는 대륙으로 커다란 염부(閻浮)나무가 무성한 땅. 이곳에만 인간이 산다고 알려져 있으며 인도라고도 하고 현세라고도 한다. 수미산은 불교에서 세계의 중앙에 있는 산이다. 그밖에 나머지 세 곳의 땅은 동쪽의 동승신주(東勝身洲), 서쪽의 서구부주(西瞿浮洲), 북쪽의 북구로주(北俱盧洲)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곳은 북구로주로서 승처(勝處)라고도 불린다.에 비치는구나.
지미(知微)와 달구경하고당나라 술사 조지미가 도술을 써서 장마 중에도 친구들과 함께 달을 구경했다고 한다
공원(公遠)나공원 역시 조지미와 함께 놀았던 술사을 따르며 놀아 보세나.
달빛이 차갑자 위나라 까치가 놀라고삼국시대에 조조와 유비, 손권이 적벽강에서 싸울 때에 달이 밝았는데, 까막까치가 불로 공격할 것을 미리 알고 남쪽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오나라 소는 그림자보고 헐떡이네.오나라는 더운 지방이므로 물소가 달을 보고도 해인 줄 알고 헐떡였다고 한다
은은한 달빛이 푸른 산을 두르고
둥근 달이 푸른 바다에 떴는데,
그대와 함께 창을 열어젖히고
흥겨워 주렴을 걷어 올리네.
이자(李子)는 술잔을 멈추었고당나라 시인 이백의 「파주문월시」에 “청천이 있는 저 달이 언제나 오려나? 내 이제 술잔 멈추고 한번 물어보아라.” 했다
오생(吳生)은 계수나무를 찍었지.한나라 때 오강이 달 속에 있는 계수나무를 깎았다는 전설이 있다
흰 병풍은 빛도 찬란한데
아로새긴 채색 휘장이 쳐져 있네.
보배로운 거울을 닦아 내어 처음 걸고
얼음 바퀴 구르던 것도 멈추지 아니하네.거울이나 얼음 바퀴는 모두 달을 비유한 것이다
금물결은 어이 그리도 아름다우며
은하수는 어이 그리도 유장한지,
요사스런 두꺼비는 칼을 뽑아 없애고
교활한 옥토끼[㕙兎]달나라에 옥토끼가 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달을 옥토(玉免)라고도 한다는 그물을 펼쳐 잡아 보세.
먼 하늘에는 비가 처음 개고
돌길에는 맑은 연기가 걷혔는데,
난간은 숲 사이에 솟았고
섬돌에선 만 길 못을 굽어보네.
머나먼 곳에서 그 누가 길을 잃었나?
고향 나라 옛 친구를 다행히도 만났네.
복사꽃과 자두꽃복사꽃과 자두꽃은 여기서 아름다운 시를 뜻함을 서로 주고받으며
잔에 가득 부어 술도 주고받았네.
초에다 금을 그어 다투어 시를 짓고초에 금을 그어 놓고 그 금까지 초가 타기 전에 시를 다 지어야 하는 내기다. 고려시대 시인 이규보가 즐겨 했다
산가지를 더해 가며 취토록 마셔 보세.술을 마실 때, 수효를 셈하는 데 쓰던 악기인 산가지를 하나씩 놓으며 마셨다고 한다. 송강 정철이 지은 「장진주사」에도 “꽃 꺾어 수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했다
화로 속에선 까만 숯불이 튀고
노구솥에선 게 눈 같은 거품이 이네.
오리 향로졸고 있는 오리의 모습을 구리로 만든 향로로, 오리의 부리에서 향의 연기가 나오게 했다에선 용연향(龍涎香)이 풍겨 오고
커다란 잔 속에는 술이 가득해라.
외로운 소나무에선 학이 울고
네 벽에선 귀뚜라미가 우는구나.
호상에서 은호와 유량이 이야기하고진나라의 은호는 유향의 부하였지만, 낮고 높은 차이를 따지지 않고 친하게 사귀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장사꾼 홍생과 왕녀의 만남을 비유했다
진저(晉渚)에서 사령운이 혜원과 노닐었었지.진나라의 글 잘하는 선비 사령운과 혜원법사가 산수를 즐기며 친하게 사귀었다. 여기서는 문학하는 선비 홍생과 선녀 사이를 비유한 것이다
어렴풋이 황폐한 성만 남은 곳에
쓸쓸하게 초목만 우거져,
단풍잎은 하늘하늘 떨어지고
누런 갈대는 차갑게 사각거리네.
선경(仙境)신선이 사는 곳이라 하늘과 땅이 넓기만 한데
티끌세상엔 세월도 빠르구나.
옛 궁궐엔 벼와 기장이 여물었고
들 사당에는 가래나무와 뽕나무가 늘어졌네.
남은 자취는 빗돌뿐이던가
흥망을 갈매기에게나 물어 보리라.
달님[纖阿]섬아는 옛날에 소나 말을 잘 몰던 사람의 이름이다. 또는 산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여자가 그 산의 바위굴 속에 살다가 달에 뛰어올라 달을 모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달의 신을 가리킨다은 기울었다가 다시 차니
인생이란 하루살이 같아라.
궁궐은 절간이 되고
옛날의 임금들은 세상 떠났네[葬虎丘]장호구는 ‘호구산에 장사 지냈다’는 뜻이다. 호구산은 중국 강소성 오현 서북쪽에 있는데, 오왕 합려를 이 산에다 장사 지낸 지 사흘 만에 호랑이가 그 무덤 위에 걸터앉아서 ‘호구(虎丘)’라고 했다고 한다.
반딧불이 휘장에 가려 사라지자
도깨비불이 깊은 숲에서 나타나네.
옛날일 생각하면 눈물만 떨어지고
지금 세상 생각하면 저절로 시름겨우니,
단군의 옛터는 목멱산만 남았고
기자의 서울도 실개천뿐일세.
굴속에는 기린(麒麟)고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동물인데 좋은 일인 ‘길조’를 뜻하는 상상의 동물로 생김새는 말과 비슷하다. 고구려 시조 동명왕이 타고 다녔으며, 고구려를 떠나 신선이 되어 사라질 때 기린을 타고 떠났다고 한다의 자취가 있고
들판에는 숙신(肅愼)의 화살숙신은 고조선시대 만주 지방에 있던 나라다. 이 나라에서 나오는 화살이 유명했다고 한다만 남았는데,
난향(蘭香)두난향(杜蘭香). 중국 육조시대 소설집 『수신기(搜神記)』에 전하는 이야기의 인물로, 한나라 때 선인 장석이 선녀 두난향을 만나 부부가 되었다이 자부(紫府)신선이 사는 곳로 돌아가자
직녀도 용을 타고 떠나가네.
글 짓는 선비는 붓을 놓고
선녀도 공후(箜篌)하프모양의 현악기로 고대 동양의 현악기를 멈추었네.
노래를 마치고 사람들 흩어지려니
고요한 바람에 노 젓는 소리만 들려오네.

여인은 쓰기를 마친 뒤에 공중에 높이 솟아 가버렸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인이 돌아가면서 시녀를 시켜 홍생에게 말을 전하였다.

“옥황상제의 명이 엄하셔서 나는 이제 흰 난새를 타고 돌아가겠소. 맑은 이야기를 다하지 못했기에 내 속마음이 아주 섭섭하오.”

얼마 뒤에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땅을 휘감더니 홍생이 앉았던 자리도 걷고 여인의 시도 앗아가 버렸는데, 이 시도 또한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이야기를 인간 세상에 전하여 퍼뜨리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홍생은 조용히 서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는데,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니었다. 난간에 기대서서 정신을 모으고는 여인이 하였던 말들을 모두 기록하였다. 그는 기이하게 만났지만 가슴속에 쌓인 이야기를 다하지 못한 것이 서운하여, 조금 전의 일들을 회상하면서 시를 읊었다.

운우 양대(雲雨陽臺)송옥이 지은 『고당부서』에 나오는 이야기로, 춘추시대 초나라 회왕이 ‘고당’이라는 누대에 놀러갔다가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 무산(巫山)의 선녀가 나타나 정을 통했다. 선녀가 회왕을 모신 뒤에 떠나면서, 자기는 “아침에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양대 아래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회왕이 아침에 보니 과연 구름이 떠 있었다. 이 뒤부터 남녀가 육체적으로 관계하는 것을 운우(雲雨)라고 표현했다. 여기서는 홍생이 선녀를 만난 부벽정을 가리킨다에서 꿈결에 임을 만났었네.
어느 해에야 옥소(玉簫)의 팔찌를 다시 보려나.당나라 위고(韋皐)가 강하(江夏) 강사군의 집에서 시녀 옥소와 정을 맺고 부부가 되기로 약속했는데, 위고가 고향으로 돌아가 약속한 기한에 돌아오지 못하자 옥소가 음식을 먹지 않다가 죽었다. 그리고 옥소가 환생하여 마침내 위고의 첩이 되었다. 여기서는 여인의 환생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대동강 푸른 물결이야 비록 무정하지만
임 떠난 저곳으로 슬피 울며 가는구나.

시 읊기를 마치고 사방을 둘러보니 산 속의 절에서는 종이 울고 물가 마을에서는 닭이 우는데, 달은 성 서쪽으로 기울고 샛별만 반짝이고 있었다. 다만 뜰에서 쥐 소리가 들리고 자리 옆에서는 벌레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홍생은 쓸쓸하고도 슬펐으며 숙연하고도 두려워졌다. 마음이 서글퍼져서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돌아와 배에 올라탔는데도 우울하고 답답하였다. 어제 놀던 강 언덕으로 갔더니 친구들이 다투어 물었다.

"어제 저녁에는 어디서 자고 왔는가?"

홍생은 속여서 말하였다.

"어제 밤에는 낚싯대를 메고 달빛을 따라 장경문 밖 조천석 기슭까지 가서 좋은 고기를 낚으려고 하였었지. 그런데 마침 밤 날씨가 서늘해서 물이 차가워져, 붕어 한 마리도 낚지 못하였다네.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친구들도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뒤에 홍생은 그 여인을 연모하다가 병을 얻어 쇠약해진 몸으로 자기 집에 돌아왔지만, 정신이 황홀하고 헛소리가 많아졌다. 병상에 누운 지가 오래 되었지만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홍생이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엷게 단장한 미인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우리 아가씨께서 선비님의 이야기를 옥황상제께 아뢰었더니 상제께서 선비님의 재주를 사랑하시어, 견우성 막하(幕下)지휘관이나 책임자가 거느리는 사람에 붙여 종사관으로 삼으셨습니다. 옥황상제께서 선비님께 명하셨으니 어찌 피하겠습니까?"

홍생은 놀라서 꿈을 깨었다. 집안사람을 시켜서 자기 몸을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게 하였다. 향을 태우고 땅을 쓸어 낸 뒤에 뜰에 자리를 펴게 하였다. 그는 턱을 괴고 잠깐 누웠다가 문득 세상을 떠났는데, 바로 구월 보름날이었다.

그의 시체를 빈소에 모셨는데, 며칠이 지나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홍생이 신선을 만나서 시해(屍解)죽어서 시체는 그대로 남긴 채 신선이 되는 것을 말함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원문

平壤평양, 古朝鮮國也고조선국야. 周武王克商주무왕극상, 訪箕子방기자, 陣洪範九疇之法진홍범구주지법, 武王封于此地무왕봉우차지, 而不臣也이불신야. 其勝地기승지, 則錦繡山즉금수산, 鳳凰臺봉황대, 綾羅島릉라도, 麒麟窟기린굴, 朝天石조천석, 楸南墟추남허, 皆古跡개고적, 而永明寺浮碧亭이영명사부벽정, 其一也기일야. 永明寺영명사, 卽東明王九梯宮也즉동명왕구제궁야. 在郭外東北卄里재곽외동북입리, 俯瞰長江부감장강, 遠矚平原원촉평원, 一望無際일망무제, 眞勝境也진승경야. 畵舸商舶화가상박, 晩泊于大同門外之柳磯만박우대동문외지류기, 留則必泝流而上류즉필소류이상, 縱觀于此종관우차, 極歡而旋극환이선. 亭之南정지남, 有鍊石層梯유련석층제, 左曰靑雲梯좌왈청운제, 右曰白雲梯우왈백운제, 刻之于石각지우석, 立華柱입화주, 以爲好事者玩이위호사자완.

天順初천순초, 松京有富室洪生송경유부실홍생, 年少美姿容년소미자용, 有風度유풍도, 又善屬文우선속문. 値中秋望치중추망, 與同伴여동반, 抱布貿絲于箕城포포무사우기성, 泊舟艤岸박주의안. 城中名娼성중명창, 皆出闉闍개출인도, 而目成焉이목성언. 城中有故友李生성중유고우이생, 設宴以慰生설연이위생, 酣醉回舟감취회주, 夜凉無寐야량무매, 忽憶張繼楓橋夜泊之詩홀억장계풍교야박지시, 不勝淸興불승청흥, 乘小艇승소정, 載月打槳而上재월타장이상, 期興盡而返기흥진이반, 至則浮碧亭下也지즉부벽정하야. 繫纜蘆叢계람로총, 躡梯而登섭제이등, 憑軒一望빙헌일망, 朗吟淸嘯랑음청소, 時月色如海시월색여해, 波光如練파광여련, 雁呌汀沙안규정사, 鶴驚松露학경송로, 凜然如登淸虛紫府也름연여등청허자부야. 顧視故都고시고도, 烟籠粉堞연롱분첩, 浪打孤城랑타고성, 有麥秀殷墟之歎유맥수은허지탄, 乃作詩六首曰내작시육수왈:

不堪吟上浿江亭불감음상패강정, 嗚咽江流腸斷聲오인강류장단성.
故國已銷龍虎氣고국이소룡호기, 荒城猶帶鳳凰形황성유대봉황형.
汀沙月白迷歸雁정사월백미귀안, 庭草烟收點露螢정초연수점로형.
風景蕭條人事換풍경소조인사환, 寒山寺裏聽鐘鳴한산사리청종명.

帝宮秋草冷凄凄제궁추초랭처처, 回磴雲遮徑轉迷회등운차경전미.
妓館故基荒薺合기관고기황제합, 女墻殘月夜烏啼녀장잔월야오제.
風流勝事成塵土풍류승사성진토, 寂寞空城蔓蒺藜적막공성만질려.
唯有江波依舊咽유유강파의구인, 滔滔流向海門西도도류향해문서.

浿江之水碧於藍패강지수벽어람, 千古興亡恨不堪천고흥망한불감.
金井水枯垂薜荔금정수고수벽려, 石壇苔蝕擁檉楠석단태식옹정남.
異鄕風月詩千首이향풍월시천수, 故國情懷酒半酣고국정회주반감.
月白依軒眠不得월백의헌면부득, 夜深香桂落毿毿야심향계락삼삼.

中秋月色正嬋娟중추월색정선연, 一望孤城一悵然일망고성일창연.
箕子廟庭喬木老기자묘정교목로, 檀君祠壁女蘿緣단군사벽녀라연.
英雄寂寞今何在영웅적막금하재, 草樹依稀問幾年초수의희문기년.
唯有昔時端正月유유석시단정월, 淸光流彩照衣邊청광류채조의변.

月出東山烏鵲飛월출동산오작비, 夜深寒露襲人衣야심한로습인의.
千年文物衣冠盡천년문물의관진, 萬古山河城郭非만고산하성곽비.
聖帝朝天今不返성제조천금불반, 閑談落世竟誰依한담락세경수의.
金轝麟馬無行迹금여린마무행적, 輦路草荒僧獨歸련로초황승독귀.

庭草秋寒玉露凋정초추한옥로조, 靑雲橋對白雲橋청운교대백운교.
隋家士卒隨鳴瀨수가사졸수명뢰, 帝子精靈化怨蜩제자정령화원조.
馳道烟埋香輦絶치도연매향련절, 行宮松偃暮鐘搖행궁송언모종요.
登高作賦誰同賞등고작부수동상, 月白風淸興未消월백풍청흥미소.

生吟罷생음파, 撫掌起舞踟躕무장기무지주. 每吟一句매음일구, 歔欷數聲허희수성, 雖無扣舷吹簫수무구현취소, 唱和之樂창화지락, 中情感慨중정감개, 足以舞幽壑之潛蛟족이무유학지잠교, 泣孤舟之嫠婦也읍고주지리부야.

吟盡欲返음진욕반, 夜已三更矣야이삼경의. 忽有跫音홀유공음, 自西而至者자서이지자. 生意謂寺僧聞聲생의위사승문성, 驚訝而來경아이래. 坐以待之좌이대지, 見則一美娥也견즉일미아야. 丫鬟隨侍左右아환수시좌우, 一執玉柄拂일집옥병불, 一執輕羅扇일집경라선, 威儀整齊위의정제, 狀如貴家處子장여귀가처자. 生下階생하계, 而避之于墻隙이피지우장극, 以觀其所爲이관기소위. 娥倚于南軒아의우남헌, 看月微吟간월미음, 風流態度풍류태도, 儼然有序엄연유서. 侍兒捧雲錦茵席以進시아봉운금인석이진, 改容就坐개용취좌, 琅然言曰랑연언왈: “此間有哦詩者차간유아시자, 今在何處금재하처? 我非花月之妖아비화월지요, 步蓮之姝보련지주, 幸値今夕행치금석, 長空萬里장공만리, 天闊雲收천활운수, 冰輪飛而銀河淡빙륜비이은하담, 桂子落而瓊樓寒계자락이경루한, 一觴一脉일상일맥, 暢敍幽情창서유정, 如此良夜何여차량야하?”

生一恐一喜생일공일희, 踟躕不已지주불이, 作小謦咳聲작소경해성. 侍兒尋聲而來시아심성이래, 請曰청왈: “主母奉邀주모봉요.” 生踧踖而進생축적이진, 且拜且跪차배차궤. 娥亦不之甚敬아역부지심경, 但曰단왈: “子亦登此자역등차.” 侍兒以短屛乍掩시아이단병사엄, 只半面相看지반면상간, 從容言曰종용언왈: “子之所吟者자지소음자, 何語也하어야? 爲我陳之위아진지.” 生一一以誦생일일이송. 娥笑曰아소왈: “子亦可與言詩者也자역가여언시자야.” 卽命侍兒즉명시아, 進酒一行진주일행, 殽饌不似人間효찬불사인간, 試啖堅硬莫吃시담견경막흘, 酒又苦不能啜주우고불능철. 娥莞爾曰아완이왈: “俗士속사, 那知白玉醴紅虯脯乎나지백옥례홍규포호?” 命侍兒曰명시아왈: “汝速去神護寺여속거신호사, 乞僧飯小許來걸승반소허래.” 兒承命而往아승명이왕, 須臾得來수유득래, 卽飯也즉반야. 又無下飯우무하반, 又命侍兒曰우명시아왈: “汝去酒巖여거주암, 乞饌來걸찬래.” 須臾수유, 得鯉炙而來득리자이래. 生啗之생담지. 啗訖담흘, 娥已依生詩아이의생시, 以和其意이화기의, 寫於桂箋사어계전, 使侍兒사시아, 投于生前투우생전. 其詩曰기시왈:

東亭今夜月明多동정금야월명다, 淸話其如感慨何청화기여감개하.
樹色依稀靑蓋展수색의희청개전, 江流瀲瀲練裙拖강류렴렴련군타.
光陰忽盡若飛鳥광음홀진약비조, 世事屢驚如逝波세사루경여서파.
此夕情懷誰了得차석정회수료득, 數聲鐘磬出烟蘿수성종경출연라.

故城南望浿江分고성남망패강분, 水碧沙明呌雁群수벽사명규안군.
麟駕不來龍已去인가불래룡이거, 鳳吹曾斷土爲墳봉취증단토위분.
睛嵐欲雨詩圓就정람욕우시원취, 野寺無人酒半醺야사무인주반훈.
忍看銅駝沒荊棘인간동타몰형극, 千年蹤跡化浮雲천년종적화부운.

草根咽咽泣寒螿초근인인읍한장, 一上高亭思渺茫일상고정사묘망.
斷雨殘雲傷往事단우잔운상왕사, 落花流水感時光락화유수감시광.
波添秋氣潮聲壯파첨추기조성장, 樓蘸江心月色凉루잠강심월색량.
此是昔年文物地차시석년문물지, 荒城疎樹惱人腸황성소수뇌인장.

錦繡山前錦繡堆금수산전금수퇴, 江楓掩映古城隈강풍엄영고성외.
丁東何處秋砧苦정동하처추침고, 欸乃一聲漁艇回애내일성어정회.
老樹倚巖緣薜荔로수의암연벽려, 斷碑橫草惹莓苔단비횡초야매태.
凭欄無語傷前事빙란무어상전사, 月色波聲摠是哀월색파성총시애.

幾介疎星點玉京기개소성점옥경, 銀河淸淺月分明은하청천월분명.
方知好事皆虛事방지호사개허사, 難卜他生遇此生난복타생우차생.
醽醁一樽宜取醉령록일준의취취, 風塵三尺莫嬰情풍진삼척막영정.
英雄萬古成塵土영웅만고성진토, 世上空餘身後名세상공여신후명.

夜何知其夜向闌야하지기야향란, 女墻殘月正團團녀장잔월정단단.
君今自是兩塵隔군금자시양진격, 遇我却賭千日歡우아각도천일환.
江上瓊樓人欲散강상경루인욕산, 階前玉樹露初溥계전옥수로초부.
欲知此後相逢處욕지차후상봉처, 桃熟蓬丘碧海乾도숙봉구벽해건.

生得詩且喜생득시차희, 猶恐其返也유공기반야, 欲以談話留之욕이담화류지. 問曰문왈: “不敢聞姓氏族譜불감문성씨족보.” 娥噫而答曰아희이답왈: “弱質약질, 殷王之裔은왕지예, 箕氏之女기씨지녀. 我先祖아선조, 實封于此실봉우차, 禮樂典刑례악전형, 悉遵湯訓실준탕훈, 以八條敎民이팔조교민, 文物鮮華문물선화, 千有餘年천유여년. 一旦天步艱難일단천보간난, 灾患奄至재환엄지, 先考敗績匹夫之手선고패적필부지수, 遂失宗社수실종사. 衛瞞乘時위만승시, 竊其寶位절기보위, 而朝鮮之業墜矣이조선지업추의. 弱質顚蹶狼藉약질전궐랑자, 欲守貞節욕수정절, 待死而已대사이이. 忽有神人撫我曰홀유신인무아왈: ‘我亦此國之鼻祖也아역차국지비조야. 享國之後향국지후, 入于海島입우해도, 爲仙不死者위선불사자, 已數千年이수천년, 汝能隨我紫府玄都여능수아자부현도, 逍遙娛樂乎소요오락호?’ 余曰여왈: ‘.’ 遂提携引我수제휴인아, 至于所居지우소거, 作別館以待之작별관이대지, 餌我以玄洲不死之藥이아이현주불사지약. 服之累月복지루월, 忽覺身輕氣健홀각신경기건, 磔磔然책책연, 如有換骨焉여유환골언. 自是以後자시이후, 逍遙九垓소요구해, 儻佯六合당양육합, 洞天福地동천복지, 十洲三島십주삼도, 無不遊覽무불유람. 一日일일, 秋天晃朗추천황랑, 玉宇澄明옥우징명, 月色如水월색여수, 仰視蟾桂앙시섬계, 飄然有遐擧之志표연유하거지지. 遂登月窟수등월굴, 入廣寒淸虛之府입광한청허지부, 拜嫦娥於水晶宮裏배항아어수정궁리. 嫦娥以我貞靜能文항아이아정정능문, 誘我曰유아왈: ‘下土仙境하토선경, 雖云福地수운복지, 皆是風塵개시풍진, 豈如履靑冥驂白鸞기여리청명참백란, 挹淸香於丹桂읍청향어단계, 服寒光於碧落복한광어벽락, 遨遊玉京오유옥경, 遊泳銀河之勝也유영은하지승야?’ 卽命爲香案侍兒즉명위향안시아, 周旋左右주선좌우, 其樂不勝可言기락불승가언. 忽於今宵홀어금소, 作鄕井念작향정념, 下顧蜉蝣하고부유, 臨睨故鄕임예고향, 物是人非물시인비, 皓月掩烟塵之色호월엄연진지색, 白露洗塊蘇之累백로세괴소지루, 辭下淸宵사하청소, 冉冉一降염염일강, 拜于祖墓배우조묘, 又欲一玩江亭우욕일완강정, 以暢情懷이창정회. 適逢文士적봉문사, 一喜一赧일희일난, 輒依瓊琚之章첩의경거지장, 敢展駑鈍之筆감전노둔지필, 非敢能言비감능언, 聊以敍情耳료이서정이.”

生再拜稽首曰생재배계수왈: “下土愚昧하토우매, 甘與草木同腐감여초목동부, 豈意與王孫天女기의여왕손천녀, 敢望唱和乎감망창화호?” 生卽於席前생즉어석전, 一覽而記일람이기. 又俯伏曰우부복왈: “愚昧宿障深厚우매숙장심후, 不能大嚼仙羞불능대작선수, 何幸粗知字畵하행조지자화, 稍解雲謠초해운요, 眞一奇也진일기야. 四美難具사미난구, 請復以江亭秋夜玩月爲題청부이강정추야완월위제, 押四十韻압사십운, 敎我교아.” 佳人頷之가인함지, 濡筆一揮유필일휘, 雲煙相軋운연상알, 走書卽賦曰주서즉부왈:

月白江亭夜월백강정야, 長空玉露流장공옥로류. 淸光蘸河漢청광잠하한, 灝氣被梧楸호기피오추.
皎潔三千界교결삼천계, 嬋娟十二樓선연십이루. 纖雲無半點섬운무반점, 輕颯拭雙眸경삽식쌍모.
瀲灩隨流水렴염수류수, 依稀送去舟의희송거주. 能窺蓬戶隙능규봉호극, 偏映荻花洲편영적화주.
似聽霓裳奏사청예상주, 如看玉斧修여간옥부수. 蚌珠胚貝闕방주배패궐, 犀暈倒閻浮서훈도염부.
願與知微翫원여지미완, 常從公遠遊상종공원유. 芒寒驚魏鵲망한경위작, 影射喘吳牛영사천오우.
隱隱靑山郭은은청산곽, 團團碧海陬단단벽해추. 共君開鑰匙공군개약시, 乘興上簾鉤승흥상렴구.
李子停盃日이자정배일, 吳生斫桂秋오생작계추. 素屛光粲爛소병광찬란, 紈幄細雕鎪환악세조수.
寶鏡磨初掛보경마초괘, 永輪駕不留영륜가불류. 金波何穆穆금파하목목, 銀漏正悠悠은루정유유.
拔劍妖蟆斫발검요마작, 張羅㕙兎罦장라준토부. 天衢新雨霽천구신우제, 石逕淡煙收석경담연수.
檻壓千章木함압천장목, 階臨萬丈湫계임만장추. 關河誰失路관하수실로, 鄕國幸逢儔향국행봉주.
桃李相投報도리상투보, 罍觴可獻酬뢰상가헌수. 好詩爭刻燭호시쟁각촉, 美酒剩添籌미주잉첨주.
爐爆烏銀片로폭오은편, 鐺翻蟹眼漚당번해안구. 龍涎飛睡鴨용연비수압, 瓊液滿癭甌경액만영구.
鳴鶴孤松驚명학고송경, 啼螿四壁愁제장사벽수. 胡床殷瘦話호상은수화, 晉渚謝遠遊진저사원유.
彷彿荒城在방불황성재, 簫森草樹稠소삼초수조. 靑楓搖湛湛청풍요담담, 黃葦冷颼颼황위랭수수.
仙鏡乾坤闊선경건곤활, 塵閒甲子遒진한갑자주. 故宮禾黍穗고궁화서수, 野廟梓桑樛야묘재상규.
芳臭遺殘碣방취유잔갈, 興亡問泛鷗흥망문범구. 纖阿常仄滿섬아상측만, 累塊幾蜉蝣루괴기부유.
行殿爲僧舍행전위승사, 前王葬虎丘전왕장호구. 螢燐隔幔小형린격만소, 鬼火傍林幽귀화방림유.
弔古多垂淚조고다수루, 傷今自買憂상금자매우. 檀君餘木覓단군여목멱, 箕邑只溝婁기읍지구루.
窟有麒麟跡굴유기린적, 原逢肅愼鍭원봉숙신후. 蘭香還紫府란향환자부, 織女駕蒼虯직녀가창규.
文士停花筆문사정화필, 仙娥罷坎堠선아파감후. 曲終人欲散곡종인욕산, 風靜櫓聲柔풍정로성유.

寫訖사흘, 擲筆凌空而逝척필릉공이서, 莫測所之막측소지. 將歸장귀, 使侍兒傳命曰사시아전명왈: “帝命有嚴제명유엄, 將驂白鸞장참백란, 淸話未盡청화미진, 愴我中情창아중정.” 俄而아이, 回飇捲地회표권지, 吹倒生座취도생좌, 掠詩而去략시이거, 亦不知所之역부지소지. 蓋不使異話개불사이화, 傳播人間也전파인간야.

生惺然而立생성연이립, 藐爾而思막이이사, 似夢非夢사몽비몽, 似眞非眞사진비진. 倚闌注想의란주상, 盡記其語진기기어, 因念奇遇인념기우, 而未盡情款이미진정관. 乃追懷以吟曰내추회이음왈:

雲雨陽臺一夢間운우양대일몽간, 何年重見玉簫還하년중견옥소환.
江波縱是無情物강파종시무정물, 嗚咽哀鳴下別灣오인애명하별만.

吟訖四盻음흘사혜, 山寺鐘鳴산사종명, 水村鷄唱수촌계창, 月隱城西월은성서, 明星暳暳명성혜혜, 但聽鼠啾于庭단청서추우정, 蟲鳴于座충명우좌, 悄然而悲초연이비, 肅然而恐숙연이공, 愴乎其不可留也창호기불가류야. 返而登舟반이등주, 怏怏鬱鬱앙앙울울, 抵于故岸저우고안, 同伴競問曰동반경문왈: “昨宵작소, 托宿甚處탁숙심처?” 生紿曰생태왈: “昨夜작야, 把竿乘月파간승월, 至長慶門外朝天石畔지장경문외조천석반, 欲釣錦鱗욕조금린. 會夜凉水寒회야량수한, 不得一鮒부득일부, 何恨如之하한여지?” 同伴亦不之疑也동반역부지의야.

其後기후, 生念娥생념아, 得勞瘵尫羸之疾득로채왕리지질, 先抵于家선저우가, 精神恍惚정신황홀, 言語無常언어무상, 展輾在床전전재상, 久而不愈구이불유. 生一日생일일, 夢見淡妝美人몽견담장미인, 來告曰래고왈: “主母奏于上皇주모주우상황, 上皇惜其才상황석기재, 使隸河鼓幕下爲從事사예하고막하위종사. 上帝勅汝상제칙여, 其可避乎기가피호?” 生驚覺생경각, 命家人명가인, 沐浴更衣목욕경의, 焚香掃地분향소지, 鋪席于庭포석우정, 支頤暫臥지이잠와, 奄然而逝엄연이서, 卽九月望日也즉구월망일야. 殯之數日빈지수일, 顔色不變안색불변, 人以爲遇仙屍解云인이위우선시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