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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Girl/감성ART여라

얼음 위에 서 있는 생기발랄한 스케이터 … 스튜어트 《스케이트 타는 사람》

The Skater / 1782 / Gilbert Stuart

 

 

 

 

 

 

 

스캔들 미술사

하비 래클린 | 서남희 역 | 리베르 | 2009

 

『스캔들 미술사』는 모나리자나 게르니카 등 26편의 명화에 얽힌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은 삶에 관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 뒤에 담긴 이야기들은 미술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이야기인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그림에 대한 보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그림이 담고 있는 인간들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스캔들'을 맛깔 나게 담고 있다.

 

27살 난 화가는 얼굴은 능숙하게 그렸지만 과연 전신 초상화를 그릴 만한 솜씨가 있는지는 자신이 없었다. …… 처음에는 전신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그랜트의 주문을 망설였지만 이제는 그 산을 넘을 때가 왔음을 마침내 받아들였다.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화가는 걸어오느라 볼이 빨갛게 얼은 윌리엄 그랜트를 맞이했다. 스코틀랜드인 손님은 이런 날씨에는 초상화를 그리느라 답답한 실내에 앉아 있느니 스케이트라도 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가볍게 말했다.

 

여전히 두려워하던 스튜어트는 눈앞에 닥친 일을 뒤로 물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매우 기뻤다. 스튜어트가 그 말에 덥석 응하는 바람에 그랜트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친구가 된 화가와 고객은 장난꾸러기 소년들처럼 신나게 스케이트장으로 인기 있는 하이드 파크의 서펜타인 강으로 향했다. 곧 이 둘은 얼어붙은 강 위에서 스케이트를 지치고 있었다. 스튜어트는 스케이트를 잘 탔다. …… 그랜트는 타긴 탔지만 이 친구만큼 능숙하지는 못했다.

 

스케이트 묘기를 부리는 스튜어트에게 사람들의 눈길이 쏠렸다. 곧 많은 이들이 모여 화가와 친구의 별난 짓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 즐거운 휴식이 끝나고 이들은 화실로 돌아왔다. 이제 과제를 해내야 한다는 긴장된 현실로 돌아온 스튜어트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전신 초상화를 그릴 때, 변호사인 그랜트가 스튜어트를 타는 모습으로 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랜트는 기뻐했고, 영감을 받은 스튜어트는 일을 시작했다.

 

스튜어트의 그림에 나타난 그랜트는 얼음 위에 서 있는 생기발랄한 스포츠맨의 모습이다. 그는 흰색으로 포인트를 준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검은색 모자를 세련되게 기울이고, 넓은 챙 한쪽 밑에는 머리카락을 드리우고, 다른 쪽에는 고수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다. 머리와 눈길은 옆을 슬쩍 향한다. 팔짱을 낀 상태로 왼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두고, 오른쪽 다리를 우아하게 뒤로 뻗었는데, 이것은 그가 능숙하고 우아하고 세련되고 가볍게 얼음을 지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또 이것은 지금까지 기를 못 펴던 화가가 이제부터는 제 솜씨를 당당하게 시험해 보려는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까지 그는 자신이 없어 재능을 활짝 펼치지 못하였다. 오랫동안 자연 치유가 되기를 기다린 끝에 마침내 그는 이 그림으로 심리적 압박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는 자기 그림의 모델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웠다. 즉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처럼 자유롭게 돌며 날아올랐던 것이다. 스튜어트의 초상화는 스케이트를 타는 변호사 윌리엄 그랜트를 그린 것이긴 하지만 서펜타인 강의 얼음 위에서 그랬듯이, 진짜 스케이터는 따로 있고 이 변호사는 그의 꼬리를 잡고 다닐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