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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백편의자현/詩로빚어낸마음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 유하「사랑의 지옥」

하늘공원에 호박꽃이 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 시가 어렴풋이 생각났다. 그래서 찾아보려 했는데, 시인과 시제가 생각이 나지 않아 며칠을 찾아 헤맸다. 결국 찾지 못해 인터넷 지식인의 힘을 빌렸고, 겨우 찾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진작 물어볼 걸 후회가 됐다.

 

대개 사랑이라고 하면 행복하고 달콤한 이미지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과연 사랑이 달콤하기만 한 것일까? 적어도 시인에게는 사랑은 지옥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사랑에 빠진 자신의 처지를 호박꽃 속에 갇힌 꿀벌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유하의 「사랑의 지옥」을 음미해 본다.


 

 

세상의 모든 저녁

유하 | 민음사 | 1999

 

 

 

 

정신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 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세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의 캄캄한 감옥에 갇혀 운다

 

 

 

 


꿀벌은 거부하기 힘든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호박꽃 속으로 들어갔지만, 시인은 호박꽃 입구를 막아버리는 짓궂은 장난을 한다. 달콤한 꿀을 기대하고 들어갔던 꿀벌에게 호박꽃은 최고의 낙원이었지만, 입구가 막혀 버리자 호박꽃은 지옥이 되어 버린다. 꿀벌은 어떻게든 지옥을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지만,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그 지옥을 맴돌게 된다. 꿀벌의 몸부림을 ‘잉잉거림’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표현만으로도 꿀벌이 겪고 있는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시인은 ‘잉잉거리는’ 벌꿀의 모습이 사랑에 빠진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고백한다. 달콤한 꿀을 기대했다가 최악의 지옥에 갇혀 버린 꿀벌처럼, 사랑의 매혹에 이끌려 앞뒤 분간 못하고 몸과 마음을 맡겨버린 ‘나’는 ‘황홀의 캄캄한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어 버렸다. 더 깊숙이 나아갈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늪. 이미 사랑의 감옥에 빠져버리면 힘들다고 해서 마음대로 빠져나갈 수도 그렇다고 더 파고들어가기도 어렵다. 잉잉거릴 수밖에 없는 사랑. 사랑이란 ‘그대 황홀의 캄캄한 감옥’에서의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을 어쩌지 못하는 그런 것일까?

 

‘나’는 그런 힘겨운 사랑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감옥이 지옥이기만 한 것일까? ‘황홀의 깜깜한 감옥’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러하듯 ‘나’는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느끼고 있는 듯하다.

 

이 세상에 행복과 달콤함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세상은 없다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어떤 길로 가게 되더라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수없이 봐 왔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복을, 사랑을 꿈꾸고 싶다.

 

오늘은 왠지 지옥일지라도 사랑하고 있는 시인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