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모/넓어져라상식

자신의 거짓말 속에 갇힌 사람들, 뮌히하우젠 증후군

 뮌히하우젠 남작(Karl Friedrich Hieronymus von Münchhausen). 1720년 독일 출생. 터키와 러시아 전쟁에 참전하고 1760년 퇴역해 하노버에 정착. '허풍쟁이 남작'으로 불림.

 

뮌히하우젠 남작은 하노버에 정착한 후 자신이 그 때까지 겪은 일들을 각색해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시작한다. 군인으로, 사냥꾼으로, 만능 스포츠맨으로... 사실에 영웅적인 요소를 넣어 이야기한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는 했지만, 허풍이 가득한 거짓된 이야기였다. 이 허풍이 얼마나 심했으면 사람들 사이에서 '허풍쟁이 남작'으로까지 불렸을까.  말을 뾰족한 말뚝에 매어 놓고 눈 위에서 자고 아침에 깨어보니 눈이 다 녹아 말이 교회의 탑 위에 매달려 있더라, 전쟁이 끝난 후 말이 한없이 물을 마시길래 살펴보니 말의 몸통 뒷부분이 없어졌더라, 근처의 목장에서 없어진 몸통을 찾아내서 어린 가지로 꿰매 놓았더니 그것이 나무로 자라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는 이야기였으니 그 과장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알 만하지 않은가. 급기야 그는『뮌히하우젠 남작의 놀라운 수륙여행과 출진과 유쾌한 이야기』(1786)라는 장황한 제목의 책까지 출간한다. 독일의 시인작가인 뷔르거(G. A Bürger: 1747 ~ 94)는 여기에 이야기를 더 보태어 『허풍쟁이 남작의 모험(Münchhausens Reisen und Abenteur)』을 지었으며, 뮌히하우젠의 이야기는 아류작이 나오는 등 인기를 끌었다.

 

1951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 아셔(Richard Asher)는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일삼고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다가 결국에는 자기 스스로 그 이야기에 도취되어 버리는 증상'을 '뮌히하우젠 증후군(Münchhausen syndrome)'이라 이름 붙인다.

 

주로 애정결핍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관심과 주목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이 증후군은 실제로 앓고 있는 병이 없는데도 아프다고 거짓말을 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려는 데서 시작한다. 입원이나 진찰을 받으려고 병을 꾸미는 것은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싶으면 자해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래서 환자들은 의학적 지식 수준이 높은 경우가 많다. 작은 치료를 받고 난 후 그 다음에는 더 높은 수위의 치료를 원하는데, 자신이 원하는 수술을 받기 위해 어떤 증상을 보여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에게 그 증상의 고통을 보여야 하니 열심히 의서를 공부할 수 밖에.

 

 1980년대 중반 뮌히하우젠 증후군에 대한 논문이 쏟아져 나오는데, 여기에는 미국 민간 보험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로 인한 보험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고.

 

뮌히하우젠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가족, 특히 자녀를 학대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자신을 책임지고 보호할 수 없는데,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안겨오는 아이들이 극도의 스트레스 요인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란다.

 

삶에 닥친 어려움을 스스로 풀지 못해 위기에 빠진 성인의 뇌가 자기 보호본능을 일으켜 어릴 적 상태로 후퇴시켜 버린다. 거짓말을 만들고, 본인은 이것을 진실로 믿어버리고... 이들은 질병을 빌미삼아 어떤 대가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관심과 보호뿐. 만약 이들이 괴로움을 호소하는데 꾀병이라고 비난하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