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어역
평양은 옛 조선의 서울이었다.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이기고 기자(箕子)를 방문하자, 기자가「홍범(洪範)」구주(九疇)의 법을 일러주었다.기자는 중국 은나라의 현인으로 이름은 서여(胥餘)이다. 주나라 무왕이 그에게 세상 다스리는 법을 물었는데, 기자가 홍범구주의 법을 가르쳤다. 홍범구주란 『서경』 주서 홍범 편에 기록되어 있는 정치 도덕의 아홉 가지 원칙이다 무왕이 기자를 이 땅에 봉하였지만 신하로 삼지는 않았다. 이곳의 명승지로는 금수산, 봉황대, 능라도, 기린굴, 조천석, 추남허 등이 있는데, 모두 고적(古跡)옛 유적지이다. 영명사(永明寺)의 부벽정(浮碧亭)부벽루라고도 불림. 평양에 있는 정자의 이름으로 ‘푸른 대동강 위에 떠 있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정자이기에 부벽(浮碧: 뜰 부, 푸를 벽)이라는 이름이 덧붙여졌다 한다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영명사 자리는 바로 고구려 동명왕의 구제궁(九梯宮) 터다. 이 절은 성 밖에서 동북쪽으로 이십 리 되는 곳이 있다. 긴 강을 내려다보고 평원을 멀리 바라보며 아득하기 그지없으니, 참으로 좋은 경치였다. 그림 그린 놀잇배와 장삿배들이 날 저물 무렵 대동문 밖에 있는 유기(柳磯)버들 숲 낚시터에 닿아 머물게 되면, 사람들은 으레 강물을 따라 올라와서 이곳을 마음대로 구경하며 실컷 즐기다가 돌아가곤 하였다. 부벽정 남쪽에는 돌을 다듬어 만든 사닥다리가 있다. 왼편에는 청운제(靑雲梯), 오른편에는 백운제(白雲梯)라고 돌에다 글자를 새겨 화주(華柱)화표주(華表柱), 길가에 세워 이정표를 삼거나 무덤 앞에 세우기도 하는 돌기둥를 세워 놓았으므로, (일 벌이기 좋아하는) 호사자(好事者)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천순(天順)명나라 영종의 연호로 1457∼1464년까지 초년천순 초년인 1457년은 조선 세조3년임에 개성에 홍생(洪生)이라는 부자가 있었다. 그는 나이도 젊고 얼굴도 잘생긴데다 풍도가 있었으며, 또한 글을 잘 지었다. 그가 한가윗날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평양에서 (여인을 유혹하려고) 베를 안고 와서 실을 바꾸었다[抱布貿絲]『시경』 위풍 「맹(氓)」의 한 구절. “베를 가지고 와서 비단실을 사네. 비단실을 사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꼬이려는 것이지[抱布貿絲, 匪來貿絲, 來卽我謀].” 여인을 유혹한다는 뜻임. 그런 뒤에 배를 강가에 대자, 성안의 이름난 기생들이 모두 성문 밖으로 나와서 홍생에게 추파를 던졌다. 성안에 이생(李生)이라는 옛 친구가 살았는데, 잔치를 베풀어 홍생을 환영하였다. 홍생은 술이 취하자 배로 돌아갔지만 밤이 서늘하고 잠도 오지 않아서, 문득 장계(張繼)가 지은 「풍교야박(楓橋夜泊)」이라는 시장계는 당나라 때 시인으로, 이 시의 원래 제목은 「야박풍교시」다가 생각났다. 그래서 맑은 흥취를 견디지 못해 작은 배를 타고는, 달빛을 싣고 노를 저어서 올라갔다. 흥취가 다하면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올라가다가, 이르고 보니 부벽정 아래였다. 홍생은 뱃줄을 갈대숲에 매어 두고, 사닥다리를 밟고 올라갔다.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며, 맑은 소리로 낭랑하게 시를 읊었다. 그때 달빛은 바다처럼 넓게 비치고 물결은 흰 비단처럼 고운데, 기러기는 모래밭에서 울고 학은 소나무에서 떨어지는 이슬방울에 놀라서 푸드덕거렸다. 마치 하늘 위에 옥황상제가 계신 곳에라도 오른 것처럼 몸과 마음이 서늘해졌다. 한편 옛 서울을 돌아보니 하얀 (회칠을 한) 성가퀴[堞]성 위에 낮게 쌓아 올린 담. 이곳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한다에는 안개가 끼어 있고, 외로운 성 밑에는 물결만 부딪칠 뿐이었다. 「맥수은허(麥秀殷墟)」은나라가 망한 뒤 기자가 고국의 옛 도읍 터를 지나가다가 보리가 나서 자란 것을 보고 서글퍼 지은 노래의 탄식이 저절로 나와, 이내 시 여섯 수를 지어 읊었다. 부벽정 올라와 시흥을 못 견디고 읊으니 임금 계시던 궁궐에는 가을 풀만 쓸쓸하고 대동강 저 물결은 쪽보다도 더 푸르네. 오늘이 한가위라 달빛은 곱기만 한데 동산에 달이 뜨자 까막까치 흩어져 날고 찬이슬이 내리자 뜰의 풀이 다 시드는데 홍생은 읊기를 마친 뒤에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일어나 그 자리에서 춤을 추었다. 한 구절을 읊을 때마다 ‘어허’ 소리를 내며 탄식하였다. 비록 뱃전을 두드리고 퉁소를 불며 서로 화답하는 즐거움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 느꺼워하였다. (그가 시를 읊는 소리는) 깊은 구렁에 잠긴 용도 따라서 춤추게 할 만하였고, 외로운 배에 있는 과부도 울릴 만하였다.소동파의 「적벽부」에서 따온 구절이다. 「적벽부」에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계수나무 노여! 목란 상앗대여! 투명한 물을 치고 달빛을 거슬러 올라가노라. 아득하구나, 나의 그리움이여! 하늘 끝 미인을 기다리네.’다. 손님 중에 퉁소를 부는 사람이 있어 노래에 기대어 화답하였다. 그 소리가 구슬픈 듯,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노래하는 듯, 하소연 하는 듯. 남은 소리는 간드러지고 실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그윽한 골짜기 교룡이 춤을 추고, 외로운 배에 있는 과부도 울릴 만 하였다[於是飲酒樂甚﹐ 扣舷而歌之。歌曰﹕ "桂棹兮蘭槳﹐擊空明兮溯流光。渺渺兮于懷﹐望美人兮天一方。" 客有吹洞蕭者﹐ 倚歌而和之﹐ 其聲嗚嗚然﹕ 如怨如慕﹐如泣如訴﹔ 余音裊裊﹐ 不絕如縷﹔ 舞幽壑之潛蛟﹐ 泣孤舟之嫠婦。].“고 했다 시 읊기를 마치고 돌아오려 하자 밤은 벌써 삼경(三更)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누었을 때, 세 번째 시간. 밤11시부터 1시 사이다이나 되었다. 이때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서쪽에서 들려 왔다. 홍생은 마음속으로 ‘절의 스님이 시 읊는 소리를 듣고 이상하게 생각하여 찾아오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하며 앉아서 기다렸다. 그런데 나타나고 보니 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두 시녀가 좌우에서 따르며 모셨는데, 한 여인은 옥자루가 달린 불자(拂子)삼이나 짐승 털을 묶어서 자루 끝에 매달아 만든 일종의 총채. 먼지를 털거나 벌레를 쫓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선(禪)에서는 마치 먼지를 털듯, 상념을 털어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를 잡았고, 다른 한 시녀는 비단 부채를 들고 있었다. 여인은 위엄이 있고도 단정하여, 마치 귀족집 처녀 같았다. 홍생은 계단을 내려가 담 틈으로 비켜서서 그녀가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았다. 여인은 남쪽 난간에 기대어 서서 달빛을 보며 작은 소리로 시를 읊었는데, 풍류와 몸가짐이 단정하여 범절이 있었다. 시녀가 비단방석을 펴자, 여인이 얼굴빛을 고치고 자리에 앉아 낭랑한 소리로 말하였다. “여기서 방금 시를 읊던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 어디에 있소? 나는 꽃이나 달의 요물도 아니고, 연꽃 위를 거니는 주희(姝姬)주(姝)는 아름다운 여인인데, 연꽃 위를 거니는 아름다운 여인은 남조 제나라의 반귀비(潘貴妃)다. 제나라 황제 동혼후가 금으로 연꽃 모양을 만들어 땅에 붙여 두자, 반귀비가 그 위로 가면서 춤을 추어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시를 지었다도 아니라오. 다행히도 오늘처럼 아름다운 밤을 맞고 보니, 장공만리(長空萬里)만 리나 길게 펼쳐져 있는 드넓은 하늘 하늘에는 구름도 걷히었소. 달이 높이 뜨고 은하수는 맑은데다, 계수나무 열매가 떨어지고 백옥루(白玉樓)달 속에 있다는 궁전. 백옥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고 함는 차갑기에, 한잔 술에 시 한 수로 그윽한 심정을 유쾌히 풀어 볼까 하였소. 이렇게 좋은 밤을 어찌 그대로 보내겠소?” 홍생이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로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였다. 그래서 어찌할까 머뭇거리다가 가늘게 기침소리를 내었다. 시녀가 기침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와서 청하였다. "저희 아가씨께서 모시고 오라 하였습니다." 홍생이 조심스럽게 나아가서 절하고 꿇어앉았다. 여인도 또한 별로 어려워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그대도 이리 올라오시지요." 시녀가 낮은 병풍으로 잠깐 앞을 가리었으므로, 그들은 얼굴을 서로 반만 보았다. 여인이 조용히 말하였다. "그대가 조금 전에 읊은 시는 무슨 뜻이오? 나에게 외어 주시오." 홍생이 그 시를 하나하나 외어 주자, 여인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는 나와 함께 시에 대하여 이야기할 만하오." 여인이 시녀에게 명하여 술을 한차례 권하였는데, 차려 놓은 음식이 인간세상의 것과 같지 않았다. 먹으려 해봐도 굳고 딱딱하여 먹을 수가 없었다. 술맛도 또한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여인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였다. “속세의 선비가 어찌 백옥례(白玉醴)신선이 마시는 단술와 홍규포(紅虯脯)용고기로 만든 포육를 알겠소.” 여인이 시녀에게 명하였다. "너 빨리 신호사(神護寺)에 가서 절밥을 조금만 얻어 오너라." 시녀가 시키는 대로 가서 곧 절밥을 얻어 왔다. 그러나 밥뿐이었고, 반찬이 또한 없었다. 그래서 다시 시녀에게 명하였다. “얘야. 주암(酒巖)평양부 동북쪽 십 리 되는 곳에 있는 바위로, 『동국여지승람』에 이르길 “술이 바위틈에서 흘러나왔는데 아직도 흔적이 있어 이름을 술바위라고 하였다.”고 한다. 주암 아래 못에는 용이 살았다고 전한다에 가서 반찬도 얻어 오너라.” 얼마 되지 않아서 시녀가 잉어구이를 얻어 가지고 왔다. 홍생이 그 음식들을 먹었다. 그가 음식을 먹고 나자, 여인이 이미 홍생은 시에 따라 그 뜻에 화답하였다. 향기로운 종이에 시를 써서 시녀로 하여금 홍생에게 주도록 하였는데, 그 시는 이러하였다. 부벽정 오늘밤에 달빛 더욱 밝은데 옛 성에 올라 보니 대동강이 또렷한데 풀뿌리 차갑다고 쓰르라미 울어대네. 금수산(錦繡山) 앞에 금수(錦繡)가 쌓여 있어나뭇잎이 수놓은 비단같이 쌓여있음을 표현 별들이 드문드문 하늘에 널렸는데 이 밤이 어찌 되었나, 밤은 이미 깊어졌네. 홍생은 시를 받아 보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돌아갈까 봐 염려되어, 이야기를 하면서 붙잡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보았다. “송구스럽지만 당신의 성씨와 족보를 듣고 싶습니다.” 여인이 한숨을 쉬더니 대답하였다. “나는 은나라 임금의 후손이며 기씨의 딸이라오. 나의 선조(기자)께서 이 땅에 봉해지자 예법과 정치제도를 모두 탕왕(湯王)폭군 걸왕을 쳐서 하나라를 정벌하고 은나라를 세운 임금의 가르침에 따라 행하였고, 팔조(八條)의 금법(禁法)『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후한서』에 “기자가 조선에 와서 팔조의 교법을 만들어 백성을 교화시켰다.“고 했다. 『한서』「지리지」에는 낙랑조선에서 시행되고 있던 팔조법금 가운데 세 개 조항을 소개했는데 다음과 같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한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으며, 속죄하려는 자는 오십만 전을 내야 한다.”으로써 백성을 가르쳤으므로, 문물이 천년이나 빛나게 되었지요기자의 예법 정치 덕분에 이 땅의 문화가 빛날 수 있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자긍심은 작가의 ‘조상에 대한 자긍심’이자 ‘역사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간접적으로 투영된 것이다. 갑자기 나라의 운수가 곤경에 빠지고 환난이 문득 닥쳐와, 나의 선친(준왕)께서 필부(匹夫)신분이 낮고 보잘것없는 사내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고조선의 준왕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연나라 사람 위만을 말한다의 손에 실패하여 드디어 종묘사직을 잃으셨소. 위만(衛滿)이 이 틈을 타서 보위(寶位)를 훔쳤으므로, 우리 조선의 왕업은 끊어지고 말았소. 나는 이 어지러운 때를 당하여 절개를 굳게 지키기로 다짐하고 죽기만 기다렸을 뿐인데, 홀연히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나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셨소. ‘나는 본래 이 나라의 시조인데, 나라를 잘 다스린 뒤에 바다 섬에 들어가 죽지 않는 선인(仙人)이 된 지가 벌써 수천 년이나 되었다. 너도 나를 따라 하늘나라 궁궐에 올라가 즐겁게 노니는 것이 어떻겠느냐?’ 내가 응낙하자 그 분이 마침내 나를 이끌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서 별당을 지어 나를 머물게 하고, 나에게 현주(玄洲)북해에 있다는 신선의 섬의 불사약을 주셨소. 그 약을 먹고 몇 달이 지나자 홀연히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건장해지더니, 날개가 달려 신선이 된 것 같았소. 그때부터 하늘에 높이 떠서 천지 사방을 오가며 동천복지(洞天福地)천하에 이름난 산과 경치 좋은 곳으로 36동천과 72복지가 있다고 했다를 찾아 십주(十洲)신선이 산다는 열군데 섬와 삼도(三島)신선이 산다는 세 군데 산.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를 유람하지 않은 곳이 없었소. 하루는 가을 하늘이 활짝 개어 밝은 데다 달빛이 물처럼 맑기에 달을 쳐다보니, 갑자기 먼 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소. 그래서 달나라에 올라가서 광한청허지부(廣寒淸虛之府)왕인유가 지은 『천보유사』에 “명황(明皇, 당나라 현종)이 달나라 궁전에서 놀았는데 현판을 보니 ‘광한청허지부’라고 하였다.”고 했다에 들어가 수정궁으로 항아(嫦娥)달나라에 산다고 하는 선녀의 이름를 방문하였더니, 항아가 나더러 절개가 곧고 글을 잘 짓는다고 칭찬하면서 이렇게 달래었소. ‘인간세상의 선경(仙境)을 비록 복지(福地)라고는 하지만, 모두 풍진(風塵)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나라에 올라와서 흰 난새[鸞]『산해경』을 보면 여장의 산에 꿩처럼 생긴 새가 오색 무늬를 띠었는데 난조(鸞鳥)라 한다고 했다. 부부 금실이 좋아서, 짝을 잃은 난조가 삼 년 동안 울지 않다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슬피 울면서 하늘로 튀어 올라 죽었다는 고사가 있다.를 타고 계수나무 아래에서 맑은 향내를 맡으며, 푸른 하늘에서 달빛을 띠고 옥경(玉京)옥황상제가 산다는 하늘나라의 수도로, 백옥경이라고도 한다에서 즐겁게 놀거나 은하수에서 목욕하는 것보다야 낫겠느냐?’ 그리고는 나를 향안(香案)옥황상제 앞에 놓는 향로를 바치는 상이다 받드는 시녀로 삼아 자기 곁에 있도록 하여 주었는데, 그 즐거움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소. 그러다가 오늘 저녁에 갑자기 고국 생각이 나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고향땅을 굽어보았소. 산천은 옛 그대로였지만 사람들은 달라졌고, 밝은 달빛이 연기와 티끌들을 가려 주었으며, 맑은 이슬이 대지에 쌓인 먼지를 깨끗이 씻어 놓았기에, 옥경을 잠시 하직하고 살며시 내려와 보았소. 조상님의 산소에 절하고는 부벽정이나 구경하면서 회포를 풀어 볼까 해서 이리로 왔었소. 마침 글 잘하는 선비를 만나고 보니, 한편 기쁘고도 하고 한편 부끄럽소. 더군다나 그대의 뛰어난 시에다 노둔한 붓을 펼쳐 화답하였으니, 감히 시라고 한 게 아니라 회포를 대강 펼쳤을 뿐이오.” 홍생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아래 세상의 우매한 사람이야 초목과 함께 썩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나라의) 왕손이신 선녀를 모시고 시를 주고받게 될 줄이야 어찌 뜻하였겠습니까?” 홍생은 (여인의 시를) 그 자리에서 한 번 훑어보고는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다시 엎드려서 말하였다. “우매한 이 사람은 전세에 지은 죄가 많아서 신선의 음식을 먹을 수 없습니다만, 다행히도 글자는 대강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녀께서 지으신 시도 조금은 이해하였는데,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사미(四美)네 가지 아름다움. 좋은 계절, 아름다운 경치, 이를 즐기는 마음, 즐겁게 노는 일를 갖추기가 어려운데 (이제 이 네 가지가 다 갖추어졌으니), 이번에는 ‘강정추야완월(江亭秋夜玩月)’강가 정자에서 가을밤에 달을 구경하다로 제목을 삼아서 사십 운(韻)의 시를 지어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붓을 적셔 한 번에 죽 내리썼다. 구름과 연기가 서로 얽힌 듯하였다. 붓을 달려서 곧바로 지었는데, 그 시는 이러하였다. 부벽정 달 밝은 밤에 여인은 쓰기를 마친 뒤에 공중에 높이 솟아 가버렸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인이 돌아가면서 시녀를 시켜 홍생에게 말을 전하였다. “옥황상제의 명이 엄하셔서 나는 이제 흰 난새를 타고 돌아가겠소. 맑은 이야기를 다하지 못했기에 내 속마음이 아주 섭섭하오.” 얼마 뒤에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땅을 휘감더니 홍생이 앉았던 자리도 걷고 여인의 시도 앗아가 버렸는데, 이 시도 또한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이야기를 인간 세상에 전하여 퍼뜨리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홍생은 조용히 서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는데, 꿈도 아니고 생시도 아니었다. 난간에 기대서서 정신을 모으고는 여인이 하였던 말들을 모두 기록하였다. 그는 기이하게 만났지만 가슴속에 쌓인 이야기를 다하지 못한 것이 서운하여, 조금 전의 일들을 회상하면서 시를 읊었다. 운우 양대(雲雨陽臺)송옥이 지은 『고당부서』에 나오는 이야기로, 춘추시대 초나라 회왕이 ‘고당’이라는 누대에 놀러갔다가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 무산(巫山)의 선녀가 나타나 정을 통했다. 선녀가 회왕을 모신 뒤에 떠나면서, 자기는 “아침에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양대 아래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회왕이 아침에 보니 과연 구름이 떠 있었다. 이 뒤부터 남녀가 육체적으로 관계하는 것을 운우(雲雨)라고 표현했다. 여기서는 홍생이 선녀를 만난 부벽정을 가리킨다에서 꿈결에 임을 만났었네. 시 읊기를 마치고 사방을 둘러보니 산 속의 절에서는 종이 울고 물가 마을에서는 닭이 우는데, 달은 성 서쪽으로 기울고 샛별만 반짝이고 있었다. 다만 뜰에서 쥐 소리가 들리고 자리 옆에서는 벌레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홍생은 쓸쓸하고도 슬펐으며 숙연하고도 두려워졌다. 마음이 서글퍼져서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돌아와 배에 올라탔는데도 우울하고 답답하였다. 어제 놀던 강 언덕으로 갔더니 친구들이 다투어 물었다. "어제 저녁에는 어디서 자고 왔는가?" 홍생은 속여서 말하였다. "어제 밤에는 낚싯대를 메고 달빛을 따라 장경문 밖 조천석 기슭까지 가서 좋은 고기를 낚으려고 하였었지. 그런데 마침 밤 날씨가 서늘해서 물이 차가워져, 붕어 한 마리도 낚지 못하였다네.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친구들도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뒤에 홍생은 그 여인을 연모하다가 병을 얻어 쇠약해진 몸으로 자기 집에 돌아왔지만, 정신이 황홀하고 헛소리가 많아졌다. 병상에 누운 지가 오래 되었지만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홍생이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엷게 단장한 미인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우리 아가씨께서 선비님의 이야기를 옥황상제께 아뢰었더니 상제께서 선비님의 재주를 사랑하시어, 견우성 막하(幕下)지휘관이나 책임자가 거느리는 사람에 붙여 종사관으로 삼으셨습니다. 옥황상제께서 선비님께 명하셨으니 어찌 피하겠습니까?" 홍생은 놀라서 꿈을 깨었다. 집안사람을 시켜서 자기 몸을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게 하였다. 향을 태우고 땅을 쓸어 낸 뒤에 뜰에 자리를 펴게 하였다. 그는 턱을 괴고 잠깐 누웠다가 문득 세상을 떠났는데, 바로 구월 보름날이었다. 그의 시체를 빈소에 모셨는데, 며칠이 지나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홍생이 신선을 만나서 시해(屍解)죽어서 시체는 그대로 남긴 채 신선이 되는 것을 말함된 것이다.’ 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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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壤, 古朝鮮國也. 周武王克商, 訪箕子, 陣洪範九疇之法, 武王封于此地, 而不臣也. 其勝地, 則錦繡山, 鳳凰臺, 綾羅島, 麒麟窟, 朝天石, 楸南墟, 皆古跡, 而永明寺浮碧亭, 其一也. 永明寺, 卽東明王九梯宮也. 在郭外東北卄里, 俯瞰長江, 遠矚平原, 一望無際, 眞勝境也. 畵舸商舶, 晩泊于大同門外之柳磯, 留則必泝流而上, 縱觀于此, 極歡而旋. 亭之南, 有鍊石層梯, 左曰靑雲梯, 右曰白雲梯, 刻之于石, 立華柱, 以爲好事者玩. 天順初, 松京有富室洪生, 年少美姿容, 有風度, 又善屬文. 値中秋望, 與同伴, 抱布貿絲于箕城, 泊舟艤岸. 城中名娼, 皆出闉闍, 而目成焉. 城中有故友李生, 設宴以慰生, 酣醉回舟, 夜凉無寐, 忽憶張繼楓橋夜泊之詩, 不勝淸興, 乘小艇, 載月打槳而上, 期興盡而返, 至則浮碧亭下也. 繫纜蘆叢, 躡梯而登, 憑軒一望, 朗吟淸嘯, 時月色如海, 波光如練, 雁呌汀沙, 鶴驚松露, 凜然如登淸虛紫府也. 顧視故都, 烟籠粉堞, 浪打孤城, 有麥秀殷墟之歎, 乃作詩六首曰: 不堪吟上浿江亭, 嗚咽江流腸斷聲. 帝宮秋草冷凄凄, 回磴雲遮徑轉迷. 浿江之水碧於藍, 千古興亡恨不堪. 中秋月色正嬋娟, 一望孤城一悵然. 月出東山烏鵲飛, 夜深寒露襲人衣. 庭草秋寒玉露凋, 靑雲橋對白雲橋. 生吟罷, 撫掌起舞踟躕. 每吟一句, 歔欷數聲, 雖無扣舷吹簫, 唱和之樂, 中情感慨, 足以舞幽壑之潛蛟, 泣孤舟之嫠婦也. 吟盡欲返, 夜已三更矣. 忽有跫音, 自西而至者. 生意謂寺僧聞聲, 驚訝而來. 坐以待之, 見則一美娥也. 丫鬟隨侍左右, 一執玉柄拂, 一執輕羅扇, 威儀整齊, 狀如貴家處子. 生下階, 而避之于墻隙, 以觀其所爲. 娥倚于南軒, 看月微吟, 風流態度, 儼然有序. 侍兒捧雲錦茵席以進, 改容就坐, 琅然言曰: “此間有哦詩者, 今在何處? 我非花月之妖, 步蓮之姝, 幸値今夕, 長空萬里, 天闊雲收, 冰輪飛而銀河淡, 桂子落而瓊樓寒, 一觴一脉, 暢敍幽情, 如此良夜何?” 生一恐一喜, 踟躕不已, 作小謦咳聲. 侍兒尋聲而來, 請曰: “主母奉邀.” 生踧踖而進, 且拜且跪. 娥亦不之甚敬, 但曰: “子亦登此.” 侍兒以短屛乍掩, 只半面相看, 從容言曰: “子之所吟者, 何語也? 爲我陳之.” 生一一以誦. 娥笑曰: “子亦可與言詩者也.” 卽命侍兒, 進酒一行, 殽饌不似人間, 試啖堅硬莫吃, 酒又苦不能啜. 娥莞爾曰: “俗士, 那知白玉醴紅虯脯乎?” 命侍兒曰: “汝速去神護寺, 乞僧飯小許來.” 兒承命而往, 須臾得來, 卽飯也. 又無下飯, 又命侍兒曰: “汝去酒巖, 乞饌來.” 須臾, 得鯉炙而來. 生啗之. 啗訖, 娥已依生詩, 以和其意, 寫於桂箋, 使侍兒, 投于生前. 其詩曰: 東亭今夜月明多, 淸話其如感慨何. 故城南望浿江分, 水碧沙明呌雁群. 草根咽咽泣寒螿, 一上高亭思渺茫. 錦繡山前錦繡堆, 江楓掩映古城隈. 幾介疎星點玉京, 銀河淸淺月分明. 夜何知其夜向闌, 女墻殘月正團團. 生得詩且喜, 猶恐其返也, 欲以談話留之. 問曰: “不敢聞姓氏族譜.” 娥噫而答曰: “弱質, 殷王之裔, 箕氏之女. 我先祖, 實封于此, 禮樂典刑, 悉遵湯訓, 以八條敎民, 文物鮮華, 千有餘年. 一旦天步艱難, 灾患奄至, 先考敗績匹夫之手, 遂失宗社. 衛瞞乘時, 竊其寶位, 而朝鮮之業墜矣. 弱質顚蹶狼藉, 欲守貞節, 待死而已. 忽有神人撫我曰: ‘我亦此國之鼻祖也. 享國之後, 入于海島, 爲仙不死者, 已數千年, 汝能隨我紫府玄都, 逍遙娛樂乎?’ 余曰: ‘諾.’ 遂提携引我, 至于所居, 作別館以待之, 餌我以玄洲不死之藥. 服之累月, 忽覺身輕氣健, 磔磔然, 如有換骨焉. 自是以後, 逍遙九垓, 儻佯六合, 洞天福地, 十洲三島, 無不遊覽. 一日, 秋天晃朗, 玉宇澄明, 月色如水, 仰視蟾桂, 飄然有遐擧之志. 遂登月窟, 入廣寒淸虛之府, 拜嫦娥於水晶宮裏. 嫦娥以我貞靜能文, 誘我曰: ‘下土仙境, 雖云福地, 皆是風塵, 豈如履靑冥驂白鸞, 挹淸香於丹桂, 服寒光於碧落, 遨遊玉京, 遊泳銀河之勝也?’ 卽命爲香案侍兒, 周旋左右, 其樂不勝可言. 忽於今宵, 作鄕井念, 下顧蜉蝣, 臨睨故鄕, 物是人非, 皓月掩烟塵之色, 白露洗塊蘇之累, 辭下淸宵, 冉冉一降, 拜于祖墓, 又欲一玩江亭, 以暢情懷. 適逢文士, 一喜一赧, 輒依瓊琚之章, 敢展駑鈍之筆, 非敢能言, 聊以敍情耳.” 生再拜稽首曰: “下土愚昧, 甘與草木同腐, 豈意與王孫天女, 敢望唱和乎?” 生卽於席前, 一覽而記. 又俯伏曰: “愚昧宿障深厚, 不能大嚼仙羞, 何幸粗知字畵, 稍解雲謠, 眞一奇也. 四美難具, 請復以江亭秋夜玩月爲題, 押四十韻, 敎我.” 佳人頷之, 濡筆一揮, 雲煙相軋, 走書卽賦曰: 月白江亭夜, 長空玉露流. 淸光蘸河漢, 灝氣被梧楸. 寫訖, 擲筆凌空而逝, 莫測所之. 將歸, 使侍兒傳命曰: “帝命有嚴, 將驂白鸞, 淸話未盡, 愴我中情.” 俄而, 回飇捲地, 吹倒生座, 掠詩而去, 亦不知所之. 蓋不使異話, 傳播人間也. 生惺然而立, 藐爾而思, 似夢非夢, 似眞非眞. 倚闌注想, 盡記其語, 因念奇遇, 而未盡情款. 乃追懷以吟曰: 雲雨陽臺一夢間, 何年重見玉簫還. 吟訖四盻, 山寺鐘鳴, 水村鷄唱, 月隱城西, 明星暳暳, 但聽鼠啾于庭, 蟲鳴于座, 悄然而悲, 肅然而恐, 愴乎其不可留也. 返而登舟, 怏怏鬱鬱, 抵于故岸, 同伴競問曰: “昨宵, 托宿甚處?” 生紿曰: “昨夜, 把竿乘月, 至長慶門外朝天石畔, 欲釣錦鱗. 會夜凉水寒, 不得一鮒, 何恨如之?” 同伴亦不之疑也. 其後, 生念娥, 得勞瘵尫羸之疾, 先抵于家, 精神恍惚, 言語無常, 展輾在床, 久而不愈. 生一日, 夢見淡妝美人, 來告曰: “主母奏于上皇, 上皇惜其才, 使隸河鼓幕下爲從事. 上帝勅汝, 其可避乎?” 生驚覺, 命家人, 沐浴更衣, 焚香掃地, 鋪席于庭, 支頤暫臥, 奄然而逝, 卽九月望日也. 殯之數日, 顔色不變, 人以爲遇仙屍解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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