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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Girl/감성ART여라

자연 앞에 선 개인의 의미 … 알브레히트 뒤러 《House by a Pond》

 

 

 

 

 

 

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 진중권 | 웅진지식하우스 | 2003

 

『천천히 그림 읽기』에는 그림을 읽는 여러 관점이 제시되어 있다. 자신에게 맞는 관점을 찾아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 그림의 감상적 분위기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묘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킨다. 아마 전 시대보다 낮아진 시선의 위치와 해가 지면서 내는 빛이 가져다주는 묘한 느낌 때문이리라. 그의 시선은 그림의 모티프가 되는 대상과 같거나 그보다 조금 낮은 위치를 택한다. 그리고 그는 공교롭게도 막 해가 지고 있는 시간대를 선택했다. 그는 광선이 수면과 집의 지붕에 떨어지면서 일으키는 미묘한 작용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효과 때문에 뒤러의 작품에서 자연은 표정을 갖는다.

 

뒤러의 작품에서는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을 여백이 느껴진다. 하늘과 호수의 수면이 서로를 비추고, 그 가운데 고요함이 깃들인다. 화면 앞쪽 왼편 구석의 작은 배가 동양화가 일으키는 효과를 준다. 작은 배는 멀리 보이는 섬과 그곳에 있는 집 사이의 거리감을 나타내 주는 동시에, 멀리 떨어진 이 두 공간이 연결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림은 여기저기 빈 공간을 드러낸다. 뒤러 특유의 정확한 소묘도 여기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대상을 과학적으로 묘사하는 대신에 대상과 연결된 자신의 개인적인 기분, 느낌 등을 표현하려는 듯이 보인다.

 

여기에는 더 이상 노동하는 농부의 모습도, 개인의 감성을 간섭하는 정치 질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자유로운 시민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과의 동화 감정이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개인이자 자유로운 시민이었던 화가 뒤러는 더 이상 자연을 중세적 노동과 연결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국가라는 추상적 실체의 이상적 상태로 보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을 자유로운 미적 관조를 통해 바라볼 뿐이다.

 

Albrecht Durer / House by a Pond / 1496 / Watercolor and gouach on paper / The British Museum, London

 

이 그림은 그가 살았던 뉘른베르크에서 그린 것이다. 이렇게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고향의 풍경을 통해서 자연 앞에 선 개인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했다. 뒤러에게 자연은 그저 인간에게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공간이 아니었다. 그에게 자연은 자기 현시의 장이었다. 뒤러는 풍경화를 주문자 없이 제작했다고 한다. 작품을 팔려고 하지도 않았다 한다. 설사 팔려고 했다 하더라도 당시의 여건에서 이 같은 그림을 살 사람이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뒤러는 이 그림을 자신을 위해 그렸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그림은 어느 봉건 귀족의 것도, 어느 관청의 것도 아니다. 바로 뒤러 자신의 것이다. 단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그렸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뒤러가 이 그림에 표현한 것은 자기 자신, 즉 자연을 바라보는 뒤러 자신의 미적 체험이라는 의미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