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집 뒤로 흐르는 개울가에 산책을 가서 살얼음이 낀 것을 보고 겨울이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추위에 약해 겨울이 되면 옷을 몇 겹을 입고도 무릎담요며 핫 팩을 들고 다녀 주위 사람들로부터 늘 핀잔을 듣는다. 누가 보면 남극기지에 있는 줄 알겠다며…… 그렇게 추위를 싫어하면서도 나에게는 개울에 얼음이 얼 때면 개울가에 앉아 있는 습관(?)이 있다. 문학소녀의 기질이 있는 것도 아닌 내가 우두커니 앉아 개울의 얼음을 보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 이 시를 보고 난 이후부터이다. 시 자체를 읽지 않던 때였음에도 우연히 본 이 시가 내 마음에 깊이 남아 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예전엔 꽁꽁 언 강을 바라볼 때 생각이 나더니, 이번 해엔 살얼음만 언 것을 보았음에도 이 시가 생각이 난다. 무엇이 내 마음을 울려 몇 해가 지나도 얼음만 보아도 이 시가 머리에 맴도는 것인지…… 겉만 보고 판단하고, 서운해 했던 내 과거에 대한 후회 때문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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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강에서 젊은 날을 회상하는 시인이 있다. 중년의 시인에게 겨울 강은 젊은 날에 보는 것과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청춘의 눈에 얼어붙은 차가움이었던 겨울 강이 세찬바람으로부터 품속에 있는 것들을 감싸는 따뜻함으로 바뀌었다. 속으로는 뜨겁고 겉으로는 차가운 ‘수많은 겨울을 지나가’며 시인은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내면을 읽어낼 줄 아는 성숙한 자아가 되었다. ‘수많은 겨울이 지나가는 동안 나는 몰랐다’, ‘따뜻한 사랑의 숨소리 나 정말 알지 못했다’는 시인의 말에서 우리의 깨달음이 늘 한발 늦다는 것과 그 안의 사랑을 미처 알지 못하고 야속하게, 서운하게만 생각한 젊은 날의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깨지지 않는 얼음을 향해 돌을 던지는 불만에 찬 시인의 젊은 시절이 눈앞에 그려지지 않는가?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겨울 강의 대상은 늘 바뀌었다. 부모님, 목사님, 교수님, 선배, 상사, 하나님, 세상 ……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만날 때마다 내 원망이 향하던 곳은 늘 겨울 강이 되었다. 원망과 눈물, 서운함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돌을 던지는 내 모습은 시인의 젊은 모습과 다르지 않다. 뒤늦게 그분들의 말씀이 나를 위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을 때 느끼는 그 후회와 안타까움…… ‘그때 그래서 그렇게 했구나!’라는 깨달음은 왜 그렇게 한발 늦는 것인지……
지금 내 마음에 서운함으로 눈물지으며 내 돌이 향하는 누군가가 있다. 그래서 이번 해엔 좀 이르게 이 시가 그렇게 내 머리에 맴돌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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