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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Girl/감성ART여라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기를 … 김정희 《세한도》

《세한도》는 꿋꿋이 역경을 견뎌내는 선비의 올곧고 견정한 의지가 있다. 메마른 붓으로 반듯하게 이끌어간 묵선은 조금도 허둥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차분하고 단정하다고 할 정도다. 초라함이 어디에 있는가? 자기 연민이 어디에 있는가?

 

종이에 수묵 / 23.7x61.2cm / 국보 제180호 / 개인 소장

《세한도》는 ‘추운 시절을 그린 그림’이다. …… 추사 김정희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로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그의 제자 이상적이 자신을 대하는 한결같은 마음에 감격하여 그려 보낸 작품이다.

 

 

《세한도》의 화발

그대가 지난해에 계복의 『만학집』과 운경의 『대운산방문고』 두 책을 부쳐주고, 올해 또 하장령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 120권을 보내주니, 이는 모두 세상에 흔한 일이 아니다. 천 만 리 먼 곳에서 사온 것이고, 여러 해에 걸쳐서 얻은 것이니, 일시에 가능했던 일도 아니었다.

 

지금 세상은 온통 권세와 이득을 좇는 풍조가 휩쓸고 있다. 그런 풍조 속에서 서책을 구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힘들이기를 그같이 하고서도, 그대의 이끗을 보살펴 줄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멀리 초췌하게 시들어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잇속을 좇듯이 하였구나!

 

태사공 사마천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자들은 그것이 다하면 교제 또한 성글어진다”고 하였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흐름 속에 사는 한 사람으로 세상 풍조의 바깥으로 초연히 몸을 빼내었구나. 잇속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태사공의 말씀이 잘못되었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소나무, 잣나무는 본래 사계절 없이 잎이 지지 않는 것이다.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도 같은 소나무, 잣나무요, 추위가 닥친 후에도 여전히 같은 소나무, 잣나무다. 그런데도 성인(공자)께서는 굳이 추위가 닥친 다음의 그것을 가리켜 말씀하셨도다.

 

이제 그대가 나를 대하는 처신을 돌이켜보면, 그 전이라고 더 잘한 것도 없지만, 그 후라고 전만큼 못할 일도 없었다. 그러나 예전의 그대에 대해서는 따로 일컬을 것이 없지만, 그 후에 그대가 보여준 태도는 역시 성인에게서도 일컬음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닌가? 성인이 특히 추운 계절의 소나무, 잣나무를 말씀하신 것은 다만 시들지 않는 나무의 굳센 정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역시 추운 계절이라는 그 시절에 대하여 따로 마음에 느끼신 점이 있었던 것이다.

 

아아! 전한 시대와 같이 풍속이 아름다웠던 시절에도 급암과 정당시처럼 어질던 사람조차 그들의 형편에 따라 빈객이 모였다가는 흩어지곤 하였다. 하물며 하규현의 적공이 대문에 써 붙였다는 글씨 같은 것은 세상 인심의 박절함이 극에 다다른 것이리라. 슬프다!

 

완당 노인이 쓰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 솔 | 2005

 

오주석은 그림을 감상할 때 단순히 ‘보기’보다 그림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는 선인들의 가르침을 깔끔한 어조로 전달한다. 우리 옛 그림을 잘 완상하려면 옛 사람의 눈으로,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는 자세를 갖는 것이 기본이라고 일러주며, 그림의 문외한조차 즐겁고도 쉽게 읽어낼 수 있게 해 준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에 수록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9명의 명화 12점에 관한 해설에서 내면의 삼엄함, 도가풍의 은일, 풍아(風雅)의 유유자적 같은 분위기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세한도》에는 염량세태의 모질고 차가움이 있다. 쓸쓸한 화면엔 여백이 많아 겨울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데 보이는 것이라고는 허름한 집 한 채와 나무 네 그루뿐이다. 옛적 추사 문전에 버글거렸을 뭇사람들의 모습은커녕 인적마저 찾을 수 없다. 화제를 보면 ‘세한도歲寒圖 우선시상藕船是賞 완당阮堂’이라고 적혀 있다. ‘추운 시절의 그림일세, 우선이! 이것을 보게, 완당’이란 뜻이다. 화제 글씨는 기품이 있으면서도 어딘가 정성이 스며있는 듯한 예서로 화면 위쪽에 바짝 붙어 있다. 그래서 화면의 여백은 더욱 휑해 보인다. 이러한 텅 빈 느낌은 바로 절해고도 원악지에서 늙은 몸으로 홀로 버려진 김정희가 나날이 맞닥뜨려야만 했던 씁쓸한 감정 그것이었을 것이다. 까슬까슬한 마른 붓으로 쓸 듯이 그려낸 마당의 흙 모양새는 채 녹지 않은 흰 눈인 양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러나 《세한도》에는 꿋꿋이 역경을 견뎌내는 선비의 올곧고 견정한 의지가 있다. 저 허름한 집을 찬찬히 뜯어보라! 메마른 붓으로 반듯하게 이끌어간 묵선은 조금도 허둥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차분하고 단정하다고 할 정도다. 초라함이 어디에 있는가? 자기 연민이 어디에 있는가? 보이지 않는 집주인 완당 김정희, 그 사람을 상징하는 허름한 집은 외양은 조촐할지언정 속내는 이처럼 도도하다. 남들이 보건 안 보건, 미워하건 배척하건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이 집에서 스스로가 지켜 나아갈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것이다.


《세한도》에는 또한 영락한 옛 스승을 생각해주는 제자의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이 있다. 집 앞에 우뚝 선 아름드리 늙은 소나무를 보라! 그 뿌리는 대지에 굳게 박혀 있고, 한 줄기는 하늘로 솟았는데 또 한 줄기가 가로로 길게 뻗어 차양처럼 집을 감싸 안았다. 그 옆의 곧고 젊은 나무를 보라! 이것이 없었다면 저 허름한 집은 그대로 무너져버리지 않았겠는가? 윤곽만 겨우 지닌 초라한 집을 지탱해주는 것은 바로 저 변함없이 푸른 소나무인 것이다. 멀리서나마 해마다 잊지 않고 정성을 보내주는 제자 이상적인 것이다. 그 고마움이 추사의 마음에 얼마나 깊이 사무쳤는지 유독 이 나무들의 필선은 더욱 힘차고 곳곳에 뭉친 초묵이 짙고 강렬한 빛깔로 멍울져 있다. 그 마른 붓질이 지극히 건조하면서도 동시에 생명의 윤택함을 시사하고 있음은 참으로 감격적이다.


집 왼편 약간 떨어진 곳에 선 두 그루 잣나무는 줄기가 곧고 가지들도 하나같이 위쪽으로 팔을 쳐들고 있다. 이 나무들의 수직적인 상승감은 그 이파리까지 모두 짧은 수직선 형태를 하고 있어서 더욱 강조된다. 김정희는 이 나무들에서 희망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 《세한도》란 결국 석 자 종이 위에 몇 번의 마른 붓질이 쓸고 지나간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에는 세상의 매운 인정과 그로 인한 씁쓸함, 고독, 선비의 굳센 의지, 옛사람의 고마운 정, 그리고 끝으로 허망한 바람에 이르기까지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세한도>를 문인화의 정수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그 인문은 ‘장무상망 長毋相忘’이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기를!’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가슴에 맺히는 말인가?


《세한도》의 짜임을 보면 과연 불세출의 서예가 추사 김정희다운 놀라운 구성력에 탄성을 발하지 않을 수 없다. 여백을 중심으로 바라보면 소나무와 잣나무가 두 그루씩 선 곳에서 화면은 세 개의 여백 공간으로 나뉜다. 세 여백은 처음이 제일 넓고 두 번째서 조금 줄었다가 마지막에서 가장 좁아진다. 가장 여백이 좁아진 곳 뒤에서 그의 내심을 토로하는 발문이 바로 이어진다. 그런데 첫째 여백은 애초 너무 휑한 느낌을 줄 위험이 있었다. 이것은 상변에 바짝 붙여 쓴 ‘세한도’라는 짙은 제목 글씨와 수직으로 두 줄 내려 쓴 ‘우선시상 완당’이라는 작은 관지 글씨에 힘입어 절묘한 공간 분할을 이루면서 구제되었다.


여백이 아닌 형태의 연결을 보자. 얼핏 보기에는 놓치기 쉽지만, 작품 오른편 아래 구석에서 늙은 소나무의 오른쪽 가지를 잇고, 잣나무 왼쪽 가지로부터 다시 그림 왼편 아래 구석으로 연결해가면, 작품의 전체 윤곽은 안정감 있는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다. 보고 또 보아도 《세한도》가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문의 화발을 보자. 정성들여 방안을 긋고 쓴 글은 위쪽에 넓은 여백을 두고 아래쪽을 밭게 자리 잡았다. 이렇게 아래쪽에 치우쳐 자리한 발문은, 그림을 중간에 두고 화면 상변의 ‘세한도’ 글씨와 서로 대척점에 서서 마주보고 있다. 제목 ‘세한도’와 그 뜻을 풀어낸 장문의 글씨들은 마치 크고 작은 추로써 저울에 평형을 준 것처럼 서로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