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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Girl/감성ART여라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서 날아온 소식 …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스캔들 미술사

하비 래클린 | 서남희 역 | 리베르 | 2009

 

『스캔들 미술사』는 모나리자나 게르니카 등 26편의 명화에 얽힌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은 삶에 관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 뒤에 담긴 이야기들은 미술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이야기인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그림에 대한 보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그림이 담고 있는 인간들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스캔들'을 맛깔 나게 담고 있다.

 

1937년 4월 말 세계를 화들짝 놀라게 한 경악스런 뉴스로 인해, 피카소는 자꾸만 뒤로 미루던 일을 마무리 짓게 된다. 그 소식은 스페인 북중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인 게르니카에서 날아왔다. 자유의 상징으로 귀하게 여기는 보물인 참나무 밑에서 바스카야 주 의회가 자랑스럽게 모이곤 하는 곳이었다.


4월 26일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옛 바스크 수도였던 이곳의 장날이었다. 그러나 거리마다 농부들과 동네 사람들로 북적이던 오후 4시 30분경, 적군의 전투기들이 마을 위로 날아왔다. 교회 종들이 뎅뎅거리며 사람들에게 피신하라고 알리는 사이에 융커 52와 하인켈 폭격기와 전투기들이 엄청난 양의 폭탄과 수류탄을 쏟아부었다.


작정하고 지독한 공격을 퍼붓는데 달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사람들이 들판으로 도망가면 하인켈 전투기들이 고도를 낮추며 내려와 기관총을 퍼부었다. 자비롭게도 태양이 질 때까지 끔찍한 공격은 계속되었고, 폭격기와 전투기들이 꼬리를 물고 날아와 온 마을에 잔인하고 체계적으로 융단폭격을 가하며, 집들과 농가들과, 건물들과, 기차역을 파괴했다. 거리에는 수백 명이 죽어 쓰러졌고, 수백 명이 불타오르는 잔해 밑에 매몰되었다. 모든 상황이 끝났을 때 그 마을 인구의 1/3인 약 1,700명이 살육 당했고, 889명이 다쳤다.


밝혀진 바로는 이 파괴의 공습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한 스페인 민족주의파가 저지른 것이 아니라 고도의 훈련을 받은 루프트바페 소속 콘도르 비행 군단이 한 일이었다. 프랑코가 불러들인 이 독일 침략군들은 자국의 군용기가 얼마나 강력하고 살상력이 큰 지를 공화파 스페인에게 보여주려 했다. 또한 나치 독일은 자국의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공습 경험을 시키고, 자유국가에게는 독일 공군이 그들의 도시에 할지도 모르는 행동에 대해 두려움에 떨게 만들 기회이기도 했다.


사실 군사적 입장에서는 그 마을을 초토화시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수도이자 강한 독립 정신을 가진 바르크 사람들의 텃밭이며 내전에 의해 전혀 해를 입지 않은 게르니카는 전제적인 스페인 민족주의파에게는 위협의 상징이었다.

 

Guernica / 1937 / Pablo Picasso

 

그의 널찍한 화실에는 이제 가로 776센티미터, 높이 349센티미터인 커다란 스크린이 서 있었다. 제아무리 그 방이 크다 해도 그 거대한 캔버스가 들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따라서 꼭대기는 뒤로 접어놓아야 했고, 윗부분에 그림을 그릴 때는 사다리를 써야 했다.


몇 주 동안 피카소는 흰색, 검은 색, 회색 톤으로 다양한 인물들과 감정을 캔버스에 채웠다.

머리를 하늘로 젖히고 입을 벌린 채 침묵의 통곡을 하며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 뿔 달린 황소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우뚝 서서 살기등등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그 벽화에서 황소는 극악무도한 괴물, 즉 그 그림에 나타난 모든 비탄의 원인인 프랑코와 파시즘인 것 같지만, 초안 그림들에서 그 황소는 오히려 공격자들을 경계하는 스페인 사람들 같기도 하다.

그 그림의 중심인물인 내장이 드러난 말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찢겨진 조국인 스페인이거나 프랑코 장군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말 위에는 해가 있지만, 그 안의 전구는 세계에 그 사건을 알리게 한 언론의 ‘인위적인’ 빛을 미묘하게 언급한 것일 수도 있다. 말 아래쪽에는 손바닥을 위로 하고 누운 전사의 시체가 있다. 왼손은 펼쳐졌고, 손바닥은 심하게 패여 있고, 오른손에는 부러진 단검이 꽉 쥐여 있다.

젖가슴이 나온 채 목은 길게 빼고 있고 왼발은 뒤로 쭉 내밀고 있는, 공포에 몸이 오그라든 여자도 보인다. 그녀의 위쪽에 있는 두 여자 중 하나는 길게 뻗은 손에 초롱불을 들고 있고, 또 하나는 불타는 집의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 그녀의 옷에는 불이 붙어 있고, 양팔은 하늘로 뻗어 있다.


스페인의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 하늘에서 폭탄이 잔인하게 쏟아져 내려, 방어능력이 없는 민간인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37년의 끔찍한 그날 이후, 파리 화실에 있던 파블로 피카소는 자신의 항의를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영원하며, 그 항거는 게르니카 폭격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죄 없는 사람들에게 저질러진 모든 잔학행위에 맞서 표현된, 보편성을 갖는 항거이다. 「게르니카는 잔인한 행위에 맞선 용감한 항의일 뿐 아니라, 고통을 없애려는 인간의 본능은 고통을 가하고자 하는 욕망보다 훨씬 강력하고, 공포는 이겨낼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평화, 자유, 해방이 지배할 거라는 상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