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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은 자금성이고 경복궁은 경복궁이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

《놀러와》에 출연해 유홍준 교수는 한국인들의 문화의식에 관해 언급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TV를 통해 음성으로 듣고 나니 나부터도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을 왔다갔다하는 우리문화 인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책의 시작에 언급된 이 내용을 마음에 새기며 옮겨본다.

 

 

 

한국인의 이중적 문화의식

 

한국인의 문화의식에는 이중적인 면이 많다. 우리는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로 민족적⋅애국적 자부심이 강한가 하면, 한편으로는 이집트, 그리스, 중국의 거대한 문화유산을 보면 우리 문화는 독창적인 것이 적고 스케일도 작으며 초라하다고 말하곤 한다. 외국의 유명한 박물관에서 한국실이 일본의 것에 비해 형편없이 빈약한 것을 보면 마음 상해 씁쓸해하면서도 해외반출 문화재는 모두 환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때 나는 한국인 커미셔너로 참가했다. 이 때 오세아니아지역 작가를 선정하기 위하여 씨드니와 오클랜드를 두 차례 다녀왔다. 당시 씨드니 주립미술관에서는 마침 ‘아시아미술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호주 전역에 있는 유물들을 모든 대규모 전시회로 거기에는 당연히 한국미술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특별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민망스러울 정도로 초라했다.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 태국은 번듯한 독립실에서 얼핏 보기에도 명품들이 밝은 조명 아래 빛나고 있었다. 이에 비해 한국 유물은 여타의 아시아국가들을 모은 방 한쪽 구석에 스무 점 남짓한 도자기들이 이마를 맞대고 있는 게 전부였다. 한국미술은 아시아미술의 ‘기타 잡과’로 처리된 것이었다. 거기에는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려는 어떤 큐레이터십도 없었으며 어찌 보면 인사동 어느 고미술상 진열장만도 못 했다. 나는 속으로 ‘어느 시골동네 축구팀이 한국대표단으로 출전한 것 같다’고 고소를 금치 못하며 민망한 마음으로 유물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는데 그사이 등뒤로 한국인 관광단이 무려 세 팀이나 지나갔다. 그리고 죄다 한마디씩 하는 것이었다.

 

“야, 여기 한국이 있다.”
“근데 한국 유물은 왜 이렇게 초라하냐?”
“글쎄, 일본은 저렇게 폼나게 대접받는데.”
“빨리 가자.”

 

씨드니에서 일을 마치고 이틀 뒤 뉴질랜드 오클랜드박물관에 갔을 때 나는 예의 한국인 관광단 몇팀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박물관은 아시아미술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첫 전시실부터 한국실로 꾸며졌고 제법 많은 양의 청자, 백자, 분청사기, 목가구 등이 방 세 개에 걸쳐 전시되어 있었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질에서 약간 문제가 있었지만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야, 한국이 맨 처음이다.”
“근데 왜 우리 유물이 여기에 이렇게 많니?”
“글쎄 말이다. 우리 문화재는 이렇게 죄다 약탈당했다니까.”

 

씨드니에서는 적다고 마음 상하고, 오클랜드에서는 많다고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란 말인가. 정리해서 말하면 씨드니의 한국미술 컬렉션은 별 볼일 없고, 오클랜드의 그것은 제법 괜찮다고 말하면 그뿐이다. 거기에 전시된 것만으로 한국미술의 가치가 가름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 한국인 관광객의 문제점은 한국미술의 객관적 가치를 마음속에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때그때의 일시적 상황이 마치 전부인 양 생각한 데 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우리는 우리 나름의 고유한 문화와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확고한 문화의식이 있으면 그런 전시를 보고 마음이 흔들리고 상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경복궁과 자금성

 

경복궁에 대해 내가 줄곧 듣는 정말로 기분 나쁘고 화나는 말은 “자금성(紫禁城)에 비하면 뒷간밖에 안 된다”는 식의 자기비하다. 나는 이런 말을 한국인에게서 들을 뿐 외국인들한테선 들어본 적이 없다.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역사적 콤플렉스에다 유난히 스케일에 열등의식이 많아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경복궁에는 자금성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미학과 매력과 자랑이 있다.

 

사람들은 은연중 경복궁이 자금성을 모방해 축소해 지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자금성이 완공된 것은 1420년이고 경복궁이 완공된 것은 1395년이니, 경복궁이 25년 먼저 지어진 것이다.

 

경복궁은 자금성에 비했을 때 물론 스케일이 작다. 실제로 경복궁은 14만평(46만여 제곱미터)로 자금성 24만평(79만 제곱미터)의 약 60퍼센트 규모다. 그것은 황궁(皇宮)과 왕궁(王宮)의 차이이다. 황궁은 5문3조(五門三朝)이고 왕궁은 3문3조로 한다는 것이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적 관례였다. 대문에서 정전에 이르기까지 황궁은 5개, 왕궁은 3개의 문을 거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전의 월대(月臺)도 5단과 3단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것을 어기는 것은 국제질서의 파괴이자 도전이니 그 뒷감당을 할 수 없는 한 3문에 3단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원망하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가 G20에 있으면서 G2처럼 행세하기를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G2만이 자랑스러운 문화를 가진 것이 아니다. G20의 프랑스, 독일이 거기에 기죽지 않고 현대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듯이 조선왕조는 명나라, 청나라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이룩하였던 것이다.

 

경복궁의 중요한 특징이자 자금성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위치 설정(location)에 있다. 자금성은 건축디자인의 기본취지가 위압감을 주는 장대함의 과시에 있다. 이에 반해 경복궁은 우리나라 건축의 중요한 특징인 주변환경, 즉 자연과의 어울림이라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조선 왕조 건국자들이 이 위치를 찾아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검토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지 모른다. 건축미학 자체가 다른 것이다. 주변의 경관을 자신의 경관으로 끌어안는 차경(借景)의 미학을 경복궁처럼 훌륭히 이루어 낸 건축은 세계에서 드물다.

 

각국의 왕궁은 그 나름의 특징을 갖고 있다. 모든 왕궁은 그 시대, 그 나라의 최고 기술과 최고 재료, 동원 가능한 재력의 소산이며 그 건축의 모습은 주어진 자연환경에 따라 성격을 달리한다. 광활한 평지에 세워진 중국의 자금성은 그 자체가 성곽이다. 한적한 시골에 지어진 베르싸유궁은 목가적 전원과 어울린다. 외침이 많았던 헝가리 부다왕궁은 도나우강 언덕 위 산성 속에 지어졌다. 빈궁전은 귀족의 저택으로 포위된 도심 속에서 홀로 우뚝 군림하면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에 비해 우리 경복궁은 어느 시점에서 보아도 북악산과 인왕산을 바라볼 수 있는 자연 과의 어울림이 자랑이다. 그것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미학의 문제다.

 

경복궁은 거기에 북악산과 인왕산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지어진 건축이다. 궁궐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과 인왕산은 경복궁의 가시적 정원인 것이다. 2009년 가을 LA 카운티 미술관(LACMA,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이 한국미술 전시실을 지하 35평에서 지상 170평으로 확장 신설하면서 개관기념으로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관해 강연해줄 것을 요청했을 때 내가 택한 주제는 ‘한국의 자연과 건축’이었다.

 

이 때 나는 인왕산과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근정전(勤政殿) 사진을 비추면서 경복궁 건축을 이야기했다. 강연이 끝나고 다과회 자리에서 LACMA의 후원회원이라는 한 미국인이 나에게 다가와 확인하는 질문을 했다.

 

“당신이 보여준 왕궁 사진은 강연 제목(자연과 건축)에 맞추어 만든 합성사진이었습니까?”

 

우리는 너무도 익숙한 경관이어서 별것 아닌 줄 알고 한국의 건축이라면 당연히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한국에 와보지 않은 그에게는 상상이 가지 않는 신기롭고도 환상적인 가상의 아름다움으로 보인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 왕궁에 그런 산이 있는가. 자금성 주위에도 그런 산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 자금성 북쪽에 우리의 북악산에 비하면 ‘뒷간’보다도 작은 가산(假山)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금성에 들어서면 나무 한 그루 없다. 자객이 들어올까봐 있던 나무도 다 없애버린 것이다. 그렇게 철저히 자연을 배제할 수가 없다 경복궁의 각 권역을 이어주는 길에는 아름다운 소나무, 버드나무, 때죽나무, 마가목, 산딸나무 등 각 건물에 어울리는 나무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 종류가 100종이 넘는다. 경복궁과 자금성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자연과의 어울림이다. 자금성은 자금성이고 경복궁은 경복궁이다.

 

-  pp.11∼17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인생도처유상수)

유홍준 | 창비 | 2011

 

내가 서 있는 이 땅에는 지금껏 수많은 이들의 삶이 함께 숨쉬고 있음을 가르쳐 준 책. 이 땅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쉬운 언어로 풀어놓아 여행 가기 전 읽어보고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