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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Girl/느낌표가있는구절

나뭇잎 지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 김풍기『옛시에 매혹되다』

산 속 절 집에 하루 밤을 묵었다. 창 밖이 갑자기 소란한 것이 난데없이 비라도 쏟아지는 모양이다. 저녁때까지 말짱하던 날씨였다. 영문을 몰라, 심부름하는 사미승을 부른다.
“얘! 비가 오나보다. 바깥 날씨 좀 보고 오너라.”
꼬마 스님, 대답은 않고 그저 생글생글 웃는다.
“손님! 비는 무슨 비랍니까? 창문 열고 보세요. 이제 막 떠오른 달님이 남쪽 시내 나뭇가지에 걸려 있어요.”
어라! 요녀석 보게. 비 오냐 묻는데 달 떴다 한다. 창문을 열고 보니 밤바람에 온 산 나뭇잎이 일제히 나부껴 땅에 뒹굴고 있었다.

 

 

 조선 중기 문인 송강松江 정철鄭澈은 술과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술은 지나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술을 끊겠다는 글을 지은 적도 있었다. 상대 당파에서는 그의 술이 언제나 공격의 대상이었지만, 같은 당파 문인들은 풍류롭다고 칭송했다. 시조와 한시, 가사, 악부 등 많은 분야에서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정철은, 우리 고전문학사에서는 길이 빛나는 작가로 손꼽힌다. 백성들을 계몽하기 위한 이념적 차원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생활을 굴레에서 벗어나 파탈을 즐기는 삶의 한 부분을 묘사한 작품도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풍류 넘치는 작품으로 여겨지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蕭蕭落木聲   쓸쓸히 나뭇잎 지는 소리
錯認爲疎雨   빗발 듣는 소리인 줄 알았네.
呼僧出門看   중 불러 문 밖에 나가 보랬더니
月掛溪南樹   시내 남쪽 나무 위로 달이 걸렸다는군.

- 정철, 「산사의 밤山寺夜吟」, 『송강속집松江續集』, 권1

 

산속의 절에서 하루를 묵으며 지은 작품이다. 이 시는 후대에도 사람들에게 애송되었다.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쉽고도 선명한 이미지가 돋보인다. 전반부의 청각적 이미지와 후반부의 시각적 이미지가 병치되면서, 바람 서늘한 가을밤의 풍경을 포착하였다. 마치 송나라 구양수의 「추성부秋聲賦」를 절묘하게 요약이라도 해놓은 듯한 구성이 놀랍다. 나뭇잎 떨어지는 쓸쓸한 가을밤과 명랑한 가을달의 모습은, 산속 절의 고요한 느낌을 잘 보여준다. 얼마나 조용했으면 나뭇잎 지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렸을까. 그 고요함은 하늘에 뜬 가을 달과 어울리면서 그 심도를 한층 더해준다.

 

 

 

 

 

 

 

 

 

 

 

 

 

 

 

 

 

 

 

 

 

 

 

 

 

 

 

 

 

 

 

 

 

 

 

 

 

 

 

 

 

 

 

 

 

 

 

 

 

 

 

 

 

 

 

 

 

 

 

 

 

 

 

 

 

 

 

 

 

 

 

 

 

 

 

 

 

 

 

 

 

 

 

 

 

 

 

 

 

 

 

 

 

 

 

 

 

 

 

 

 

 

 

 

 

 

 

 

 

 

 

 

 

 

옛시에 매혹되다

김풍기 | 푸르메 | 2011

 

우리의 옛시 속에 담긴 옛 지식인들의 내면풍경을 엿볼 수 있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